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오후 7시 하루 두 번 공식 몰에서 판매하는 성시경의 경탁주.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오후 3시에 이미 품절이 됐다.
주류업체 관계자 박 모 씨의 하소연이다. 상품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그는 요즘 특히 사람을 찾느라 바쁘다. 그가 찾는 사람은 모델이 아니라 술을 같이 만들 사람이다. 박 씨는 “과거에는 스타 인지도에 기댄 특색 없는 제품들이 우후죽순 나왔는데, 요즘 나오는 술들은 마셔보니 맛도 제법 수준급이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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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기 홈술과 혼술이 유행한 이후 편의점마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술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대부분 ‘누가 만든 술’이라고 내세운다. 제품을 구매할 때 유명인의 취향을 따라 하는 ‘디토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를 뜻하는 디토(ditto) 소비는 나와 비슷한 취향의 유명인이 먼저 써보고 만족하는 제품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누가’가 중요하고,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수록 소비자에게 믿음을 준다.
스타 업고 힙해진 전통주, 세계로 훨훨
소유가 만든 ‘쏘위스키하이볼’과 ‘쏘고량주하이볼’은 ‘3제로’(퓨린·당류·주정) 콘셉트를 내세웠다.
다이어트 때문에 소주에서 하이볼로 갈아탔다고 꾸준히 밝힌 애주가 소유는 시중의 높은 당류와 낮은 도수 하이볼에 만족하지 못해 직접 제작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7월 주식회사 쏘앤유를 설립해 당류·주정 제로를 내세운 ‘쏘위스키하이볼’과 ‘쏘고량주하이볼’을 내놓았다. 함께한 편의점 측에선 현재 하이볼 시장 트렌드를 고려해 도수가 낮은 4도 제품을 제안했지만, 소유가 제품의 맛과 특징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해 9도로 출시했다는 후문. 또 평소 싱글몰트 마니아였던 박성웅은 아메리칸 위스키 중 유일하게 국제기준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버지니아 증류소의 위스키에 직접 투자하고, 자신이 직접 테이스팅한 싱글몰트 위스키 ‘버지니아 C&C’를 론칭했다.
지난해는 특히 전통주 출시가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행법상 주류는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한데 전통주는 예외이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전통주는 제조면허 자격을 얻기가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전통주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식품명인이 만든 민속주, 양조장이 지역 특산 면허를 받거나 농업회사법인 소속인 지역특산주 두 종류로 나뉜다. 현재 출시된 스타들의 전통주는 후자에 속한다.
자기 이름의 한 글자를 따 주류 브랜드 ‘경()’을 론칭한 성시경은 지난해 프리미엄 막걸리 ‘경탁주 12도’를 선보였다. 주류 제조 스타트업 제이1농업회사법인이 성시경과 함께 기획해 생산까지 하고, 일부 초과분은 당진의 신평양조장에서 만든다. 경탁주 12도는 국내산 쌀만 사용하며, 쌀 함유량이 46.23%인 고도수 탁주이다.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탁주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병 1세트에 2만8000원으로 저렴하지 않지만 없어서 못 산다.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7시 공식 사이트에서만 판매하며, 주문 1회당 1세트씩만 살 수 있다. 증류식 소주 ‘경소주’도 최근 병 디자인 공모를 마치고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2018년부터 미식 콘텐츠 ‘최자로드’를 진행하며 미식가로 알려진 다이나믹 듀오 멤버 최자는 지난해 10월 프리미엄 복분자주 ‘분자’를 출시했다. 분자는 복분자와 사과만 사용해 만들며 설탕, 인공감미료, 주정, 향료, 색소, 정제수는 넣지 않는다.
평소 전통주에 관심이 많았던 진은 2022년 BTS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과 연을 맺고 술 빚는 법을 배웠다.
‘막케팅’을 해야 살 수 있는 성시경 막걸리, 팝업스토어에 해외 아미들까지 몰린 진의 증류주 등 스타들의 맛있는 도전 덕분에 전통주가 힙한 술로 거듭나고 있다. 전통주 업계에서도 업계 파이를 키우고 세계화할 기회로 반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영세한 업체에서는 홍보비를 많이 들일 수 없는데, 스타가 인위적으로 시장을 넓혀주면 다른 전통주도 덩달아 소비자들에게 노출 빈도가 높아진다”며 “일단 맛을 봐야 다른 술에도 관심이 생기고 제품마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술도 취향의 시대
최자는 본인이 진행하는 ‘최자로드 시즌9’ 게스트 UV 편에서 ‘분자’를 처음 선보였다.
위스키 마니아 박성웅은 “10년 이상 숙성 해야 기본 제품으로 인정을 받는 싱글몰트와 배우 10년 차에 처음 주목받은 내 커리어가 닮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에도 한동안 스타들의 주류 사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술을 즐겁게, 맛있게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술은 기호식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는 추세다. 이영애 교수는 “유명인으로선 자기만의 가치를 투영한 제품을 통해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SNS에 남기면서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도 좋다”며 “무엇보다 국민소득이 올라가거나 생활 표준이 올라가면 소비 표준 자체가 차별성이 있는 아이템을 찾아 서사성이나 진기성에 꽂히게 되기 때문에 시장 전망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전통주 #BTS진 #성시경 #여성동아
사진출처 진, 소유, 최자 인스타그램 경 공식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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