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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주 특별한 만남

성교육 만화책 펴낸 산부인과 의사 안명옥·만화가 황미나의 ‘꼭 알아야 할 우리의 몸 이야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여성을 그리는 꿈의 작업 계속할 거예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8. 29

‘이오니아의 푸른 별’ ‘안녕! Mr. 블랙’ ‘레드문’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황미나씨가 성교육 만화를 펴냈다. 지난해 강남 차병원에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개설하고, 초경을 한 소녀들의 주치의를 자임한 안명옥 소장과 함께한 작업이다.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어른들도 잘못 알고 있는 우리의 몸 이야기를 재미있고 정확하게 담아낸 두 사람을 만났다.

성교육 만화책 펴낸 산부인과 의사 안명옥·만화가 황미나의 ‘꼭 알아야 할 우리의 몸 이야기’

최근 국내 대표적 만화가 황미나씨(42)와 강남 차병원 ‘소녀들의 산부인과’ 안명옥 소장(48)이 성교육 만화책 ‘루나레나의 비밀편지’(동아일보사)를 펴냈다. ‘루나레나…’는 10대 소녀 루나레나가 신체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친구들과 이메일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 산부인과 전문의 ‘닥터 아모(Amo)’의 도움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성지식을 습득하는 내용.
생리불순, 생리통, 피임 등 초경을 한 여성들에게 요긴한 정보와 처녀막, 뒷물, 공중화장실 사용법, 사후피임약의 치명적인 위험성 등 일상생활에서 잘못 알기 쉬운 내용들을 콕 집어 바로잡아준다. 또한 생리대의 역사, 포경수술을 비롯한 남자의 몸, 임신 과정까지 궁금했지만 선뜻 물어보지 못하고, 알면서도 어물쩍 넘어갔던 이야기들까지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속속들이 이야기했다.
‘루나레나’는 스페인어로 보름달을 뜻하는 말로 황씨의 대표작 ‘레드문’의 여주인공이고, 닥터 아모는 안명옥 소장의 이니셜을 따 황씨가 창조해낸 캐릭터. 안소장은 ‘루나레나…’를 완성한 것을 두고 “꿈의 작업이 이뤄진 것”이라고 표현한다. 학업에 대한 부담과 입시 스트레스로 생리통을 호소하는 소녀 환자들이 급증하는 추세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월,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개설한 그는 제대로 된 성교육서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일곱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가 고민을 상담하면서 ‘아이의 자궁을 씻겨준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기가 막힌 일이지요.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접합니까. 정말 엄마 아빠만 자기 자식이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성교육서를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는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나에게 꿈의 작업이 있는데 되겠냐”며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만화로 된 책이어야 하고, 주인공은 94년 황미나씨가 펴낸 ‘레드문’의 ‘루나레나’여야 한다는 것. 그가 ‘루나레나’를 고집한 건 한달에 한번 여성에게 찾아오는 월경을 비롯해 여성의 신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하기 위해 스페인어로 보름달을 뜻하는 ‘루나레나’가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소장은 자신을 ‘만화광’이라고 표현할 만큼 만화를 좋아한다. ‘이오니아의 푸른별’ ‘안녕! Mr. 블랙’ ‘레드문’ 등 황미나씨의 작품을 죄다 섭렵한 것은 물론이다.

만화광 안명옥 소장, 황미나씨 설득해 3개월 만에 승낙 얻어내
그러나 그가 구상한 ‘꿈의 작업’을 황씨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화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유명 만화가들이 하나 둘 학습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시류에 편승한다는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러나 오래 전부터 황씨의 열렬한 팬이고, 책의 주인공으로 ‘루나레나’를 점찍어둔 안소장의 설득은 끈질기다 못해 집요했다.
“제가 황선생의 영원한 팬이에요. 열렬한 팬으로 살다가 ‘안녕! Mr. 블랙’을 읽고 꼭 한번 만나고 싶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황선생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교수라고까지 밝혔는데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요. 집까지 찾아가 떼를 썼지요. 나도 참 바쁜 사람인데(웃음) ‘안하겠다’고 하기에 다시 또 찾아갔어요.”

