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알던 패키지가 아냐

F1 경기 관람 등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취미를 겨냥한 패키지도 인기 상품 중 하나다.
2030 세대 전체 이용자의 70%를 차지하는 마이리얼트립에서도 패키지여행이 인기다. 2024년 4월 현재, 패키지여행 상품을 검색하는 고객 숫자가 작년 동기 대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패키지여행이 다시 인기를 얻은 배경에 대해 “기존 상품은 자유도가 낮고 여행자가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운 한계점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전보다 프라이빗하고 자유도 높은 상품을 출시하면서 젊은 고객층에게도 매력적으로 인식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정협 인터파크트리플 SIT(Special Interest Travel) 팀장 역시 “개인의 취향이 곧 여행의 중심이 된다”며 “이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여행객들끼리 유기적으로 네트워크화하고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이어 “여행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 경험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가성비보다는 가심비(원하는 가치에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를 중시하는 MZ세대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덕분에 여행업계 전반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증권가는 여행업계 1~2위를 달리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실적 개선의 원인 중 하나로 역시나 MZ세대를 겨냥한 패키지 상품 판매 호조를 꼽는다.
손흥민 경기 직관, 위스키 · 프리다이빙 투어
그렇다면 트렌드에 빠삭하고 눈이 밝은 MZ세대는 어떤 점에서 패키지여행에 끌렸을까?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할 키워드는 ‘세미 패키지’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패키지보다는 느슨하되, 기본적인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규모 인원 구성에 단체 쇼핑을 최소화하고 팁과 옵션을 배제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세미 패키지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여기트래블의 박민성 대표는 “세미 패키지의 미덕은 분명하다. 여행 준비에 들어가는 노력을 최소화하고 현지에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기존의 패키지여행에 비해 자유로운 것”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 경험을 쌓아온 MZ세대는 유명 대도시 대신 남들이 가지 않는 소도시나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여행지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도시를 훑어보기보다는, 한두 도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여유를 즐기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역시 기본적으로 고려되는 요소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이고 쓸모 있게 사용하고 싶은 이들이 주목하는 가치다. 이들이 패키지여행에 주목하는 이유는 2가지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모으고 예약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싶다는 게 첫 번째 이유. 이왕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떠나는 만큼 현지에서의 실패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도 크다. 관광객 사이에서만 유명한 맛집에 가서 2시간씩 웨이팅하거나, 휴무일을 잘못 체크해 낭패를 보는 등의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면 MZ 여행자가 패키지 상품을 본격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구매 유발 키워드는 무엇일까? 크게 3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취향, 경험, 탐험이 바로 그것.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변주되는 키워드는 취향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유명 관광지만 훑는 여행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취미를 여행과 연결하기 시작한 것. 가우디의 건축물을 두루 살피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건축학도부터, 새벽마다 알람을 맞춰가며 응원하던 축구팀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영국으로 목적지를 잡은 축구 팬, 위스키 증류소를 둘러보고 싶은 위스키 덕후 등을 위한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현재 판매되는 프로그램 이외에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상품이 출시될 가능성도 늘 열려 있다. 여행업계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인터파크는 ‘홀릭’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다양한 취향과 취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테마 여행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남과는 다른, 나만의 여행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싶은 이들의 수요도 존재한다. 여행 인플루언서와 함께 떠나는 패키지나, 여행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북 토크에 참여하는 식이다. 하나투어가 여행 커뮤니티 ‘여행에미치다’와 손잡고 기획한 ‘밍글링 투어’가 좋은 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여행 가이드와 달리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호스트가 주관한다는 점. 프리다이빙 프로그램에는 전문 다이버가, 위스키 투어에는 위스키 강사가 참여해 출발 전 오리엔테이션부터 귀국 후 뒤풀이까지 전 과정을 리드한다고.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모두투어가 여행 크리에이터 청춘유리와 손잡고 기획한 홍콩 여행 상품은 최고급 부티크 호텔 숙박이 포함돼 있어 1박에 1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완판됐다. 대기 예약까지 몰렸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강연을 듣는 하나투어의 패키지 역시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시선으로 제주도를 바라보는 경험’에 주목한 팬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탐험’에 주목하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안전이나 소통 등에 약간의 우려가 있지만, 가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을 때 패키지여행이 좋은 대안이 된다. 하나투어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대비 2003년 인도로 떠난 여행객은 2.7배, 아프리카로 떠난 인원은 2.2배 늘었다. ‘끼리끼리’도 MZ 픽 패키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기존의 패키지여행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만큼, 어색하게 그들의 여행에 끼어들기보다는 ‘쿵짝’이 맞는 또래끼리의 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친구들이나 동호회 회원으로 멤버를 구성한 후 DIY식 맞춤 여행 패키지를 커스텀하기도 한다.
취미 생활, 어디까지 가봤니?

