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한 번만 하늘 봐봐요. 지금 당장 안 보인다고 해서 별이 없는 거예요?”
tvN 드라마 ‘태풍상사’ 속 강태풍(이준호)은 IMF(외환위기)를 거치며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오미선(김민하)에게 전화를 걸어 “낭만은 없는 거냐?”고 묻는다. 태풍이 올려다본 밤하늘은 새까맣기만 하다. 미선은 “(당장 별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별이 없는 거냐?”고 되묻는다. 이내 태풍은 여관방 천장에서 빛나는 야광 별을 보고 미소 짓는다.
드라마 ‘태풍상사’는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낭만’과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완성도 높게 그려냈다. 각자도생이 당연해진 오늘날의 사회에도 ‘사람이 꽃보다 향기롭고, 돈보다 더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그때의 낭만이 지금 우리에게도 와닿은 것일까. 최종회는 최고 시청률 10.3%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로써 이준호는 군 복무 이후 주연을 맡은 MBC ‘옷소매 붉은 끝동’, JTBC ‘킹더랜드’에 이어 ‘태풍상사’까지 3연속 시청률 두 자릿수를 달성했다. 이제 그는 아이돌 그룹 2PM 출신 연기자를 넘어 믿고 보는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준호는 이번 작품에서 ‘압구정 오렌지족’을 벗어나 ‘초보 사장’으로 성장하는 강태풍을 연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아버지를 잃은 태풍은 아버지가 일군 기업 ‘태풍상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그는 빌런 표현준(무진성)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믿음직한 사장으로 거듭난다. 그를 ‘사장’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늘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태풍상사의 직원들, 가족, 친구들은 태풍에게 낭만이자 성장의 디딤돌이 돼줬다. 이준호는 “‘태풍상사’를 통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은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IMF 시절의 낭만과 좌절을 동시에 담은 드라마

외환위기 시절의 이야기를 한 번은 풀어보고 싶었어요. 특히 ‘태풍상사’는 IMF를 겪었던 사람들과 그 시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작품이에요. 그 시절의 낭만과 시대정신을 지금에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특히 극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태풍이 알게 됐을 때, 동시에 병원 로비에서 IMF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그 장면이 큰 울림을 준 것 같아요.
그 시절의 낭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외환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저는 여덟 살쯤 됐을 거예요.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집에 혼자 있거나 누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어요. 그때는 이웃끼리 서로 편하게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또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과도 친구로 어울릴 수 있었고요. 아무런 계산 없이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당시의 낭만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국가 전체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는데요.
출연을 결정하고 부모님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눴는데, “당시 참 많이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모두가 처음 겪는 위기를 함께 이겨내려고 노력했다고 해요.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죠.
강태풍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굉장히 솔직한 인물이죠. 화가 날 때는 불같이 화를 내고 슬플 때는 슬피 울고 기쁠 때는 환히 웃죠. 태풍을 통해 감정 표현에 숨김없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태풍의 감춤이 없는 면모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 것으로 생각했어요. 태풍상사 직원들도, 시청자들도 태풍을 응원하는 마음이 그래서 생겼을 거예요.
이번 드라마로 ‘분노 연기 맛집’이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신기하게 태풍을 연기하면서는 ‘계산’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제가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죠. 태풍의 감정이 너무 잘 이해되더라고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던 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당시를 반영했던 스타일링도 화제가 됐어요.
그 시대 고증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혼성그룹 쿨의 이재훈 선배님, 드라마 ‘미스터 Q’의 김민종 선배님 헤어스타일 등을 참고했죠. 옷도 당시 인기 있던 가수분들 스타일을 시안으로 많이 삼았어요. 없는 건 직접 제작도 했죠. 실제로 을지로에서 은행 업무를 보는데 은행원분이 “드라마에서의 스타일이 IMF 때 보던 모습 그대로”라고 하셔서 정말 뿌듯했어요.



