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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새 장편소설 <트루스의 젖가슴> 펴낸 <마요네즈> 작가 전혜성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2002. 10. 08

97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 전혜성. 그의 새 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에는 지난 세월 ‘연극광’으로 살았던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학시절 연극에 반해 ‘연극판’에 머물기를 고집했던 그로부터 들어보는 연극과 소설 이야기.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에 눈뜨기 시작한 지난 세월의 고백.

5년만에 새 장편소설  펴낸  작가 전혜성
시집간 딸에게 얹혀살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철 없고 이기적인 엄마는 머리카락에 좋다는 이유로 마요네즈를 듬뿍 머리에 바른다. ‘엄마’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은 엄마와 이런 엄마가 버거운 한편 연민을 느끼는 딸이 심리적으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한다. 최진실, 김혜자 주연의 동명 영화와 이주실, 김정희 주연의 연극으로 만들어져 큰 화제를 모았던 <마요네즈>의 작가 전혜성씨(42)가 새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마요네즈>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것이 97년이니, 5년 만이다.
“<마요네즈>의 연극과 영화 대본 작업을 제가 직접 맡으면서 1년6개월 남짓한 시간을 거기에 매달렸어요. 그후로도 꾸준히 중단편을 써왔고 이번에 출간한 장편소설을 매만지다보니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댁들도 내 젖을 먹고 싶으시오?” 실존 흑인 여성운동가의 에피소드가 소설의 모티브
신인 작가에게 있어 두번째 작품은 ‘뜨거운 감자’와도 같다. 특히 데뷔작의 반향이 컸던 작가일수록 두번째 작품을 내놓고는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전작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 전작마저 평가절하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전씨의 경우 그런 우려는 버려도 좋을 듯싶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은 올해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을 정도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꼭 그 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탁월한 구성력과 필력은 그가 거둔 성공이 그저 ‘요행’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트루스의 젖가슴>은 실존했던 한 흑인여성의 삶을 다룬 희곡 ‘트루스의 젖가슴’을 무대에 올리려는 3명의 여인들의 이야기다. 30대 중반의 연출가 이실과 30대 후반의 기혼녀이자 극단 대표인 예국희, 왕년에 유명했던 50대 초반의 여배우 오데레사가 그들. 이들은 주인공 소저너 트루스(이하 소저너)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서로 대립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약하디 약한 어머니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예국희는 소저너를 통해 위대한 모성을 보고 싶어하고, 자신의 전부이다시피 했던 극단이 망하는 경험을 했던 이실은 소저너를 통해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성을 부각시키고 싶어한다. 반면, 이미 17년 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딸을 버린 채 집을 나왔던 배우 오 데레사는 소저너를 연기할수록 가슴에 한으로 남은 ‘모성 콤플렉스’와 지나간 사랑의 잔재를 어쩌지 못해 괴로워한다. 작중인물들이 모두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이상적 여인으로 상징화시킨 이 소저너 트루스는 대체 어떤 여성인가.
본명이 이사벨라인 이 흑인여성은 19세기 미국에서 살았던 노예 출신 흑인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스스로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진리를 전하고 다니는 사람)’란 이름을 택했던 그는 백인에게 맞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불법 매매된 아들을 법정 투쟁으로 찾아낼 정도로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이다. “저건 여자일 리가 없다. 남자다”라면서 억지 주장을 펴는 반대 세력을 향해 자신의 검은 젖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댁들도 내 젖을 먹고 싶으시오?” 되물었다는 에피소드는 작가 전씨가 그를 다룬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처음 소저너를 알게 된 건 작은 소식지에 실린 서너쪽의 간략한 약사를 읽고 나서였어요. 당시엔 그저 ‘아, 이런 여성이 있었구나’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더군요. 그때부터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영문 웹 사이트를 검색하는 동안 그는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기술한 소저너의 구술 전기를 접하게 됐고, 그것은 이후 소설의 뼈대가 된 ‘트루스의 젖가슴’이라는 희곡(실제로 이런 희곡은 없다. 전씨가 설정한 가상 희곡일 뿐이다)이 됐다. 가상의 희곡과 세 명의 주인공이 맞물리는 구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쓰다가 세차례나 엎어버렸어요. 제 딴에는 그만큼 구조를 정밀하게 짜기 위해 고민했어요. 저는 쓰는 동안 흥미로웠는데, 글쎄요…독자들이 보기엔 어떨까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마요네즈>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으니까요.”

