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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장한 어머니

자폐증 아들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유현경씨

“단 한번의 예외도 없는 철저한 교육 원칙 세워 주위 사람들에게 ‘ 독하다’ 는 소리도 숱하게 들었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4. 12. 10

최근 자폐증이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면서 주부들 사이에 자폐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녀가 자폐아 진단을 받을 경우 부모는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휩싸이지만 유현경씨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자폐증 아들을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장한 어머니다. 그를 만나 자폐를 이겨내게 만든 남다른 교육법을 들어보았다.

자폐증 아들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유현경씨

인기리에 방송 중인 KBS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 주인공 김희애는 자폐아를 낳은 뒤 시집과 남편의 구박을 받는 30대 중반의 주부로 등장한다.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인 영화 ‘말아톤’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스무 살 청년(조승우)과 그 어머니(김미숙)의 마라톤 완주기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 자폐아가 자주 등장하면서 주부들 사이에서 자폐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폐증은 자기가 보거나, 듣거나, 느낀 감각들을 적절히 이해하지 못해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정신질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자폐증을 앓는 아동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자신의 자녀가 자폐증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자신의 자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것. 15년 전, 유현경씨(43)가 아들에게서 이상한 징후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현경씨는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진호군(18)의 어머니다. 2002년 7월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선발돼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2관왕에 오른 진호군은 올해 부산체육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진호군은 발달장애 2급 장애인으로 지능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지만 일반 학생들과 어울려 훈련을 받고, 대회에도 참가한다. 네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은 진호군이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성장하기까지는 어머니 유현경씨의 남다른 교육법이 있었다.
유씨가 진호군에게서 처음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두 돌 무렵. 보통의 아이라면 ‘맘마’ ‘엄마’ 하며 말문이 트일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진호군이 입을 열지 않았던 것. 간혹 TV 광고의 배경음악을 흥얼거리는 ‘소리’를 냈을 뿐이라고 한다.
“두 돌이 지나도 ‘엄마’ 소리를 하지 않아서 ‘엄마’라는 말을 가르치기로 맘먹고 진호에게 ‘엄마, 해봐’ 하고 말했는데 진호가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 딴청만 하는 거예요. 억지로 진호가 저를 향하게 하고 ‘진호야, 엄마 해봐’ 하고 말했는데 진호의 눈은 여전히 허공을 향해 있고, 진호 입에선 ‘엄마 해봐’라는 말이 공허하게 흘러나왔어요.”
진호군은 그 뒤로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혼자만의 사색에 빠졌다고 한다. 요구 사항을 말이 아닌 괴성과 몸짓으로 표현하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괴성을 지르고 데굴데굴 굴렀다. 유씨는 결국 남편에게 진호군이 보이는 일련의 이상 행동들을 설명했고 외과의사인 남편은 그에게 아이를 데리고 한 대학병원의 소아정신과에 가보라고 했다. 예약이 밀려 6개월을 기다린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진호군에게 ‘자폐적 성향이 강한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어떤 책에서 보니 자식이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부모가 받는 충격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의 슬픔과 맞먹는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입학 42일 만에 휴학한 아들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며 직접 교육해
당시 아파트 11층에 살았던 그는 매일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베란다에 서서 ‘혼자 떨어져 죽을까’ ‘아이를 안고 뛰어내릴까’를 고민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한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서 ‘이 사람이 살아 있을까, 죽어 있으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했을 정도라고.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유씨는 한 달 후 진호군을 데리고 다시 병원을 찾아 특수교육기관을 소개 받았다. 특수교육기관이라는 곳이 복지관을 비롯해 몇몇 기관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담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는 특수교육을 마치 의사의 처방이나 치료와 같다고 생각해 거리와 소요 시간, 비용 등을 생각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자폐증 아들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유현경씨

