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리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이지혜 작곡가 겸 지휘자의 지휘 모습.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와 ‘빌보드’ 매거진, ‘그래미닷컴’ ‘뮤지카 재즈’ 등 전 세계의 글로벌 매거진부터 재즈 음악 전문지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찬사가 쏟아졌고, 링컨센터 재즈, 카네기홀의 NYO 재즈, 국립극장, 브라질 C6 페스티벌, 프랑크푸르트 hr-빅밴드 등 유수의 공연장에 그의 작품이 울려 퍼졌다. 지난 2월 27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두 번째 최우수 재즈-연주 음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3월 봄기운이 든 어느 날 시상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지혜 작곡가를 만났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상식 소감부터 재즈 작곡가로 성장한 과정, 앨범으로 그려낸 삶의 면면까지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늘 새로운 시도를 펼쳐온 그의 다음 계획도 흥미롭다. ‘K-팝’을 테마로 한 재즈 앨범이라는 차기작, 처음 공개하는 뮤지컬 데뷔 소식까지. “결국 지나보면 다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먼저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최우수 재즈-연주 음반 부문에서 영광스러운 수상을 하게 됐어요. 지난번엔 뉴욕에서 일정이 있어 시상식에 직접 오지 못했는데, 이번엔 현장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동료 재즈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평소엔 만나지 못했을 한국 타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한자리에 모여 축하와 영감을 주고받으니 정말 축제 같았어요.
미국으로 떠나 재즈 오케스트라를 이끌기까지
예전에는 한국에서 활동했는데 언제 미국으로 떠났나요.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는데, 2011년 첫 정규 앨범을 내고 한 달 뒤에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지금 돌아보면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에서 ‘싱어’보다는 ‘송 라이터’로서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작곡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 발전 속도에 만족을 못 했고, 그 갈급함을 채워줄 방법을 찾아서 뭔가에 홀린 듯 미국으로 향했죠. 사실 그땐 이렇게 오래 해외에서 지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 2년 정도 거기서 공부하고 오면 보다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간 거죠. 그때 나이 20대 후반에 안정적인 수입도 있었고, 꼭 유학을 가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걸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생각을 많이 할수록 움직임이 무거워지잖아요.
정작 버클리 음대에 입학한 뒤에는 재즈 작곡으로 두각을 드러냈어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 재즈 작곡을 전공하게 된 건 그다지 멋진 이유 때문이 아니었어요. 버클리 음대에 있는 작곡 관련 전공들 가운데 처음에는 싱어송라이터 전공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수업에선 가사가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 거예요. 제 영어는 당시 커피 주문을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사를 쓰는 건 도저히 무리였죠. 그래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다가 재즈 작곡에 발을 들였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학교의 재즈 작곡 부문 최고상인 ‘듀크 엘링턴 어워드’를 두 번 연속 수상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저도 재미를 느꼈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죠.
빅밴드라는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빅밴드라는 아트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재즈 작곡을 공부하게 되면, 처음엔 악기 하나부터 시작해서 악기 3개와 리듬 섹션, 이런 식으로 점차 다루는 악기 수가 늘어나거든요. 결국 17명의 연주자들로 이뤄진 빅밴드 곡을 쓰는 것이 최종 단계가 되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재즈에서 가장 다채로운 악기와 화성을 다루고 그 안에서 조화를 만들어내는 빅밴드라는 아트폼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재즈 작곡가 이지혜
재즈 빅밴드는 미국에서 발생한 아트폼이에요. 클래식 음악에서 말하는 우드윈드 앙상블과도 비슷하죠. 피아노와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리듬 섹션과 색소폰 5명, 트럼펫 4명, 테너 트롬본 4명으로 구성된 혼 섹션(관악기 그룹)이 합쳐진 17명 구성이에요. 가장 많은 인원수가 참여하는 재즈 장르인 만큼 연주자들이 주는 에너지가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클래식의 심포니가 스트링 위주라면 재즈 빅밴드는 관악기 비중이 커서 엄청난 음압을 자랑해요. 섬세한 강약 조절로 빚어내는 다이내믹과 다채로운 편곡으로 만들어내는 몰입감이 큰 매력이죠.
공연에서 지휘자 역할도 하는데, 재즈 지휘자라는 게 다소 생소합니다.
