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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뜨거운 부정

‘부모님 전상서’에서 ‘준이’의 실제 모델이 된 충만이 아버지 선우담 목사의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장애라지만 노력하면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버릴 수 없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지재만 기자

2005. 03. 10

요즘 ‘말아톤’이란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자폐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란 인터넷 카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폐아 아들을 둔 아빠이자 포천 예수마을교회의 목사로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선우담씨를 만나 자폐아 충만이를 키우면서 겪는 말못할 고충과 아들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을 들었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준이’의 실제 모델이 된 충만이 아버지 선우담 목사의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

포천 예수마을교회 선우담 목사(42)는 인터넷에 특별한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바로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cafe.daum.net/love0531)’다.
“자폐아 아들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터득해온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카페를 개설했어요. 제가 갔던 길을 알려주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길을 가지 않을까 싶어서요.”
선우 목사의 아들 충만이(15)는 중학교 3학년이다. 하지만 몸만 컸지 행동이나 생각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인 자폐아다. 충만이는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극중 김희애의 자폐아 아들로 나오는 ‘준이’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선우 목사의 카페를 본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쓰기에 앞서 보조작가를 보내 충만이의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충만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담을 듣게 해 작품에 활용한 것.
그런데 직접 만나본 충만이 가족은 드라마 속 준이네와는 달랐다. 교회 한쪽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고 있는 그의 가족은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충만이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건강해 보였다. 선우 목사는 중증 자폐아였던 충만이의 증세가 호전된 것은 아내와 큰딸 은혜(16), 막내 진리(9)의 ‘충만한’ 사랑 덕택이라고 말한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9개월 된 충만이를 누나 은혜와 함께 할머니 손에 맡겼어요. 어쩌면 가장 엄마의 손이 필요할 때 떼어놓아서 저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할머니 집에서 자라던 충만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네 살 때. 그때까지 대소변을 못 가렸지만 그저 ‘남자 아이라 좀 늦되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TV에서 자폐증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점 이외에도 까치발을 하고 다니거나 언어 표현을 하지 않는 점 등 TV에서 말하는 증상의 70% 정도가 충만이와 같았어요. 그래서 알고 지내던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더니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더군요.”
그때까지 자폐증이란 것이 뭔지도 잘 몰랐던 그로서는 치료가 가능한지 여부가 가장 궁금했다고 한다.
“자폐증은 약 먹고 수술하면 낫는 병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장애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노력하면 아이가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자폐아 동생이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착하고 순수해 좋다는 누나 은혜
그는 그 뒤 충만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엔 충만이가 할머니를 찾으며 엄마, 아빠를 거부해 많이 속상했다고 한다. 아내 신상희씨(39)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충만이를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고. 당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충만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던 일을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아이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온갖 이상한 소리를 내며 관심을 끌었죠. 그렇게 해서 1분 동안 눈을 마주치기까지 7개월이 걸렸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웬만큼 오래 마주치기까지는 2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이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 전상서’에서 ‘준이’의 실제 모델이 된 충만이 아버지 선우담 목사의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

작은 시골교회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우담 목사(위). 충만이와 동생 진리.


