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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도 괜찮아요”

박지성의 아내 김민지의 런던 라이프

정세영 기자

2025. 09. 12

아나운서, 엄마, 아내라는 수식어 너머에서 반듯하게 자신을 지켜오고 있는 김민지를 만났다. 2014년 축구선수 박지성과 결혼 후 지금까지 런던에서 살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가 최근 에세이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내이자 아나운서 출신 김민지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환한 미소와 선한 눈빛, 다정한 말투는 아나운서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이제는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1호’ 박지성의 아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2014년 결혼과 동시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남편 내조와 육아에 집중해왔다. 지금도 런던에서 생활하며 연우, 선우 남매를 키우고 있는 그는 유튜브 채널 ‘만두랑’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있다. 또 최근에는 에세이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를 펴냈다.

인터뷰 차 만난 그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해하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부끄러웠던 순간들도 꾸밈없이 털어놓고 사소한 질문도 정성스레 답하는 모습에서는 평소 삶을 대하는 자세가 느껴졌다. 그는 “한동안 김민지라는 이름을 잊고 살며 두려움도 있었지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았다”고 말한다. 에세이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란 제목도 이러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반짝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붙은 수식어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영국과 한국, 어디서든 아이들 위주의 생활을 하니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한 뒤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이동해요. 영국 학교는 아이들을 직접 등·하원 시켜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영국에 있을 때는 더욱 아이들의 일과에 맞춰 생활하는 것 같아요. 방학 시즌인 7월~9월 초는 주로 한국에서 지내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응석도 부리고 TV도 실컷 보죠. 지금(7월 말)은 과학 캠프를 다니는데 너무 재미있어 해요. 

바쁜 와중에 글은 언제 썼나요. 



틈틈이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아이들이 잠들거나 학교에 갔을 때 글로 옮겼어요. 어느 날은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고, 모처럼 시간이 나면 글이 안 써지고···.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과정이 맘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책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약 2년 정도 걸렸어요. 

도서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를 출간하며 작가로 변신한 김민지.

도서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를 출간하며 작가로 변신한 김민지.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요.

대단한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평범한 일상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화려한 타이틀보다 매일의 행복을, 거창한 성공보다 무탈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에요. 이 마음을 꾸밈없이 기록하고 싶었죠. 이 책에 담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와 닿길 바라요. 자기만의 속도로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요. 

KBSN을 거쳐 SBS 아나운서로 주목을 받고 있던 와중에 사표를 냈어요. 솔직한 계기가 있다면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그만 둔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평생 워킹맘으로 살아온 저희 엄마를 보면서 저 역시 계속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몇 십년짜리 연금도 가입하고, 주택 청약도 매달 낼 정도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원고를 고치고 있는데 입과 광대 주변이 너무 아픈 거예요. 하루 종일 통증이 계속 돼서 끙끙거리다 퇴근 했는데 입술 주위에 포진이 올라왔더라고요. 너무 놀라 응급실에 가니 의사선생님께서 대상포진이라며 “조금만 늦었으면 실명이나 뇌수막염을 겪을 수도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얼굴에는 물집이 가득했고, 물집이 가라앉은 자리는 딱지가 앉았어요. 방송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죠. 이로 인해 한 달 동안 입원을 하면서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그간 저는 직장에서의 역할을 최우선시 했었거든요. 대부분의 시간과 생각이 직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하지만 한 순간에 건강을 잃고 보니 생각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일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일상과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것”이라고요. 그때부터 퇴사를 결심했던 것 같아요.

퇴원 후 바로 퇴사를 한 건가요. 

아니요. 결혼을 결정한 후에요. 퇴원 후 출근해보니 회사는 제가 있을 때보다 더 잘 돌아가고 있더라고요(웃음). 제가 비운 자리는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반가운 선배가 채웠고, 갓 입사한 새로운 후배들도 있었어요. 그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회사를 다니던 중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이 외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제안했는데 별 고민이 되지 않더라고요. 회사보다는 가족에게 집중하는 삶이 더욱 가치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박지성, 김민지 부부는 영국에 거주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박지성, 김민지 부부는 영국에 거주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지금 남편이 아니었다면 결혼 못했을 것 같아요”

배성재 전 아나운서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셨는데, 첫인상은 어땠나요.  

