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박정자(61). 인생이 4막 5장의 연극이라면 그는 이제 4막 1장쯤 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환갑을 맞이한 이 대배우는 62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재학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해 손짓 하나 대사 한마디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며, 총 1백5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는 놀라운 필모그라피(filmography)를 완성하고 있다.
연극무대에만 매달려 달려온 지 40년. 그는 박정자의 연극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가는 열혈 팬을 2백30여명이나 둔 행복한 배우가 되어 있다. 세상에 잘 알려진 ‘꽃봉지회’ 회원은 지금의 그를 누구보다 든든하게 받쳐주는 대들보와도 같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움쭉달싹 못하게 장악하는 그가 무대 밖으로만 나오면 ‘셈도 잘 못하는’ 어리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의 키는 생각보다 작고, 피부는 아기같이 환하고 매끄러우며,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낮아서, 집중해야 잘 들릴 정도다.
환갑을 맞아 두권의 책을 선보이는 그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93년의 에세이집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와 달리 그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동문학가 최자영씨가 쓴 배우 박정자 이야기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는 연극평론가 김미도씨(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평전이다. 두권 모두 ‘배우 인생 40년 인생 60년’인 그에게 바치는 헌정사다. 나아가 그는 또 하나의 ‘반란’을 일으킨다. 10월 22일부터 나흘간 강남의 카페 살롱 드 플로라에서 여는 <소 왓 So What?>이란 이름의 작은 무대. 연극 <억척어멈>이나 <11월의 왈츠>에서 보여준 ‘화끈한 노래 솜씨’를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작은 음악회’다. 그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박정자는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환갑을 맞은 소회와 연극이야기, 그리고 배우 아닌 ‘인간 박정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수다떨듯이 털어 놓았다.
생물학적 나이 올해, 예순 맞아. 남들은 어떠냐고들 물어보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남들이 볼 때 어머, 저 여자가 벌써 환갑이 됐네 하는 거지, 나는 실제 내 나이를 의식해본 일이 없으니 모르겠어. 물론 나이 드니까 자유로운 건 있어. 그렇지만 자유에는 항상 그 반대의 것, 딱 그만큼 분량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는 법이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연극인생 40년 내가 예순된 걸 기사화하는 건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연기인생 40년’이라는 타이틀은 정말 촌스러운 거 같아. 하긴 내가 연극을 시작한 게 62년, 이화여대 2학년 문리대 연극반 시절이니까 따지고 보면 올해로 꼭 40년은 40년이 되지. 그때 <페드라>에서 열여섯 마디 대사를 하던 하녀 역할이 내 연극인생의 시작이었다고. 그런데 40년이 뭐 대수겠어. 죽는 날까지 난 무대에 설 것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로 살 것인데.
<연극배우 박정자>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 책 두권에 대하여 내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직접 쓰는 것만큼 겁이 나. 왜냐면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책이니까. 한 권은 심지어 제목이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야. 글을 안 썼을 뿐이지 그 책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하고 자료 모은 거 정리하고 건네주고… 참 바빴어. 책 만들 때도 사진은 이거 넣자, 레이아웃은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도 출판사나 저자인 연극배우 김미도씨가 너무너무 잘해줬어. 평전이라고 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아. 내가 딱딱한 거 싫다고 그랬어. 연극평론가 구희서, 연출가 한태숙, 배우 윤석화가 본 배우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연극인으로 살아온 내 소박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야. 이 책 사이사이에 내 딸 연수(애니메이션 전공)가 내 캐릭터를 그려넣었어.
책 만들며 기억나는 일김미도씨가 내 책을 기획하던 단계에 아기를 가졌어. 지금 만삭이야. 말하자면 이중의 산고를 겪은 거지. 그걸 담아낸 머리말이 참 예뻐. ‘내 아이가 (박정자와) 같은 말띠인데 박정자의 열정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썼거든. 너무 고마워.
