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1년 KBS 26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상훈은 자타 공인 예능계 톱은 아니지만 장난감계에서는 톱티어다. ‘어른이(어른+어린이)’를 위한 각종 장난감 리뷰를 주로 다루는 개인 유튜브 채널 ‘이상훈TV’는 2018년 개설한 이래 구독자 수가 59만여 명을 돌파했다. 피규어 제작사가 전 세계 하나뿐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샘플 피규어를 공식 출시 전 한국 팬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이상훈 채널을 선택했을 정도로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런 ‘장난감계 유재석’ 이상훈이 얼마 전 장난감 박물관장이 됐다. 지난해 12월 인천 서구에 25년 동안 수집한 장난감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상훈TV 토이뮤지엄’을 오픈한 것. 연간 장난감 구입비로 약 6000만 원을 지출하는 큰손답게 661㎡(약 200평) 규모 박물관을 6000점가량의 아이템으로 꽉 채웠다. 다 전시하지 못해 창고에 따로 보관한 수집품도 200~300점에 이른다.
현재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이상훈을 녹화 전날 인천의 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는 장난감을 ‘아이’ 또는 ‘친구’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는 덕후의 마인드가 묻어나는 애칭이었다.
옛날 피규어 비싸도 사는 이유는 추억 값

사실은 더 태웠어요. 이번에 박물관 여는 데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저 지금 빚쟁이예요. 이사 비용만 수천만 원이 들었거든요. 이사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에요. 박물관 오픈 준비하면서 한 6~7kg 정도 빠졌어요. 좋아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니까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만, 그래도 찾아오는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요.
그 많은 수집품을 어떻게 기억하고 관리하나요.
일단 ‘피계부(피규어+가계부)’를 작성해요.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샀는지 적고, 선물이나 협찬을 받은 내용도 기록해요. 요즘은 조금 느슨해진 편인데, 한창 모을 때는 기록도 열심히 했어요. 혹시나 재판매하게 되면 제가 구매했을 때 시세와 비교해 ‘이만큼 올랐구나. 이건 손해를 많이 봤구나’ 알아보는 나름의 재미가 있거든요.
갖고 있는 아이템 중에 가장 오래된 건 무엇인가요.
수집 기간으로 제일 오래된 건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가지고 놀았던 변신 로봇들이에요. 지금 용자(로봇 애니메이션 작품) 라인 쪽에 전시해뒀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크리스마스이브라고 철없이 졸라서 선물 받은 로봇도 거기 있어요. 제 추억이 담긴 제일 아끼는 아이들이죠. 이제 35년쯤 지났으니까 함께한 기간으로는 그 친구들이 가장 오래됐고, 장난감 나이 자체가 제일 많은 건 한 오십 년 된 애들도 있어요. 그런 나이 많은 친구들은 어르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레어템을 모았을 때 희열이 또 있잖아요. 가장 힘들게 구한 아이템은요.
저는 너무 힘들게 구해야 하는 애들은 수집하지 않으려는 편이에요. 부담스러워서요. 그런 애들 제외하고 제가 힘들게 구한 건, 커스텀 제작을 맡겼을 때요. 제작하는 분들이 많이 만들지도 않지만, 제작에 들어가더라도 받을 때까지 한 1~2년씩 기다려야 해요. 이런 건 기다리다 지치죠. 저는 질보다 양이에요(웃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갖는 것보다 세상의 모든 장난감을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눈에 예쁜 걸 다양하게 수집합니다. 스무 살 때 첫 아르바이트 후 받은 월급으로 레고를 시작한 게 수집의 시작이었는데, 고시원에 살 때도 방 한쪽에 다 전시해놨어요. 박물관장의 기질이 있었던 거죠.
다 사진 않을 거 아니에요. 수집하는 기준이 있나요.
