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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열정적인 삶

2년간 시베리아 호랑이 카메라에 담은 EBS 박수용 PD 촬영 뒷얘기

“촬영하다 죽을 고비 넘기기도 했지만 다시 또 시베리아 호랑이 찍고 싶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진숙 ■ 사진·홍중식 기자

2003. 09. 04

300㎏을 육박하는 ‘밀림의 제왕’ 호랑이를 찾아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사나이 박수용 PD. 그가 지난 97년 호랑이를 첫 촬영한 데 이어 두번째로 호랑이 촬영에 도전했다. 카메라에 담아내기 힘든 동물로 유명한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에 성공한 박PD의 목숨을 건 촬영 뒷이야기.

2년간 시베리아 호랑이 카메라에 담은 EBS 박수용 PD 촬영 뒷얘기

호랑이 다큐 PD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박수용 PD.


‘서걱서걱’ 하얗게 눈 덮인 시베리아 산속을 천천히 둘러보며 지나가는 호랑이의 여유로운 발걸음 소리. 뭔가 눈치를 챘는지 뒤를 한번 둘러보는 호랑이의 눈길이 날카롭기만 하다. 그런 호랑이를 나이 마흔의 깡마른 사내,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PD 박수용씨(39)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 빽빽한 침엽수림이 몇백리에 걸쳐 계속되는 땅, ‘밀림’의 숲은 적막하기만 하다. 사람 냄새 하나 없는 그곳에서 시베리아 호랑이와 그 호랑이를 지켜보는 박PD, 그 둘이 엮어가는 2년여에 이르는 대장정의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박PD는 지난 8월14일과 15일 이틀간 EBS에서 방영한 자연 다큐멘터리 ‘밀림 이야기’에서 시베리아 호랑이 삼대(三代)의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박PD를 포함한 EBS 자연다큐 PD 4명이 2001년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만 2년4개월 동안 연해주 밀림 일대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시베리아 호랑이를 취재해 만든 작품이다. 특히 야생 호랑이 관련 다큐 부문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박씨의 작품이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의 작품 속 호랑이들은 해안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봄이 오는 눈밭 위에서 새끼들과 함께 구른다. 카메라에 잡힌 호랑이의 모습에서는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거나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야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호랑이들의 잔잔한 삶이 여과 없이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이같은 호랑이들의 생활을 담기 위해 박PD는 100㎞에 걸쳐 여러 각도로 무인 카메라를 설치, 입체감을 살렸다.
“제 다큐에는 사슴을 쫓아 날렵하게 뛰어가는 용맹한 아프리카의 호랑이는 나오지 않아요. 그런 호랑이는 누구나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그 수가 1백50마리 정도로 극히 드물어요. 게다가 예민하고 영민하고 조심성 많은 동물이라 더욱 찍기가 어렵죠. 철저하게 위장해놓은 손톱만한 크기의 꼬마 카메라도 귀신같이 찾아내요. 처음에 가져갔던 17대의 카메라 중 고장나지 않은 건 3대뿐이에요. 나머지 14대는 모두 호랑이에 의해 파손됐죠.”
그는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사슴똥으로 냄새를 지운 반평 남짓한 잠복지에서 언 주먹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배설물은 바로 봉투에 밀봉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번 ‘잠복지’에 들어가면 3개월 동안 꼼짝없이 갇혀 지내는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영하 20℃의 추위와 엄습해오는 고독을 참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야행성인 호랑이를 기다리며 칠흑이 어두운 밤을 오직 혼자 보내야 했다. 땅밑에 웅크린 박PD의 몸에서 지상의 찬 공기와 맞닿은 부분은 카메라 렌즈를 조작하는 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끼 세 마리를 거느린 어미 호랑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움직였다가 ‘딱’ 걸리고 말았다. 박씨 쪽을 쳐다보는 호랑이의 눈빛에 한순간 숨이 막혔다. 보호막이라고는 위장용 모포 한장이 전부였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탄로가 나면 평소 다니던 길에는 영영 나타나지 않아 모든 촬영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호랑이가 다가와 카메라 렌즈에 머리를 들이대면서 수염이 모포 틈새로 들어와 박씨의 손등을 스쳤다. 이어 어미 호랑이는 카메라 렌즈를 앞발로 부숴버린 뒤, 새끼들과 함께 박PD가 잠복한 토굴을 박살냈다.

2년간 시베리아 호랑이 카메라에 담은 EBS 박수용 PD 촬영 뒷얘기

박PD가 촬영한 시베리아 호랑이 가족.


