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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픈 기억 고백

부모 이혼으로 방황했던 지난날 털어놓은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심은진

“이혼 가정에서 자란 외로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6. 11

화려하고 섹시한 춤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 대만 등지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여성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그 중에서도 심은진은 뛰어난 입담과 섹시함으로 남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밝은 모습 뒤에 부모의 이혼과 힘겨웠던 유년시절이 있었음을 그가 담담히 털어놓았다.

부모 이혼으로 방황했던 지난날 털어놓은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심은진

요즘 ‘베이비복스’의 인기몰이가 대단하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그룹 ‘SES’는 해체되고, ‘핑클’은 멤버들의 개인 활동으로 팀 활동이 미진한 상태인데 반해 ‘베이비복스’는 새 노래 ‘나 어떡해’로 독보적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베이비복스’의 가장 큰 매력은 화려한 춤과 함께 멤버들이 가진 섹시함이다. 다른 여성 그룹들이 소녀다운 깜찍함으로 어필하고 있다면 이들은 편안하고 여성스러운 섹시함을 주무기로 삼았다. 특히 지난 4월말엔 태국에서 촬영한 세미누드 장면을 공개, 많은 남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남성 팬을 확보하고 있는 멤버는 바로 심은진(22). 고교 2학년 때 ‘베이비복스’에 합류, 초반엔 중성적 매력으로 어필하던 그가 최근에는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각종 쇼·오락 프로그램에서 섹시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내숭떨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미지 관리에만 급급한 여느 신세대 스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네살 무렵 부모가 이혼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많은 방황을 했던 지난날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것도 그의 그런 솔직함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주위에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는 말도 하더군요. 하지만 부모의 이혼이 숨겨야할 만큼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어린 시절의 저처럼 방황하고 있을 아이들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고요.”

미국으로 건너가 재혼한 아버지와는 연락 끊겨
부모가 이혼을 한 것은 그가 네살 무렵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와 별거상태였던 아버지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얼마 후 이혼서류를 보내왔다고 한다.
“자세한 이혼사유는 몰라요. 어머니가 말씀을 안하셔서…. 하지만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아버지가 가정에 불성실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두 딸을 남겨놓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혼을 했겠죠.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아요. 너무 어려서 헤어져 얼굴도 모르고, 다만 삼촌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상상하곤 했어요.”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그, 그리고 여덟살 위의 언니만 남겨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딸이 상처를 입을까 싶어 이혼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아빠를 찾는 딸에게 “아빠는 미국에서 일하느라 못 오시는 거야. 우리도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자”며 달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두 분이 헤어진 사실을 이야기하시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요. 이후 엄마의 외로움과 생활고, 그리고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부모 이혼으로 방황했던 지난날 털어놓은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심은진

1년 정도 생활비를 보내주던 아버지에게서 그나마 연락조차 끊기자 세 모녀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는 직장생활을 해야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적적함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 늘 외톨이였죠. 언니도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고. 그때 어렴풋이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집안의 어둠과 고요가 왜 그렇게 싫던지. 어린 마음에도 자꾸 밖으로만 나가고 싶었어요.”
급기야 중학교 3학년 때는 가출을 하기도 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꾸미고 다닐 나이. 그러나 집안형편은 그의 욕심을 채워줄 수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불만은 자꾸만 ‘삐딱선’을 타게 했다.
“철이 좀 들었던 언니와 달리 저는 그런 가정형편이 항상 불만이었어요.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야’ 하는 생각에 반항심만 커졌던 거죠. 며칠을 방황하다 돌아와서 본 엄마의 모습이 제겐 참 큰 충격이었어요. 며칠 사이 너무나 늙어버린 엄마. 그때 ‘다시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이후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대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두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모 이혼으로 방황했던 지난날 털어놓은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심은진

이젠 그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할 차례. 더 나아가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봉사할 생각이다.


어려서부터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탓에 그 역시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다고 한다. 중학 시절부터 아이스크림집, 카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모두들 또래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그를 대학생인 줄로만 알아 일자리 잡기는 편했다고 한다.
“제 스스로 돈을 벌어 쓰고 싶은 데 쓰니까 뿌듯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는 게 가장 좋았어요. 고 2때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어요.”
늘씬하고 성숙한 외모 덕분에 아르바이트하는 중에도 많은 남자들이 따랐다고 한다. 연예계 데뷔도 그의 가게에 손님으로 온 매니지먼트회사 직원의 눈에 띄면서 이루어진 것.
“처음엔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당신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셨기 때문인지 딸들만은 꼭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던 거죠.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엄마 말도 잘 들었지만 전 사실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그래서 엄마 몰래 매니지먼트 회사에 다니며 춤 연습을 했어요.”
그러나 ‘몰래 연습’은 길지 못했다. 처음 며칠은 ‘공부하다 늦겠거니’ 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골목 입구에서 지키고 있다가 매니저의 차에서 내리는 그의 팔목을 잡아챈 것이다.
“매니저에게 한바탕 퍼부으시고는 눈물을 흘리며 제게 하소연을 하시더군요. ‘바람만 들고, 얼굴만 팔리면 어떻게 할 거냐. 여자에겐 험한 곳이 연예계 아니냐’는 말씀이셨죠.”
그런 어머니를 설득해 그의 연예계 데뷔를 도운 사람은 다름 아닌 담임선생님. 일찌감치 그의 끼를 알아챈 선생님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그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도움 주고 싶어 아픈 과거 밝혀
그는 지난 4월 한 방송에서 자신의 힘겨웠던 과거를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이혼을 고민하는 시청자의 사연에 “내 부모도 이혼을 했다. 경험으로 비추어 아이들에겐 반드시 아빠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처음으로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밝힌 것.
“연예인들 가운데 저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바깥으로 나돌고, 또 나름대로의 끼를 발산하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모르죠.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아도 아쉬운 유년기에 애정 결핍으로 외로움과 반항심만 키운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게 어디 있겠어요.”
얼마전 어머니는 하숙집을 그만두었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젠 좀 쉬면서 딸들 덕 좀 보시라”며 그가 일을 못하게 한 것. 서른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를 낳은 어머니는 “네가 빨리 결혼해 아기 낳고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 걱정이 없겠다”며 아직 스물두살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고.
“남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참 안타까웠어요. 남들 앞에선 강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늦은 밤 혼자 흐느껴 우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죠. 간혹 ‘차라리 엄마가 재혼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마나 저희들에게나 ‘아빠’가 필요했거든요.”
그는 얼마 전 남자친구가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대는 지난해 SBS 드라마 ‘라이벌’에 출연해 주목받은 신인 탤런트 경준(24). 지난 2월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해 불과 두달만에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한다.
“아직 연인관계라고 하기엔 이르고, 친한 남자친구 정도예요. 아버지의 정을 못 느껴서인지 성격이 밝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 기댈 수 있는 남자가 좋아요. 경준씨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지난 4월, 그는 촬영 도중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면서도 불우이웃 돕기에 나서는 고운 심성을 보여줬다. 과로가 겹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그날 저녁 진행된 SBS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 녹화를 위해 이를 악물고 일어선 것.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한 어린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늦도록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했다.
“제가 외롭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소외되고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몸을 아끼지 않고 나설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베이비복스’ 멤버들과 향한 곳은 소외된 청소년을 위한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잠실 역도경기장. 그는 힘겨운 시기를 잘 넘어온 사람만이 갖고 있는 따스함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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