재즈는 곧 즉흥 연주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지만 재즈에서도 빅밴드는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어요. 악기 수가 적을수록 개별 연주자들의 자유도가 올라가고, 악기 수가 많아질수록 전체를 구성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중요해져서죠. 그래서 17명이 되면 당연히 작곡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공연을 할 땐 지휘자도 필요합니다. 17명을 위한 악보를 만들고, 솔로이스트들이 정해진 영역 안에서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죠. 전체를 조망하며 각 파트에 대한 디렉션도 줘야 하고요. 곡을 만드는 단계에서는 작곡가, 연습과 리허설 때는 밴드 디렉터, 공연장에서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각 역할은 서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지만 또 개별적인 영역도 존재해요.
17명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이기도 하네요. 리더로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빅밴드에서 작곡가와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재즈 자체가 사실 연주자들의 역량에 많이 의지해야 하는 장르예요. 그래서 작곡가이자 밴드 리더로서 제가 원하는 방향성을 실현해줄 연주자를 데려오는 것부터가 곡 작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청순미가 매력인 사람을 데려와서 왜 카리스마 있게 못 하냐고 하면 안 되잖아요. 이건 일반 회사나 다른 집단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알아보고 배치하는 것이 리더의 일이죠. 즉, 리더라면 인재를 보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혜리 오케스트라 2집 ‘Daring Mind(2021)’(왼쪽), 3집 ‘Infinite Connection(2024)’
“뉴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다”
미국 재즈 신의 중심인 뉴욕에서 활동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보스턴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맨해튼 음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뉴욕으로 갔어요. 그때는 재즈를 한다면 당연히 뉴욕에 가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뉴욕살이가 결코 쉽진 않았어요. 처음 3년 동안은 뉴욕이 정말 싫었고, 대학 시절을 많이 그리워했죠. 버클리가 온실 같은 환경이었다면, 뉴욕은 말 그대로 정글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재즈의 메카니까요. 아무리 제가 이곳 사람들이나 지하철, 길거리가 맘에 안 들더라도, 이곳이 재즈를 하는 멋진 사람들이 모인 도시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영감으로 가득한 도시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있죠. 고생은 할지언정 그 안에서 얻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처음엔 웬 아시아 여자가 자기 밴드에서 연주를 해달라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연주자도 있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증명하면서 서서히 이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훌륭한 연주자분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키워갈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이제는 재즈 빅밴드라는 아트폼을 사랑하는 끈끈한 네트워크 안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고 생각해요.
2021년 작 ‘Daring Mind’에는 그 과정이 담긴 듯해요. ‘분투하는 뉴욕의 청년 음악가’랄까요.
정말 많은 사람이 꿈을 가지고 뉴욕에 찾아오고 또 떠나가요. 그만큼 자리 잡고 정을 붙이기 쉽지 않은 도시지만, 또 너무나도 매력적인 도시죠. 저는 “뉴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아무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공연을 보면서 그 도시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서요. 또 사실 빅밴드라는 건 20세기 초중반이 전성기였던 아주 오래된 아트폼이에요. 현세대 뉴욕의 컨템퍼러리 작곡가들은 그 안에 어떻게 우리의 삶을 녹여내 동시대 음악으로 재해석하느냐를 고심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제가 겪은 뉴욕의 삶을 재즈 빅밴드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해요.
세 번째 앨범 ‘Infinite Connections’는 전작과 전혀 다른 정서를 담고 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뉴욕에서 지내며 오히려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깨닫고 또 깨닫게 됐어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나는 엄마의 딸이고,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고…’ 이렇게 조상에 대한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러고 얼마 후에는 엄마가 큰 병을 앓기 시작했고요. 한국 여성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죠. 어쩌면 한스러운 삶을 보낸 그들의 희생으로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동시에 ‘다음 세대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앨범의 타이틀도 결국에 ‘나란 존재는 선조들로부터 나의 다음 세대까지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그러한 정서를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했나요.
