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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난을 넘어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에 당선된 척수마비 장애인 주부 이윤자

“몸은 불편하지만 남편과 아이, 소설 있어서 누구보다 행복해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12. 12

학력고사를 며칠 앞두고 당한 교통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이윤자씨. 꽃다운 나이에 장애인이 된 그는 한때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어머니와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힘든 시간을 극복했다고 한다. 아들을 낳아 기르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올해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에 당선된 이윤자씨의 감동 인생 스토리.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에 당선된 척수마비 장애인 주부 이윤자

제15회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윤자씨(39)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사진촬영 승낙을 받고 그를 만나러 가며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그러나 경기도 안산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밝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는 “몸이 불편하다 보니 사진 찍기가 번거로워서 그랬다”며 이해해달라고 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쓰지 못해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움직이는 그는 세수는커녕 밥 한 숟가락, 귤 한 조각도 혼자의 힘으로는 들지도, 까먹지도 못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언니들이 수시로 와서 그를 도와준다고 한다.
“상은 받으면 기쁜 거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열심히 고민하며 써야겠다는 책임감도 들어요.”
이윤자씨는 시상식 날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그는 입에 키보드 스틱을 물고 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한자 한자 찍어가며 글을 쓴다. 혼자 힘으로는 메모조차 할 수 없는 그가 중편소설을 쓸 수 있었던 데는 남편 이현수씨(41)의 도움이 컸다. 남편은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대신해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자료수집을 다니며 그의 손발이 돼주었다고 한다.
“이번에 당선된 작품은 2004년에 쓴 거예요. 남편과 현대미술관에 갔다가 세계평화기획전을 둘러보며 모티프를 얻었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주빈이(9)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낮에는 거의 글을 못 쓰고 밤 10시 정도에 시작해서 새벽 2, 3시까지 작업을 했어요.”
원고지 3백 장이 조금 넘는 당선작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는 두 남녀가 베트남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3일을 함께 여행하고 헤어진 후 한국의 한 미술관에서 7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2003년에도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그는 문인협회 원로작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문체가 세련됐고 구성에 안정감이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올해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베트남 여행을 해보지 않아 소설의 리얼리티가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는 그는 남편에게 부탁해 베트남 관련 여행책을 구해 읽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모자라는 부분을 커버했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몸만 성했다면 남편에게 이런 고생 시키지 않고, 훌쩍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불쑥불쑥 들었다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보며 삶의 끈 잡아야겠다는 생각 들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했어요. 85년 11월 초 학력고사를 며칠 앞두고 도서관에 가려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는데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그만 교통사고가 났어요.”
경추 3, 4번을 다치는 대형사고가 나서 병원생활만 2년 6개월을 했다고 한다. 그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에 이상이 생겨 목 아래부터 사지를 못 쓰게 됐지만, 가족들이 사실을 숨겨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될 줄 몰랐다고.
“거동을 못해도 곧 일어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위로 딸 넷, 아래로 아들 둘인 7남매 집안에 다섯째인데 충격을 받을까봐 언니들이 모두 쉬쉬하고 숨겨서 사고난 지 일년이 넘도록 제 몸 상태를 제대로 몰랐어요.”
그는 병원생활이 오래 지속되자 직접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보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재활의국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때가 4월이었어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병원 앞마당을 질러가는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제 처지도 잊고 도취됐죠. 정신을 차리고 담당 의사를 만나 ‘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 상태로는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뿐 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힘없이 왔던 길을 돌아나오는데 이번에는 마당의 벚꽃이 그렇게 잔혹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에 당선된 척수마비 장애인 주부 이윤자

그는 돌아오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울었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평생 장애를 안게 된 그는 살아야겠다는 희망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고.
“한동안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살았어요. 척수장애자는 호흡곤란이나 방광 불완전, 혈액순환 장애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 면역체계가 갖추어지기까지 병원생활을 오래 해야 해요. 그런데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치료도 시큰둥하니 간병을 하시는 엄마가 너무 힘드셨죠.”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었다. 그는 사고 후 하루 24시간 내내 자신 옆에 붙어 있는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삶의 끈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결혼, 아들 얻고 감사해
“짜증내는 딸 앞에서 엄마는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밖에서 울고 딸 앞에서는 안 운 척하시지만, 눈빛을 보면 알잖아요. 엄마를 봐서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죠.”
2년 6개월 만에 퇴원한 그는 독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기독교 서적부터 문학전집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던 그는 93년 일정 학점을 취득하면 학위를 주는 독학사 과정에 등록해서 공부를 하던 중 95년 PC통신을 하며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하이텔통신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제목으로 간략하게 제 소개를 적은 프로필을 남겼어요. 그런데 얼마 후 남편이 메일을 보내왔죠. 제가 장애인인 줄 모르고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아서 몇 번 메일을 주고받다 남편에게 사실을 밝혔어요.”
하지만 남편 이씨는 장애 사실을 알고도 그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비장애인인 남편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남편을 피했고 남편은 그런 그의 집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처음엔 토요일에만 왔는데 언젠가부터는 토요일에 와서 남동생 방에서 자고 일요일까지 놀다가 갔어요. 제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컴퓨터 공부가 끝나면 초등학생인 조카의 공부를 봐주겠다고 제안해서 또 오고….”
부모를 일찍 여의고 누나와 외롭게 자란 남편은 이윤자씨 집안의 화목한 분위기에 쉽게 젖어들었고 그해 가을 그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하루는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남편이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뭘 어떻게 생각하느냐, 결혼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죠. 남편은 ‘남녀가 만나서 서로 좋으면 가정을 갖는 것이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이 말을 하러 이 남자가 이곳에 오자고 했구나’ 생각하니 속으로는 많이 떨렸어요.”
남편은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는 그를 “사랑은 수학이 아니다. 주기만 할 수도, 또 받기만 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시집 식구들도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남편의 고집에 승복, 96년 6월 결혼식을 올렸고 곧바로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결혼 승낙을 하며 남편에게 아이를 못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제 몸으로는 아이를 낳기 힘들다고 생각한거지요. 임신 사실을 알고 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저는 걱정이 앞섰어요. 재활의학과를 찾아가 상의를 했더니 제왕절개하면 아이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정말 하늘에 감사했어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낸 후부터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글쓰기 시작
그는 임신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임신 8개월째인 97년 2월 독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며칠 후 아들 주빈이를 낳았다.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에 당선된 척수마비 장애인 주부 이윤자

남편, 아홉 살된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이윤자씨는 장애인 문학상이 아닌 일반 문학상에도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빈이가 태어난 뒤 남편은 회사생활을 접고,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 가게를 얻어 컴퓨터 부품 매장을 차렸다. 아내와 아이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달려오기 위해서다.
“항상 남편에게 미안해요. 바깥일만 하기에도 바쁘고 피곤한데 집에 와서도 편안히 쉬지를 못하고 저와 아이를 챙기는 걸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특히 늦은 저녁 혼자서 냉장고 열고 반찬 꺼내고 찌개를 데워 밥 먹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는 아들에게도 미안한 점이 많다고 한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챙겨야 했기 때문. 하지만 밝게 자라주어 고맙다고.
그는 주빈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부터 정신적·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기 때문이다.
“남편이 ‘당신은 문학을 하면 잘할 거야’ 하고 늘 격려해줬어요. 작가로서는 늦깎이인 셈이죠. 하지만 신체적 장애가 작품세계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앞으로도 살아가며 겪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어요.”
장애인 문학상이 아닌, 일반 문학상에도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는 그는 “올해 한 신문사 문학상에 출품했다가 낙선했다. 아직은 실력을 더 쌓아야 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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