일단 할인은 못 참습니다(웃음). ‘1+1’ 할인은 무조건 손이 가고요. 그렇게 구했는데 ‘내가 수집하는 라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또 정리하기도 해요. 반대로 제 취향이면 그 라인 전 종을 다 수집하는 광기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가 저한테 없는 장난감을 선물로 주면 결국 다 모으게 돼요. 최근에 팬이 ‘해리 포터’ 시리즈 굿즈를 꽤 많이 기증해주셨어요. 원래 저는 피규어랑 지팡이만 모으고 있었는데 컵이랑 칼, 왕관도 보니까 너무 예쁜 거예요. 어떡해요. 예쁘면 모아야죠. 진열장은 채워지고 통장은 말라가고 있어요.
하하. 그럼 가장 비싼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사람 크기의 ‘스타워즈’ 스톰트루퍼 피규어가 단품으로는 제일 비쌉니다. 1500만 원 정도 하는데, 아는 업체 사장님이 박물관에 기증해주신 거예요. ‘내돈내산’으로는 천안에 가서 업어온 큰 건담 2개인데, 하나에 850만 원씩 17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아내도 그 건담들의 가격을 알고 있나요.
안 그래도 구매 전에 아내에게 말할지, 말지 망설였어요. 다행히 당시 수원에서 하던 뮤지엄 팝업이 대박 나서 수입이 많을 때였어요. 아내에게 “개인적인 소장 욕구도 있지만, 이런 아이템은 관람객을 위해 전시용으로 사야 한다”며 허락을 받았죠. 그런데 지금은 박물관 오픈 비용이 많이 들어 판매용으로 내놓았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피규어가 돈이 되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값어치가 나가려면 한 30년 이상 묵혀야 해요. 그럴 거면 주식이나 코인을 해야죠(웃음). 피규어는 감가상각이 되기도 하고 공간을 많이 차지해요. 그럼에도 옛날 피규어를 비싼 돈 주고 사는 이유는, 추억 값을 지불하는 거예요. 저도 추억 때문에 모으기 시작했거든요. 재테크로 접근했다간 쉽지 않을 거예요. 워낙 마니악한 세계예요.


아들이 태어나면 주라고 어머니가 간직해온 오래된 변신 로봇부터 ‘슈퍼 전대’ 시리즈·용자·건담 로봇, 마블·DC·시대별 애니메이션 피규어, 레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내가 이해해주는 만큼 저도 더 노력하게 돼요”
지금은 ‘장난감 아저씨’로 더 유명하지만, 지나가는 주말의 아쉬움을 달래주던 KBS 대표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를 열심히 시청했던 이라면 이상훈의 더티 댄스를 기억할 것이다. 이상훈은 ‘니글니글’ 코너로 인기 많던 2016년, 데뷔 전 물리치료사로 일했을 당시 만난 동료와 결혼하고 2017년부터 휴식기를 가졌다. 보통 결혼하면 가계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한다. 그런데 이상훈은 반대였다.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해 더 깊게 취미를 파고들었다. “아무리 아내가 허락했어도 저축할 돈을 쓰는 게 미안해서, 장난감을 떳떳하게 모으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이제는 유튜브 외에도 만화와 영화 관련 행사 MC 등 덕후 수입이 본업 수입을 넘어설 만큼 성덕이 됐다. 2019년부터는 매년 어린이날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개인 소장 장난감 판매금을 모아 기부도 하고 있다.덕업일치를 이루기까지 아내의 역할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 대한 아내의 방치, 수수방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하하. 아내에겐 고마운 마음이 커요. 아내는 연애할 때도 먼저 장난감 가게를 구경하자고 할 만큼 배려심이 넘쳤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모아도 좋다”고 했어요. 다만 모든 일에는 역치가 있잖아요. ‘10만 원짜리를 샀는데도 뭐라 안 하네. 다음에 조금 더 비싼 걸 사도 되겠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가격을 높여 사다가 지금에 이르게 됐죠. 결과적으로 수익과 제 캐릭터로도 이어져서 아내한테 고마워요.
‘내 아내지만 정말 대단하다. 고맙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나요.