<소 왓 So what?>은 어떤 무대 아유, 뮤직 콘서트는 무슨… 난 그냥 노래하는 거야. 난 콘서트라는 말 안써.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가 싫어지니까. 정말 말을 줄이며 살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이 가을을 그냥 넘기기가 섭섭해서야. 내가 노래하길 즐기고, 내 노래 듣기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은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만든 거지. 제목이 왜 <소 왓 So what?>이냐고? 박정자가 노래하는 데 누가 뭐랄 거야? 뭐 어때? 소 왓?(웃음) 그런 뜻이야. 난 그렇게 심플하게 살고 싶거든. 레퍼토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추억>이나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 같은 영어로 부르는 재즈넘버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총 15곡을 준비했지.
음, 무대의상은 늘 그렇듯 디자이너 친구 지춘희 걸 입고.
내가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까닭 왜 하필 작은 공간에서 노래하냐고? 난 60명이면 꽉 차는 게 좋아. 큰 건 질색이야. 관객들의 눈동자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게 행복해. 사실 내가 살롱 드 플로라에서 노래하는 건 ‘공연장’ 하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이미지가 있잖아. 그걸 깨고 싶어서야. 일종의 살롱문화를 리드해가고 싶은 욕심 같은 거지. 청담동 뒷골목, 이런 조그만 살롱에서 노래가 울려퍼지는 거 아름답지 않아? 난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 거긴 나는 나, 너는 너거든.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게 얼마나 벅차겠어. 그래서 나, 박정자는 이 작은 곳에서 노래해.
나와 윤석화 예나 지금이나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라이벌 하면 윤석화라고 대답해. 후배의 선은 이미 넘어선 거 같고, 동료이자 라이벌이지. 지금도 윤석화의 포스터가 걸리면 난 긴장해. 아마 석화도 그럴 거야. 이번 책 출간기념회를 석화가 차린 극장 <정미소>에서 하는데, 그건 <정미소>를 홍보하고 싶어서 그랬어. 우린 정말 친자매 같아. 난 석화의 무대로 향한, 끓어넘치는 그 정열을 사랑해. 어떨 땐 나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아서 때로 딱하기도 하고, 저렇게 주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웃기도 해.
여자로서의 사치 난 평소 화장을 안해. 로션이나 영양크림 바르고 립스틱 하나면 끝이야. 그러니 비싼 화장품도 없고 보석도 없어. 가져본 일도 없고 가질 생각도 없어, 그러고 보니 나를 꾸미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해. 여자로서의 사치라면…, 난 좋은 가방하고 구두를 좋아해. 옷은 싼 옷도 괜찮지만, 구두하고 핸드백만큼은 좋은 걸 들고 싶어. 구두는 한 서른 켤레 되나? 그렇다고 꼭 명품을 산다는 건 아니야. 그런 집착은 없어. 연극배우로서 난 늘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돈도 없고.
여가 시간, 그리고 낭만에 대하여 작년에 결성된 ‘낭만파클럽’은 한국적인 정에 입각한 멋과 낭만을 누리자는 모임이야. 나도 회원인데, 얼마전엔 ‘여가문화학회’라는 게 또 발족했어. 다 연결되는 거지. 결국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 그에 관한 정보가 있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만 그걸 누리는 거지.
얼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약속이 있어서 그 근처 <가을>이라는 데를 갔어. 어머, 거기는 세상에~ 손님들이 막 기타 치고 노래하고 하는데 60, 70년대가 그대로 있는 거야. 난 맨 처음에는 회사원들이 거길 빌려서 단체 회식을 하는 줄만 알았어. 그런데 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끼리 같이 노래하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 거야. 중간에 누가 색소폰을 부는데, 그만 눈물이 팡팡 나잖아.