성교육 만화책 펴낸 산부인과 의사 안명옥·만화가 황미나의 ‘꼭 알아야 할 우리의 몸 이야기’

안명옥씨(사진 왼쪽)와 황미나씨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루나레나의 비밀편지’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기를 꼬박 3개월, 마침내 황씨가 승낙했다. 안소장이 소망하던 ‘꿈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결정적으로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나도 몸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는 게 아니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조카나 친구,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올케언니와 얘기를 나눴는데 마찬가지였어요. 몸에 뭔가 변화가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아파도 참는 걸로 일관하며 사는 거죠. 아무렇지 않게 수십년을 반복해온 생활습관 중 고쳐야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고요. 아마 많은 분들이 책을 보고 나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부추긴 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점. ‘소녀들의 산부인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이들의 ‘Q&A’를 보면서 그는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황씨는 안소장과 여러 차례 만나 ‘성교육’을 받았고, 집에 돌아와 한참 더 공부했다. 안소장을 만나는 동안 그 역시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안소장에게 진료를 받아보기도 했다. 매달 생리통에 시달리던 고등학생 조카를 병원에 데려가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게 하기도 했다. 책 속에 나오는 ‘루나레나의 산부인과 체험’이 바로 조카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는 동안 힘든 점은 없었냐”고 물었더니 안소장이 한참 동안 기억을 되새기다 말고 “이럴 때 꼭 어려웠던 걸 얘기하라고 하는데 난 정말 어려운 일이 없었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하고 웃는다. 그러나 안소장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던 황씨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전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도 불확실한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머리도 많이 아팠어요. 작업을 하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나 ‘루나레나…’를 받아 든 안소장은 꽤 만족해했다.

3개월간 성교육 받고, 포르노 사이트 뒤져가며 정확한 그림 그려내
안명옥(이하 안) 이보다 더 잘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결과물이 잘 나왔어요.
황미나(이하 황) 제가 맡은 일이 그거잖아요. 선생님 본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성격상 얼버무리는 건 못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를 하지 않고는 펜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자궁경부를 그리는데 각 부위의 비율까지 아주 정확하게 맞췄더라고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거죠.
‘처녀막’을 얘기해야 하는데 말로는 익숙했지만 그림으로 그리려니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는데 우리 화실 총각(황씨의 작업을 보조한 후배)이 ‘인터넷 사이트에 다 올라와 있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냐’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포르노 사이트까지 들어가봤다니까요. 그뿐인가요. 작업이 진행된 몇 개월 동안 작업실 바닥에 생리대 굴러다니고, 템포 굴러다니고 그랬어요. 남자 후배가 공부 많이 했죠. 여자들이 언제나 아프면서 산다는 걸 알게 됐대요. 남자들 진짜 편하게 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여자들이 늘 아픈 걸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면 안되지. 원인을 찾아서 아프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지.
저희 올케만 봐도 조카가 생리통으로 학교에 가기 힘들다고 하면 ‘너만 아픈 게 아니라 남들도 다 아픈 걸 넌 왜 못 참냐’ 하고 나무랐어요. 그런데 제가 작업하는 동안 얘기를 듣더니 ‘그럼 산부인과에 한번 데려가 볼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 찾아가 진료를 받게 하고 나니 속이 편하대요.

성교육 만화책 펴낸 산부인과 의사 안명옥·만화가 황미나의 ‘꼭 알아야 할 우리의 몸 이야기’

안명옥 소장의 캐릭터 닥터 아모를 보며 대화하는 두 사람. 안소장은 “사람들이 나랑 똑같대” 하며 웃었다.


엄마들이 모르는 것은 대충 넘어가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병원엘 데려가 내 몸을 아껴줄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죠. 특히 생리를 시작한 다음에는 산부인과에 데려가 일생의 주치의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사실 걱정되는 게 있어요. 용기를 내어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의사나 간호사들이 성의 없이 대하거나 혹시라도 냉담하게 반응하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 안선생님께서 할 일은 의사들을 계몽시키는 거죠. 그리고 사실 남자들이 포르노 사이트 등을 통해 여자의 몸을 여자보다 더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만 사실 진짜 여자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그런 점에서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꼭 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요.
아빠랑 딸이, 엄마와 아들이 같이 보는 책이 되어야지요. 그래서 ‘내 몸의 주인은 나다’ 하는 생각으로 우리 딸들이 당당하고, 예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소장은 앞으로 소녀 루나레나가 20대가 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중년을 맞이하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루나레나’를 기르고 싶어요. ‘초경의 루나레나’는 생리에 대한 판타지, 생리는 바로 생명의 길이란 걸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 다음엔 ‘초경의 루나’에서 ‘완경(完經)의 루나’까지 행복한 여성의 일상,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여성을 그리는 꿈의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안소장은 ‘폐경’을 ‘완경’이란 표현으로 대신했다. 생리를 더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폐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여성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이 때문에 완경이 찾아들 즈음의 나이에 접어든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간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얼마전 작정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안소장은 밝게 웃는 모습이 담긴 자신의 사진 몇장을 내보이며 “내 영정사진을 이걸로 하라고 할까 해” 하며 웃었다.
황씨는 앞으로의 작업이 부담되는지 “아~ 그럼 난 어떡하지…” 하며 “안선생님은 필라르(‘레드문’의 남자주인공)와 비뇨기과 이야기도 구상중”이라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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