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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향기로운 여자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연기 변신하는 배종옥 프라이버시 인터뷰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홍중식 기자

2004. 01. 05

지난해 영화 ‘질투는 나의 힘’과 아침드라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 자유분방하고, 똑소리 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배종옥이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억세게도 운이 없는 생선가게 주인으로 나오는 것.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그가 이야기하는 나의 연기, 나의 인생.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연기 변신하는 배종옥 프라이버시 인터뷰

연기 인생 18년을 넘어선 베테랑 탤런트 배종옥(40)의 연기 변신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유부남 문성근과 숫총각 박해일 사이를 오가는 자유분방한 노처녀 역할을 하더니 아침드라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당당한 싱글맘을 연기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전혀 다른 이미지에 도전한다. 그 무대는 노희경 작가가 오랜만에 극본을 써 화제가 되고 있는 KBS 수목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1월1일 첫 방송하는 30부작으로, 이 드라마에서 그는 대형 할인점 생선코너에서 일하는 김미옥을 연기하게 된다.
“할인점 생선가게에서 일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예요. 이혼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엄마와 함께 살죠. 이혼의 아픔을 겪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왜 딸이 나이 들면 엄마와 친구가 된다고 하잖아요.”
무식하지만 착한 엄마에 고두심, 평생 한량으로 살다가 딴살림을 차려 자식까지 본 아버지에 주현, 그리고 이기적인 캐피털리스트 둘째딸에 한고은, 사고뭉치 막내아들로 김흥수가 등장한다.
평소 조금은 차갑고 똑 소리나는 역할을 맡으며 도회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그에게 다소 ‘구질구질한’ 역할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날카롭다.
“저는 늘 변하고 싶어요. 배우는 항상 달라지고, 변화하는 걸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모습이 또한 아름답죠. ‘배종옥은 이런 사람이다’ 하고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은 싫거든요.”

변화하는 걸 즐기는 배우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
그는 드라마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에 이어 또다시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캐스팅 단계에서 노 작가가 늘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 또한 이젠 노 작가의 작품이라면 별 고민 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
“드라마 ‘거짓말’을 할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저보다 두살 아래인데 말이 무척 잘 통하더군요. 지금은 작품을 같이 하지 않더라도 서로 상의를 많이 할 만큼 편한 친구가 됐어요. 노 작가는 정말 상황을 보는 시각이 특별해요. ‘바보 같은 사랑’에서 도시 변두리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고귀함을 보여주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처럼 따스한 눈길을 가진 작가도 드물 거예요.”
드라마를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고 한다. 최근 일부 드라마를 보면 너무 극단적인 설정 때문에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가족들이 평소 놓치고 사는 부분을 조명하는, 인간미가 나는 작품을 만드는 노희경 작가의 가치관에 공감한다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연기 변신하는 배종옥 프라이버시 인터뷰

배종옥은 여성팬이 많은 여배우다. 말 잘하고 똑똑한 이미지 탓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여성의 감정선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희경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인터뷰 후에 만난 노 작가는 배종옥을 이렇게 평가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끼’ 없는 배우들을 좋아해요. 타고난 끼가 있는 연기자들은 대부분 성실하지 못하더라고요. 깊어지지 않고, 연기 공부도 잘 안하고…. 그런데 배종옥씨는 끼가 없어요. 노력파죠. 타고난 건 없지만 성실성이 있어요. 전 그걸 좋아해요.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는 배우라고 할까요.”
새해 초에는 각 방송사의 수목드라마 경쟁으로 안방극장이 후끈하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월화드라마를 MBC ‘대장금’에 내준 방송사들이 수목드라마만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는 것. SBS는 최지우 권상우 신현준 등 초호화 캐스팅에 극단적인 선악대결과 얽히고 설킨 애정관계를 다룬 ‘천국의 계단’으로 이미 인기몰이에 들어갔고, MBC는 황신혜와 안재욱을 캐스팅해 연상녀 연하남 부부의 불륜을 다룬 ‘천생연분’을 1월1일부터 내보낸다. 호화 캐스팅에 불륜을 다룬 자극적인 소재의 다른 드라마에 비해 ‘꽃보다 아름다워’는 다소 밋밋한 구성에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
“사실 너무 잔잔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왔듯 노희경 작가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빛을 낼 거라고 믿어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생활의 한 단면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때론 든든한 바람막이로, 때론 걸림돌로 작용하는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 드라마야말로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는 요즘 세상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
엄마 닮아 똑부러지는 성격 지닌 딸, 혼자 아이 키우는 일 힘들지 않아

아침드라마 ‘그대…’가 종영한 지난해 가을, 그는 3주 일정으로 뉴욕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뉴욕의 화려한 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고.
“여행을 참 좋아해요. 드라마나 영화를 마치고 나면 늘 여행을 떠나죠. 뉴욕에 자주 갔어요. 그곳의 거리에 서면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집도 이사했다. 단독주택에 살았던 그는 지난해 어머니가 지병인 암으로 돌아가신 후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한남동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집안일도 힘들고 또 아이 혼자 집에 두는 것이 걱정돼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굉장히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작은 마당이 있는 곳으로 다시 이사했어요. 이삿짐 챙기고 또 그걸 푸느라고 거의 한달을 다 보냈어요.”
딸 채은이는 올해 열한살. 엄마를 닮아서인지 똑부러지는 성격에 끊고 맺음이 정확한 편이라고 한다. 가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대들기도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요, 친구라고. 요즘은 드라마 ‘대장금’에 푹 빠져 ‘오나라, 오나라’를 입에 달고 다닌다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연기 변신하는 배종옥 프라이버시 인터뷰

그가 뽑은 자신의 대표작은 ‘목욕탕집 남자들’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 그중 두편이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다.


“가끔 혼자서 아이 키우기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전혀 없어요. 혼자 아이 키우는 것도 어렵지 않고,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후회하지도 않거든요. 아이와 함께 자유롭게 사는 지금이 너무 편하고 좋아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최근 한 영화전문잡지가 영화감독과 평론가, 관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배우’ 부문에 ‘살인의 추억’ 김상경과 함께 남녀 배우 정상(?)에 올랐다.
“과대 평가된 배우보다는 낫네요(웃음). 한때는 ‘나는 인기 없는 배우다’ 하는 생각에 힘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었죠. 세속적인 인기가 뭐 그리 중요하며, 또한 얼마나 오래 갈 것이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희망이 생기더군요.”
사실 그는 동년배 여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폭넓은 연기를 보여왔다. 똑부러지고 당찬 도회적인 이미지로 출발, 드라마 ‘거짓말’과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였는가 하면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에서는 잡초 같은 여인을 연기했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통해 아낌없이 무너지면서 ‘배종옥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배우지만 나이 먹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더는 젊지 않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얻어지는 것도 있거든요. 하지만 단순한 나이는 의미가 없죠. 나이 먹는다고 무조건 연기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연기로 풀어내느냐가 문제죠.”
나이가 들수록, 연기의 맛을 알아갈수록 가족문제를 다룬 드라마에 애착이 가고, 또 제대로 연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는 그. ‘타고난 배우’이기보다는 ‘만들어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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