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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교사 출신 박지윤씨가 털어놓은 ‘눈사람’에 버금가는 사랑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정미 ■ 사진·박진관

2003. 03. 05

“하느님, 이승에서 병으로 고생만 해온 아내와 저세상에서는 병 없이 다시 부부로 살고 싶습니다. 머나 먼 저승길을 아내 혼자 타박타박 걷게 하지 마시고 저와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매일 밤, 남편의 애틋한 사랑의 기도를 들으며 살며시 잠을 청하는 아내 조현경씨(가명). 14년이라는 세월을 병석에서 뇌졸중과 싸우고 있는 아내를 위해 손발톱이 다 닳아 빠지도록 혼신을 다해 간호하며 두 사람만의 사랑을 기도하는 남편 박지윤씨. 만약 이들에게 운명의 신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처제와 형부 사이로 인연을 다했을지 모르는 두 사람의 기막히고도 가슴 찡한 지난 40년의 사랑 이야기.

교사 출신 박지윤씨가 털어놓은 ‘눈사람’에 버금가는 사랑

“선생님, 언니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제가 이어 선생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언니가 꿈에 나타나 ‘선생님을 나 대신 사랑해달라’고 애원했어요. 언니를 위해서라도 선생님을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무엇엔가 홀린 듯,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일까? 목숨을 다해 사랑해도 아깝지 않았던 여인을 떠나보내고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의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는 작은 소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만큼 소녀는 그녀와 꼭 닮아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뽀얀 얼굴. 생글생글 입가에 머문 미소마저 어쩌면 죽은 그녀와 똑같은 모습인지….
잠시 정신을 잃고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은경아, 네가 정말 살아서 돌아왔구나. 그래 넌 죽지 않았어. 모두 거짓말이야.’ 미친 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귓전을 맴도는 소리는 오직 “선생님! 저 현경이에요. 제발 언니 대신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라는 한 소녀의 울부짖음뿐이었다.
‘현경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본 그녀는 정말 죽은 은경이가 아니라, 그녀의 하나뿐인 여동생 현경이었다. 언니가 살아 있었더라면 처제로 인연이 맺어졌을 현경이. 부산에서 대구까지 ‘언니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한숨에 달려온 현경이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그후, 사흘이 멀다 하고 날아드는 것은 사랑한다는 내용이 가득 적힌 현경이의 편지.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언니 은경이의 자리가 너무 컸기에 다른 여자를 받아들일 틈이 없었다. 그것도 그녀의 여동생을….
박지윤씨(66)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두 자매, 은경이와 현경이와의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사의 부푼 꿈을 안고 대구 한 사범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심리적 불안을 주었지만, 봄 새싹만큼이나 싱싱한 대학 1학년 새내기들에겐 하루하루가 설렘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대구의 한 사범대학에서 만나 사랑한 ‘아내의 언니’
국어교육을 전공하게 된 그의 학과에는 5명의 여학생이 입학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뭇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두 여학생이 있었다. 그 둘은 바늘과 실마냥 늘 함께 붙어다녔고, 강의 과목도 똑같이 신청하는가 하면 한집 한방에서 하숙한다는 소문에 남학생들은 앞 다투어 하숙집 보초병이 되길 자처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 남학생들까지도 풍문을 듣고 찾아와 그녀들이 수강하는 강의실은 언제나 초만원일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씨 또한 예외일 순 없었다. 왠지 그녀들 앞에만 서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입 한번 제대로 벙긋해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그 모습을 훔쳐보는 것만으로 기뻤다.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던 친구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지어 부르게 되었고, 그렇게 불려진 두 사람의 별명은 ‘육이오’와 ‘팔일오’였다.
‘육이오’의 이름은 장나희였는데 6·25 피난중 파편에 맞아 생긴 턱 밑 흉터 때문에 그렇게 불려졌고, ‘팔일오’의 이름은 ‘조은경’으로 8·15 해방을 맞은 듯 늘 밝게 웃는 표정이 아름다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늘 생글생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왠지 우울해보였던 ‘팔일오’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가슴앓이를 하면서 1년을 훌쩍 넘기고, 나름대로 열심히 대학생활을 한 덕택에 그는 학생회 간부로 당선될 만큼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도도하기 그지없던 그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여왔다는 것. 결국 그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팔일오’ 은경이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캠퍼스 공식커플로 인정받아 부러움과 시샘을 한몸에 샀던 두 사람. 은경의 아름다운 모습에 작은 티라도 묻을 새라 입맞춤 한 번 하지 못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캠퍼스 커플로 사랑을 속삭이며, 미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은경이는 누가 자기 집안에 대해 물으면 절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어느날인가부터는 자꾸 야위어 갔지만,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생실습을 앞두고, 4학년 1학기가 시작될 무렵. 은경이는 부산에 있는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번이 기회다 싶어, 함께 부모님을 찾아뵙고 결혼을 허락받자며 슬며시 운을 뗐지만, 은경이는 교생실습 준비를 핑계삼아 석연치 않은 미소만 남긴 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없는 캠퍼스에서는 모든 게 시들했다. 교생실습 준비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 틈에서 그의 마음은 온통 은경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교생실습 후 정식 발령이 떨어지는 대로 은경과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 다녀오겠다던 은경이는 사흘 나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떠날 때의 석연치 않은 미소 때문인지 조금씩 그의 마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어느날, 도무지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부산으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그에게 도서관으로 낯선 여자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앳된 얼굴. 하지만 퍽이나 낯익은 인상. 누구냐고 묻는 그에게 앳된 얼굴의 그녀는 참고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자신이 조은경의 동생이라고 밝히는 것이었다.
놀란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는 그에게 동생이 건네는 한마디는 바로, 언니가 지금 무척 위독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산으로 내달리는 열차 안에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교사 출신 박지윤씨가 털어놓은 ‘눈사람’에 버금가는 사랑