저는 사실 자만추를 추구해왔어요(웃음). 학창시절 내내 모솔로 유명했고요. 눈이 높거나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걸 꺼리다보니 연애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박지성 선수와의 소개팅을 제안 받게 됐죠. 당시에는 박지성 선수와의 소개팅이라기보다는, 팬 사인회에 간다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그때 남편의 엄청난 팬이었거든요. 당시 신사동에 있는 중식당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살짝 몸을 일으키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더라고요. 그 모습이 카리스마 넘치는 축구선수라기 보다는, 원래 알던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소개팅을 가기 전까지 걱정도 많았어요. 그때 남편은 소위 말하는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혹시 거만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보며 수줍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평범한 학생 같아 보였어요. 수더분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고, 생각보다 빨리 편해졌어요. 전화통화도 많이 했는데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거웠죠.

대중은 잘 모르는 박지성 선수의 의외의 모습이 있다면, 뭘까요. 

사실 남편은 잔디 알레르기가 있어요. 잔디밭에 가면 재채기는 물론이고 눈물, 콧물을 다 쏟죠. 아마 축구 선수로 활동할 때는 날마다 잔디 위에서 사니까 항체 반응이 덜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은퇴를 하고 나니 잔디 알레르기가 더 심해지더라고요. 또 장난기가 정말 많습니다. 가족들에게 장난치고 놀리는 걸 좋아해요. 승부욕도 강해서 아이들과 게임을 하더라도 절대 봐주는 일이 없어요. 가끔은 애들이 아빠랑 놀아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웃음). 

여전히 부부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남편은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주로 현실적인 문제들의 실행이나 해결을 도맡아 하죠. 저는 가족 간의 소통을 책임지는 것 같아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도록 독려하고요. 사실 저희 부부는 성격이 완전 달라요. 남편은 원칙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 등 나름의 기준이 명확하죠. 대부분의 일을 계획적으로 행하는 편이라 약속 시간에 늦거나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드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에 반해 저는 원래 길은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남편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성격이죠.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까 반대 성향의 사람과 사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제가 집안을 산만하게 벌려놓으면 남편이 정리를 해주고, 스케줄도 체크해줘요. 남편이 계획 짜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하면 “괜찮아”하고 다독인 뒤 제가 다시 타임테이블을 짜기도 하죠.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든든한 관계가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은 누굴 닮았나요. 

아홉 살인 첫째 딸 연우는 아빠 판박이에요. 성향도, 입맛도 모두 아빠죠. 제가 새로운 요리를 해서 맛을 보라고 하면 “아빠는 뭐래?”라고 먼저 물어봐요. 아빠 입맛에 맞으면 당연히 자신도 맛있을 거라고 확신하더라고요. 또 아빠처럼 옷장도 칼각으로 정리해야 해요. 아빠를 닮아 모범생 기질이 강해요. 리틀 박지성이죠(웃음). 일곱 살인 둘째 아들 선우는 저를 많이 닮았어요. 원리 원칙을 따지기보다 자유롭고 여유 있는 걸 좋아해요. 가끔 ‘둘째가 없었으면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들도 축구를 좋아하나요.

축구에 아예 관심이 없어요(웃음). 특히 둘째는 남자 학교에 다니는데, 처음 학교에 갔을 때 학부모들 사이에서 “축구 엄청 잘 한다”는 소문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저희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보더니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어요. 하하. 

남편 분이 아쉬워하진 않나요. 

그렇진 않아요. 남편은 무슨 일이든 아이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부모가 뭔가를 유도하면 잠깐은 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이 결코 오래가진 못할 거라고요. 뭐든 진정으로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야 최선을 다한다고 믿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먼저 제안하지 않아요. 아이가 흥미나 애정을 보이면 그때 지원해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1~2년은 늦는 것 같아요. 첫째가 발레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워낙 일찍 시켜서 상대적으로 저희 아이가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으려 해요. 늦더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열심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 살다보면 정작 ‘나’ 자신에게 소홀해질 때도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이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역할들을 분리하지 않고 모두 하나라고 여겨요. 이런 마인드로 생활하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엄마로서 마음에 안 드는 날에는 일을 열심히 해서 사회적 역할을 잘 해는 나에게 만족감을 느껴요. 친구로서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한 날에는 엄마로서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거고요. 힘든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아도 강도와 레벨은 매일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고요. 이 고비를 겪고 나면 분명 스스로 성장하게 되고요. 

살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건 뭔가요.

사람과의 관계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될 때가 많아요. 걱정거리는 끊이지 않고 주위 상황에 상처받기 일쑤죠. 그럴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응원하는 시간을 보내면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되고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순 없잖아요. 많은 이의 기대와 생각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요. 저는 삶의 기준을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 같아요. 그들이 제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주변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니 삶의 질도 올라갔어요. 작은 일에도 행복과 감사를 느끼게 됐고요. 

#김민지 #박지성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김민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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