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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촬영 뒷얘기

MBC 자연 다큐멘터리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총사령탑 최삼규 PD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조희숙 ■ 사진·지재만 기자, MBC 홍보실

2003. 01. 14

아프리카 초원 야생동물의 드라마틱한 생태계를 화면에 담아낸, MBC 창사특집 자연 다큐멘터리 3부작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그것은 하루 2백km 이상의 강행군과 14시간의 집요한 추격과 기다림, 체체파리와의 끊임없는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총사령탑 최삼규 PD로부터 본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그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MBC 자연 다큐멘터리  총사령탑 최삼규 PD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MBC 창사특집 자연 다큐멘터리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총 4억5천만원의 제작비와 2백일간의 긴 여정을 거쳐 지난 12월2일 3부작 완결편이 시청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2개월간의 긴 추적 끝에 얻게 된 사자 일가(一家)의 모습을 담은 1부 ‘초원의 승부사들’,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는 2부 누우떼의 ‘위대한 이동’ 그리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국립공원 세렝게티를 누빈 여섯명의 스태프를 추적한 ‘2백일의 기록’등. 시청자들은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첫번째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에 뜨거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만류했어요.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영국 BBC사에서 지금도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내고 있는데 촬영 노하우나 제작비에서 훨씬 뒤지는 우리가 굳이 갈 필요가 있냐는 거였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 제작사가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동물의 왕국>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손으로 만든 <동물의 왕국> 보여주고 싶어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우리나라에 변변한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는 MBC 시사제작국 최삼규 PD(45). 지난 8개월간 아프리카 대장정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아프리카행을 만류하는 회사측에 “25년 동안 BBC사가 해오고 있는 일이니만큼 분명 해볼 가치가 있다”는 말로 설득해 7년 만에 세렝게티 프로젝트를 따냈다.
아프리카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당시 최PD의 머릿속에 그려진 밑그림은 한국식 동물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것. 경쟁력에서 우위인 세계 유수의 제작사들이 해온 것을 답습한다면 질게 뻔한 싸움이었다. 그는 HD(고화질) 화면과 스테레오 음향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세렝게티를 ‘치열한 생존의 장’이 아닌 ‘조화와 공존의 장’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현장에서 보는 ‘백수의 제왕’ 사자는 위엄이 있는 ‘제왕’의 모습과 많이 달라요. 먹이 사냥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고 먹이가 없으면 서로 으르렁대기도 하죠. 심지어 하이에나한테 새끼를 뺏기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기도 해요. 이같은 그들 나름의 희로애락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는 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초원’이라는 뜻. 세계 최대 자연 국립공원으로 지구상에서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그는 5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2월말부터 4월 중순, 5월말부터 7월말, 8월말부터 10월 중순까지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세렝게티 탐험에 나섰다.
야생초원에서 제작진이 집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사자와 누우떼. 동물의 제왕으로 불리는 사자 일가(一家)의 생태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과 세렝게티의 장관으로 꼽히는 누우떼의 이동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 제작진의 1차 목표였다.
“아프리카에 가면 야생동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며칠을 눈 씻고 찾아봐도 사자 구경은커녕 하루 꼬박 4백km를 돌아다니고도 허탕치고 돌아온 적도 있었죠. 간신히 사자를 찾아 촬영해도 다음날 가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다시 사자를 찾아 헤매고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어요.”

