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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물 & 화제 │ 이렇게 키웠어요

‘사법고시 준비하는 열네살 영재 ’김겸 어머니가 공개하는 교육법

“뭔가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흥미를 갖도록 기회를 주세요”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이현희 ■ 사진·지재만 기자

2002. 10. 08

‘최연소 대입 검정고시 합격’ ‘사법고시 준비중인 14세 영재’. 언론에서 화제가 된 김겸군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 이룬 게 없으니 할 얘기가 없다”는 김군이나 “우리 아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다. 괜한 일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 김영재씨의 거절이 완강했던 탓이다. 그러나 여러 번의 설득 끝에 만난 어머니 김씨의 교육법은 역시 남달랐다.

‘사법고시 준비하는 열네살 영재 ’김겸 어머니가 공개하는 교육법

월드컵 기간에 붉은 악마 복장을 하고 거리 응원에 나선 가족들.

김겸군의 집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경남 창원에 살던 이들은 현재 ‘이산가족’신세. 김군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바람에 아버지만 창원에 남고, 어머니 김영재씨(44)와 누나 김아름양(15)이 함께 서울에 왔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최연소 대학생’의 생활은 어떨까. 많게는 자기와 ‘띠동갑’뻘인 누나, 형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김군은 내년 3월에 있을 1차 사법고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 8시30분에 고시원으로 출발, 밤 11시가 다 돼야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 기자와 만나기로 한 날도 고시원에서 보강수업을 받느라 결국 자리를 같이할 수 없었다.
김군은 작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과 8월,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연달아 합격했다. 이후 서울디지털대학교 법무행정학부 수시 모집에 합격, 4년 전액 특별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장애인 변호사의 책을 읽고 법관 되기를 꿈꿔
“전 부모는 자기 아이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적성에 맞는 걸 찾아주는 거죠. 겸이는 ‘법조인’이 되겠다며 남들보다 일찍 장래 직업을 정했고, 의지가 확고했어요.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입시 교육 위주의 학교에서 사시 준비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자칫하다간 왕따 당할 수도 있고요.”
김군이 법관을 꿈꾸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라고 한다. 장애인 변호사 강명훈씨가 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책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김군은 “판사나 검사가 된 후 장애인을 돕겠다”는 포부를 갖게 됐다.
어머니 김씨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학습속도가 남들보다 서너 배 이상 빨랐다고 한다. 한글을 깨친 건 생후 24개월 무렵. 그렇지만 김씨는 아이를 붙들고 앉아 직접 글자를 가르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가르친 적 없어요. 다만 방바닥이나 벽에 한글 낱말 카드를 붙여두고 아이가 한글을 늘 접할 수 있게 했을 뿐이지요.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음을 읽어주는 식이었는데, 겸이는 글자를 빨리 깨치더군요. 전 이런 식으로 했지, 한번도 주입식 교육을 해본 일이 없어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겸손해 했지만, 그가 보여준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그의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씨가 꾸몄다는 아이 방은 마치 작은 유치원처럼 보일 정도로 아기자기했다. 김씨가 혹시 교육학 전공자인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애 아빠가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하긴 했지만, 전 교육학을 공부 하진 않았어요. 그냥 오래 전부터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 좀 있어서 이것저것 보고 응용해서 만들어봤죠.”
그러나 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전공자 못지않게 김씨의 교육법이 남다르다는 것. 자율적이고도 열린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김군은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을 웬만큼 다룰 줄 알고 사물놀이에도 재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학원에는 다녀본 일이 없다. 어머니 김씨는 “아이가 호기심을 갖도록 이것저것 계기를 만들어준 게 주효했다”고 한다. 즉 아이가 배웠으면 하는 것들을 아이 눈에 보이도록 슬며시 갖다놓는 식이다. 아이가 그걸 갖고 놀든 말든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호기심을 드러내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곤 했다.
“뭔가 가르치려고 하면 애가 괜히 스트레스만 받아요. 그러니까 호기심이 생기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한 결과 겸이는 음악말고도 태권도, 테니스, 농구, 축구, 바둑까지 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요.”
