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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똑똑한 엄마

계룡산 산자락에서 사는황선하 주부의 아들 영어교육 노하우

“매일 영어로‘잔소리’해서 탄탄한 영어실력 길렀어요”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장다혜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02. 28

도예가인 남편을 따라 7년 전 물 맑고 산세 좋은 충청도 계룡산 자락에 들어간 황선하 주부. 영어학원은커녕 일반학원조차 없는 산동네에서 직접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그가 자신의 경험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영어는 잔소리처럼 쉽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황씨에게 들어본 ‘영어 가르치기 노하우’.

계룡산 산자락에서 사는황선하 주부의 아들 영어교육 노하우

“이닦아라, 숙제부터 하고 놀아라, 텔레비전 볼 때는 뒤로 좀 가서 앉아라….”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의 잔소리는 하루종일 끊일 새가 없다. 공통적으로 하게 되는 이 엄마들의 잔소리를 영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엮어낸 이가 있다. 스스로를 ‘시골 아줌마’라고 소개하는 황선하씨(39)가 그 주인공.
그가 ‘시골 아줌마’라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황씨가 살고 있는 곳은 충청도 공주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계룡산 자락에 있는 도예촌. 사방 천지가 겨울에는 눈이요, 봄에는 부드러운 연둣빛에서 여름이면 진초록으로,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 드는 이 산골자락에서 그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벌써 7년째 살아오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것은 아들 영조(10)가 네살이 되던 해. 작업공간이 필요했던 도예가인 남편 윤정훈씨(40)를 따라서였다. 사실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맑은 산속 공기를 들이마시며 마음껏 뛰어노는 전원생활이 아들의 정서를 위해서야 좋겠지만, 교육을 생각할 땐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은 학원 다니며 영어도 배우고 글짓기도 배우고 그럴 텐데….’ 그러나 이곳은 그 흔한 학원 하나 볼 수 없는 ‘영어의 무풍지대’가 아니던가. 잔뜩 조바심 난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태평스럽게도 개구쟁이 짓에만 열중이다. 그러니 잔소리를 안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그 ‘잔소리’에서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는 황씨.
“어느날인가 ‘영조야, 이 닦아야지!’ 하는 대신에 ‘브러시 유어 티스(Brush your teeth)’ 하고 말해봤어요. 그랬더니 처음엔 아들이 말똥말똥 쳐다만 보더군요. 그래도 칫솔에 치약을 묻혀 주면서 계속 ‘브러쉬 유어 티이스’를 반복했더니, 알아듣고 양치질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엄마 황씨와 아들 영조 사이에는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굿모닝”으로 시작해서 잘 때는 “굿나잇”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황씨는 아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영어로 말하기를 지속했다. 아들에게는 영어로 말하는 이 놀이가 꽤나 재미있었나 보다. 두 귀를 쫑긋하며 엄마가 말하는 영어에 열성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귀에 익은 문장은 제 입으로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잘 때면 동화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이용해 자기 전에는 영어로 된 스토리북을 읽어주었다는 황씨.
“언젠가 남동생 부부가 집에 왔었는데 올케가 걱정을 하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다 영어를 배운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올케한테 그랬어요. 영어를 생활에 끌어들여서 놀이처럼 하다보면 아이가 거부감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줄 테니 그대로 해보라고 했죠. 그 자료를 본 올케가 그걸 책으로 묶어내라고 조언하더군요. 엄마들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라면서요.”
올케의 말 한마디가 그날 밤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영조와 주고받았던 문장들을 쭉 적어 내려갔다. 금방 백지 한장을 빽빽이 채웠다. 내친 김에 몇장을 더 만들었고, 그게 기획안이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인터넷에서 몇 군데의 출판사를 찾아보고 기획안을 넣었는데 뜻밖에 한 출판사로부터 바로 다음날 연락이 왔다. 당장 계약을 하자는 거였다.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유명 출판사 한곳으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원고는 3개월 만에 끝냈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원고를 쓰는 동안 다른 출판사에서 비슷한 책이 먼저 출간된 것. 당연히 출판사측에서는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황씨의 원고는 2년이라는 길고 긴 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대로 두기가 너무 아쉬웠던 그는 출판사 사장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고, 이내 그의 책 은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계룡산 산자락에서 사는황선하 주부의 아들 영어교육 노하우

