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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지구를 정복한 구독서비스의 민낯

정세영 기자

2023. 04. 06

구독이라는 꿀과 늪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 클릭 한 번으로 매달 전 세계의 라이브러리를 둘러볼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은 다음 날 바로 문 앞까지 배송해준다. 하지만 그 대가는 냉정하다. 자동결제, 선결제라는 명목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장 속 작고 귀중한 월급을 야금야금 갈취해가는 것. 시간과 수고로움 덜어준다는 핑계로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구독 서비스, 과연 우리는 그 많은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생애 첫 구독은 한 패션 매거진이었다. 매달 20일쯤이면 저 스스로 우편함에 꽂혀있던 잡지를 꺼내던 순간의 설렘이 아직도 선연하다. 사실 스마트폰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관심이 없는지라 구독 서비스에도 문외한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사정이 좀 달라졌다. 비대면 거래로 이뤄지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먹거리, 취미 생활, 주거 서비스까지 해결하게 된 것. 출근길엔 지니로 음악을 듣고 버스 안에서는 전날 밤 보내온 일간 이슬아의 글을 읽는다. 점심은 회사로 배달되는 샐러드스쿨의 샐러드로 가볍게 때운다. 퇴근 후에는 런드리고로 빨랫감을 맡긴 뒤 이마트몰로 내일 당장 필요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주문한다. 결제는 주로 네이버페이를 이용한다. 네이버 MYBOX 용량을 늘리기 위해 가입한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포인트를 쌓아야 하기 때문.

최근에는 오랜 고민 끝에 디즈니+도 가입했다. 가끔 커피까지 구독해서 마시니 이제는 정말 헤어날 수 없는 ‘구독의 늪’에 빠져 사는 셈이다. 도가 지나치나 싶을 때는 용기를 내서 구독 취소 버튼을 찾긴 하지만 만지작거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일쑤다. 구독이 터무니없이 비싼 엉터리 서비스도 아닐뿐더러 구독경제의 발전에도 나름 일조하고 있으니까.

상품이 사람을 찾아가는 시대, 구독 서비스의 성장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도 필요한 것의 대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바야흐로 구독경제 시대에 살고 있다. 매달 구독료를 내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구독경제가 대표 경제 트렌드로 발돋움했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취향도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들을 위한 맞춤 구독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구독경제의 시장 규모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2020년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2016년과 비교해 무려 54% 커진 40조1000억 원으로 추정되며, 2025년에는 100조 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독경제 소유의 종말’ 저자 전호겸 교수는 “구독경제 모델을 갖춘 기업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성장을 이어갔다”며 “구독 서비스 결제를 선불로 진행하기 때문에 기업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비교적 여유가 있고 불황에도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이승훈 교수는 “정기 구독은 소비자가 구독을 해지하기 전까지 수익을 고정으로 확보한다는 큰 메리트가 있다. 소비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기업은 고객을 구매자가 아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로 인식하고 더욱 친밀하게 다가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이 구독 서비스에 투자하는 비용도 부쩍 늘었다. 2021년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진행한 온라인 정기 구독 서비스 이용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68.5%가 온라인 정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매달 정기 구독으로 쓰는 비용은 평균 4만 원이었다. 구독경제에 젖어드는 소비자가 증가하자 업계는 차별화된 전략을 내세우며 다양한 상품을 앞다퉈 내놓았는데, 그중 여러 장르를 하나로 묶어 가성비 패키지로 판매하는 통합 구독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예로 미국 아마존 프라임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서비스는 2020년, 매달 12.99달러(약 1만7000원)만 내면 이틀 안에 상품을 받아보는 것은 물론 음악, 도서 등 다양한 분야를 구독할 수 있는 추가 혜택까지 제공했다. 그 덕에 가입자 수는 1억5000만 명을 넘어섰고, 2019년 주당 1600달러(약 210만 원)였던 아마존 주가는 2021년 3200달러(약 420만 원)까지 치솟았다.



스타트업이 주를 이뤘던 구독경제 시장에서 대기업의 활약도 눈에 띈다. 한 달에 약 49만~109만 원에 체험해보고 싶은 차를 원하는 기간만큼 사용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월간 구독 서비스인 현대셀렉션 가입자 수는 2023년 2월 3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미국 이볼브플러스(Evolve+)가 현대차와 유사한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며 플랫폼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놀라운 점은 아이오닉 5의 월 구독료가 899달러(약 118만 원)라는 것.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구독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과연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 최초로 과자 구독 서비스인 월간과자를 선보인 롯데제과는 현재 월 정기 구독자가 평균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근에는 빵과 가정간편식을 정기 구독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출시하며 카테고리를 넓히고 있다. 매출의 약 40%가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일어나는 기업도 있다. 하림의 반려견 사료 브랜드 하림펫푸드가 그 주인공. 하림펫푸드가 선보인 ‘가장 맛있는 시간 30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사료를 제공하는 콘텐츠다. 2021년 론칭 당시와 비교해 지난해 구독자가 97%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이 밖에도 이동통신업계, 카드업계 등 다양한 업계에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구독 패키지와 혜택을 내놓으며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물론 업계 특성에 따라 속도와 방향성은 다르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구독 시장이 발전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안 쓰는 MZ세대의 선택

