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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우리 아이들을 위한 실험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패스트푸드 업체에선 풍부한 영양소 갖고 있다고 광고하지만 제 몸을 던져 그 반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4. 12. 10

한 환경운동가가 패스트푸드의 위해성을 입증하겠다며 26일 동안 하루 세 끼를 모두 햄버거만 먹는 이색 실험을 해 화제를 모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인 패스트푸드의 악영향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몸을 던져 실험에 임한 화제의 주인공 윤광용씨를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윤씨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비만 등 육체건강 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들이 생일축하 파티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단순한 간식거리를 넘어 아이들의 주요 먹을거리로 자리잡은 것.
하지만 패스트푸드는 비만을 부르는 등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최근에도 미국의 한 영화감독이 한 달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자신의 신체 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사이즈 미’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 다시 한 번 이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한 환경운동가가 한 달 동안 패스트푸드만 먹으며 신체 변화를 살피는 한국판 ‘슈퍼사이즈 미’ 주인공으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환경정의시민연대(www.eco. or.kr) 윤광용씨(31)가 그 주인공. 지난 10월16일부터 시작된 그의 실험은 26일 만인 11월10일, 건강이 위험 상황 직전까지 왔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로 중단되었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몸을 던져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알리고 싶었다는 윤씨를 성북구 삼선교 근처에 있는 환경정의시민연대 산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새집증후군으로 잘 알려진 유해 화학물질을 추방하는 운동과 좋은 먹을거리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온 주부 중심의 환경 모임으로 베스트셀러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를 펴내기도 했다.
윤씨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2001년부터 직업 환경운동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현재 환경정의시민연대에 상근하며 환경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몸을 던져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영화 ‘슈퍼사이즈 미’ 때문이지만 그는 몇 년 전부터 강도높게 꾸준히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제기해왔다고 한다.
“패스트푸드 광고를 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할 만큼 풍부한 영양소를 갖추고 있고 몸짱이 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전 한 달 동안 패스트푸드만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죠. 그 광고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반대로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저를 실험도구로 삼은 거예요.”
간이 급격히 나빠져 중단하라는 의사의 권고 받아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실험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그는 마라톤을 완주한 후에도 크게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체지방률도 여성 에어로빅 강사 수준으로 적어 날씬한 편이었다고.
“실험하는 동안 하루 세 끼를 패스트푸드만 먹었어요. 그것도 업체에서 하나의 완성된 식단이라고 주장하는 세트메뉴로 먹고, 웰빙 제품이라고 선전하는 샐러드 같은 것도 간식으로 빼놓지 않고 먹었고요. 심지어 물도 그곳에서만 사먹었죠.”
그렇게 해서 윤씨가 섭취한 칼로리는 하루 평균 3,020kcal 정도. 대한민국 성인 평균 권장량인 2,500kcal보다는 많지만 실제 성인이 먹는 양이 3,000kcal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먹은 셈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성인이 하루 평균 5천 보를 걷지 않는 데 반해 그는 1만 보 이상 걸었다. 또한 실험 기간 동안 술과 담배도 멀리했다. 하지만 실험을 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스스로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고 한다.
“처음 이틀은 먹기가 힘들더라고요. 먹다가 토할 것 같았어요. 속이 불편해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죠. 하지만 햄버거는 ‘밥’이고 콜라는 ‘김치찌개’라고 자기최면을 하면서 간신히 먹었어요.”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3일째 되는 날부터 몸이 무거워지고 피로가 느껴졌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등과 어깨가 결리고 가슴이 답답한 느낌도 들었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차올랐다. 살이 찌는 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허리가 헐렁했던 바지가 꽉 맞아 손가락 하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10일째 되는 날 몸무게가 1.6kg 늘어 있었다. 체지방은 3kg이나 늘었고, 간기능수치(GPT)도 22였던 게 50을 넘어섰다.
“전에는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20일쯤 되자 자기에 바빴죠.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하루 종일 피곤하고, 정신이 멍하고,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빠왔고요.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걸 느끼면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실험 기간 동안 그를 검진했던 푸른신경정신과 의사 이종헌씨에 따르면 “실험 19일째부터 과잉행동 증후군이 나타나고, 우울증·불안증·공황장애 부분에서 병적인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윤씨는 “의사가 과잉행동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24일째 되는 날 검사를 한 결과 체중이 처음보다 3.4kg 증가했다. 더 심각한 건 근육량은 오히려 1.3kg 줄고, 체지방은 5.2kg이나 늘었다는 것. 심지어 간기능수치가 75까지 올라갔다. 실험 기간 동안 그의 신체 건강상태를 검사했던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은 실험 중단을 강하게 권유했다.
“처음에 의사들이 건강을 악화시키는 실험에 협조할 수 없다고 해서 예방의학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설득하며 입원치료를 요할 정도가 되면 실험을 중단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간기능수치는 43까지가 정상인데 평소 22였던 것이 5일 만에 43으로, 10일 만에 50으로 올라갔어요. 잠시 정체되는가 싶더니 20일이 넘어가면서 54·75로 급속히 상승하더라고요. 의사가 ‘간은 한번 나빠지면 급격히 나빠진다’며 위험한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어요. 그래서 약속대로 포기해야 했어요.”