이준호는 압구정 오렌지족에서 태풍상사의 초보 사장으로 거듭난 ‘강태풍’ 역할을 맡았다.
태풍상사의 ‘든든한 버팀목’
단독 주연으로서 부담은 없었나요.연기자로서의 부담은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늘 있는 것 같아요. 데뷔작인 영화 ‘감시자들’에서 7분 남짓 출연할 때도 부담은 있었죠. 단독 주연이어서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제 연기에 얼마나 공감해줄지를 생각하면 늘 고민이 많이 돼요.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연기, 풍부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할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잘 표현된 장면은 무엇인가요.
13회에 태풍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어요. 원래는 그렇게 감정이 고조되는 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1회에 나왔던 태풍의 아버지가 소주 마시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어요.
‘슈박’을 시연하는 장면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고요.
솔직한 태풍처럼 자유로운 표현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이 했고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냈죠. 특히 철골 구조물에 ‘슈박(안전화)’을 부딪쳐서 시연하는 장면도 제가 직접 제안했어요. SNS에서 ‘무언가를 격하게 부딪쳐서 시연하는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감독님께 게시물을 보내드렸는데, 감독님께서 제 아이디어를 채택해 장면에 넣어주셨어요.
작가님이 미팅 때 “국민 아들, 국민 남친, 국민 사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요.
저도 시청자분들이 ‘강태풍 같은 사람이 나를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느꼈으면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제작진과 이견 없이 ‘든든한 버팀목’으로서의 강태풍을 잘 표현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도 태풍상사 직원 역할을 맡은 배우 동료들과 연락을 자주 하는데, “촬영 현장이 그립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래서 ‘최소한 태풍상사 직원들한테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리허설을 거듭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호흡이 오갔던 현장이었어요. 실제로 선배님들이 저한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편하게 해라” “우리가 너한테 따라갈게”였어요. 그런 선배님들의 보살핌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후배인 김민하 배우한테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따라갈게”라는 말을 편하게 건넬 수 있었어요.
‘태풍상사’는 요즘 드라마에 비해 호흡이 긴 16부작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16부작 혹은 20부작 작품만 해왔어요. 호흡이 긴 작품을 하면 지루하지 않도록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사실 있어요. 하지만 시청자로서는 8부작이나 12부작은 너무 아쉽잖아요. 그래서 16부작 드라마가 앞으로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려 두 달 동안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사랑하고 응원하게 되잖아요. 시청자분들께 드라마가 일주일을 견디는 ‘힐링 포인트’가 되었으면 해요.

초보 사장, 이준호
최근 1인 기획사를 설립했는데, 강태풍에게 공감되는 점이 있었을까요.태풍처럼 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죠(웃음). 그래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태풍의 태도에는 깊이 공감해요. 그의 선택이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유언처럼 ‘사람이 우선’이라는 철학에서 비롯한 선택인 만큼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혼자 시작했지만, 뜻이 맞는 분들과는 언제든 함께하고 싶어요.
군 복무 이후 주연을 맡은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 ‘태풍상사’가 모두 시청률 10%를 넘겼습니다.
20대 때는 뭔가를 악착같이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군 복무 이후 30대가 되면서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고요. 그 태도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최근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앞으로 더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생겨 감사할 따름이에요.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저는 앞선 작품들과 겹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도전할 분야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다음 촬영 일정이 잡힌 영화 ‘베테랑 3’에서 맡게 될 역할이 오래 기다렸던 캐릭터예요. 악역인데, 그래서 더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다음 작품인 넷플릭스 시리즈 ‘캐셔로’도 흥행할까요.
성적에 대한 부담은 항상 있어요. 다만 저희가 해석한 K-히어로 세계관을 많은 분이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고,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기회라 기대가 큽니다.
2025년은 이준호에게 어떤 해였나요.
정말 ‘태풍 같은 한 해’였어요(웃음). 태풍과 저 사이에 닮은 점이 많더라고요. 추진력, 빠른 판단력 같은 것들이요. 1인 기획사를 설립하며 새출발을 한 부분도 크고요. 무엇보다 저 자신과 주변 관계를 돌아보며 보다 ‘태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준호 #태풍상사 #캐셔로 #여성동아
사진제공 O3 Collective tvN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