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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사연

LG 구본무 회장 요즘생활 & 특별한 ‘새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최근 ‘1등 LG’ 강조하며 역동적인 기업 이미지 실현에 직접 나서 주목받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3. 10

최근 LG 구본무 회장의 바쁜 움직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허씨가(家)와의 오랜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주)LG를 중심으로 총 37개사 체제를 출범시킨 구 회장은 ‘1등 LG’를 거듭 강조하며 ‘발로 뛰는 경영’에 힘을 쏟고 있다. 가족 탐조여행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엔 집무실에 망원경을 설치해 새를 관찰하는 그의 각별한 ‘새 사랑’도 화제를 모은다.

LG 구본무 회장 요즘생활 & 특별한 ‘새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국내유일의 도심 속 철새도래지 밤섬에는 매년 겨울 시베리아나 몽골 등 북방지역으로부터 1만여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고 한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 따르면 밤섬에서는 황조롱이, 흰꼬리수리, 쇠부엉이, 원앙 등 4종의 천연기념물과 함께 흰뺨검둥오리, 원앙이, 할미새, 해오라기, 꿩, 왜가리, 개개비, 알락도요, 찌르레기 등 25종의 새들을 볼 수 있다. 또 겨울에 날아온 수천마리의 천둥오리 중 일부가 밤섬에 텃새로 남는다고.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LG 트윈타워 구본무 LG그룹 회장(60)의 집무실에는 독일제 망원경이 있다. 95년 구 회장이 취임하면서 설치한 것이다. 구 회장은 틈이 날 때마다 이 망원경으로 밤섬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96년엔 독수리의 일종인 천연기념물 243호 흰꼬리수리를 처음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낯선 사람이 고무보트를 타고 밤섬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새들을 해칠까 우려해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 직접 신고하기도 했다.
새 날갯짓과 울음소리만으로도 어떤 새인지 구분할 정도
구본무 회장의 새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은 재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구 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새와 나’ 코너를 따로 만들어 새와의 인연을 소개하고, 2000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상록재단에서 펴낸 조류도감 ‘한국의 새’의 내용을 일부 공개하고 있다. 구 회장은 홈페이지에서 “중학생 시절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와 정성껏 치료를 해 돌려보낸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새의 몸짓과 날갯짓, 울음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구분이 되더라”고 밝혔다. 그는 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LG 구본무 회장 요즘생활 & 특별한 ‘새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창가를 스쳐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원들에게 이야기해서 확인해보니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LG 빌딩 옥상에 둥지를 틀고는 빌딩 꼭대기 난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황조롱이 부부가 2주 정도 지나자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황조롱이는 알이 부화된 후에는 절대 새끼를 버리지 않지만 알을 품고 있을 때 주위가 불안하면 떠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옥 전체에 특별 보호령을 내렸지요. 직원들이 창문 쪽에서 황조롱이 둥지를 쳐다볼 수 없도록 차양막을 설치하고 인기척에 놀라지 않도록 접근도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고맙게도 새끼 황조롱이들은 모두 부화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LG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 ‘황조롱이 사건’은 99년에 있었던 일로 구 회장의 새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구 회장은 평소 틈틈이 새에 관한 전문서적을 읽고, 의문이 생기면 조류학자 등에게 문의하는 열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집무실에는 해외 출장 때마다 구입한 세계 각국의 조류도감 등 새 관련 서적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런데 탐조여행을 떠날 때마다 외국에서 발간된 도감을 챙겨들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구 회장은 97년 12월,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LG상록재단을 설립하고, 조류도감 제작을 지시했다. 그 결과 3년 만인 2000년 말에 총 6억원을 들인 국내 최초의 그림 조류도감 ‘한국의 새’가 완성됐다.