86년, 박씨의 큰 딸 결혼식 때의 모습.


하지만 그가 도착하기 몇분 전, 은경은 이미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행여 작은 온기라도 남아있을까 그녀를 덮고 있는 새하얀 천을 끌어안고, 그는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은경이는 한 남자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그야말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차라리 따라 죽는 게 낫다는 부질없는 상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술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나날들. 그의 마음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밤이 오는지, 날이 밝는지도 모른 채 그저 골방에 박혀 하루하루를 죽여가고 있는 동안, 4학년 1학기 학점은 온데간데 없어 결국 학교에서 유급을 당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앞에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다름 아닌, 죽은 은경이의 여동생인 현경. 어쩌면 그렇게 은경이와 꼭 빼닮은 모습인지.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현경이가 들려주는 그녀의 집안 내력에 그는 아연실색,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았다.
쌍둥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서로 닮고 우애 깊은 두 자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자매였다. 죽은 은경이의 어머니는 대만사람으로 아버지가 사업차 대만에 드나들면서 알게 된 현지처였고, 아버지가 한국에서 다른 여자(지금의 현경이 어머니)와 결혼하면서 버림을 당해 은경이를 아예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당시 중학생이던 은경이. 아버지와 함께 가족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낯선 이국땅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제대로 뿌리내리며 적응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늘 바쁜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 대만에서 생활할 때부터 한국어를 알았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 끝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피보다 진한 사랑으로 서로를 아껴주던 이복 자매의 사랑 받아
비록 초등학생이었지만 그런 이복 언니를 지켜보는 현경이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기에 그 누구보다 언니에게 정성을 다했다. 차츰 은경이도 현경이에게만큼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은경이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 그리고 한국남자를 만나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나 예기치 못한 복병은 도사리고 있게 마련. 대만에 있을 때부터 은경이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은경이가 한국인으로 귀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와 자기와 결혼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때가 마침 은경이가 박씨와 잠시 헤어져 부산 집에 내려가 있던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며 끝내 거절하는 은경의 모습에 흥분한 대만남자는 그만 칼을 들고 말았고, 그 칼에 은경이는 처참히 살해당한 것이었다.
현경이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동생 현경이의 사랑고백. “언니대신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현경이의 말에 그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현경이는 이제 겨우 고3. 그럼에도 현경이의 구애는 그칠 줄 몰랐다. 타일러보기도 하고, 윽박질러보기도 했지만 현경이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가 다니는 대학으로 덜컥 진학하고 말았다.
현경이의 집에선 ‘인륜지대사’를 운운하며 불벼락이 떨어졌고, 급기야 현경이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대만으로 강제 유학까지 떠나게 되었다. 모든 게 다 허망하기만 했다. 죽은 은경이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고 현경이에 대한 연민도 모두 잊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다름아닌 자원입대. 면회도 어려운 최전방 부대였다.