“공포의 밤이었어요. 호랑이가 공격하려고 다가오는데 그 소리가 끔찍했죠. 영락없이 죽겠구나 싶을 때 호랑이가 떠나더군요. 그래도 이 사건 덕분에 호랑이 턱 밑의 털이 날리는 희귀한 장면을 찍을 수 있었어요(웃음).”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그의 호랑이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비록 박씨를 공격했던 사나운 호랑이지만 새끼들과 다정하게 장난치는 어미의 모습이 사람과 꼭 닮아서 남다른 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호랑이 가족의 단란한 한때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미는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죽었고, 얼마 뒤 수컷 새끼 한 마리도 밀렵꾼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어미가 죽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나머지 새끼 두 마리는 각각 또 새끼를 낳아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PD는 이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한번 촬영 들어가면 영하 20℃ 추위 속에서 3개월 동안 외로움과 싸워
이렇듯 호랑이를 촬영하는 과정은 박PD뿐 아니라 다른 PD들에게도 수난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의 민족차별주의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그들이 베이스캠프를 덮쳤을 때는 후배PD 2명이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박씨를 뺀 나머지 미혼 PD들은 애인이 모두 기다리다 지쳐 떠나가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모두 저희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러시아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다 보니 민족차별주의자들 귀에 우리가 돈이 많은 것처럼 소문이 퍼졌으니까요. 후배들의 애인이 떠난 건 군대 가면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웃음). 전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낳아서 그런지 다행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무뚝뚝한 그도 유별나진 않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빠다. 그는 ‘잠복지’에서 나오기만 하면 한국의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 바빴고, 딸애의 유치원 행사 때는 꽃배달 서비스를 주문했다. 특별한 기념일엔 초콜릿도 보냈다. “아이들과 통화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내와 통화하게 되더라”는 농담에서 그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2년간 시베리아 호랑이 카메라에 담은 EBS 박수용 PD 촬영 뒷얘기

어쩌면 같은 방송국 PD로 근무하는 무던한 아내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그는 없었을지 모른다. 결혼식 날에도 산속에서 촬영을 하다 결혼식 직전에야 도착해선 식만 치르고 또다시 산으로 향했던 그가 아닌가.
“제가 자주 산에 들어가야 하니까 아내는 출장이 없는 외화 더빙 PD를 하고 있어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오랜 출장 끝에 만나면 어색해하고 그랬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적응을 잘하고 있어요. 일이 없을 때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노력해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인터뷰를 하기 전 감기에 걸린 둘째딸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박씨는 91년 대학을 졸업하고 EBS에 입사한 후부터 줄곧 자연다큐만 찍어왔다. 특별한 계기도, 어떤 대단한 결심도 없었다. 그저 ‘하다 보니까 점점 자연물이 재미있어서’가 이유다. 94년 ‘반디를 보셨나요’를 시작으로 ‘물총새 부부의 여름나기’ ‘한국의 파충류’ ‘솔부엉이’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수리부엉이’ 등 수많은 동물을 필름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성은 이미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은 상태. ‘한국의 파충류’는 유럽 각지에서 방송이 되었고,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는 일본 TBS와 디스커버리 유럽, 터키 국영방송에 수출되었다.

2년간 시베리아 호랑이 카메라에 담은 EBS 박수용 PD 촬영 뒷얘기

시베리아 산 속에서 촬영할 때의 박수용 PD.


그의 작품 특징은 어떤 인위적 수단도 배제한다는 것. 덫을 놓아 호랑이를 생포한 다음 목에 전파발신기를 채우고 하는 촬영 따위는 그에게 진정한 자연물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는 동물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일일이 잠복을 하고, 외로움과 싸워가면서 화면을 만들어냈다.
“잠복하는 건 사실 어려울 게 없어요. 정말 어려운 것은 호랑이가 오는 길목을 찾아내는 일이지요. 드넓은 산속에서 호랑이 발자국과 꺾인 나뭇가지의 방향, 지형, 냄새 등을 토대로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호랑이의 경로를 추적합니다. 이번 촬영 때도 이런 과정을 게을리했다면 결코 새끼 호랑이를 다시 찾아낼 수 없었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에게 ‘기인’ ‘산짐승’으로 불리는 그는 한마디로 고생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다. 호랑이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를 찍을 때도 그랬다. 20m에 이르는 나무 위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미숫가루와 육포로만 끼니를 때우며 한달 이상을 지냈다. 촬영자금이 부족할 때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과 양말을 깨끗하게 빨아서 현지인에게 팔아 부족한 돈을 마련할 정도였다.
동물을 촬영할 때마다 이토록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의 남다른 자존심 때문이다. 박PD는 워낙 촬영의 난이도가 높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북아시아 지역 동물들만 중점적으로 찍어왔다. 자본과 훌륭한 장비를 구비한 외국의 거대한 다큐멘터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밀접한 곳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는 것. 이게 그의 우직한 직업정신이다.
박씨의 우직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을 소유한 그가 제작비 사정이 열악한 EBS를 떠나지 않는 것. 물론 다른 방송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잠깐 외유를 한 적도 있다. 97년 당시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계획을 세운 그는 만만치 않은 제작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회사 대신 다른 곳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그곳 분위기 때문에 고민하던 중 마침 EBS에서 호랑이 촬영을 허락해줘 두말 않고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이유를 “프로그램이 상업적이지 않고, 교육효과가 높은 방송만 한다는 사실이 좋아서” 라고 말하는 그는 그 뒤로는 한번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20여년을 동물 촬영에 바쳐온 박PD에게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동물이 있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가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 동물은 다름아닌 ‘호랑이’다.
“제가 유일하게 실패한 동물이 호랑이에요. 이번에 촬영한 것도 충분하지 않아요. 호랑이 생태 전반을 다 찍어야 하는데 일부만 기록했으니까요. 다른 동물들은 충분히 관찰한 뒤 촬영을 하면 만족감이 드는데 호랑이는 안 그래요. 오히려 절망감이 들고, 벽 같은 게 느껴져요. 그만큼 촬영하기 힘든 동물이에요.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어요.”
사람이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면 그것과 닮는다고 했던가. 비쩍 마른 체형에 눈만 번뜩이는 박씨는 호랑이와 꼭 닮아 있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기록을 담은 필름으로 남을 그의 작품에 호랑이가 세번째로 등장하게 될 그날을 기다려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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