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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신랄하게 풍자한 책 펴내 화제 모으는 장덕균

“실제 후보들이 풍자집에 나온 정도의 위트만 있어도 우리 정치판은 달라질 겁니다”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2002. 10. 08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등 대권후보 세명을 소재로 한 정치풍자집이 나와 눈길을 끈다. 93년 로 화제를 모았던 개그작가 장덕균씨가 펴낸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가 바로 그것. 장씨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좀더 따뜻한 눈길로 정치인들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장씨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집필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 & 풍자집에 실린 후보별 조크의 백미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신랄하게 풍자한 책 펴내 화제 모으는 장덕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민주당 노무현 후보, 무소속 정몽준 후보 등 대선 유력 후보 세명을 신랄하게 풍자한 정치풍자집이 나와 눈길을 끈다.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가 바로 그것. 작가는 KBS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을 집필하며 정치 코미디의 문을 열었고, 93년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현직에 있던 김영삼 대통령을 풍자한 책 를 펴내 화제를 모았던 개그작가 장덕균씨(37). 현재 KBS <개그 콘서트>의 작가로 활동중인 그는 세간에 떠도는 유머에 맞춰 세 사람의 캐릭터를 절묘하게 묘사해냈다.
“세 후보의 색깔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으면서도 서민 흉내를 내는 이회창, 서민의 대변인이라지만 서민들도 쓰지 않는 비속어를 남발하는 노무현, 필연적으로 아버지 정주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부잣집 아들 정몽준의 이미지들을 극대화해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또 어느 한쪽도 편들지 않고 세명 모두 공평하게 씹으려고(웃음) 노력했어요.”
그의 말대로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에서는 빌라파동, 원정출산, 병역문제 등 이회창 후보 가족의 구설수들을 비꼰 콩트들이 주로 나오고,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투박하고 거친 말투로 구설수에 올랐던 에피소드들을 한번 더 비틀어 표현했다.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에서는 정몽준 후보가 아버지 고(故) 정주영 회장의 ‘파파보이’로 등장하는 내용과 축구 관련 에피소드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또 주목을 끄는 점은 외국의 풍자집들처럼 성적 표현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
장씨가 대선 후보들을 풍자한 책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1년여 전. 하지만 당시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방송을 통해 정치풍자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방송 현실 때문에 출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국민들은 정치 풍자를 무척 원하고 있어요. 요즘 풍자할 만한 소재가 넘치잖아요. 대통령의 아들이 둘이나 감옥에 갔으니까. 사실 제가 했던 프로그램 중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사람들은 정치권의 압력이 예전보다 덜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또 방송사에서 ‘알아서’ 정치권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사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김현철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했다가,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저는 한동안 절에 있었던 적도 있어요(웃음).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현실이죠.”
처음 구상 당시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후보들은 대략 10명 정도였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으로 대상을 좁힌 것은 올해 초 민주당 국민경선과 월드컵이 끝나면서였다. 풍자 대상에 오르지 못한 다른 후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들 세명으로 대세가 굳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풍자집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세명의 대권 후보들을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신 지난 5월부터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집안에 틀어박혀 집필에 몰두했다고. 그렇다면 장덕균씨는 언제부터 정치 풍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걸까.

“정치 풍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80년대 초였죠. 그때 <두환이는 골 때려>라는 책을 냈다고 생각해봐요. 어느 순간 변사체로 발견됐을지도 모르죠(웃음). 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면서 이제는 풍자집을 낼 때가 됐구나 생각하고 낸 거예요. 그렇게 강조하는 ‘문민정부’에서 작가가 대통령을 한번 풍자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죠. 실제로도 상당한 히트를 쳤고요.”
하지만 그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성숙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대통령과 칼국수 한 그릇이라도 같이 먹으며 풍자집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게 될 줄 알았는데, 청와대측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 특히 지난 98년 풍자집 <벌거벗은 클린턴>을 냈을 때 클린턴 전 미대통령의 반응과 비교하니 그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벌거벗은 클린턴>을 낸 후 책을 영문편지와 함께 백악관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한달 정도 지난 후 백악관으로부터 ‘당신의 사려 깊은 선물에 감사한다’는 답장이 왔더라고요. 빌 클린턴의 사인이 담겨 있었고요.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요? 이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치인들의 조크를 바라보는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이와 같은 맥락으로 장씨는 세 후보들의 취약점을 비웃기 위해 이번 풍자집을 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쩌다 하나 잡은 약점으로 사생결단을 하듯 서로를 공격하고 정당이 마치 흥신소처럼 되어버린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자신의 책을 보고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려는 마음에서 펴낸 것이라고. 또 웃음과 여유, 위트가 있는 정치인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제게 웃음을 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웃음을 준 적이 있었나요? 저는 실제 후보들이 풍자집에 나온 정도의 위트만 있어도 우리 정치판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정치가 아닌 여유와 위트가 넘치는 정치를 하는 데 이 책이 초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후보가 있냐고 넌지시 물었지만 그는 “풍자를 하려면 그 인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로 답변을 피했다. 대신 그는 풍자집 각 권의 판매량을 보면 올 대선결과를 점쳐볼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판매량은 그 후보에 대한 선호도를 의미하고 이는 곧 유권자들의 뜻이라는 것. 그리고 그는 기회가 된다면 책의 내용에 대해 각 후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호탕하게 웃으며 책의 내용을 즐기는 후보야말로 정말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그 또한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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