제가 원래 양주 두리랜드에서 박물관을 운영했었어요. 그쪽 사정상 2년 만에 나오게 되면서 다 정리하려고 했죠. 그때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설사 망해서 그 돈이 없어지더라도 지금까지 받아온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더 해보라”고요. 용기를 내서 팝업을 열었고, 잘돼서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박물관을 오픈했어요. 아내는 저보다 여섯 살 어린데도 꼭 누나 같아요. 아내가 워낙 절 많이 이해해주니까 저도 더 노력하게 돼요. 아내가 축구를 좋아해 풋살 대회에 종종 나가는데, 저도 시간이 되면 응원 가고 그래요.
특히 결혼 후 유튜브를 개설했고 잘되고 있잖아요. 구독자들이 이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난 8년 동안 쉬지 않고 1100개 이상의 콘텐츠를 올렸어요. 저는 장난감이랑 있으면 엔도르핀이 돌고 행복해요. 그런 모습을 진정성 있게 봐주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장난감을 물에 넣어봤습니다’ ‘3000피스 레고를 부셔보았습니다’ 이런 영상을 만들면 조회수야 잘 나오겠으나 제 성향이랑 맞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들을 소중히 다루고, 부서지거나 떨어뜨렸을 때 속상해하는 모습을 한결같이 보여주면서 지금 ‘피규어계의 아침 마당’같이 됐다고 생각해요. 크게 이슈는 되지 않지만, 꾸준히 챙겨봐 주시는 걸로 만족합니다.
마냥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어른이들의 대리만족과 유대감도 인기에 한몫하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도 있을 거예요. 저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레고 하나를 6개월 할부로 샀어요. 레고가 제 손에 들어왔을 때의 기쁨, 조립하고 전시할 때의 희열과 뿌듯함이 있죠. 그렇게 하나하나 모아갈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장난감은 저를 열심히 일하게 하고, 삶이 나태해질 때 채찍질도 해주는 친구들이에요.
채널이 커지면서 ‘장난감 아저씨’와 ‘덕후계의 유재석’이란 부캐를 얻었어요. 본업을 능가하는 부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에이, 덕후계 유재석까지는 아니고 유병재예요. 이제는 제가 개그맨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여기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있죠. 그렇다고 이게 또 마냥 싫진 않아요. 세상 모든 것들은 변하잖아요. 또 방송 활동 열심히 하면 다시 개그맨 아저씨로 불릴 날도 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양날의 검이 된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하진 않아요. 지금의 삶도 행복합니다.
“나는 실패의 아이콘, 실패해도 나중엔 에피소드”
‘개그콘서트’에 재합류한 지 1년이 됐어요. 웃음 타율이 어떤가요.엄청난 성적을 내진 못했어요. 데뷔 때부터 휴식기를 가지기 전까지는 맨 앞에서 웃기는 포지션을 주로 맡았지만, 지금은 선배님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에요. 개인으로 돋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으로서 ‘챗플릭스’ 코너가 잘나가도록 한 축을 담당해야 할 때죠. 40대 중반에 이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물리치료사에서 개그맨으로, 크리에이터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용기 있는 선택을 해왔잖아요.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도파민 중독자입니다. 하하. 지나고 보니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일단 도전했던 것 같아요. 물론 너무 리스크가 크다면 안 했겠죠. 제가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실패의 아이콘”이란 얘기를 종종 해요. 개그맨 시험도 9번 떨어졌고, 대학교 정시도 다 떨어졌어요. 떨어지는 게 일상이었지만 생각을 바꿨죠. 나중에 제가 자서전에 “나는 100번 떨어진 사람”이라고 적는다면 지금의 성공이나 삶이 더 가치 있어 보일 거 아니에요. 고난과 역경을 에피소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보니까 전혀 두렵지 않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영화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배우가 꿈은 아니지만, 언젠가 영화 오디션에 붙었을 때 “나 예전에 어떤 영화 오디션에 떨어졌었어”라고 추억할 수 있잖아요. 재미있겠다 싶으면 푹 빠져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재미있는 게 제일 좋다”라,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같아요. 행복한 ‘어른이’네요.
어른이요? 아, 어른은 아니고 ‘어른이’는 맞습니다. 어쩌면 자식이 없어서 이런 삶이 가능할 수도 있어요. 아이가 태어났다면 아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아이가 없다 보니 제가 어른이로 살고 있네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상훈 #개그콘서트 #토이뮤지엄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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