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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겐끼데스까

요절복통 한국살이 만화로 그리는 일본 새댁 ‘요코짱’

■ 글·이영래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4. 04. 09

3년 전 한국에 시집온 한 일본 주부가 ‘외국인이 보는 한국’이란 주제로 인터넷에 연재하는 4컷 만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세다는 한국의 아줌마 파워, 롤러코스터보다 빠른 스피드의 한국 버스 이야기 등 일본 새댁 요코씨의 눈에 비친 우리의 별난 모습.

요절복통 한국살이 만화로 그리는 일본 새댁 ‘요코짱’

지하철 좌석, 옆 사람과의 사이엔 약 7cm의 공백이 보인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아줌마가 등장한다. 그 7cm의 공백에 눈독을 들이던 아줌마는 결국 엉덩이를 밀어넣어 옆 사람을 일으켜세우고 만다. 인터넷 유머로 치더라도 벌써 10년은 더 된 듯한 이런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이 ‘오늘은 절대 한국 아줌마에게 지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아예 다리 위에 앉아버린 아줌마에게 또 자리를 빼앗기고 만 외국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3년 전 한국에 시집온 일본 새댁 타가미 요코씨(33)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게 되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4컷 만화에 담아 2년 여간 일본어 학습사이트 일본어닷컴(ilbono.com)에 연재해왔다. 이것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를 낳으면서 네티즌들로부터 ‘요코짱’이란 별명을 얻기도 한 그는 이 만화들과 자신의 경험담을 엮어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라는 책을 펴냈다.
사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엔 만화를 그려 본 적이 없는 철저한 아마추어다. 한국에 와서 처음 그리기 시작한 터라 주인공 요코짱은 항상 옷도 없고 머리도 없고 눈과 입만 있는 민둥머리 캐릭터. 그런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져 네티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그가 발견해낸 한국의 기이한 풍경들이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라 웃음을 자아낸다. 가령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손도 대지 않고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할머니들을 보고 그는 ‘대단한 기술’이라 감탄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요리조리 차선을 바꿔가며 전력질주하는 시내 버스에 스릴을 느껴 재미삼아 타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95년에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휴학 중에 중국에 왔는데, 일본 남자들하고는 달리 ‘좋아한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매우 적극적이어서 호감이 갔어요. 3개월 정도 사귀다 각자 귀국했는데 그 후 한 5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연애를 했어요. 서로 좋은 사람이 생기면 헤어지자고 했는데 결국 서로 안 생긴 거죠(웃음). 의사소통을 중국어로 했는데 전 남편이 매우 신중하고 말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 많다는 건 제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알았어요. 속았다니까요(웃음).”
3개월을 사귄 후 5년간 국제 연애를 지속해왔다는 게 놀라운데, 그는 “말이 안 통해서 싸울 일이 없었다”며 재치있게 받아넘겼다. 그가 일본에 돌아가 운수성(우리의 교통청)에서 일하고 있을 때 남편 박영상씨(32)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몇 달에 한번 마주하면 언제 또 볼지 몰라 애틋한 감정이 더욱 커져갔고, 결국 지난 2001년 4월 결혼에 골인했다.
“가장 낯설고 힘들었던 것은 한국의 가족 관계였어요. 일본에선 친인척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대부분 아저씨, 아주머니란 호칭으로 부르는데, 한국에 오니 호칭도 너무 다양하고 또 친척도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됐어요. 일본에선 그냥 결혼하면 두 사람이 결혼해서 사는 건데, 한국에선 그 가족 속에 여자가 들어가는 거잖아요. 명절, 제사 이런 것도 너무 많고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웃음).”

이젠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고 한국말도 능통하지만 처음 결혼했을 때는 초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말이 자신을 부르는 말인지 전혀 짐작도 안 갔던 것. 그가 파악한 자신의 호칭은 ‘아가, 애기, 색시, 새애기, 새댁, 아내, 며느리, 마누라, 와이프, 집사람, 올케, 형수, 언니, 이모, 동서, 아줌마, 사모님…’ 등 무려 수십가지에 달한다.
자신을 부르는 말이 이 정도로 어려웠으니 시고모, 외숙모, 외질, 고종사촌 등 끝도 없이 소개되는 친척들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번은 집에 혼자 있다 한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자 “아이고~ 애기냐?” 하는 말에 친척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바짝 긴장을 했다. “밥 먹었냐?”고 묻길래 “네. 우동 먹었는데요”하고 대답했더니 “제대로 밥을 먹어야지” 하며 타박이 이어졌다. 알아듣기도 힘든 사투리를 해석해내랴, 더듬더듬 한국말로 대답하랴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애기야, 엄마 바꿔 봐”라고 한 것. “엄마요?” 어리둥절해있던 그는 잠시 후 그 전화가 잘못 걸려온 전화라는 걸 깨달았다고.
호칭에 대한 오해 때문에 부부 싸움이 폭소로 끝난 적도 있다. 연애 시절 자상하기 이를 데 없던 남편은 결혼 후 은근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날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이 “나는 가장이야!” 하고 소리를 쳤다. 당시 아직 한국말이 서툴던 그는 “당신은 주임인데 왜 과장이냐?”고 맞받아쳤고, 남편이 실소를 터트리며 부부 싸움은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제 한국 생활 3년,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때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 고민 끝에 “온돌방이 넘 좋고요, 찜질방도 좋아요” 하고 대답했다. 고작 그것밖에?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답변은 더욱 재밌다. “역시 간장게장 먹을 때인 것 같아요! 갈비찜과 매운탕도 좋지만….”
요절복통 한국살이 만화로 그리는 일본 새댁 ‘요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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