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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희망 보고서

인터넷에 미숙아 육아일기 연재해 화제 모은 구미아 주부

“푸른솔은 저만의 아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희망’이에요!”

■ 글·박윤희 ■ 사진·김형우 기자

2003. 10. 31

임신 6개월 만에 910g이란 작은 몸으로 태어난 미숙아 이푸른솔의 육아일기가 인터넷에 공개돼 감동을 주고 있다. 기계와 약물에만 의존해 사투를 벌여온 푸른솔의 희망 보고서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온정을 베푼 네티즌들의 가슴 훈훈한 이야기.

인터넷에 미숙아 육아일기 연재해 화제 모은 구미아 주부

‘우리 푸른솔은 26주 6일 만에 910g이란 아주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온 미숙아예요. 벼랑 끝에 선 우리 가정에 희망과 사랑을 전하러 온 아기천사이기도 하지요. 이제 힘겹게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한 엄지천사 솔이는 제법 아기다운 모습을 갖춰가며 하루하루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답니다.’
최근 육아 전문 포털사이트 베베하우스(www.bebe-house.com)에서는 약 20만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육아일기 인기투표’ 이벤트를 실시, 미숙아 육아일기를 ‘엄지천사 푸른솔’이란 제목으로 온라인 일기장에 써내려간 주부 구미아씨(37)에게 1등을 안겨주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구씨는 이한솔(12), 이푸른솔(2) 두 아이를 두었는데 이중 푸른솔은 엄마 뱃속에서 6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 2001년 5월5일 태어난 푸른솔은 태어나자마자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반년 동안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고, 구씨는 이런 사연을 베베하우스 인터넷 육아 일기 코너에 공개해 많은 네티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월7일 구씨를 만나기 위해 수원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둘째아이 푸른솔을 낳기 직전 남편의 사업실패로 집까지 날린 상황이라 구씨의 가족은 친정 여동생 집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임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임신 6개월째 됐을 때 갑자기 진통이 와서 조산을 했는데 의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못 보게 하더라고요. 제가 충격 받는다고….”
구씨는 출산 다음날이 되어서야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갓 태어난 아기들의 몸무게가 3∼4㎏인데 비해 1㎏도 채 되지 않는 푸른솔의 몸은 너무나 작았다. ‘과연 저 아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구씨는 자신의 몸도 추스릴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를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시켰는데 차츰 장이 썩어들어 간다는 ‘괴사성 장염’을 비롯해 여러가지 합병증이 오기 시작했어요. 젖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항생제를 맞으니까 태어났을 때 910g이던 몸무게가 한달 정도 지나자 700g으로 떨어지더군요. 그런 아기를 혼자 병원에 두고 1주일에 한번씩 보러 가는데, 그럴 때마다 병원 가기가 정말 겁났어요.”
‘푸른솔’이란 이름은 ‘푸른 소나무처럼 건강하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아기의 큰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그 당시 푸른솔의 생명은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산후조리하겠다고 집에 누워 있는데 마음이 편하질 않았어요. 우울증도 심했고요. 마음속으로 ‘푸른솔은 살 수 있을 거야’를 수백번 외치며 뜨개질을 했어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아기와 그렇게 정신적인 교류를 한다고 생각하며 한땀 한땀 푸른솔이 입을 원피스를 만들었죠.”
이때 구씨는 아기의 힘겨운 사투를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1주일 단위로 정산되어 나오는 병원비 때문에도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신용카드도 다 막힌 상태라 도저히 병원비를 낼 수 없었어요. 병원비는 계속 밀리고 생각 끝에 ‘아이의 생명을 포기하겠다’고 담당의사에게 말했죠.”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희미한 생명을 이어갔던 아기는 그동안 사력을 다해 버텨온 보람도 없이 자칫 가난 때문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실제 국내 미숙아 치료연구 미비와 치료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숙아의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의료기관과 부모들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에 미숙아 육아일기 연재해 화제 모은 구미아 주부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는 푸른솔과 지극히 간호하는 엄마 구미아씨.