그렇지만, 난 사실…. 여가가 두려워. 빈 시간을 겁내. 늘 연습 아니면 공연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봐. 말하자면 중독돼 있는 거지. 거기서 조금 놓여 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야. 마치 둥지를 잃은 새처럼.
매력적인 남자 나, 그 남자 좋아해. 제레미 아이언스. 영화 <데미지>를 보고 나서 너무너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어. 그 남자가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어도 난 괜찮아. 영화에서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바람에 아들이 죽었잖아. 그래도 그 남자가 좋아. 그건 못 말리는 거야. 난 그런 사랑이 온다 해도 안 두려워. 내가 살만큼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결코 안 두려워.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의 경험을 갖잖아. 난 사랑을 할 때마다 여기서 딱 끝나도 좋아, 하는 마음이 될 때가 많아. 예를 들어 아주 비싼 구두를 신고 나간 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면, 그날 저녁 구두굽이 부러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 그게 내겐 사랑이야. 그런데 이런 매력적인 남자가 한국 남자 중에는 없어. 결코 없어.
나와 우리딸 딸아이의 결혼? 벌써 스물아홉인데 꿈쩍도 안해. 사실 결혼이야 꼭 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런데 사랑하고 결혼은 다르잖아. 난 그 나이 때 남자친구가 몇이나 있었는지 몰라. 그런데 우리 딸은 남자친구가 하나도 없어. 그럴 때마다 속상해. 우리딸이 얼마나 매력 있는데, 바보들이 우리딸하고 연애도 못해~. 걔는 겉으로는 안 아쉽다고 그래. 하지만 속으론 모르지. 사랑의 감정은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거야. 그런 만남을 통해 본인이 더 성숙해질 수 있는데, 그래서 나는 정말 속상해. 그것만 빼면 우린 친구 같아. 서로 존중하고 간섭 안하고. 이번 작업 같이 하면서 잔소리 같은 거 한번도 안했어.
피부와 몸매관리 피부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야. 세수할 땐 샤워 타월에 아무 비누나 묻혀 얼굴을 북북 닦아. 얼굴에 아무것도 안 남도록. 그러고 푹 자면 얼굴에 트러블 하나 없어. 아무리 분장용 화장을 덕지덕지 해도 괜찮아. 복이지. 몸매관리? 난 아무것도 안해. 운동도 안하고, 헬스도 안하고 골프도 물론 안해. 그래도 몸이 이 정도 되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 난 말이야. 정말 골프 치는 사람 미워해. 그거 한번 나가는데 30만원이 든대. 사람들이 골프 치는 것만큼 연극 공연장에 몰려온다면 난 정말로 행복하겠어. 친구들 중에도 하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친구들이 골프 얘기만 꺼내면 그래. “니들 다 부르주아야!” 왜 다들 육체적 건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이 얘기하는 바람에 나 싫어하는 사람 많아지는 거 아니야?
요즘 나의 관심사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해. 다른 건 잘 모르니까 일단 쓰레기 분리만큼은 정말 열심히 해. 얼마전에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의 ‘환경소송센터 명예대사’가 됐는데, 내가 그랬어. 환경에 관한 문제라면 얼마든지 나를 써달라고.
그래서 난 머리도 매일 매일 안 감아. 이틀에 한번 감고, 외출 안하는 경우는 사흘에 한번도 감아. 샴푸나 물도 아껴야 하니까. 에어컨이나 히터도 웬만하면 안 틀어. 내가 그래선지 우리딸도 화장 지우는 티슈를 한장 통째로 안 쓰고 반으로 잘라 써. 난 이런 작은 노력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앞으로의 계획 내년 1월 중순 윤석화의 <정미소>에서 예전에 김혜자씨가 했던 <19 그리고 80>을 할 거야. 박정자가 팔순의 할머니가 되는 거지. 장두이씨가 연출을 맡았고, 내가 제작도 겸하고, 아직 상대역은 찾지 못했어. 그래도 <19 그리고 80> 생각만 하면 좋은 의미에서 긴장이 되고, 기쁘고 그래. 정말 잘해야지.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고 싶어. 흥을 주고 감동을 주고 싶어.
