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입학식, 혹은 생일 때나 돼야 입술에 검은 자장 잔뜩 묻히며 먹을 수 있었던 자장면.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장면 한 그릇을 내건 일이라면 죽을 힘을 다해 했을 만큼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라면이 지겹다고 투덜거리는 아들에게 비상금으로 사주신 자장면, 그 자장면이 싫다며 마다하셨던 어머니… god ‘어머님께’라는 노래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저마다 자장면에 얽힌 애잔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자장면을 좋아하고,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많다. 누군가 중국집 맛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자장면부터 먹어보라고 했던가. 자장면에 얽힌 추억을 새록새록 새기면서 맛있는 자장면 먹기에 임하려 한다.
중식당 티원(서울역 02-392-0985)은 플라자호텔에서 운영하는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이다. 탕수육, 유린기, 유산슬, 양장피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일품요리도 유명하지만, 중식당의 정석이자 기본인 자장면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각종 채소의 아삭함, 해물의 깊은 맛, 자장소스 특유의 맛이 어우러진 삼선자장면은 면과 소스가 따로 담겨 나온다. 탱탱하게 잘 삶은 면에 자장소스를 부어 비비기 시작! 면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잘 비벼지지 않고 소스가 잘 배지 않는데, 면이 제대로 삶아져 원래 한 몸인 것처럼 골고루 비벼진다. 자장면을 먹을 때 간혹 느끼는 불만 중 하나가 소스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 이곳 자장면은 자장소스가 넉넉하고 신선한 재료의 질감이 살아 있어 맛의 감동이 두 배다. 특히 볶은 양파에서 나오는 자연 단맛이 식욕을 돋워 먹으면서도 또 먹고 싶은 맛이랄까. 이곳에서는 색다른 자장면도 맛볼 수 있는데, 티원에서 개발한 미소자장면이 그것이다. 오묘하고 신선한 맛으로 여태까지 먹어본 자장면과는 확실히 다르다. 된장의 구수한 맛과 볶은 각종 채소의 맛이 잘 어우러지고, 산뜻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기본 자장면보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이에게 강추! 모던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화려한 불쇼를 볼 수 있는 오픈 키친으로 구성된 공간은 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전해준다.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부영각(02-716-2413)은 화교가 운영하는 3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중국집이다. 내부는 여느 중국집과 다를 게 없지만, 음식 맛을 보면 그 내공에 무릎을 꿇게 된다. 향신료 맛이 강하지 않고, 자장 특유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매력적이다. 이곳의 자장면 한 그릇은 미각의 즐거움뿐 아니라 정겨운 옛 추억까지 떠올리게 한다. 자장면을 담은 낡은 그릇에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곳 자장면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수타면. 화교 출신 주방장이 직접 만든 수타면은 씹을수록 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중국집에서 가장 맛있어야 하는 음식은 당연히 ‘자장면’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4월 14일 짝 없는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각인된 자장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허리케인 같은 매력을 지닌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정신적 외로움뿐 아니라 미각의 허전함도 달래보길. 단언하건데, 맛있는 자장면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홍석천씨는… 각종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이자 이태원 마이타이를 비롯해 마이첼시, 마이차이나 등을 성공시킨 레스토랑 오너다. 미식가로 소문난 그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맛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가 좋은 베스트 맛집을 매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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