독특한 것은 그가 아이에게 예습, 복습을 강요한 일이 없다는 점. 방과후 아들에게 “오늘 수업 다 이해했니?” 물어 보고 “네”하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걸로 끝이었다. 잔소리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다. 미리 공부를 다 해버리면, 아이가 실제 수업에 흥미를 못 가질까 봐서다. 그렇지만 방학 때는 사정이 달랐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탐구생활>에 등장하는 과학 실험만큼은 집에서 꼭 해보자고 제안했다. ‘직접 해보는 것’과 ‘그렇게 되겠구나 생각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라는 주장. 그래서인가. 김군의 어릴 적 사진에는 과학실험을 하는 모습이 유난히 많다.
또 김씨는 일찌감치 일기 쓰기를 권장했다. 그런데 이 일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기가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천자문을 뗀 김군이라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머니는 이틀은 한글로, 이틀은 영어로, 이틀은 고사성어로 일기를 쓰도록 제안했다. 물론 분량은 짧지만, 그건 언어능력을 골고루 신장하도록 만들었다. 김군이 대학생들도 골치 아파하는 두꺼운 민법이나 형법 책에 나오는 한자를 어려움 없이 줄줄 꿰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김씨의 교재 선택법도 남달랐다. 그는 교재를 선택할 때는 무엇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을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지적 발달 수준에 맞는 교재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러려면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김씨가 선정한 ‘최고의 교재’는 ‘EBS 교육방송.’ 남매가 모두 그걸로만 공부했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필요한 방송 프로그램을 미리 녹화해 뒀다가 방과 후에 보여주곤 했다. 김군의 방 한쪽엔 지금도 1백여개가 넘는 EBS 교육 방송 녹화 테이프가 날짜와 과목별로 정리돼 있다.
그는 또한 아이가 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면 일단 해보라고 한다. 선택권을 철저하게 아이에게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승인하거나 방임하지는 않는다. 가이드라인은 정해준다.
“사법고시에 도전하겠다는 것도 겸이가 결정한 거예요. 아이가 결정한 만큼 부모는 그 준비를 도와주어야죠. 일단 남편과 함께 아들이 고른 고시원으로 가서 함께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적성에 맞는가, 애가 흥미를 잃지는 않는가… 일주일을 지켜본 결과 계속하겠다길래 허락했죠.”
이처럼 모든 걸 아이의 자율에 맡기지만, 예외는 있다. 매주 토요일 온 가족이 서점에 가는 일만큼은 아이가 거역할 수 없다.
“겸이가 막 물건을 잡고 일어서던 때부터 시작해서 매주 토요일은 서점가는 날이에요. 그래서인지 겸이는 어려서부터 장난감 대신 책과 더 친했어요.”
김군이 특히 좋아하는 책은 역사소설이나 위인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하루에 한권 이상 꼬박꼬박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한번 책을 붙잡으면 몰두하는 성격이어서 “밥 먹으라”고 열번 이상을 불러도 듣지 못했다고. 그렇게 <논어> <명심보감> <사서삼경>을 초등학교 시절에 다 뗐다.
그러나 김씨는 아이가 공부만 아는 아이로 크지 않도록 신경썼다. 흔히 말하는 ‘전인교육’을 가정에서부터 실현한 것. 여행을 많이 다녀 견문을 넓혀주려고 애썼고, 무엇보다 봉사활동에 앞장서도록 종용했다. 김군이 보육원 봉사를 나가도록 한 것도 김씨다. 김군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생일이면 카드를 써 보냈다. 또 지난 월드컵 때는 온 가족이 ‘붉은악마’가 되어 길거리 응원을 나갔다. 사시공부를 시작한 시점이었지만, ‘직접 체험’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전 겸이가 늘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에게 우월감 갖지 않고 늘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어려서 청학동 예절학교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겸손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어떤 것이든 배우려는 자세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그 삶이 얼마나 넓고 풍부해지겠어요.”
이런 부모의 남다른 교육철학 때문인지 매사에 밝고 긍정적인 김군은 창원의 초등학교 친구들과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또 고시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형님’들과 밥도 먹고, 탁구도 치러 다닐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
한편, 김군의 누나 아름양도 작년 2월 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통과, 동생과 나란히 같은 대학 멀티미디어학부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 프로그래머로서의 꿈을 펼쳐가는 중이다.
김씨를 보노라면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만큼 그의 교육법은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것, 적성에 맞는 걸 찾도록 돕겠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그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해온 김씨의 교육법은 이 땅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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