황씨는 영어 강사였던 실력을 십분 살려 직접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황씨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외국어학원에서 몇해 동안 영어를 가르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뒀고 줄곧 전업주부의 길을 걸었다. 그가 책을 내면서 가장 걱정한 건 자신의 이런 ‘경력’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럼 그렇지. 자신이 영어강사니까 이런 게 가능한 거 아니겠어?’와 같은 반응을 불러올까 봐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시골에서 엄마 혼자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니, 평범한 시골 아낙이었다면 어림없을 것’이라는 보통 엄마들의 자포자기에 대해서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고 힘줘 주장한다.
“엄마들을 보면 영어 발음에 많이 신경 쓰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또 이왕이면 길고 유식해 보이는 문장을 구사하려고 하는데 그러니 영어가 어려워지죠. 그러나 잔소리처럼 하는 영어는 길지도 않고 어려운 단어도 없어요. 그러니 쉽지요. 엄마들이 조금만 성의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말을 하다보면, 귀가 열리고 발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드럽게 익혀지게 마련이에요. 처음에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팝송도 자꾸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부르잖아요. 그 이치랑 똑같아요.”
책을 쓰는 일이 잔소리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뒤로 물러앉아라’고 하는 영어 표현만 해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또한 예전에는 썼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표현 등도 있다. 이런 부분은 외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되도록이면 생생한 표현들을 담았다고 한다. 황씨는 자신의 책에 나와 있는 ‘잔소리 영어’를 하루에 한가지만 아이들에게 써먹어도 1백일이면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영어를 익힌 영조의 영어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여기에 대해 황씨는 두번의 해외여행 경험을 빌려 설명해주었다.
“아들이 너무 바깥세상을 모르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동남아랑 캐나다로 각각 한달 동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사교육비는 일절 들인 게 없으니 그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죠.”
여행을 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조는 그동안 엄마와 주고받았던 영어실력으로 승무원에게 “주스를 달라” “물을 달라” 말하기도 하고, 택시 안에서는 기사에게 관광지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더란다. 그야말로 영어로 말하는 데 전혀 주눅들거나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아 지켜본 황씨가 더 뿌듯했다고.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왔는데, 은근히 자신의 영어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는지 외국인이 지도하는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대요. 그래서 한달 정도 학원에 보낸 적이 있죠.”
얼마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영조는 이젠 웬만한 영어책은 술술 읽고 집으로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 앞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영어로 표현할 정도다. 그런 아들을 보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혼자서 교육해도 될까 걱정이 된다고 한다.
“안 그래도 가끔씩 주변 사람들이 ‘애가 고학년이 되어도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냐’고 물어봐요. 학벌 중심 사회인 우리사회를 고려할 때 도회지로 나가야 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아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는 그 결정은 미뤄둘까 해요.”
그때까지는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맘껏 달리게 하고 싶고, 산을 향해 고함을 치고, 아빠의 작업실에 들어가 흙장난을 하면서 뛰어놀게 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 교육 때문에 홀로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가 유행이라지만 그는 가족은 한 울타리 안에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들의 교육만 생각했다면 이런 심심산골로 들어오지 못했을 거예요. 도시에 살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뺑뺑이 돌리면서 지내겠지요. 당연히 영어학원에도 보냈을 거예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아이를 지도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계룡산을 택했던 7년 전의 선택에 대해 지금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황씨. 그 덕분에 그는 아들 영조의 엄마에만 머물지 않고 영어 선생이 되었고, 책까지 내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아이의 교육 문제가 걱정돼서 선뜻 전원생활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학습이므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며 영어는 그중 일부분”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황선하씨. 현재 그는 또 다른 책의 발간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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