전문가와 함께하는 취향 투어 상품은 매진 행렬을 이어갈 만큼 인기가 높다.
인터파크 ‘홀릭’에서는 아예 ‘월드런 홀릭’이라는 카테고리를 별도로 생성했을 만큼, 해외 도시를 달리고 싶은 러너들의 열기가 뜨겁다. 6월에 예정된 라구나 푸껫 마라톤과 7월에 호주에서 열리는 골드코스트 마라톤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고, 시드니와 대만도 각각 판매 중이다. 다낭에서 열린 마라톤 투어에 참가한 최 모 씨는 홈페이지 리뷰를 통해 “투어뿐만 아니라 마라톤 준비에도 손색이 없는 일정”이라며 “마라톤 전날에는 웜업 러닝을, 마라톤 다음 날에는 리커버리 러닝을 함께할 수 있어 만족했다”고 감상을 공유했다.
내가 즐기는 스포츠를 전문가와 함께, 유명 스폿에서 즐기는 꿈같은 일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인터파크 홀릭은 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김자인 선수와 함께 클라이밍 성지로 불리는 태국 남부 휴양지 크라비로 떠나는 여행 상품을 전개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여행자는 “누구나 레전드 선수와 함께 해당 종목을 해보는 꿈이 있을 것”이라며 “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또다시 비슷한 기회가 생긴다면 역시나 참가하고 싶다”고 전했다.
거실 대신 경기장에서, TV 말고 맨눈으로! 직관 투어

여행사는 야구 · 축구 경기 직관 패키지 프로그램, 마라톤 투어 등 ‘취미러’를 저격한 여행상품을 출시한다.
야구팬들도 취미를 찾아 떠나는 해외여행에 속속 합류 중이다. KBO 최고의 타자로 불리던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은 물론, 현존하는 최고의 야구선수로 불리는 오타니 쇼헤이까지. 슈퍼스타들이 모두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서 뛰고 있는 덕분에 여행이 더욱 용이해졌다. 모두투어는 메이저리그 야구팬을 겨냥해 ‘전문가와 함께 떠나는 메이저리그 직관 상품’을 출시했는데, 론칭 3일 만에 매진돼 인기를 입증했다. 야구팬 이은재 씨도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선수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 씨는 “키움 히어로즈 팬이라 김하성 선수와 이정후 선수를 모두 응원하고 있는데, 이정후 선수 진출 첫해인 만큼 샌프란시스코를 찾아 직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휴가 일정상 하반기에나 가능한 상황이라서 패키지 상품이 더 출시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미국 프로농구나 테니스, 골프도 직관 상품이 꾸준히 인기다. 특히 테니스의 경우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윔블던부터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롤랑가로스, US오픈을 ‘도장 깨기’ 하겠다는 수요도 있을 정도. 최근 모터스포츠 F1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싱가포르 그랑프리나 일본 그랑프리 등 아시아권에서 열리는 F1 경기에 참여하는 패키지여행도 등장했다.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

도심이나 유명 관광지에 비해 여행 정보가 부족한 대자연으로의 여행은 특히 패키지 수요가 높다.
서울 하늘에서는 찾기 힘든 별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몽골의 푸른 초원에 누워 새카만 밤하늘 위로 수없이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은하수원정대’ 패키지와 함께라면 가능하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몽골에 다녀온 참가자는 “첫날부터 운이 좋았는지 정말로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은하수와 별똥별을 바라보면서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금강산도 식후경, 식도락도 어엿한 트렌드

요리도 맛보고 관련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식도락 여행은 ‘맛잘알’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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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조지윤 기자
사진출처 모두투어 여행에미치다 인터파크 마이리얼트립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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