MBC 자연 다큐멘터리  총사령탑 최삼규 PD

최PD와 스태프는 고된 추적 끝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을 정도로 대장관이라는 누우떼의 이동 모습과 사자일가의 생태 등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기다린 결과 제작진은 두 딸과 9마리의 손자들을 몰고 다니는 할머니 사자 ‘나망가’ 일가(一家)를 만날 수 있었고, 누우떼의 뒤를 좇은 지 보름 만에 수백만 마리의 누우떼가 이동중 강물로 뛰어드는, 대장관을 잡아낼 수 있었다. 특히 강물을 건너는 도중 악어에게 물린 누우 한 마리의 눈물겨운 사투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살피다 보면 재미난 일도 많다. 특히 대부분 모계 중심인 야생동물 사회에서 암컷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수컷을 적지 않게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남자들로 구성된 제작진은 무기력한 수컷을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고.
“한 숫사자는 암사자의 먹이를 뺏으려다가 암컷에게 큰 앞발로 뺨을 된통 얻어맞기도 했어요. 현지 사자연구소에 물어봤더니 이 행동은 ‘왜 함부로 내가 잡은 먹이를 빼앗냐’는 뜻이라고 해요. 한술 더 뜨는 건 ‘과부새’라고 불리는 위도우 버드(Widow Bird)예요. 과부새 수컷은 대여섯 마리가 각자 집을 멋지게 꾸며놓고 암컷 한 마리에게 구애를 하더군요(웃음).”
총 8개월간 제작진은 3백개의 테이프에 세렝게티 야생동물의 생태를 고스란히 담았다. 아프리카 동물의 세계를 관찰하는 동안 최PD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바로 동물들은 배고프지 않으면 절대로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
“동물들은 배고픔만 해결되면 절대로 자기 만용이나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사냥하지는 않아요. 인간이 자기 과시를 위해 재력이나 권력을 취하는 것과 많이 다르죠. 동물의 세계는 투쟁의 장이라기보다 생명과 생명이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룰이 지켜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이 배울 게 많아요.”
MBC 세렝게티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아프리카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프리카 촬영기간 내내 제작진의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약 200km. 국립공원 규정상 밤에는 일체 촬영이 금지되므로 해가 뜨고 질 때까지 평균 14시간 동안 ‘징하게’ 초원을 누빈 셈이다.
하루 2백km씩 강행군하고 스태프들 배 곯린 게 가장 미안해
아프리카 초원은 야생동물의 천국일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스태프들은 카메라에 잡힌 동물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랴, 몰려드는 체체파리떼를 쫓아내랴 항상 눈과 손이 바빴다. 차에서 내릴 수 없다는 국립공원의 규칙상 용변도 ‘적당히’ 해결해야 했다.
“물리면 10초 안에 사망한다는 그린 스네이크라는 뱀 때문에 차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요. 허리까지 오는 풀숲에서 언제 그린 스네이크가 덮칠지 모르니까요. 한번은 새를 가까이서 촬영하려고 차에서 슬쩍 내려온 적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부리나케 달려온 공원측 감시단한테 ‘먼 나라까지 자살하러 왔냐’며 호되게 야단맞고 쫓겨났어요.”
설은 음식 때문에 스태프들은 돌아가며 배탈, 설사를 했지만 나중에는 무섭다는 말라리아도 감기쯤으로 우습게 여길 정도로 현지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그가 지금도 마음에 걸려 하는 점은 항상 스태프들의 배를 곯게 했다는 것. 새벽 5시부터 해질 때까지 점심 도시락 하나로 버텨야 했으니 그 배고픔이 오죽했을까.
“아침식사 이전에 숙소를 나와야 하니까 점심 도시락만 챙겨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도시락이라고 해야 삶은 계란, 파인애플, 카스텔라 빵, 소시지 하나가 전부인데 그것으로 장정들이 하루 종일 버티기엔 무리죠. 그때 스태프들의 유일한 낙이 저녁식사였어요. 매일 똑같은 메뉴가 나와도 질리는 줄 모르고 먹었죠. 덕분에 아프리카에 다녀오면 5kg은 자동으로 빠졌어요.”
2차 촬영 도중에 그는 2년간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3차 촬영에 다시 합류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MBC 자연 다큐멘터리  총사령탑 최삼규 PD

최PD는 올해 1월 중순 다시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이번엔 치타와 초식동물을 다큐멘터리로 다룰 예정이라고.


84년 MBC에 입사한 최삼규 PD는 시사프로그램 으로 방송에 데뷔했다. 그후 <곤충의 사랑>으로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입문해 지난 10년 동안 <황새> <양수리의 봄> <팔색조의 여덟 가지 비밀> 등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낸 베테랑급 연출자.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할 때 열심히 고발해봤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더라고요. 한창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때 저에게 떨어진 과제가 <곤충의 사랑>이었어요. 환경문제를 파헤치는 것보다 자연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 시작했죠. 자연을 좋아하면 적어도 파괴할 생각은 못할 테니까.”
그가 처음 세렝게티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7년 전. <어미새의 사랑> 촬영중 그는 더 넒은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야생동물을 찍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후 회사측에 수없이 기획안을 제출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꾸준히 아프리카행을 타진해온 끝에 꿈을 이루게 된 것. 덕분에 방송국에서 그의 별명은 ‘돌쇠’. 우직하게 한 가지밖에 모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의 연출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95년 뻐꾸기의 생태를 담아낸 <어미새의 사랑>. 당시 한 뻐꾸기 시계 제조회사 사장이 찾아와 방송 때문에 뻐꾸기 시계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해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촬영중 그가 뻐꾸기를 찾기 위해 전국으로 돌아다닌 거리는 약 3만km. 지구 한 바퀴가 4만km이니 지구둘레의 75%를 돈 셈이다.
그는 올 1월 중순 다시 아프리카행 배낭을 꾸릴 예정이다. 아프리카의 1월은 각종 초식동물의 번식기가 시작되는 우기로, 그는 치타와 초식동물의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계획이다.
“하루도 안 빠지고 초원으로 나가는 우리팀을 보고 아프리카 현지 관계자들이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그래서 25년 된 BBC사를 한국이 얼마 정도면 따라잡을 수 있겠냐고 슬쩍 물었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5년이면 될 것이라는 대답이 왠지 듣기 싫지 않더라고요(웃음).”
그에 따르면 1월중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가 재방영된다고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라는 그가 네번째 아프리카 여행에서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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