천만다행으로 구씨는 병원 내 의료사회사업실 소개로 한 복지단체를 알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푸른솔의 안타까운 처지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쇄도했다. 이 무렵 미숙아를 돕기 위해 모인 베베하우스 동호회 ‘손길이 필요한 아가를 위한 모임(이하 손필아모)’ 소속 회원들도 인터넷을 통해 모아진 성금을 구씨에게 전달했다. 푸른솔은 이렇게 온·오프라인에서 모아진 온정으로 무사히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구씨는 푸른솔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후원자들에게 알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에게 요긴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인터넷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푸른솔을 낳고 나서 서점에서 미숙아와 관련된 책을 뒤졌는데 한권도 없더라고요. 정말 막막했어요. 그래서 일기를 일부러 자세히 쓰고 있는데 제가 남긴 육아일기가 미숙아를 둔 다른 부모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에 미숙아 육아일기를 공개한다고 해서 지금 푸른솔의 건강 상태가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일단 위급한 상황을 넘기기는 했지만 지금도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
현재 체중은 보통 돌 된 아기보다도 덜 나가는 9.1㎏에 불과하다. 또한 청각세포의 손실로 양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아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흔히 뇌성마비라고 일컫는 뇌병변 증세가 있어서 왼쪽 팔과 다리가 많이 불편하다. 양쪽 귀 모두 보청기를 달았고 팔과 다리에는 보조기를 착용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만큼 말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몸의 상태가 더 나빠질 경우 이 다음에 커서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1주일에 두번씩 병원 다니면서 언어치료와 행동치료를 받고 있어요. 아기의 치료과정도 힘들지만 사람들의 편견이 더 무서워요. 병원에 가려고 푸른솔을 업고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어린애가 벌써부터 보청기를 왜 끼느냐?’고 물어봐요. 처음에는 그냥 눈물만 나왔는데 지금은 푸른솔이 왜 보청기를 끼는지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푸른솔은 달팽이관의 손상으로 인한 ‘선천성 감각 신경성 난청’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수술을 통해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할 경우 소리도 듣고 더불어 말도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4세 이전’이라는 수술 적기를 놓치면 푸른솔의 선천성 장애가 후천성 장애로 더욱 악화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돈이 아주 많아야 해요. 아이의 치료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요. 어쩔 때는 미숙아를 일찍 포기한 다른 엄마들이 더 현명해 보일 때도 있어요. 미숙아의 생명이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막대한 수술비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으면 아이의 장래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죠.”
출생 직후 각종 합병증 치료에 매달리느라 아직도 손과 발에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푸른솔. 구씨는 아이가 병원에 있을 때 ‘오늘은 포기해야지’하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가도 지금까지 아이의 생명을 꿋꿋이 지켜왔다.

인터넷에 미숙아 육아일기 연재해 화제 모은 구미아 주부

푸른솔은 네티즌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앞으로 수술비 2천여만원을 마련하기란 그리 녹록지가 못하다. 게다가 한솔이를 데리고 병원에 한번씩 갈 때마다 5만∼10만원의 병원비를 지출해야 하는 만큼 구씨는 친정어머니에게 푸른솔을 맡기고 밤 12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일을 한다. 구씨는 늘 잠이 부족해 만성 두통과 저혈압에 시달린다. 안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주말이나 돼야 가족들이 있는 수원집으로 돌아오는 처지다. 그렇다고 구씨가 늘 시름에 젖어 사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소현이 엄마라는 분이 인터넷에서 제 일기를 보고 격려의 편지와 함께 아기 양말을 한 상자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예쁜 옷만 골라서 한 상자씩 보내주세요. 푸른솔의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매일매일 불안한 상황이지만 이렇게 마음 따뜻한 분들의 격려를 받을 때 많은 힘을 얻어요.”
푸른솔은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푸른솔이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유일한 오빠 한솔이(초등6)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 얼마 전 한솔이는 학교 대표로 수원시 주최 피아노 경연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한솔이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데 이번 성탄절에 ‘미숙아 돕기 자선 콘서트’를 열어서 푸른솔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미숙아들을 돕고 싶어해요. 푸른솔이가 저만의 아이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희망’인 만큼 다른 어려운 처지의 미숙아들에게도 제가 받은 희망을 골고루 나눠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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