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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당당한 여자

막내린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주최한 페미니스트 엄을순

“사람의 아름다움을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 글·김유림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07. 12

미인대회를 통렬한 퍼포먼스와 패러디로 꼬집고, 사회에서 소외받는 소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온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지난 5월 여섯번째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공중파에서 추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첫회부터 행사를 주최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발행인 엄을순씨를 만나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를 끝낸 소감을 들어보았다.

막내린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주최한 페미니스트 엄을순

“올해 미스코리아 진·선·미가 누구인지 혹시 아세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엄을순 발행인(49)의 물음처럼 최근 몇 년 동안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극도로 줄어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를 늦은 밤까지 시청했다. 가슴과 허리 사이즈를 말하고 수영복 차림에 낯뜨거운 포즈를 취하는 후보들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보아온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99년 처음으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정면으로 ‘딴지를 건’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개최되면서 어느덧 미스코리아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렸다. 2002년도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공중파 방송에서 추방되었고, 올해는 수영복 공개심사도 폐지되었다. 또한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나자마자 KBS의 자회사인 위성채널 KBS스카이에서‘2004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방영을 시도했으나, ‘이프’ 관계자들이 강력한 항의문을 전달하면서 결국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다.
“올해로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는 끝났지만 캐치프레이즈가‘I’ll be back’이었듯,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안고 대중을 찾아올 거예요. 작은 틀에서 벗어나 더 큰 의미의‘안티문화 축제’를 기획중입니다.”
그는 아름다움이 인간의 본성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미의 평가 기준이 무엇이냐’를 문제 삼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사람의 아름다움이 숫자로 표현될 수 있겠어요. 뚱뚱한 사람, 깡마른 사람 모두가 아름다운 거예요. 우리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마네킹도 아닌데, 치수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런 면에서 외국인들의 시선은 많이 달라요. ‘그녀가 예쁘다. 못생겼다’가 아니라 ‘She is my type, not my type’으로 표현하죠. 단지 개인의 기호가 다를 뿐이라는 거예요.”
그의 이력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그 자신이 이화여대 ‘메이퀸 대회’ 출신이라는 점이다. 곱상하게 생긴데다 지도력까지 지녔던 그는 4학년 때 과학교육과 대표로 뽑혀 교내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 검은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어야 하고, 머리가 이마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등 당시 대회에도 규격화된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화여대 재학시절 메이퀸 대회 나간 적 있어
그는 최종 후보 3인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심사위원이었던 교수가 메이퀸 대회에 참석한 소감을 묻자 그는 “글쎄요. 막상 단상에 서보니 품질 좋은 상품을 고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메이퀸에 뽑힌다 해도 거절하고 싶습니다”하고 말했다. 당시 그의 답변은 이듬해 메이퀸 대회가 폐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에게 끈질기게 구애해온 남편 서윤석씨(48)와 결혼을 했고, 이듬해 1월 출산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큰아이가 생후 6개월이던 197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남편 공부가 어느 정도 끝난 뒤 그 역시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긋나고 말았다.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중 둘째를 임신한 것.

막내린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주최한 페미니스트 엄을순

“처음에는 아이를 키우고 가정살림을 하는 것이 저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도 유치원 들어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저도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두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무작정 MBA 코스를 시작하긴 했지만 한 학기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죠.”
남편이 박사과정을 끝내고 UCLA 교수가 되면서,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인테리어 전문과정에 등록을 하고 시험 때면 하혈을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기초지식이 없는 터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에 부딪쳤다. 그 후 남편이 일리노이주립대학에 교수로 초빙받아 가게 됐고, 드디어 그곳에서 그의 삶은 제 길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일리노이의 자연에 압도당한 그가 사진 공부를 시작한 것. 그는 지역 대학 사진학과에 입학해 사진을 공부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마흔이란 나이에 남편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졌다. 사진을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신구전문대에 입학했는데,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마쳤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과제물로 필름 두 롤을 찍어오라고 하면 전 항상 다섯 롤 이상을 찍어갔으니까요. 조카뻘 되는 아이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죠.”
졸업 후 기업홍보지, 지방지 등을 만들며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97년 페미니즘 계간지 ‘이프’에 입사했다. 지난 2월6일에는 이프 이사회에서 발행인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 땅의 많은 주부들에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이혼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즉 여성에게도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생 남편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거라고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찾아 나서야 된다는 것.
“요즘 아줌마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자기 자신들은 모르는 것 같아요. 아이, 남편 때문에 미룬 것들을 과감히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죠. ”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이혼을 준비하라”
또한 그는 여성들도 자신의 삶을 위해 가족들에게 희생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혹 남편을 위한 저녁식사 준비가 늦어질 수도 있고, 아이가 혼자 문을 따고 집에 들어오는 날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남편과 아이에게 자신이 시작한 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이와 남편 모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시집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흔쾌히‘아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떳떳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시어머니를 설득시킨 끝에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막내린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주최한 페미니스트 엄을순

제6회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에는 커밍아웃한 연예인 홍석천(왼쪽)과 여성 댄스 안무가 홍영주씨 등이 출연해 무대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한국에 와서 1년이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제일 문제가 됐던 건 ‘제사’였죠. 어머니께서 저에게 모든 제사를 맡기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제사음식을 만들지 않고 대행업체에서 구매하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어요.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으면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인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저의 의견을 차근차근 말씀 드렸더니 어머님도 흔쾌히 받아들여주셨어요.”
그는 많은 여성들이‘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희생만 있으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결국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다는 걸 모르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회계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큰딸 원경(26)과 보스턴 웨슬리대 치대에 재학중인 둘째 딸 원주(23), 그리고 이화여대 경영대 학과장으로 재직중인 남편까지 그의 가족들 모두 열렬한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온 두 딸들에게 그는 언제나 현명한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같은 여자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해줘요. 결혼한 큰딸에게는 공부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아이는 낳지 말라고 했죠. 결국 저와 똑같이 공부가 늦어지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칠 게 뻔하니까요. 조금은 서글픈 얘기지만 여자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서 많은 시련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이 땅의 남편들 역시 가부장제도의 희생물이라고 말한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남자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울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그리고 그는 이런 남성의 왜곡된 시선을‘여성의 독립’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한국의 페미니즘은‘남녀공존’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엄을순씨.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FlowersⅡ’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성숙미를 보여줄 두번째 사진전을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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