저 개인의 역사, 나아가 한국 여성의 역사 안에서 뿌리가 되는 음악은 ‘우리 할머니의 음악 혹은 할머니의 할머니의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뉴욕의 동료 음악가들은 전부 할머니가 스윙 재즈를 들었다고 해요. 근데 저희 할머니는 민요를 듣고 트로트를 들었잖아요. 그러면 저는 재즈를 하더라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재즈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죠. 그런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게 됐고, 결국 국악과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빅밴드 재즈를 연결하게 됐죠. 그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저는 국악에서 가장 강력한 게 장단, 즉 리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9개의 수록곡에 각기 다른 국악 장단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재즈와 국악을 접목하게 됐죠.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앨범에 어떻게 담겼는지도 궁금합니다.
수록곡 중 ‘Born In 1935’는 외할머니에 대한 노래예요. 할머니는 1935년에 태어나서 일제강점기에 고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6세에 결혼해 겨울이면 짚신을 신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나무를 하며 시집살이를 하셨대요. 그리고 6·25전쟁을 겪고, 한강의 기적을 보고, 천지개벽하는 한국을 목격하셨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변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점차 빨라지는 몰아가기 기법으로 영남 사물놀이의 길군악 장단을 썼어요.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병을 얻었는데요. 그때 힘겨운 삶의 굴곡 뒤에 이제야 평화로울 수도 있었던 어머니가 맞이한 운명, ‘팔자’에 대한 분노와 혼란이 몰아쳤죠. 국악에 ‘칠채장단’이라는 게 있는데, 일반적인 정박이 아닌 홀수박자 변박이 들어가요. 재즈에서 오드미터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데, 칠채장단의 변박이 주는 불안정성이 그 혼돈을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의 한스러운 팔자를 이야기하는 ‘Eight Letters’라는 곡에 칠채장단을 사용했어요.

한국인 여성의 역사를 담은, 국악과 재즈
유학부터 재즈 작곡, 빅밴드, 새로운 장르의 접목까지 매번 새롭게 도전하는 비결이 있나요.
저는 딱히 특별히 용기를 가져야겠다거나 두려움을 깨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건 아니에요. 그저 매번 그 시점에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택해서 가는 것 같아요. 너무 복잡하게 고민하거나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요. 곡을 쓸 때도 이론이나 계산보다는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려내는 스타일이에요. 두려움, 도전이란 걸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이런 삶의 방식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영역이 있다면요.
심포니(교향악단)를 해보고 싶어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게 꿈이에요. 물론 저는 재즈 작곡가로서 곡을 만드는 거고, 악기 구성이 달라질 뿐인 거죠. 심포니의 현악기 편성은 기존 재즈 빅밴드에는 없는 색깔이거든요. 실제로 요즘 심포니 영상도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영화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제가 곡을 쓰는 방식이 시각적인 감상을 음악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Daring Mind’도 뉴욕이란 도시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결과였죠. 그래서 영화음악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기서 처음 공개하는 건데, 사실 지금 첫 뮤지컬 작품의 초연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계속되는 도전 안에서 새롭게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요.
‘결국 지나보면 다 의미가 있다’는 걸 요즘 많이 느껴요. 제가 싱어송라이터로 노래를 하면서 20대를 보냈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재즈 작곡을 하며 ‘어차피 이렇게 될 거 그때 왜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했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멜로디 메이킹을 할 때 그 경험이 너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빅밴드 작곡법을 배웠기 때문에 오케스트레이션도 가능해졌죠. 결국 뭐든 열심히 해두면 나중에는 그 의미를 찾게 된다고 생각해요.
“음반은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다음 앨범에는 어떤 삶이 기록될까요.
이번엔 좀 더 편안하고 쉬운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난 앨범에 힘든 이야기들이 담긴 건, 그동안 제가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좀 더 쉽고 편한 것을 생각하고 싶어졌어요. 만들 때도 순수하게 즐겁고, 들었을 때도 편하고 기분 좋은 음악이요. 저번 앨범이 조상들의 음악을 연구하며 제 뿌리를 찾아가는 작품이었다면, 다음 앨범은 10대 시절 저를 위로해줬던 음악을 되돌아보는 작품이 될 거예요. 그래서 주제는 ‘K-팝’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어릴 때 듣던 K-팝이니까 지금의 K-팝과는 조금 다르겠지만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아무래도 좀 더 많은 동시대 대중에게 공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요. 아직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무척 어려웠던 국악과의 접목도 결국 방법을 찾았듯, 이번에도 답을 찾아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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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상윤
사진제공 강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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