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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생각해 봅시다

노인의 성문제 주제로 박사학위 받은 산림조합장 김광태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장다혜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2. 11. 15

최근 노인들의 성문제를 다룬 영화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대전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노인들의 성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충북 보은군 산림조합장 김광태씨. 노인들의 성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는 유교문화와 관습이 주범으로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노인들의 성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주장하는 그가 말하는 우리 시대 노인들의 성.

노인의 성문제 주제로 박사학위 받은 산림조합장 김광태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노인들의 성생활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있다. 충북 보은군 산림조합장 김광태씨(59)가 바로 그 주인공. 96년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실버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올해 같은 대학에서 ‘노인의 성생활에 대한 사회집단간의 지식과 태도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 그동안 언급하기를 꺼려해 온 노인의 성문제를 다룬 것은 김조합장의 논문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조합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시도되지 않은 노인의 성생활에 대한 지식과 태도의 수준을 60~75세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성에 대한 노인들의 욕구와 열의가 생각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45%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
“대학생이나 중년층을 상대로 조사도 했지만 오히려 노인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성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왠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노인들의 욕구는 젊은 사람 못지 않지만 사회인식이 노인들의 성에 대해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70대 노인들의 성문제를 다뤄 화제가 되었던 영화 <죽어도 좋아>는 ‘성기의 노출 및 구강성교의 직접적 묘사’ 때문에 현재 ‘제한상영가’로 판정되어 실질적으로 대중에게 선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영화와 관련해 김조합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저도 그 영화를 봤지만 이상한 장면이 아닙니다. 젊은층에서는 노인들의 그런 모습이 상당히 민망하다는 시각이 있지만 제가 그동안 논문을 쓰기 위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화의 장면이 노인들의 성생활을 가감없이 아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더군요. 흔히 잘못된 사회인식 중의 하나가 노인은 성생활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생긴다고 여기고 쾌감을 못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성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노인들이 오히려 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노인들은 성생활이 위축되며 어쩔 수 없이 부정적 견해를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가 없는 이상 성생활은 연령에 제한이 없으며 자연스러운 성생활은 골다공증 예방이나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김조합장의 생각이다.
“성생활을 하게 되면 의학적으로 엔돌핀이 생성되면서 면역성도 좋아지고 남성의 경우 고환이나 음경의 퇴화를 방지해준다고 알고 있거든요. 논문을 계기로 노인들에게 질문한 결과 일흔에 가까운 노인들도 55%는 지속적으로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합디다. 그것도 젊은 사람 못지 않은 횟수로 성생활을 한다고 하더군요.”
원래 국어교사가 꿈이었지만 가난했던 탓에 대학진학을 뒤로 미룬 채 결혼을 한 후에야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김조합장이 노인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노인이 자신의 미래 모습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늙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도 80세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만 노모를 바라보면서, 또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노년을 잘 지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문제는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엔 노인들의 성문제를 다뤘지만 그보다 먼저 얘기되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김조합장이 그동안 눈여겨보아 온 노인들의 생활실상은 10명 중 4명이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 생계가 막연한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성생활 면에서도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양로원과 요양시설에서 살고있는 노인들의 경우 일반 가정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에 비하면 성적욕망은 비슷한 양상이면서도 성생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갈수록 노년층이 늘어가면서 노인들의 부양문제나 경제적 문제 그리고 건강과 역할상실 등의 문제는 꾸준히 논의돼 왔지만 노인들의 성문제는 소외돼 온 것이 사실입니다. 성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리적인 현상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으로 앞으로 노인들의 성문제는 노인복지 등의 제반 문제와 대등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노인의 성생활과 관련해 사별한 노인들의 경우 성 파트너 부재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후 노인들은 성적욕구는 그대로 남아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성에 대한 문제는 아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제의식으로 살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들 역시 노인들에게는 그 어떤 성적욕망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노년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시각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한 70세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새 삶을 꾸리겠다고 아들한테 말했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 연세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집에서 편히 손자나 보고 있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노인의 성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김조합장은 논문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성생활을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태도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프로그램의 필요성은 물론 앞으로 노인복지시설이나 의료시설에 근무할 가능성이 높은 간호학과나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 대한 노인의 성생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갖는 호기심의 원동력이며 호기심이야말로 모든 지적 행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리라고 생각해 모른 체하며 넘어가는 것은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인간의 기본 욕망 중 하나가 성에 대한 욕구이며 이런 욕구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년의 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고 노인들도 자연스럽게 이성 교제를 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합니다.”
현재 배재대학교 사회과학부 행정학과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는 김조합장은 앞으로 중국의 고서를 이번 논문과 심도 있게 비교 연구해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로 보는 노인들의 성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또한 자신의 논문이 노인의 성생활을 이해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궁극적으로 노인문제연구소를 설립해 황혼인생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복지와 에너지 충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포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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