행복한가 아니, 안 그래. 초조하기도 하고 뭔진 모르겠어. 어쩌면 연습도 공연도 안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이래서, 내 팔자는 구속당해야만 행복한가봐. 늘 자유를 얘기하면서도 이게 딜레마야.
연극무대에만 매달려 달려온 지 40년. 그는 박정자의 연극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가는 열혈 팬을 2백30여명이나 둔 행복한 배우가 되어 있다. 세상에 잘 알려진 ‘꽃봉지회’ 회원은 지금의 그를 누구보다 든든하게 받쳐주는 대들보와도 같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움쭉달싹 못하게 장악하는 그가 무대 밖으로만 나오면 ‘셈도 잘 못하는’ 어리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의 키는 생각보다 작고, 피부는 아기같이 환하고 매끄러우며,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낮아서, 집중해야 잘 들릴 정도다.
환갑을 맞아 두권의 책을 선보이는 그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93년의 에세이집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와 달리 그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동문학가 최자영씨가 쓴 배우 박정자 이야기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는 연극평론가 김미도씨(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평전이다. 두권 모두 ‘배우 인생 40년 인생 60년’인 그에게 바치는 헌정사다. 나아가 그는 또 하나의 ‘반란’을 일으킨다. 10월 22일부터 나흘간 강남의 카페 살롱 드 플로라에서 여는 <소 왓 So What?>이란 이름의 작은 무대. 연극 <억척어멈>이나 <11월의 왈츠>에서 보여준 ‘화끈한 노래 솜씨’를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작은 음악회’다. 그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박정자는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환갑을 맞은 소회와 연극이야기, 그리고 배우 아닌 ‘인간 박정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수다떨듯이 털어 놓았다.
생물학적 나이 올해, 예순 맞아. 남들은 어떠냐고들 물어보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남들이 볼 때 어머, 저 여자가 벌써 환갑이 됐네 하는 거지, 나는 실제 내 나이를 의식해본 일이 없으니 모르겠어. 물론 나이 드니까 자유로운 건 있어. 그렇지만 자유에는 항상 그 반대의 것, 딱 그만큼 분량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는 법이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연극인생 40년 내가 예순된 걸 기사화하는 건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연기인생 40년’이라는 타이틀은 정말 촌스러운 거 같아. 하긴 내가 연극을 시작한 게 62년, 이화여대 2학년 문리대 연극반 시절이니까 따지고 보면 올해로 꼭 40년은 40년이 되지. 그때 <페드라>에서 열여섯 마디 대사를 하던 하녀 역할이 내 연극인생의 시작이었다고. 그런데 40년이 뭐 대수겠어. 죽는 날까지 난 무대에 설 것이고 연극배우 박정자로 살 것인데.
<연극배우 박정자>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 책 두권에 대하여 내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직접 쓰는 것만큼 겁이 나. 왜냐면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책이니까. 한 권은 심지어 제목이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야. 글을 안 썼을 뿐이지 그 책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하고 자료 모은 거 정리하고 건네주고… 참 바빴어. 책 만들 때도 사진은 이거 넣자, 레이아웃은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도 출판사나 저자인 연극배우 김미도씨가 너무너무 잘해줬어. 평전이라고 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아. 내가 딱딱한 거 싫다고 그랬어. 연극평론가 구희서, 연출가 한태숙, 배우 윤석화가 본 배우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연극인으로 살아온 내 소박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야. 이 책 사이사이에 내 딸 연수(애니메이션 전공)가 내 캐릭터를 그려넣었어.
책 만들며 기억나는 일김미도씨가 내 책을 기획하던 단계에 아기를 가졌어. 지금 만삭이야. 말하자면 이중의 산고를 겪은 거지. 그걸 담아낸 머리말이 참 예뻐. ‘내 아이가 (박정자와) 같은 말띠인데 박정자의 열정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썼거든. 너무 고마워.