눈 마주치는 훈련이 끝나자 그는 충만이를 재래시장에 데리고 나가 언어를 가르쳤다. 재래시장에는 많은 것들이 있어 실물교육을 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 시장에 나가 토끼를 보면 토끼란 말을, 닭을 보면 닭이란 말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충만이가 딸기를 보고 처음으로 ‘딸기’란 말을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빠’란 단어를 들었을 때 무척 흥분된다는데 나는 그때 그랬다”며 당시의 흥분을 회상했다.
“충만이가 여섯 살 때부터 주변에 아이가 자폐아란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아이는 세상에 오픈시키는 만큼 발전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충만이를 오픈해서 키우는데 큰딸 은혜가 많은 도움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충만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아내가 다시 직장을 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은혜가 쭈욱 충만이를 돌보고 챙겼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충만이가 수시로 은혜 반에 가서 누나가 있나 확인을 했대요. 그만큼 은혜가 곁에 있어야 안심을 했어요.”
은혜는 한 번도 다른 아이들과 다른 동생이 부끄럽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또래의 아이들보다 착하고 순수해서 좋다”고 말하는 은혜의 얼굴엔 동생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선우 목사는 충만이를 키우면서 남모르는 아픔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예전엔 충만이가 손으로 음식을 먹었어요. 그러면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없을 거 같아 제가 손으로 밥을 못 먹게 했더니 아이가 우는 거예요. 아내는 ‘밥 먹을 땐 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러면 안 된다 싶어 아이와 몇날 며칠을 싸웠어요. 결국 충만이는 손으로 먹는 걸 포기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충만이 앞에선 결코 꺾이는 법 없이 강한 모습을 보이는 그도 밤에 혼자 기도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에도 충만이 때문에 속으로 울어야 했다고.
“다니던 미용실이 아닌 다른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오던 날 밤 충만이가 자기 손으로 머리를 잘라버린 거예요. 짧게 삐죽삐죽 잘린 충만이의 머리를 보니까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났던지 잘 들지 않던 매까지 들었어요.”
그날 밤 혼자 기도를 하며 많이 울었는데, 그렇게 힘들 때마다 아내와 딸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한때, 끝날 것 같지 않은 충만이와의 싸움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나 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또 싸워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을 뜨기가 싫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리 반복해 가르쳐도 나아지지 않는 충만이를 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아 무기력해지고 답답해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은 적도 있다고.
“충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파트에 올라가 아이를 떠밀까 하는 맘을 먹은 적이 있어요. 목사인 제가 그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기르다 보면 인간관계가 많이 손상될 뿐 아니라 치료비용도 만만치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고 말하는 그는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이었다고 한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폐아들을 많이 다루는데 그게 단순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폐아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의 지원과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에서 자폐아를 키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부모님 전상서’에서 ‘준이’의 실제 모델이 된 충만이 아버지 선우담 목사의 ‘자폐아를 둔 아빠의 일기’

선우담 목사의 가족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선우담 목사, 충만이, 아내 신상희씨, 큰딸 은혜, 작은 딸 진리.


충만이는 현재 일반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원래 특수반이었는데 어느 날 이 녀석이 일반 학급으로 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특수반에서 반장까지 하면서 실력이 제일 낫다 싶으니까 그랬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일반 학급에서 일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하지만 충만이는 학교에서 놀림도 많이 받고 ‘왕따’도 당하며, 때론 구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도 군소리 없이 학교에 가는 충만이가 그는 기특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맞고 와서 ‘귀찮게 구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떡하냐’고 물어올 때는 화가 치밀지만 꾹 참곤 했어요.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가르쳤는데, 아직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는 못해요. 요즘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충만이는 피아노 치는 것 외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충만이의 꿈은 요리사. 튀김 요리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가 어느 날 TV 요리 프로를 따라 군만두를 만들어 보고는 요리에 푹 빠졌다고. 그래서 요즘은 재료를 대기도 힘들 정도라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튀김 요리를 주로 하죠. 돈가스, 탕수육, 파전, 동그랑땡 정도는 이제 한 시간이면 뚝딱 해치워요. 요즘은 요리 프로를 보고 응용해서 새로운 걸 많이 시도하는데, 그러다 프라이팬 여러 개를 못 쓰게 만들었죠(웃음).”
얼마 전엔 건빵으로 약과를 만들었다는 충만이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요리 재료를 안 사준다’는 것. 그래서 요리를 한 후 설거지를 안 했을 때 “앞으로 요리 재료를 안 사준다”고 하면 군말 없이 설거지를 한다고 선우담 목사는 웃으며 말했다.
“비록 요리사 자격증 같은 것은 따지 못해도 요리를 좋아하니까 나중에 분식점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남들은 자폐아 자식이 자신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이를 못 미더워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는 달라요. 저는 충만이가 제가 죽은 후에도 오래오래 살면 좋겠어요. 그리고 은혜나 진리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공부보다는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는 일, 은행에서 계좌 만드는 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충만이가 세상에 나와 혼자 설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그와 가족들이 만들어 주는 토양에 우리 모두 사랑과 관심의 물을 뿌려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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