구독 서비스는 특히 갓생을 살고 있는 MZ세대에게 인기다. 전호겸 교수는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성장해온 MZ세대는 가성비에 관심이 많다”면서 “적은 금액으로 서비스를 경험하는 구독경제에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도 그걸 것이 영화 한 편, 커피와 디저트 값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기 때문. 이를테면 스포티파이를 구독하면 2만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전 세계의 모든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수 있고, 넷플릭스를 통해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다. 넷플릭스 프리미엄 가입 비용이 1만7000원으로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보통 IPTV(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과 VOD를 볼 수 있는 서비스) 최신 영화 한 편이 1만1000원, 드라마 다시 보기가 1회당 2200원인 걸 감안하면 영화 한 편, 드라마 두 편만 봐도 본전을 뽑을 수 있다. 넉넉하게 2만 원만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한 구독 서비스의 메리트는 아이러니하게도 함정이 될 수 있다. 구독 서비스 이용 개수가 4~5개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구독이라는 편리와 함정 사이

구독 서비스를 통해 먹거리, 취미 생활, 주거 서비스까지 해결하고 있다.

구독 서비스를 통해 먹거리, 취미 생활, 주거 서비스까지 해결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켜고 이용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를 찾아봤다. 넷플릭스, 쿠팡 로켓와우, 이마트몰, 술담화, 런드리고, 지니, 윌라, 디즈니+, 북저널리즘…. 웃긴 건 지금 구독하는 것들을 모두 찾지 못해서 기사를 쓰는 동안 문득 떠올라 하나씩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한 달만 써보자는 마음의 소리에 넘어가 자동결제를 누른 구독 서비스가 1~2년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매달 릴레이를 하듯 오는 구독 서비스 결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할 때는 등골이 오싹하지만 ‘옷 한 벌 덜 사지…’라고 합리화하다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결국 쉽게 꺼낼 수 있는 몇천 원, 몇만 원의 함정에 빠져들게 된 셈이다. 남편이 꾸준과 같이 구독 서비스와 결제까지 관리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해줬을 때 ‘이런 걸 누가 구독해’라고 비웃었는데, 진심으로 반성한다. 딱 나를 위한 맞춤 콘텐츠였네!

야금야금 늘어나는 구독의 고리를 잘라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제 정보 항목에 들어가 구독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취소하면 후회할걸. 한 달 무료 이용권을 줄 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봐’ 같은 이른바 해지 방어 문구를 보면 또 마음이 달라진다. ‘공짜인데 딱 한 달만 더 써볼까’라고 합리화하며 구독을 연장해놓는 게 다반사인 듯. 구독 하나 줄이는 일 참 쉽지 않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온갖 미끼를 던져 가입을 유도한 뒤 의도와 상관없이 구독을 지속하게 만드는 상술을 다크 너지(dark nudge)라 한다. 쉽게 말하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 비합리적 구매를 유도한다는 것. 다크 너지는 주로 영상 및 음원 스트리밍 등 온라인 정기 결제 서비스 플랫폼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다크 너지의 피해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지난 3년간 가장 많았던 상담 사례가 모바일 인증 서비스 가입 후 해지 복잡 등과 같은 해지 방해 유형이었고, 무료 체험 후 알림 없이 결제하는 자동결제가 그 뒤를 이었다”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다크 너지와 같은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자 2021년 정부는 3개년 계획으로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비자에 대한 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불공정 행위를 적극 시정해나갈 계획이라는 것.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11월부터 구독 서비스 사업자는 유료 전환 7일 전 이용자에게 사전 고지하고 환불 요청 시 사용 일수, 회차 등을 고려해 적정 금액을 환불해줘야 할 의무를 갖는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이승훈 교수는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몇몇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면 다른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힘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독 시장의 경쟁은 과열될 것이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전호겸 교수 역시 “구독 시장을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게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축소된다”며 “만약 기업이 구독료를 인상하면 소비자들은 그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독경제가 지금은 알뜰 소비로 평가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빠르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 구독경제의 꾸준한 발전과 성장을 위한 숙제인 셈이다.

모든 소비는 유혹을 이겨내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결단력이 필요하다. 귀찮음과 번거로움 때문에 구독 서비스 해지를 미루는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두자. 전략적으로 필요할 때만 구독하고 잠시 떨어질 수 있는 지혜와, 결제금액과 날짜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꼼꼼함을 갖춰야 한다. 통장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에 월급은 너무 작고 소중하고 애틋하니까.

#구독경제 #구독서비스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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