교사 출신 박지윤씨가 털어놓은 ‘눈사람’에 버금가는 사랑

박지윤씨는 은경씨와 현경씨를 모두 잊기 위해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훈련에 여념이 없던 어느날, 면회신청 이야기를 듣고 면회소로 달려간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대만에서 유학중이어야 할 현경이가 떡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몰래 유학을 포기하고, 수소문 끝에 선생님을 찾아왔다”는 현경이의 울먹임. 그녀의 끈질긴 사랑에 그 역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경이는 아버지에 의해 다시 집으로 끌려가 감금되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버지가 맺어준 한 남자와 결혼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현경이의 상대 남자는 부산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건달 두목이었다. 휴가를 내 몇 차례나 현경이를 찾아갔지만 만날 길이 없었다.
힘겨운 사랑 끝에 결혼 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14년째 간병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그날 따라 견딜 수 없을 만큼 힘겨운 혹한으로 엄습해왔다. 귀대해 보초를 서면서도 어느새 머릿속은 은경이가 아닌, 현경이 생각뿐. 마음을 달래보려고 초소 옆에 작은 눈사람 한쌍을 만들었다. 현경이가 다가오는 환상에 사로잡혀 나뭇가지로 머리카락도 심어보고, 눈도 붙이고, 입도 만들어 보는 사이, 어느새 눈사람은 순백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신랑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마침 지나가던 상관이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주례가 되어줄 테니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기념하라며 건네주는 필름 한통.
그로부터 얼마 뒤, 어렵게 휴가를 얻어 다시 현경이를 찾아간 그는 우여곡절 끝에 현경이를 만나 그의 마음을 담은 눈사람 사진만 전해주고 눈물을 훔치며 귀대했다. ‘아, 이제 현경이와는 영영 이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법인지, 귀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눈사람 결혼식 너무너무 감격했어요. 선생님 제대하는 날만 기다릴래요. 그리고 선생님의 영원한 눈사람 여인이 되고 싶어요. 영영 녹지 않는 선생님의 눈각시 말이에요. 집을 나왔어요. 아버님이 찾을 수 없는 먼 곳이에요. 지금 친구집에서 기거하며 취직을 했어요. 만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기다릴 거예요. 선생님의 영원한 현경이가.’
제대하는 날까지 현경이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박씨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밖에서 현경이는 ‘두목’과의 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 쫓고 쫓기는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대와 함께 떳떳하게 현경이의 집을 찾은 그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수모를 당했고, 이는 급기야 양쪽 집안 어른들끼리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서로 원수 보듯 하며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양쪽 집안. 그러나 그는 결코 현경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즈음, 그에겐 또 하나의 복병이 날아들었다. 현경이와의 결혼을 내심 꿈꿨던 ‘두목’으로부터의 결투 신청. 눈발 날리는 부산항구에서 그야말로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라기보단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입장… 얼마나 맞았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응급실에서 현경이의 간호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목’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툭 하니 한마디를 건네고선 돌아서 나가는 것이었다. “야, 너 멋지게 잘 싸우더라. 감히 나한테 주먹을 날릴 생각을 하다니…. 결혼할 때 꼭 청첩장 보내라. 현경씨도 잘 살아요.”
대학졸업 후, 박씨가 부산의 한 여고로 정식 교사발령을 받은 후 두사람은 결혼식을 치렀다. 40여년의 결혼 세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안타깝게도 14년 전 아내인 현경씨(63)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가 간호에 매달리고 있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살 수 있는 기간이 고작 1년 정도라는 소리를 들었던 현경씨는 박씨의 극진한 간호로 14년째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는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좋은 음악이 나오면 녹음해두었다가 아내에게 들려주고, 간간이 방송에 글을 써 보내 상품 타는 재미로 아내를 기쁘게 한다. 지금껏 받은 상품만도 텔레비전, 김치냉장고 등 10여 가지가 넘는다고. ‘사랑보다 더 큰 약은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 봄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빛이 충만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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