5년만에 새 장편소설  펴낸  작가 전혜성

두번째 소설에는 연극에 미쳐있었던 이력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소설 속에는 우리가 접하기 힘든 연극 현장의 생생한 숨결이 손에 만져질 듯이 살아있다. 그건 아무래도 연극판에서 그가 직접 겪은 경험이 오롯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한때 죽으면 극장에 묻히고 싶을만치 연극에 미쳤을 때가 있었다”고 작가 서문에 썼을 정도로 ‘연극광’인 그의 경험을 십분 살린 내용은 현장감 넘친다.
“연극과 영화는 15년 이상, 말하자면 제 청춘을 지배해온 씨줄과 날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열서너살에 처음 연극을 보고 반해서 대학시절을 온통 연극판에서 보냈죠. 대학원 졸업 후에는 영화잡지 기자로 활동했고요. 이후에도 대본 작업 등을 하며, 오랜 기간 연극계 주변을 맴돌았으니 제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예요.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요? 어떨 땐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소설가로서 그 경험은 남다른 자산일 거라고 생각해요.”
부산 출생으로 3녀 1남 중 장녀. 처음 접했던 연극이 <피가로의 결혼>이었던가, <홍당무>였던가, 그건 중요치 않다. 감수성 민감한 10대 소녀는 연극의 ‘현장성’에 치명적으로 매료된다. 열서너살에 펼쳐 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그에게 생의 이면을 본 듯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사와 지문만으로 이뤄진 문학양식이 존재할 수 있다니, 연극은 그에게 ‘비밀 상자’나 다름없었다.
이화여대 철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문리대 연극반에 가입했다. “생애 최초로 스스로 해본 선택이 아닐까”라는 그의 말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극 세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당시 대학연극반이란 그가 동경하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 대학가의 연극은 대부분 마당극이거나 그도 아니면 선전선동을 목적으로 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낙심은 했지만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이디어 회의부터 대본 쓰기, 공연 의상 만들기, 무대 세트 만들기, 포스터 제작… 그야말로 ‘노가다’일 수밖에 없는 연극반 활동이 그저 행복하고 좋았다. 고등학교 때 관심을 같이 나눌 이 없어 외롭기만 하던 그에게는 그저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바랄 것이 없었다.
“그땐 이대 앞에 민예소극장이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실험극장, 공간사랑… 이런 소극장들을 오가며 참으로 많은 연극을 봤어요. <신의 아그네스> <에쿠우스> <세일즈 맨의 죽음>… 이런 작품들을 보며 갈증을 풀었죠.”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엔 영화잡지사에 취직을 했다. 대학 연극반에 붙어 살다시피한 그는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이 참 힘들었다고 한다. ‘어찌할 수 없는 80년대 사람’이란 의식이 강했기 때문일까. 남들이 쉽게 하는 사회적 친교나 의무 같은 일들이 그에겐 버거웠다. 유일한 낙이라면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러다가 대학에서 연극반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회인들이 모여 ‘민족극연극회’를 만들었다. 그 역시 그 활동에 참여하며, 이렇게 소극적이나마 꿈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91년 서른한살에 결혼을 했다. 남편 역시 민족극연극회 활동을 했던 동료로 연애결혼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서 임신을 했다. 임신은 축복이었지만, 입덧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음식은 커녕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자리에 누워있어야 할 정도가 됐고,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행히 입덧 기간은 짧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돌봐줄 이가 없어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총체적인 상황이 그렇다보니, 저절로 여성문제에 눈을 뜨게 되더군요. 그때 ‘여성문화예술기획’이라는 단체와 연이 닿았어요. 당시 <자기만의 방>이라는 연극으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던 곳인데, 저더러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극 대본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지요. 그래서 스크립터로 활동했어요.”
아이를 기르면서 연극 대본을 매만지면서, 그는 불현듯 ‘글쓰기의 욕망’이 불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연극쟁이로 온전히 살아남을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그는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택했다.
“직장에 나갈 때는 몰랐어요. 그런데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마음속에 나만의 방이랄까, 빈 공간이 생기더군요. 남들은 몰라주는 그 결핍감이 글을 쓰도록 절 이끈 것 같아요. 낮에는 살림하랴, 아이 돌보랴, 남편 출근시키랴 정신없으니까 밤이면 저혼자 책상머리에 앉아 소설을 썼어요. 밤을 꼴딱 새우곤 했고 늘 잠이 모자라 낮에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어요. 그렇게 힘들게 쓴 게 바로 <마요네즈>였어요.”

