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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열일하는 야심가 하정우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01. 04

밀려드는 시나리오로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다는 하정우. 
성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쇼비즈의 세계를 그가 항해하는 법.

하정우(40)는 계단을 하나씩 오르지 않았다. 인터뷰하기로 한 카페 2층으로 계단을 한꺼번에 서너 개씩 건너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뛰어 덕후! 인생은 짧아’라고 적혀있다. 부지런히 달려온 덕분에 데뷔 15년 차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빼곡하고 화려하다. 

조각 같은 외모의 꽃미남들이 득세하는 연예계에 상대적으로 ‘현실감’ 있는 외모로 2003년 영화 ‘마들렌’에서 첫 등장을 알린 그는 영화 ‘추격자’(2008)의 연쇄 살인마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황해’(2010)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더 테러 라이브’(2013)와 ‘터널’(2016)에선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 신공을 선보였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베를린’(2012), ‘군도 : 민란의 시대’(2014),‘암살’(2015), ‘아가씨’(2016) 등 굵직한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그사이 틈틈이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5)의 메가폰을 잡고, ‘싱글라이더’(2017)를 제작했다. 2008년부터 그가 출연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영화는 미개봉작까지 포함해 줄잡아 30편. 다작도 그렇거니와 거의 모든 작품이 작품성과 흥행성면에서 평균 이상의 고른 성취를 보여줬다는 점이 놀랍다. 

여기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먹방과 전시회까지 열 정도의 수준급 그림 실력은 그를 이해하는 보너스 트랙이다. 이외에도 하정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유머와 카리스마다. 동료 배우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상대를 웃겨서 울게 만드는 남다른 재주와 사람들을 휘어잡는 포스가 있다. 

공효진을 비롯한 개성 넘치는 배우 16명을 ‘577프로젝트’(2012)에 끌어들여 서울에서 해남까지 국토대장정을 하게 만든 것도 ‘교주’ 하정우의 집단 최면이랄 수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이름 앞에는 종종 ‘상남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의 사내다움은 이정재의 섹시함이나 정우성의 잘생김 혹은 마동석의 근육처럼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피비린내 나고 뻔뻔하며 능글맞고 지질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그런 복잡다단한 이미지다. 



열일하는 야심가 하정우는 이번에도 두 편의 영화를 양손에 쥐고 관객들을 찾아왔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영화화한 ‘신과함께’(김용화 감독, 2017년 12월 20일 개봉)에서는 망자를 인도해 재판을 받게 하는 저승사자 강림으로,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장준환 감독, 2017년 12월 27일개봉)에서는 진실을 찾는 데 첫 단추를 꿰는 최 검사로 나온다.

‘신과 함께’와 ‘1987’이 일주일 차로 개봉하는데,소감은요. 
올림픽 결승전을 연속으로 두 번 치르는 것같아요.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아들로 둔 엄마의 마음도 알겠고요. 저 혼자 가운데 있는 느낌이고,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모르겠어요. ‘똑같은 스코어가 나오는 게 좋은 건가?’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마흔 살을 앞둔 연말에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층이나 메시지 면에서 성격이 다른 작품들이라 경쟁 구도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양쪽에 쑥스럽지 않게 두 영화 모두 잘되면 좋겠어요. 

그래도 더 부담이 되는 작품이 있을 것 같은데. 
4백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1, 2편을 같이 찍은 ‘신과 함께’가 아무래도 부담감이 더 큰 건 사실이에요. 1편 반응이 2018년에 개봉할 속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2편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1편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면 우리는 IPTV에서 만나야 하는 거죠. 

