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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버려진 장애아를 친딸처럼 키우는 4남매 엄마 신정희씨네 사연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홍상표

2003. 03. 17

혈육이 버린 세살배기 장애 아이를 입양한 부부가 있다. 이미 네명의 자녀가 있는데도 장애아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신정희 최용철 부부. 막내아들과 비슷한 장애를 지닌 별이를 딸로 받아들이기까지 이 가족이 겪은 시간들은 남달랐다. 장애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신씨 가족의 끈끈한 사랑 이야기.

버려진 장애아를 친딸처럼 키우는 4남매 엄마 신정희씨네 사연

마침 간식 먹는 시간이었나 보다. 신정희씨(40)가 만든 떡볶이 주변에 다섯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큰언니 희란(12)은 막내 별(31개월)이 매울까 봐 떡볶이를 물에 씻어서 먹여줬다. 말이 늦고 팔도 불편한 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희란은 놀랄 정도로 척척 알아차렸다. 둘째 효나(11)는 이제 두돌이 지난 넷째 예도를 돕고 있었다. 아홉살배기 개구쟁이 항택이는 뭐가 그리 급한지 떡볶이 먹기에 바빴다.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1, 2개뿐인 예도와 별은 요령껏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마셨다. 왁자지껄한 이들 사이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겉으로만 보면 다른 가정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 신씨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세가지가 다르다.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는 점, 몸이 불편한 장애아가 두명이라는 점, 다섯 아이 중 막내인 별은 얼마전 입양된 아이라는 점.
별의 원래 이름은 지영. <버려진 장애아들>이라는 제목으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지영이를 신씨가 보게 되면서 이들 가족의 남다른 인연은 시작됐다.
“지영이를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막내와 같은 장애를 지닌 그 아이가 예사롭게 보이질 않았던 건, 만일 내가 죽으면 우리 막내도 저 자리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저리더군요. 입양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방송국과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지영이를 찾아냈다. 그러나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편의 반대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입양을 찬성했던 남편 최영철씨(42)가 숙고 끝에 반대에 나섰다. “아이 넷 키우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장애아까지 키우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라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신씨는 뜻을 굽히지 않고 “아이를 한번만 보고 결정하자”고 설득했다. 결국 부부는 지난해 12월 19일 드디어 지영과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지영이를 보고 난 후 남편의 반대는 더욱 강경해졌다. 생각보다 지영의 장애는 심했다. 손가락, 발가락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왼쪽 팔다리도 너무 짧았고, 발달이 지체되어 20개월 된 아이가 13개월의 수준도 안됐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로서 장애의 경중을 따지며 편애한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신씨의 눈물어린 호소도 소용없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었어요. 남편이 느닷없이 지영에게는 무슨 선물을 하면 좋겠느냐고 묻더군요. 전 기뻐서 부모 없는 아이에게는 가족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어요. 남편은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선수를 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영을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남편은 못 말리겠다며 화를 버럭 내곤 잠자리에 들대요. 다음날 출근길에 ‘졌다’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어요.”
생애에서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 그러나 기뻤던 마음도 잠시였다. 친정어머니와 형제들이 입양소식에 펄쩍 뛰었던 것. 평소 치매노인을 데려다 보살피던 봉사심 투철한 어머니였지만 제 발로 고난의 길로 들어서려는 딸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입양기관에 전화를 걸어 지영이의 입양에 제동을 걸었다. 입양절차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건만 신씨 가족은 재심사를 받아야 했다. 암투병을 했던 신씨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사 소견서를 다시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통과됐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예도 하나만으로도 힘든데 왜 그러냐며 아이를 데려와도 안 보겠다고 했어요. 설날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친정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어머니가 제 손을 꼭 잡고 우시는 거예요. 제가 너무 안쓰러워서 반대하셨던 거죠. 아이를 데려오라면서, ‘내 딸 장하다’고 꼭 안아주시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어렵게 입양을 허락한 어머니는 아이가 가족의 품에 안기던 날, 경사스럽다며 떡을 두 상자나 보내주었다. 이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2월 11일 지영은 신씨 가족의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신씨가 별의 모습을 비디오로 보여주며 입양하자고 말을 꺼냈을 때 흔쾌히 허락했던 네 아이들은 대대적인 환영식을 열었다. 두 딸들은 온갖 옷과 머리핀, 스카프를 꺼내 별을 공주처럼 꾸며주었고, 항택이는 이불로 뒤집어씌우면서 장난을 걸었다. 막내 예도는 별이 옆을 떠날 줄을 몰랐다.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손을 꼬옥 잡고 안아보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아빠를 무척 좋아하는 별은 저녁이면 퇴근한 아빠에게 안겨 뽀뽀를 하면서 떨어지질 않는다고.

버려진 장애아를 친딸처럼 키우는 4남매 엄마 신정희씨네 사연

최용철·신정희 부부와 큰딸 희란이 막내 예도, 효나, 항택이의 모습(시계 방향으로). 예도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아였다.


