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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부부

결혼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단란한 신혼의 추억 만든 정범진·이수영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12. 01

지난 9월 말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린 벤처갑부 이수영 이젠 사장과 정범진 검사가 결혼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지난 11월8일 정 검사가 아내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전동휠체어를 기증하는 행사를 갖기도 한 이들 부부를 만나보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단란한 신혼의 추억 만든 정범진·이수영

요즘 새로운 웹사이트 오픈을 준비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벤처갑부 이수영 이젠 사장(39). 그는 바쁜 와중에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슬며시 눈을 감는다. MP3로 돈 매클린의 ‘빈센트’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11월4일이 제 생일이었는데 신랑이 생일선물로 MP3에 음악을 담아 선물했어요. 제 나이 또래 여자들은 아무래도 ‘반짝반짝’한 선물을 좋아하는데 신랑이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이런 선물을 주네요(웃음).”
지난 9월27일 하와이에서 결혼한 이수영씨와 정범진씨(37)가 결혼 후 처음으로 만났다. 정씨가 자신보다 더 바쁜 아내를 만나기 위해 지난 11월8일 한국에 왔다 같은 달 21일 돌아간 것. 4백억원대의 주식을 가진 벤처기업가 이씨와 전신마비 장애를 딛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 검찰청 부장검사로 활약 중인 정씨의 결혼은 세간에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 그들은 요즘 태평양을 사이에 둔 채 ‘월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수영이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런데 결혼하고도 계속 떨어져 있으니까 가끔은 내가 정말 결혼했는지 의심스러워요.”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는 대신 부인과 매일 전화통화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랜다는 정씨에게 “국제통화료는 누가 다 부담해요?” 하고 물었더니 “주로 수영이가 전화하니까 전화비는 신경 안 써요(웃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그곳에서 생활한 정씨는 검사라는 직업이 무색할 만큼 부드러운 인상과 유머 감각을 지녔다. 그가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부장검사 자리에까지 오른 비결은 아무래도 그의 밝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씨는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용산구에 있는 한벗회관을 숙소로 정했다. 서울 서초동에 이씨가 새신랑을 위해 새로 산 집이 있긴 하지만 정씨가 맘 놓고 드나들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타는 저를 위해 특별히 골랐다고 하지만 안 믿어요(웃음). 한국에 있는 호텔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많이 불편하거든요. 방에 문턱이 있고 화장실도 불편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는 게 제일 어려워요.”
부부가 떨어져 있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닐 약속을 하면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만나서는 제대로 즐기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씨가 회사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대신 정씨는 장모로부터 ‘고스톱’을 배우며 한국에서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저께 가족들과 새벽 4시까지 고스톱을 쳤는데 9만원을 잃었어요. 고스톱 배웠으니까 이제 미국 가면 온라인으로 수영이랑 고스톱 해야죠.”
결혼 후 처음 방문한 한국이니만큼 부부가 의미 있는 일도 했다. 11월15일 한벗회관에서 10명의 장애인들에게 전동휠체어를 선물한 것이다.
나란히 앉아 있는 부부의 모습이 닮은꼴이었는데 정씨는 이씨가 “도전적 삶을 살면서 남자 눈치 보지 않고 확실하게 의사표현 하는 점”이 마음이 든다면서 “한국여성들도 남자들 하고 싶어하는 대로 다 맞춰주지 말라”는 이색적인 주문을 했다.
“수영이는 제가 사귀어본 여자 중에서 제일 자기 주장이 강해요. 남자들은 여자가 너무 자기 말을 잘 들어주면 금방 지루함을 느끼죠.”

결혼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단란한 신혼의 추억 만든 정범진·이수영

한국에 온 정검사가 전동 휠체어를 장애인들에게 기증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이들의 만남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176cm의 훤칠한 키에 스키, 골프,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어 만능 스포츠맨 소리를 들었던 정씨는 24세 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중추신경도 함께 끊어져버렸다. 이 사고로 그는 어깨 아래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검사로 임용된 후 3년 연속 24회의 재판에서 24연승을 거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정씨의 이런 소식이 한국 방송에 소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씨의 삶에 감동받았고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우연히 정씨의 소식을 들은 이씨는 박수만 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정씨의 사진을 붙여놓고 보면서 그에 대한 사랑을 혼자 키워가다가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정씨에게 날아갔다.
“수영이가 뉴욕에 와서 절 만나자고 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그렇게 온 여자가 처음이 아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전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수영이는 진실해 보였어요. 첫눈에 마음에 들었죠.”
2년 전 기자는 정씨의 자전 에세이집 ‘밥 잘 먹고 힘센 여자를 찾습니다’가 출간됐을 때 정씨의 어머니 이명자씨(66)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미래의 며느리’에 대한 다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디서 점을 봤는데 범진이가 평범한 여자랑 결혼하는 게 아니라 아주 유명하고 돈도 많은 여자랑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어요.”
아마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예비된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벗회관에서 휠체어 기증식이 있던 날 정씨의 부모님도 함께 참석했는데 이명자씨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옷과 목도리를 일일이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였다. 오랫동안 기다린 며느리를 맞이해서인지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이씨와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임군(16)의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꼭 만나보고 싶어요. 하루빨리 서로 알게 되면 좋겠고 지금이라도 함께 살고 싶어요.”
정씨는 틈만 나면 “다섯 명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말을 이씨에게 하는데 2세 계획은 아직 미지수. 정씨가 병원에서 좀더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야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사랑한다”는 말로 애정표현을 자주 하는 편인데, 지난 6월 미혼으로 알려졌던 이씨에게 이혼 경력과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정씨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라”고 말하며 이씨를 감싸주었다고 한다.
험난한 인생 여정을 돌고 돌아 이제야 가정이란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정범진·이수영 부부. 앞으로 이들 부부가 돈 매클린의 ‘빈센트’ 노랫말처럼 ‘영혼 속의 어둠을 아는 눈으로’ 서로를 오래오래 사랑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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