김용화, 나홍진, 윤종빈 등 특정 감독과 작품을 많이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누가 만드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시나리오가 조금 부족해도 감독이나 제작자가 좋으면 작품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대죠. 반대로 시나리오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고 물 샐 틈 없이 구성이 완벽한데, 어느 감독을 만나면 뭔가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한 경우가 있어요. ‘신과 함께’와 ‘1987’은 감독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메시지가 분명해서 믿음이 갔어요. ‘1987’의 장준환 감독이 제작 보고회에서 “한국현대사의 중심에 있는 사건을 화학비료 안 치고 거름만 주며 잘 가꿔 천연 그대로의 열매를 관객들에게 안기고 싶다”고 했는데, 첫 미팅에서 그런 장 감독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때 받았던 시나리오와 지금 영화로 나온 작품은 많이 달라요.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과의 작업은 ‘국가대표’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겠네요. 
그렇죠. 감독님이 대학 선배이기도 하고, ‘국가대표’(2009) 때의 좋은 추억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요. ‘미스터 고’ 때는 고릴라 영화를 찍는다기에 그럼 내가 고릴라냐? 물었더니 아니다, 진짜 고릴라를 쓸 거다, 그럼 다음 작품에서 아무거나 시켜달라, 해서 하게 된 게 ‘신과 함께’예요. 시나리오를 받아봤는데 ‘국가대표’처럼 인간적이란 점에서 김용화 감독의 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새로운 유형의 판타지 영화라 모험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부산행’과 ‘곡성’이 사랑받는 걸 보며 가능성을 점쳤어요. 우리나라 관객들도 이런 장르의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증거죠.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한 건, 의리 때문이었나요. 
하하하. 그런 셈이죠. 김용화 감독에겐 연기에 대한 빚이 있어요. ‘국가대표’는 제가 출연한 첫 상업 영화인데,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가 그전까지 제가 해왔던 패턴과 달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까지 연기는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고, 배우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철저히 계산된 동선과 감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어요. 그걸 깰 수 있게 해준 사람이 김용화 감독님이에요. 김 감독님이 “앞으로 네가 찍어야 할 작품은 대부분 이런 영화일 것이다. 사실적인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때로는 힘을 빼고 가볍게 연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줬어요. 그런 것들이 이후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CG 작업을 위해 대부분의 촬영을 그린 매트에서 했어요. 배우 생활은 오래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더 테러 라이브’도 그렇고 ‘터널’ 때도 그렇고, 제가 나름 충무로에서 벽 보고 혼자 하는 연기를 좀 하는 편인데 그린 매트는 어렵더라고요. 상대방 없이 허공을 보고 대사를 하고, 액션 연기를 할 때도 칼 없이 그냥 팔을 휘두르려니 어색했어요.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태현(차태현)이 형한테 어떠냐고 물으니 “많이 민망해 보여” 그러더라고요(웃음). 스태프들도 민망해서 딴 데 보고 있고. 그래도 몇 번 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영화 작업의 모든 순간이 순탄하지만은 않잖아요. 때로는 화가 나거나 짜증 나는 순간도 있을 텐데요. 
누구나 일하면서 ‘욱’ 하거나 화나는 순간이 있죠. 저도 신인 시절엔 컨트롤을 잘 못 해서 그런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는데, 연출을 하면서 좀 바뀌었어요. 감독이 돼 모니터를 통해 배우들을 보면 ‘이 친구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구나’ ‘테이크를 여러 번 갔더니 힘들어하는구나’  ‘짜증 났다, 지금’ 그런 것들이 다 보이더군요. 그러니 저도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께 얼마나 많이 들켰겠어요. 배우들이 힘들어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 감독입장에선 참 미안해요. 그 후론 그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먹방이 트레이드마크가 됐어요. 인터넷에 도는 먹방 짤을 본적이 있나요. 진짜 웃긴데. 
그럼요. 처음엔 온전히 영화 속 캐릭터로 봐주시면 좋겠는데 왜 나를 희화화하지? 왜 자꾸 짤을 만들어 뿌리는 거야, 란 생각에 속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것들이 영화에 몰입하고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 방해 요소가 아니라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건빵의 별사탕 같은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또한 저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라 여기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987’은 ‘추격자’와 ‘황해’에 이어 김윤석 씨와 세 번째 작업인데 특별한 게 있었나요. 
김윤석 형과는 사적으로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곤 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또 다르잖아요. 그동안 어떤 깊이와 느낌이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그걸 감지하지는 못했어요. 농담입니다. 하하하. 이번에 형과 같이 처음 촬영하는 날, 너무 행복해서 끝나자마자 술을 마시러 갔어요. 둘이 술 마시는 패턴도 비슷해요. 급하게 마시느라 메인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술자리가 파해요. 

신인 시절에 비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네요. 제작과 연출을 하면서 배우로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봤고, 내 기분만큼이나 상대의 기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그러면서 조심스러워졌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고 웃기는 횟수가 줄어든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원래 개그, 코미디 코드를 좋아하거든요. 어느 자리에서든 1분 만에 모든 사람들을 웃고 춤추게 만드는 유머 코드와 에너지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농담으로 상대를 웃기는 타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만큼 그 자리에 새롭게 채워진 것이 분명히 있겠죠. 

멜로 연기를 하는 하정우 씨를 보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요. 
그러잖아도 김용화 감독님께 차기작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안 된대요. 다른 걸 해야 한다고. 멜로를 너무 하고 싶은데, 더 나이가 들면? 그래도 할 수 있겠죠? ‘뉴욕의 가을’ 그런 느낌으로? 요즘 충무로에 멜로 시나리오가 굉장히 귀해요. 그래서 드라마를 해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designer 최정미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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