신씨 부부가 이런 남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막내아들 예도의 탄생 때문이었다.
신씨 부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당에서 만나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났다. 아내 신씨는 결혼 후에도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거 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등 봉사활동을 쉬지 않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혼자서 커야 했던 남편은 아이가 북적이는 집안을 좋아해서, 아이가 들어서는 대로 낳았다고. 부유하지는 못해도 이처럼 단란했던 일상에 변화가 온 건 넷째를 임신하면서부터였다.
“셋째가 유치원에 입학할 즈음 덜컥 임신을 한 거예요. 그때 제 나이 서른일곱이었어요. 고령임신이어서 몸도 안 좋은 건 물론 초기엔 우울증까지 심했어요. 이상하게도 ‘아이를낳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임신 8개월에 하혈이 와서 결국 조산을 했어요. 분만실에 갑자기 적막이 흐르대요.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1, 2개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때 심정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1.7㎏ 저체중아를 인큐베이터로 옮기면서 어찌나 마음이 착잡했는지….”
고령출산이라서 유난히 신경을 썼다. 음식, 태교, 몸가짐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게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상실감과 충격은 엄청났다. 그래도 ‘일단은 살리고 보자’는 심정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아기를 지켜보았다. 추운 겨울에 찬바람을 맞아가며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하고 아기 면회를 하러 다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때 둘째 효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성호르몬이 너무 일찍 생성되고 성장호르몬은 나오지 않는 ‘성조숙증’이라는 희귀한 병이 발견된 것. 3만원 상당의 성장호르몬 주사를 매일 맞아야 했다. 기계 납품회사 과장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효나 치료비와 예도의 인큐베이터 병원비가 버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예도를 데리고 퇴원한 다음날, 이번에는 신씨에게 통증이 찾아왔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위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던 것. 두려움에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두려워했던 대로 결과는 ‘암’이었다.
“‘위임파선암’이라고 하더군요. 너무 억울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이렇게 힘든 삶을 정리하고 편안한 하늘나라로 가라는 얘기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어떡해요. 마음을 고쳐먹고 신앙에 매달리며 꿋꿋하게 견뎌내려 했죠.”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돌봐야 할 갓 낳은 아기가 있는 엄마였다. 우유도 제대로 빨지 못하는 2㎏ 남짓의 조산아, 더군다나 장애가 있는 막내를 누구에게 맡긴단 말인가. 결국 그는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대체의학에 의존하기로 했다. 단식과 녹즙, 기체조만으로 암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예도가 ‘방광염’에 걸렸다.

버려진 장애아를 친딸처럼 키우는 4남매 엄마 신정희씨네 사연

신씨의 4남매는 몸이 불편한 별이를 입양하는데 찬성한 것은 물론 친동생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예도는 방광이 기형으로 태어났거든요. 점점 먹는 양이 많아지니까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생후 8개월에 방광염에 걸린 거예요.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며 호스를 꽂아서 소변을 뽑아내고 항생제를 먹였어요. 증세가 좋아지면서 항생제를 바꿔가는데, 약을 바꿀 때마다 예도는 고통으로 몸이 끊어지는 듯 울어대는 거예요. 그야말로 한숨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죠. 다행히 방광 수술 결과가 좋았지만, 이번에 요로염이 동반했기 때문에 항생제는 늘 달고 살았죠. 작년 6월에야 항생제를 끊었어요.”
예도의 증세가 호전되고 난 얼마 후였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신씨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밥은커녕 미음조차 한 모금 삼킬 수가 없었다. 연이은 아이들의 발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던 자상한 남편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집안일은 도맡아 하며 아픈 저를 위로하던 남편이 나중엔 술을 먹더군요. 그러면서 화를 냈어요. 남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전 저대로 외롭고 서러웠죠. 너무 괴로워서 하루는 울면서 남편에게 절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9일 동안 기도하는데 그 기간에 신기하게도 같은 꿈을 두번 반복해서 꾸었죠. 어떤 할머니가 준 알약을 제가 받아 먹는 꿈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예도 밥을 먹이는데, 이상하게도 식욕이 동하더군요. 그래서 두달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었는데 속이 하나도 아프지가 않은 거예요.”
찾아간 병원에서는 종합진단 끝에 “암세포가 하나도 없다. 깨끗하다”고 했다. 의사들도 전부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신씨는 이제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효나의 증세도 호전돼 성장호르몬 대신 이제는 석달에 한번씩 성호르몬 억제 주사만 맞으면 된다. 예도가 태어나고 2년 동안 가족에게 쉴새없이 몰아쳤던 폭풍우를 결국 이겨낸 것이다.
“이런 아픔들을 겪지 못했더라면 별이를 입양할 생각은 감히 꿈도 못 꾸었을 거예요. 제가 아파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겠더군요. 예도를 키우는 일은 힘들었지만 도리어 교훈도 많이 얻었어요.”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믿는 신씨는 요즘 예도와 세 딸 희란, 효나, 별을 데리고 대중목욕탕에 가는 재미를 들였다. 처음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별이가 상처 입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아이들은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고, 별이 역시 처음 가본 대중목욕탕을 퍽 마음에 들어했다. 신씨의 예상과 달리 목욕 하던 다른 이들도 선뜻 별이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마뜩찮은 반응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한 눈길로 ‘예쁘다’고 해주었다.
이런 엄마의 생각을 이어받아서일까. 희란, 효나, 항택도 장애아 동생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신씨네에는 유난히 손님의 출입이 잦다. “예쁜 새 동생이 생겼다”는 희란, 효나, 항택의 자랑에 친구들이 별이를 보러 몰려오는 것이다.
“별이 친부모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장애를 지녔다고 별을 낳지 않았다면, 우리는 별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위대하다고 했던가. 혈육의 정보다 질긴 가족의 인연을 맺은 별과 신씨 가족. 그들의 행복한 웃음은 세상의 잣대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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