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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현지 르포

캐나다 이민 간 기자 출신 주부가 전하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 글·김영신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10. 02

한국인들이 가장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 캐나다. 먼저 그곳에 이민을 간 사람들의 삶과 생각은 어떨까? 캐나다 현지에서 취재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현실과 그들의 충고.

캐나다 이민 간 기자 출신 주부가 전하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캐나다 이민상담을 하는 가족. 그러나 캐나다 교민은 한국의 캐나다 이민 열풍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온타리오주 토론토로 이민 와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해온 H씨(53)는 한국에서 다시 캐나다 이민 바람이, 그것도 매니토바주로의 이민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매니토바? 거기 가서 뭘 먹고 살 건데? 거기에 위니펙(매니토바의 주도)밖에 더 있나? 인구 1백만명도 안되는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벌이가 되나? 취직할 직장이나 있고? 몇년 살다가 토론토나 밴쿠버로 빠질 심산이겠지.”
H씨가 일갈한 ‘먹고사는’ 문제의 심각성은 한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토론토 곳곳의 교회들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낯설고 물 선, 무엇보다 말이 선 캐나다에서 교회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사교의 장이자 정보의 장이다. 캐나다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신규 이민자들이 손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정착 서비스 기관이기도 하다. 그렇게 교회의 도움을 받은 이민자들은, 설령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그 교회에 나간다. 또 기존에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민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더욱 독실하게 종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정은, 캐나다의 신규 이민자들이 예외없이 듣게 되는 몇 가지 속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중 하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거든 무조건 편의점에 들어가라”는 것. 편의점 열에 여덟, 아홉은 한국인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장 상황과는 상관없이 편의점 가격이나 권리금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의 대형 정유회사들이 편의점 시장에 진출, 앞다퉈 주유소와 편의점을 통합한 복합공간을 선보이면서 소규모 개인 편의점 사업이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그런데도 한국의 신규 이민자들이 ‘먹고살’ 방도로 너나없이 편의점을 찾다보니 그 값이 계속 꼭지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정도로 자본의 여력이 있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크게 모아놓은 돈도 없이, 오직 의욕과 희망을 연료삼아 캐나다로 날아온 30∼40대 독립 이민자들이 문제다. 게다가 영어 실력이 변변찮아 초·중급 회화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4년전 이민 온 P씨(47)가 그런 경우다. 한국에서 증권 투자에 실패한 뒤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며 토론토로 날아온 그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영어조차 서툴러 캐나다 기업 문을 두드리기는 언감생심이었다. 결국 한국인 편의점의 점원으로 낙착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평일에는 새벽 5시부터 자정 넘어까지 두곳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또 다른 편의점에 나가는 강행군. 그는 “시간당 10달러선인 급여로 가족의 생계를 잇자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며 “말도 못하게 몸이 고단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비교적 수월하게 정착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다 3년전 이민 온 M씨(39)는 수백장의 이력서를 뿌린 끝에 건축회사에 취직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가족도 캐나다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교사이던 부인은 처음에는 이민을 반대했고 캐나다에 와서도 향수병으로 한동안 고생했지만, 올여름 한국에 들어가 집을 파는 등 완전히 마음 정리가 됐다. 토론토에서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아직 어린 외동딸이 할머니와 친척들을 자주 보지 못해 섭섭해하는 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주부 K씨(39)는 지난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을 맘껏 뛰놀게 하면서 캐나다에서의 ‘삶의 질’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성적 경쟁에 밀려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이민 온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 아빠도 한국에서 대기업 자동차 회사에 다녔는데, 여기서도 다행히 전에 하던 일과 연관된 공장에 다니게 됐고, 더 나은 장래를 위해 관련 전공으로 단과대학에도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캐나다 이민 간 기자 출신 주부가 전하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캐나다 토론토 코리아타운 전경(왼쪽). 캐나다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국인 이민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유치원까지 아들 셋을 둔 그는 1년 전에 이민 온 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유심히 관찰했다. 공부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영어를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을 살피고 나자, ‘이 정도면 내가 서점에서 교재 몇권 사다가 조금씩 가르치고 도와주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집에서 하는 공부는 엄마랑 함께 앉아 숙제만 마치는 것으로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해주었다. 특히 날씨가 좋은 여름에는 집밖에만 나가면 공원이며 야외수영장 등 놀 곳이 충분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선 하루 세번씩 나가 놀기 일쑤였다.
교육문제는 캐나다 이민자의 다수가 첫손가락에 꼽는 이민 동기다. 그러나 이민을 왔다고 해서 고민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L씨(43)는 맏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2년전 과감하게 토론토로 왔다. 지방대 교수이던 남편은 한국에 남아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차마 아이들과 떨어져 지낼 수 없어서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돈 없고 영어 실력마저 낮으면 ‘최악생활’ 불 보듯

그런데 막상 와보니 이미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두 아들의 영어문제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학교생활을 따라가기 위해 영어를 빨리 익히자니 여기서도 사교육에 의존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에 왔는데도 캐나다식이 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큰아이가 더 힘들어한다. 주변에서 듣기로는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이토비코크 지역에서 한국학원이 많은 노스욕까지 아이들을 실어나르며 과외를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대학교수에서 대형 화물트럭 운전수로 전업한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도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부담감이다. 더구나 장남인 남편은 한국에 노부모를 남겨 두고 왔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있다.
타국에서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캐나다의 현실은 두배로 더 고단하게 다가온다. 그 고단함을, 그 불만과 좌절을 하소연할 말과 친구가 캐나다에는 없기 때문이다. 2년전 이민 와 자영업을 모색중인 S씨(41)는 “한국을 뜨면 한국에서 느꼈던 고민이나 불만, 문제점은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캐나다라고 고민거리가 없겠나. 그 내용만 바뀔 뿐 삶의 숙제와 걱정거리는 늘 따라다닌다.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캐나다살이가 도리어 더 고단할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그저 ‘이곳을 뜨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찬 한국의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에게, 어쩌면 캐나다에서의 고민거리란 오히려 사치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또 탈출과 도피의 욕망에 사로잡혀 캐나다살이의 팍팍함쯤은 손쉽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9월4일 캐나다 통계국이 발표한 이민자들의 구직 실태는 이민 희망자들에게 신중한 선택을 강권하고 있다. 2000년 10월∼2001년 9월 사이에 캐나다로 온 15세 이상의 신규 이민자 16만여명 중 1만2천명을 인터뷰해 얻은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규 이민자 10명 중 6명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직종을 바꾸었다. 자신의 전문분야와는 무관한 판매업이나 제조업 분야로의 진출이 두드러졌고, 급여 수준이나 근무 조건도 대부분 하향 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민자 10명 중 7명은 모국에서 쌓은 경력과 기술이 캐나다에서 인정되지 않는 불합리를 지적했다.
캐나다 이민자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구인·구직 시장이 작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미국 인구의 10분의 1, 한국과 견주어도 캐나다 인구는 더 적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99배에 이르지만 그 절반 이상이 영구 동토층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급속히 빨라진 인구의 대도시 집중 현상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원인이다. 매니토바주나 사스카체완 같은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는 주가 이민자에 대해 다른 주보다 우호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캐나다판 ‘이농’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민 정착지로서의 캐나다의 인기는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어쨌든 인종과 국적의 다름에 대해 캐나다만큼 관대한 나라가 없을 뿐 아니라, 그 개발과 발전의 여지 또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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