그렇게 서른일곱에 등단했다. 지금은 마흔둘. 그동안 그는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여러모로 변화가 많다고 생각해요. <마요네즈>를 쓸 때만 해도 훨씬 낙관적이고 자신이 있었어요. 당시에도 제가 가진 작가적 개성을 극대화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어요. 소설가가 되는 데는 무엇보다 작가적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아마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작가적 개성은 소설가의 필요조건은 되겠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거죠.”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고통이 영향을 끼쳤다. 지병을 앓던 어머니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괴로워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결코 아름답거나 성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신산하고 지긋지긋하고 끔찍하며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그 역시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마흔이 되기 전에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도 하고, 회의에 빠지고 방황을 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다들 마흔 증후군을 겪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마흔을 의식할 틈도 없이 지나왔어요. 그만큼 어머니의 죽음이 제게 준 충격은 컸어요. 이제, 죽음이 보인다고 할까요. 30대의 저는 늘 자신만만했어요. 고통? 삶이 고통이라도 나는 얼마든지 희롱해주겠어, 이런 식의 낙관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삶이란 이토록 두렵고 엄숙한 거구나, 삶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구나….”
물론 그는 작가로서 고통을 진지하게 직면할 필요도 있지만, 때론 농담처럼 가볍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겪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깊고 넓게 보아야 한다는 자각.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폭발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와 차별되는 그만의 지점이 아닐까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겹쳐서 가정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았어요. 우리 집은 IMF라는 터널을 뚫고 통과해왔어요. 98년 당시 불교방송 PD로 일하던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했고, 경제적 위기가 이토록 가정을 흔들 수 있구나 절감했어요.”
당시 남편과 별거 아닌 사소한 시비가 벌어져도 한바탕 큰 싸움이 되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부야말로 서로를 지탱해주는 존재일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가까운 이는 가깝다는 이유로 도리어 생채기 입히기 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구보다 굳건해 보였던 남편 역시 나처럼 고통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도 그 즈음인 것 같다. 서로 싸우고 화해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치렀던 IMF 시기는 이들 부부에게는 홍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부부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고통을 같이 겪으면서 그만큼 성숙한 부부 의식을 확보한 것 같다”고 그는 담담하게 술회한다. 다행히 그의 남편은 재취업을 해, 지금은 대기업 홍보실에서 인터넷 쪽 일을 담당하고 있고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남매도 예전에 비해 손이 많이 가지 않아 그로서는 글쓰기에 매달릴 시간이 그만큼 많아졌다.
<트루스의 젖가슴>은 벌써부터 연극계 관계자들로부터 무대에 올리자는 제의가 들어온 상태. 그러나 전씨는 당분간 소설에 전념하고 싶다고 한다. 만약 연극으로 올린다고 해도 각색만큼은 사양하고 싶다고.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하는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연출은 오롯이 연출가의 몫임을 잘 알면서도 원작자로서 어쩔 수 없이 욕심이 끼어들더라고 했다. 따라서 전문 시나리오 작가의 손에 맡겨두는 편을 택하지 않겠냐는 것.
“<마요네즈>가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를 통해 여성적 관계를 파고들었다면 이번 작품은 좀더 그 얼개가 풍성해졌어요. 사실 여성만큼 복잡한 존재가 어디있겠어요. 같은 30대라고 해도 기혼이냐 미혼이냐에 따라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죠. 사회적 변화 속에 여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갖춘 젊은 여성들과 40, 50대의 윗세대가 같이 소통하기는 더욱 어렵고요. 그런 갈등을 풀어나가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여성에 관한 소설만 쓰고 싶지는 않다면서 전씨는 웃었다. 내년 봄쯤 소설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는 이 재능 있는 작가의 얼굴 위로 소저너 트루스가 겹쳐 보였다. 비록 가는 몸피며 쌍커풀 진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선 고운 얼굴이 대지의 여인 같은 흑인 여성과 똑같아 보일 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녀가 다음 작품은 어떤 글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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