<소 왓 So what?>은 어떤 무대 아유, 뮤직 콘서트는 무슨… 난 그냥 노래하는 거야. 난 콘서트라는 말 안써.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가 싫어지니까. 정말 말을 줄이며 살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이 가을을 그냥 넘기기가 섭섭해서야. 내가 노래하길 즐기고, 내 노래 듣기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은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만든 거지. 제목이 왜 <소 왓 So what?>이냐고? 박정자가 노래하는 데 누가 뭐랄 거야? 뭐 어때? 소 왓?(웃음) 그런 뜻이야. 난 그렇게 심플하게 살고 싶거든. 레퍼토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추억>이나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 같은 영어로 부르는 재즈넘버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총 15곡을 준비했지.
음, 무대의상은 늘 그렇듯 디자이너 친구 지춘희 걸 입고.
내가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까닭 왜 하필 작은 공간에서 노래하냐고? 난 60명이면 꽉 차는 게 좋아. 큰 건 질색이야. 관객들의 눈동자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게 행복해. 사실 내가 살롱 드 플로라에서 노래하는 건 ‘공연장’ 하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이미지가 있잖아. 그걸 깨고 싶어서야. 일종의 살롱문화를 리드해가고 싶은 욕심 같은 거지. 청담동 뒷골목, 이런 조그만 살롱에서 노래가 울려퍼지는 거 아름답지 않아? 난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 거긴 나는 나, 너는 너거든.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게 얼마나 벅차겠어. 그래서 나, 박정자는 이 작은 곳에서 노래해.
최초의 소극장<페아트르>앞에서 젊은날의 박정자. 옆은 배우 구문회.
여자로서의 사치 난 평소 화장을 안해. 로션이나 영양크림 바르고 립스틱 하나면 끝이야. 그러니 비싼 화장품도 없고 보석도 없어. 가져본 일도 없고 가질 생각도 없어, 그러고 보니 나를 꾸미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해. 여자로서의 사치라면…, 난 좋은 가방하고 구두를 좋아해. 옷은 싼 옷도 괜찮지만, 구두하고 핸드백만큼은 좋은 걸 들고 싶어. 구두는 한 서른 켤레 되나? 그렇다고 꼭 명품을 산다는 건 아니야. 그런 집착은 없어. 연극배우로서 난 늘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돈도 없고.
여가 시간, 그리고 낭만에 대하여 작년에 결성된 ‘낭만파클럽’은 한국적인 정에 입각한 멋과 낭만을 누리자는 모임이야. 나도 회원인데, 얼마전엔 ‘여가문화학회’라는 게 또 발족했어. 다 연결되는 거지. 결국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 그에 관한 정보가 있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만 그걸 누리는 거지.
얼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약속이 있어서 그 근처 <가을>이라는 데를 갔어. 어머, 거기는 세상에~ 손님들이 막 기타 치고 노래하고 하는데 60, 70년대가 그대로 있는 거야. 난 맨 처음에는 회사원들이 거길 빌려서 단체 회식을 하는 줄만 알았어. 그런데 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끼리 같이 노래하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 거야. 중간에 누가 색소폰을 부는데, 그만 눈물이 팡팡 나잖아.
그렇지만, 난 사실…. 여가가 두려워. 빈 시간을 겁내. 늘 연습 아니면 공연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봐. 말하자면 중독돼 있는 거지. 거기서 조금 놓여 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야. 마치 둥지를 잃은 새처럼.