그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볼 때마다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건강이 나빠지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는 것.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만들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실험 기간 중에 그는 일요일 놀이공원 이용객들의 점심 식사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조사를 나간 일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를 사들고 먹고 있는 걸 보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하는 실험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그날 30대 중반의 뚱뚱한 남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의 말이 10년 동안 영업사원으로 일했는데, 영업직이라는 특성 때문에 빨리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보니 자연히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게 되었대요. 그 결과 군대 가기 전 60kg이었던 몸무게가 95kg으로 늘었고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려 한때는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서 뒤늦게 패스트푸드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나야 한 달만 먹으면 됐지만 우리 아이들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걱정이에요”
그는 실험 기간 동안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몸을 망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비난 아닌 비난을 들어야 했다고.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지만 패스트푸드 업체에선 들은 척도 안 했어요. 시민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사실, 저는 한 달만 먹으면 됐어요. 건강 상태를 계속 체크하니까 아주 위험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였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입맛이 길들여져 평생 먹게 될 아이들은 누가 책임질 거냐는 거죠. 그걸 환기시키고 싶었어요.”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일부에선 이 실험에 대해 비교 대상이 없어 의미가 없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엔 일반인을 포함해 5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진행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식비, 병원비 등 1인당 1백만원이 훨씬 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던데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건강을 담보로 한다는 게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어 포기했다는 것.
“그분들이 건강에 큰 위험이 생겼을 때 책임질 능력이 안 돼요(웃음). 그래서 부득이 혼자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안티패스트푸드카페(cafe.daum.net/antifastfood)에 ‘패스트푸드만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글을 남긴 사람들에게 직접 저와 함께 실험을 해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죠. 정말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다면 해당 업체에서 돈을 들여 저와 함께 실험을 하면 좋겠어요.”
또한 하루 세 끼를 모두 패스트푸드로 먹는 사람은 없다며 실험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물론 하루 세 끼 패스트푸드만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2001년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실제 그렇게 먹는 사람이 1만5천 명이고, 하루 한 끼 이상을 먹는 사람이 30만 명에 달해요.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요. 더 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청소년이고, 제가 겪은 그런 질환을 알게 모르게 이미 앓고 있다는 거예요. 또한 업체의 광고대로 패스트푸드가 영양의 균형이 잘 맞는다면 주식으로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어야죠.”
이에 대해 패스트푸드 업체에선 ‘어떤 음식이든 한 가지만 계속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 한식도 밥과 김치만 먹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반박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가 고지방·고열량 음식의 위험성을 전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시작한 실험이에요. 자기들이 영양가 있는 식품이라 선전한 샐러드, 주스 등을 하루 한 번 이상 섭취했음에도 세 끼의 패스트푸드 식사는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어요. 밥과 김치찌개만 먹었다고 이렇게까지 건강이 악화될지 또 실험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패스트푸드가 영양소가 부족할 뿐 아니라 칼로리의 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체에선 햄버거와 김치찌개의 칼로리가 비슷하다고만 선전해요. 하지만 질이 달라요. 김치찌개는 지방이 차지하는 칼로리가 20% 정도인데 햄버거는 40%가 넘어요. 그러니까 지방 과잉으로 제 간기능수치가 나빠진 거죠. 또한 지방엔 인체에 도움을 주는 좋은 지방과 인체에 해로운 나쁜 지방이 있어요. 고기를 이것저것 섞어서 갈아 만든 햄버거에 좋은 지방만 있을까요?”
그는 “더욱 심각한 건 미국에서 실험한 결과 패스트푸드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뇌를 자극하는 특정 성분이 나타나 공격적이 된다고 나왔다. 그리고 색소, 소금, 설탕 등 첨가물이 폭식을 유도하고 우울증, 심장이상 등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기 위해 하루빨리 패스트푸드의 재료와 성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스트푸드의 나쁜 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그에게 ‘패스트푸드를 완전히 몰아내자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고유의 음식이듯이 햄버거도 하나의 음식이에요. 그걸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특히 다음 세대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니까 기업이 어떤 윤리와 철학을 가지고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해보자는 거예요.”
그는 자신의 실험을 계기로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이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안전한 아이들의 먹을거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26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패스트푸드의 심각성 알린 환경운동가 윤광용

윤씨는 매끼 햄버거만 먹으니까 구토가 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실험을 끝낸 윤씨는 이제 당분간 패스트푸드로 인해 망가진 건강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운동과 한식으로 건강을 되찾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슈퍼사이즈 미’를 만든 감독은 간기능수치가 3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고, 몸무게도 6개월 만에 원상태로 돌아왔다고 해요. 하지만 요요현상이 생겨 다시 몸무게가 느는 바람에 그것까지 해결하는 데 총 1년6개월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는 앞으로도 패스트푸드 업체와의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패스트푸드 업체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어린이 시청 시간대에 패스트푸드 광고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미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에서는 광고가 금지되고 있어요. 어른들도 광고를 보면 상품에 신뢰를 갖게 마련인데 하물며 사고가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말할 필요가 없죠.”
두 번째는 정확한 재료와 성분을 공개하고 이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비교적 성분과 재료를 정확히 밝히는 다른 제조식품들과 달리 문제가 제일 큰 패스트푸드는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왜냐하면 식품위생법상 동네 분식점처럼 휴게음식점으로 구분이 되어 있거든요. 분명 패스트푸드는 동네 분식집과는 달라요. 매장에서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원재료를 굽거나 데우는 일만 할 뿐이니까 제조식품인 셈이죠. 따라서 패스트푸드 업체를 제조업체로 분류해 원재료와 식품첨가물 공개 의무를 지워야 합니다.”
그는 패스트푸드가 단순히 비만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패스트푸드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지구의 생태를 파괴하고, 제 3세계의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어른들이 고민해주면 좋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저의 실험을 격려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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