LG 구본무 회장 요즘생활 & 특별한 ‘새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구본무 회장은 집무실에서 틈틈이 망원경을 통해 도심 속 철새도래지인 밤섬의 새들을 관찰한다.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새’는 세계적인 희귀새는 물론 현재 남북한에서 관찰되거나 기록된 모든 조류를 총망라해 18목 72과 4백50종을 수록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을 적용한 그림 도감이라 사진도감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새의 세세한 특징까지 살펴볼 수 있다. LG상록재단에 따르면 이 도감은 조류 및 환경관련 기관, 대학, 일반 탐조회, 시민단체, 해외 동물 및 환경 기관 등에 무상 배포됐다고 한다.
해외 출장길에 수행비서만 대동하는 소박한 성격, 최근 기업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바꾸기 위해 임직원 독려
구 회장은 LG상록재단을 통해 새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새들은 보통 나무구멍을 둥지로 이용하는데, 무분별한 삼림개발로 인해 새들이 둥지를 틀 만큼 큰 나무들이 부족해져 번식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2002년부터 전국의 5개 휴양림과 충북 예산의 수덕사 등산로, 서울대 관악 수목원 등에 새집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도 과천 서울대공원, 창경궁, 개포동 달터공원 등에 새집과 먹이대를 설치했는데, 설치에 앞서 7~8월에 조류서식실태를 조사해 서식하고 있는 새의 종류에 따라 이용하기 가장 적합한 새집을 제작했다고 한다.뿐만 아니라 매년 자매결연을 맺은 강원도 철원 지역의 군부대에 새 모이와 위문금을 전달하고 있다.
밤섬에 찾아든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내 한강 밤섬 철새조망대도 한강시민공원사업소와 함께 LG상록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철새조망대에 탐조용 고성능 망원경 5대를 설치하고, 추운 날씨에도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투명조망시설을 마련해놓았다. 또한 탐조도우미 2명을 상주시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새를 관찰하도록 돕고 있다.
외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 1종이 멸종되면 곤충은 90종이 사라지고, 식물은 45종이, 양서류와 파충류는 2종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만큼 새가 자연생태계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 구 회장은 재작년부터 전 세계에 약 6백~1천여 개체만이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저어새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특히 저어새에 관심을 가진 건 현재 생존하고 있는 저어새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거나 겨울을 나기 때문. 구 회장은 한국조류학회에 용역을 줘 저어새와 그들의 서식지를 연구하고, 서식지 보호와 새로운 서식지 조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구 회장은 요즘도 집무실에서 휴식 시간을 이용해 망원경으로 밤섬을 관찰하곤 하지만 예전처럼 탐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올해로 회장 취임 10년째를 맞는 구 회장은 최근 몇 년 간 LG그룹 전체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하고, 본인이 직접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발로 뛰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구 회장은 2002년 신년사에서 “지금은 1등이 아닌 기업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임직원에게 비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경영환경이 어려울수록 1등 기업은 오히려 진가를 발휘한다. 발상과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10분 남짓 걸린 짤막한 신년사에서 ‘1등’이라는 단어를 무려 13번 사용했다.
그로부터 3년,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1등 LG’를 강조했다. 그는 1월3일 LG 트윈타워에서 열린 새해인사모임에서 “3년 전 신년사에서 ‘1등 LG를 처음 천명했지만 1등 LG에 다가가는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며 “차별화된 사업 모델과 핵심 인재 확보 및 육성,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승부 근성으로 일등 LG를 앞당기자”고 다시 한 번 역설했다. 그는 이를 위해 각 사 CEO들이 더욱 과감하게 투자하고, 단순히 우수한 사람보다는 사업과 전략에 꼭 맞는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구 회장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해 LG는 올해 투자규모를 지난해 9조3천억원 보다 26% 증가한 11조7천억원으로 정했다. 이와 함께 국내외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해 매출과 수출도 지난해 대비 각각 15%와 30% 증가한 94조원과 3백92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LG 구본무 회장 요즘생활 & 특별한 ‘새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열린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우수한 핵심 인재 확보를 강조했다.


구 회장의 측근은 구 회장이 ‘근검절약’과 ‘약속은 꼭 지킨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전한다. 구 회장은 항상 약속 시간보다 30분 먼저 나와 기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그는 ‘5년 후,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1등 LG’를 강조하기 시작한 뒤로 CEO들과의 잦은 면담을 통해 계획한 성과 목표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반드시 달성하도록 지원하고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구 회장은 각 계열사의 CEO들과 만날 때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근성과 실천력이며 이것은 아날로그시대건 디지털시대건 똑같이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기존의 온화하고 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바꾸기 위해 임직원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구 회장은 평소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해외 출장길에 오를 때도 차장급 수행비서 한 명만 대동한다고.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유머가 구 회장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구 회장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유일한 건강관리법이라고.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평소 건강한 편이어서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며 “늘 마음을 밝게 갖고, 규칙적인 생활을 습관화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운동장에 나가 야구경기를 관전하거나 골프를 치기도 한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 자정 무렵 잠든다고 한다.
구 회장에게는 올해가 여러 모로 남다른 의미를 가질 듯싶다. 올해가 ‘LG’ 브랜드가 출범한 지 꼭 10년째인데다 1947년 창업 1세대인 고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씨로부터 반세기를 이어온 구씨,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가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 지난 1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LG칼텍스정유, LG홈쇼핑, LG유통, LG건설 등 14개사가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GS그룹으로 분리됨에 따라 구본무 회장은 지주회사인 (주)LG를 중심으로 전자 화학 통신 부문 계열사 등 총 37개사 체제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허창수 회장은 지난 2월15일 GS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LG의 사업 영역에는 진출하지 않는 등 상호존중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며 협력관계를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구본무 회장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의미로 허 회장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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