15년 동안 아들 교육에 매달려 온 유현경씨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진호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진호군이 8세 되던 해까지 4년 동안 유치원 5곳과 특수교육기관 2곳을 전전했던 그가 자신의 힘으로 진호군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진호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42일 만에 휴학을 하게 되면서다.
“2월생인 진호는 정상아보다 2년 늦은 아홉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진호를 혼자 둘 수 없어 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수업시간 내내 교실 뒤에 앉아 있었는데 처음엔 잘 적응하는가 싶던 진호가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그만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더라고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놀라고, 학교에서 자퇴를 권고했지만 전 다시 준비해 오겠다며 진호를 휴학시켰어요.”
학교를 그만두게 되자 유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열성적으로 매달렸던 특수교육을 통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해왔는데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기도를 하면서 제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전까지 아이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것 끝나면 저것, 저것 끝나면 또 다른 뭐, 하는 식으로 하루 일과를 꽉 채웠는데 정작 제가 진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는 그날로 특수교육과 학교교육을 접고 직접 진호군을 교육하기로 결심했다. 진호군이 특수교육기관을 다니는 동안 자폐아 관련 전문서적들을 탐독했던 그는 이미 특수교육에 관한 한 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유씨는 가장 먼저 자동차를 구입하고, 접이식 자전거와 공 등 각종 운동기구를 트렁크에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오후 진호군을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어떤 책에서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없다는 내용을 봤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에 진호가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놀게 했죠.”
그는 진호군을 서울 근교의 학교 운동장이나 자갈밭에 데려가 지칠 때까지 실컷 뛰어놀게 했다고 한다. 산속에 데려가서는 트렁크 팬티 한 장 입혀놓고, 찢어진 드럼을 구해 맘껏 두드리며 목청껏 노래하게 한 적도 있다고.
“저도 편한 옷차림을 하고 진호와 함께 놀았어요. 수박을 들 때 쓰는 그물망에 축구공을 넣고, 철봉에 매단 뒤 진호와 마주 서서 공을 주고받았어요. 시선 맞추는 운동이 절로 되더라고요.”
진호군이 엄마와 시선을 맞추고 놀이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유씨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진호군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선 먼저 캐치볼을 이용했다. 야구와 유사하면서도 ‘찍찍이’ 소리가 나는 캐치볼이 진호군의 관심을 끌었던 것. 진호군과 배드민턴을 하기 위해서는 셔틀콕 대신 촉감이 독특한 밤송이를 주고받으며 흥미를 유발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진호군의 문제 행동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자폐아들은 대개 결벽증을 갖고 있어요. 몸에 뭐가 묻는 걸 견디지 못해 치킨을 먹을 때면 휴지 한 통을 다 쓸 정도죠. 그런데 각종 채소를 잘라서 물감을 묻힌 뒤 몸에 찍는 놀이를 한 뒤로 진호의 결벽증이 많이 나아졌어요.”
혼자 힘으로 진호군을 가르치던 유씨는 그해 가을 무렵 처음으로 일반 아동과 자폐아를 통합 교육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상담 결과 진호군은 자폐아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은 많이 개선됐지만 글과 말이 다른 아이들보다 서투르고 편식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교에선 진호군이 편식을 고쳐야만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진호군은 당시 밥을 먹지 않고, 컵라면과 초콜릿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듬해 3월 입학을 앞두고, 11월에 유씨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진호군과 단둘이 집을 나섰다.
“가평에 있는 콘도에 여장을 풀고 매일 아침, 밥과 된장, 김치, 멸치를 넣어 싼 도시락을 들고 진호와 산에 올랐어요. 산에서 진호에게 도시락을 내밀었지만 진호는 도시락을 먹지 않았어요. 저는 아랑곳 않고 혼자서 도시락을 깨끗이 비웠어요. 콘도에 돌아오자마자 진호가 냉장고를 뒤지며 과자, 라면, 초콜릿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그런 건 없었어요.”

자폐증 아들을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유현경씨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진호네 세 식구. 한 때 절망으로 여겨졌던 자폐증이 이 가족에겐 희망으로 바뀌었다.


꼬박 이틀을 굶고 사흘째 되는 날 유씨가 산에서 도시락을 내밀었을 때 진호군은 선뜻 김으로 밥을 싸, 김치와 함께 먹었다고 한다. 자폐아는 제각기 자신을 가두는 높은 벽을 쌓는다고 한다. 진호군에겐 편식이 그랬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철벽이 무너지자 진호군은 서서히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진호가 밥을 먹기 시작한 뒤로 많이 달라졌어요. 엄마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전에는 제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쏜살같이 사라져 늘 진호의 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어딜 가도 제가 없으면 두리번대며 절 찾더라고요.”
진호군이 무사히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유씨는 진호군에게 나름의 생활 교육을 철저히 했다. 진호군이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눈빛만 보고도 입의 혀처럼 모든 걸 알아서 해줬던 그는 편식이라는 높은 벽을 깬 뒤로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자폐아의 경우 10세 미만일 때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그를 자극했다.
“미국에서 나온 한 보고서에 따르면 10세를 기점으로 해서 비만이 시작되는 자폐아가 많다고 해요. 편식을 비롯한 나쁜 습관이 고착되면서 지체 장애도 심해지고요.”
아이가 작고 어릴 때는 문제 행동을 일으켜도 주위에서 귀엽게 봐주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엄마가 아이를 힘으로 당할 수 없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 아이의 교육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유씨는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진호군을 위한 교육적 효과에만 신경 썼다고 한다.
“시누이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를 하는데 진호를 데리고 나갔어요. 남들의 시선보다 진호가 그런 상황까지도 경험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진호가 결국 물을 엎지르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통에 도중에 진호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요. 시어머니께서는 진호에게 고기라도 좀 먹이고 가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진호가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 그것을 알게 하고, 고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결국 집에 와서는 진호가 좋아하는 치킨을 주문해서 진호가 보는 앞에서 저 혼자 먹어치웠어요.”
유씨는 진호군에게 생활 교육을 하며 가혹하다 싶을 만큼 ‘상벌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집 밖에 스티로폼을 깔고 재우기도 하고, 물건을 놓고 왔을 때는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시 돌아가 물건을 찾아오게 했다. 한겨울에 4시간씩이나 걸려 학교에 다시 걸어갔다 온 적이 있은 뒤로 진호군은 물건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유씨는 자폐아를 키울 때 무엇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폐아들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반면 잔머리를 잘 굴려요. 간혹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지요. 그래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어야 해요. 안 되는 일은 끝까지 안 된다고 해야지 ‘그래 이번만 봐준다’ 하고 예외를 두면 아이가 엄마의 허점을 파고들거든요.”
아이를 자신이 직접 가르쳐보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씨의 교육 목표는 한결같다. 진호군이 자립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늘 남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때문에 글자 하나를 더 알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진호군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기초적인 생활 능력을 키워주는 데 열중했다. 그는 진호군에게 설거지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그릇을 닦고, 행주를 빨아 널고, 싱크대의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는 것까지 가르치는 데 1년을 잡았다고 한다. 유씨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최소 단위를 1년으로 잡는다. 그리고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며 여유 있게 지켜본다. 간혹 6개월 이상 교육을 했는데도 진호군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 과감히 방법을 바꾼다.