매력적인 남자 나, 그 남자 좋아해. 제레미 아이언스. 영화 <데미지>를 보고 나서 너무너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어. 그 남자가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어도 난 괜찮아. 영화에서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바람에 아들이 죽었잖아. 그래도 그 남자가 좋아. 그건 못 말리는 거야. 난 그런 사랑이 온다 해도 안 두려워. 내가 살만큼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결코 안 두려워.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의 경험을 갖잖아. 난 사랑을 할 때마다 여기서 딱 끝나도 좋아, 하는 마음이 될 때가 많아. 예를 들어 아주 비싼 구두를 신고 나간 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면, 그날 저녁 구두굽이 부러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 그게 내겐 사랑이야. 그런데 이런 매력적인 남자가 한국 남자 중에는 없어. 결코 없어.
나와 우리딸 딸아이의 결혼? 벌써 스물아홉인데 꿈쩍도 안해. 사실 결혼이야 꼭 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런데 사랑하고 결혼은 다르잖아. 난 그 나이 때 남자친구가 몇이나 있었는지 몰라. 그런데 우리 딸은 남자친구가 하나도 없어. 그럴 때마다 속상해. 우리딸이 얼마나 매력 있는데, 바보들이 우리딸하고 연애도 못해~. 걔는 겉으로는 안 아쉽다고 그래. 하지만 속으론 모르지. 사랑의 감정은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거야. 그런 만남을 통해 본인이 더 성숙해질 수 있는데, 그래서 나는 정말 속상해. 그것만 빼면 우린 친구 같아. 서로 존중하고 간섭 안하고. 이번 작업 같이 하면서 잔소리 같은 거 한번도 안했어.
피부와 몸매관리 피부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야. 세수할 땐 샤워 타월에 아무 비누나 묻혀 얼굴을 북북 닦아. 얼굴에 아무것도 안 남도록. 그러고 푹 자면 얼굴에 트러블 하나 없어. 아무리 분장용 화장을 덕지덕지 해도 괜찮아. 복이지. 몸매관리? 난 아무것도 안해. 운동도 안하고, 헬스도 안하고 골프도 물론 안해. 그래도 몸이 이 정도 되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 난 말이야. 정말 골프 치는 사람 미워해. 그거 한번 나가는데 30만원이 든대. 사람들이 골프 치는 것만큼 연극 공연장에 몰려온다면 난 정말로 행복하겠어. 친구들 중에도 하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친구들이 골프 얘기만 꺼내면 그래. “니들 다 부르주아야!” 왜 다들 육체적 건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이 얘기하는 바람에 나 싫어하는 사람 많아지는 거 아니야?
요즘 나의 관심사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해. 다른 건 잘 모르니까 일단 쓰레기 분리만큼은 정말 열심히 해. 얼마전에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의 ‘환경소송센터 명예대사’가 됐는데, 내가 그랬어. 환경에 관한 문제라면 얼마든지 나를 써달라고.
그래서 난 머리도 매일 매일 안 감아. 이틀에 한번 감고, 외출 안하는 경우는 사흘에 한번도 감아. 샴푸나 물도 아껴야 하니까. 에어컨이나 히터도 웬만하면 안 틀어. 내가 그래선지 우리딸도 화장 지우는 티슈를 한장 통째로 안 쓰고 반으로 잘라 써. 난 이런 작은 노력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앞으로의 계획 내년 1월 중순 윤석화의 <정미소>에서 예전에 김혜자씨가 했던 <19 그리고 80>을 할 거야. 박정자가 팔순의 할머니가 되는 거지. 장두이씨가 연출을 맡았고, 내가 제작도 겸하고, 아직 상대역은 찾지 못했어. 그래도 <19 그리고 80> 생각만 하면 좋은 의미에서 긴장이 되고, 기쁘고 그래. 정말 잘해야지.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고 싶어. 흥을 주고 감동을 주고 싶어.
행복한가 아니, 안 그래. 초조하기도 하고 뭔진 모르겠어. 어쩌면 연습도 공연도 안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이래서, 내 팔자는 구속당해야만 행복한가봐. 늘 자유를 얘기하면서도 이게 딜레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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