유씨는 한 번도 진호군을 수영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에 진호군을 수영반에 넣은 건 진호군이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도움 없이도 일반인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사회성을 기르도록 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한다. 더하기 빼기와 같은 산수는 계산기를 이용해도 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
“흔히 수영이 자폐아에게 좋다고 하면 수영만 가르치려고 하는데 수영장에서 혼자 수영을 하기까지 필요한 예의와 질서를 배우는 게 진짜 교육이죠. 엄마가 수영복을 벗겨주고, 입혀주면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유씨는 진호군이 수영반에서 원만히 활동하도록 수영복 갈아입기, 물건 정리, 샤워하기 등 수영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 능력을 꼬박 1년간 가르쳤다고 한다. 종이 상자를 캐비닛처럼 만들어 스스로 물건을 정리하는 연습을 시키고, 혼자 샤워하는 법도 반복적으로 연습시켰다고.
수영반 활동은 일반 아이들 사이에서 진호군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교육 목표를 세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유씨는 진호군이 교내 수영반에 들어간 뒤로 몇 달 동안 캠코더로 진호군의 움직임을 촬영해 진호군에게 보여줬는데 진호군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인식하고, 문제 행동들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늘 불안해하던 진호군은 물 속에서만은 자신감을 보였다.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으면서 문제 행동들이 개선되고, 참을성도 키울 수 있었다. 수영 실력 역시 저절로 좋아져 수영특기생으로 수원북중학교에 입학했고, 2002년 7월 장애인 수영부문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진호군은 올 초 부산체육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난해 11월, 유씨는 진호군과 단둘이 수원에서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고, 남편은 홀로 안양에서 지내고 있다. 때문에 세 식구가 오붓하게 모이는 시간이 2주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하다. 진호군에게는 지금 나이에 꼭 필요한 교육이 있는 만큼 남편은 기러기 아빠 노릇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교육관을 이해하고, 온 가족이 그의 뜻을 따르고 있지만 유씨는 진호군을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과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의 철저한 교육 원칙 때문에 시집 어른들로부터 ‘독한 며느리’ 소리를 숱하게 들은 것. 그는 아이 문제로 여러 번 좌절감을 맛보면서 ‘왜 나만 힘들어해야 하나’ 하며 남편을 원망한 적도 많다고 한다.
“한때 이혼 위기까지 간 적도 있어요. 남편은 자기 일만 하고, 진호에 대해서는 저만 고민하는 것 같아 도움이 안 될 바에는 차라리 남편이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죠.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남편이 지쳐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바깥일 하랴 집안일로 신경 쓰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마음에 안쓰럽더라고요. 아이를 사랑한다는 공통분모 위에서 각자 자기 색깔에 맞는 역할에 충실하면 문제될 게 없겠다고 생각하니 모든 갈등이 해소됐어요.”
‘진호 엄마’ 유현경씨는 진호군이 처음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42일 만에 쫓겨난 뒤로 10여 년 동안 진호군에게만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지치지 않느냐”는 묻자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진호보다 하루라도 더 산다는 보장만 있으면 이렇게까지 독하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태풍의 눈은 오히려 고요하잖아요.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막상 주체가 되면 힘들지 않아요. 아이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보면 재미있어요. 뭐든 재미있으면 오래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죠.”
최근 자신이 실천했던 교육법을 자폐아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과 공유하기 위해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유현경씨.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새로운 각오로 진호군과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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