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미감을 끌어올리는 공간을 찾아갑니다. 트렌드는 물론 고유성과 정체성을 갖춘 디자인부터 음식, 공간 속 숨은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보고, 듣고, 먹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낮고 작은 건물이 즐비한 서울 중구 소공로, 높은 붉은벽돌 건물 위에 반듯한 상호가 눈에 띈다. 한국 전통 표구를 사사한 젊은 장인 최나영 대표가 운영하는 액자 숍 모리함이다.
따스한 목재 바닥과 커다란 책상, 나무와 한지 등 각종 재료가 가득한 이곳에는 누군가의 물건이 담긴 액자가 벽에 걸려 있다. 사진부터 독특한 오브제, 식재료, 금메달, 의자까지 물건의 종류와 크기에 제약을 두지 않은 모습이다.
모리함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액자도 직원도 아니다. 빽빽이 모여 있는 원목들 사이에서 새어나온 은은한 나무 향이다. 액자 프레임으로 사용하는 원목의 향이 진한 농도로 공간 가득 배어 있다. 공간 한편에는 액자화를 기다리는 물건들이 줄지어 있다. 햇빛이 쏟아지는 책상에서는 최나영 대표와 직원들이 종이나 헝겊 등을 겹쳐 붙이기 위한 배적과 표구 작업을 진행한다.
지난 5년간 모리함을 운영해온 최나영 대표는 전통 표구 기법을 사사하기 위해, 10년간 오가던 판교 출근길을 인사동으로 틀었다. IT 최강 기업에서 일하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표구사를 전전하며 표구를 배웠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알맞은 속도를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2019년 ‘마음으로 그리는 소중한 기억(me‘mory’)과 이야기들을 담다’라는 의미를 지닌 모리함을 열었다.
모리함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원래는 카카오에서 ‘선물하기’ 상품기획자로 일했어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야 했죠.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일’이라는 핑계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산 거 같았어요.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치면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후 쉬면서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는데 30년이 지난 진주 목걸이가 눈에 띄더라고요. 엄마의 살결이 닿았던 이 목걸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고, 어떻게든 오래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 방법과 형태를 고민하다 ‘액자’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게 모리함의 시작이었죠.
액자 제작은 ‘표구 기술’이라는 한국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요.
모리함은 한국의 전통 표구(장황(粧潢) 또는 배첩(褙貼))를 연구하고 제작해요. 서화(글과 그림), 소장품, 추억이 깃든 물건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작업하죠. 한국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아요. 우연히 프랑스 파리의 150년 된 액자 숍에 가서 작품을 보는데, 서울에서는 당연히 한국적인 것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은 다르지만 익숙하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하잖아요. 더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표구 기술 습득을 위한 전문 교육 과정도 있나요.
아니요. 표구 기술은 장기간의 실습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통 장인에게 사사하는 형식으로 전해져요. 저는 좀 더 전통과 정통성에 집중하고 싶어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자격증은 실기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면 딸 수 있어요. 자격증을 소지하면 전통 표구 기술을 이용한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작업에 참여할 수 있죠.
표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물건만으로도 과거 추억을 기억할 수 있잖아요.
표구는 ‘정성’이에요. 표구라는 과정을 거치면 물건에 깃든 추억과 기억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물건을 어딘가에 툭 올려두는 것과 의미 있는 공간에 정성껏 두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잖아요. 또 표구는 물건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건에 담긴 감정과 사연까지 액자에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액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나요.
먼저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펼쳐놓고 대화를 나눠요. 물건에 담긴 사연과 역사, 걸어둘 공간에 관해 이야기하죠. 물건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공간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나서 물건의 크기나 부피에 맞는 나무틀을 수급하는데, 이 시간에 따라 제작 기간이 달라져요. 나무틀 수급이 어려우면 제작 기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 후 원단 재질, 부자재 고르는 과정을 거쳐 액자가 완성됩니다. 보통 3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가격은 3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예요. 액자의 소재나 디자인에 따라 금액은 유동적으로 변하고요.
모리함은 ‘전통’에 기반한 브랜드예요. 인식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은 따분한 것으로 느끼는 이들이 많죠. 이 같은 인식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숭례문과 흥인지문 주변에 상권이 형성돼 있거나, 경복궁 야간 개장처럼 색다른 방법으로 전통 고궁을 경험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요. 이처럼 전통문화나 전통예술이 현대 생활과 조화를 이루면 전통은 따분한 것이 아닌, 우리 삶에 풍부한 가치와 고유의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인식이 생길 거라 확신합니다. 모리함은 표구 기술과 한지, 모시 같은 전통 재료를 꾸준히 사용하지만, 액자에 담기는 물건은 결코 전통적인 것만이 아니에요. 유행하는 운동화, 의류, 장난감 등 트렌디한 것도 많아요. 전통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트렌디한 물건을 액자화하며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사용하는 재료 역시 시대에 맞게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아담한 작업실에서 전시관까지 갖춘 멋진 공간에 정착했어요.
3년 전까지만 해도 한남동 12평(약 40㎡)짜리 공간에서 혼자 작업했어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주 업무였고, 대화를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죠. 그러다 보니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일해도 작업 속도가 더뎠죠. 소중한 기억을 최대한 빨리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에만 매달렸고, 2년 후에는 팀원도 뽑고 공간도 넓혔습니다.
이 공간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요.
손님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려면 매장 분위기가 안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자리를 물색했고, 이 공간을 보고는 냉큼 계약했습니다. 원래는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특송 서비스업체 자리였대요. 코로나19 여파로 공실이 된 지 오래됐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여기저기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막혀 있던 창을 트니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공간이 됐어요. 또 차를 이용해 액자를 가져가는 분들이 많으니 주차 공간도 확보하고, 모리함에 들어서자마자 의뢰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벽도 만들었습니다. 마치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거든요.
모리함의 콘셉트는 명확하지만 대중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 물건을 콘텐츠화하니까요. 다양한 연령대가 접근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SNS 핫플이 됐어요.
어떻게들 알고 오시는지, 저도 신기해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빈 가게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시간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감이 커지자 마인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끌어오자’라고요. 먼저 문을 활짝 열고 지나가는 분들에게 들어오시라고 말을 건넸어요. 물론 사양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럴 땐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라고 더욱 밝게 인사했어요. 숍으로 들어오는 분들께는 모리함의 콘셉트와 전시된 액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어요. 돌아가실 때는 명함을 드리면서 “주변에 딱 두 분한테만 소문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죠. 당시 운이 좋았던 게, 숍 골목 끝에 제일기획이 있었어요. 제일기획에 다니는 젊은 직원 중 모리함을 다녀가신 분들이 SNS에 업로드해주셨거든요. 그런 식으로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어난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어떤 분인가요.
최근 방문한,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손님이요. 어머님의 어릴 적 흑백사진부터 아버님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뒤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때 사진들을 시간 순서대로 액자에 담고 싶다고 하셨죠. 손님에게 3주 후 픽업이라고 안내한 뒤 “어머님과 데이트하듯 나오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조금 편찮으셔서 컨디션 괜찮으면 함께 올게요”라고 하셨어요. 픽업 날, 액자를 받으러 의뢰인과 여동생분만 오셨더라고요. 그사이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거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액자를 조금만 더 빨리 제작했으면 어머님도 보셨을 테니까요. 그날 머릿속에는 손님과 액자에 담긴 어머님의 모습으로 가득 찼죠. 지금도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에요. 부디 가족들이 액자를 통해 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모리함에 작업을 의뢰한 유명인도 많다고 들었어요.
이하늬 씨와 홍진경 씨 등은 개인 소장품을,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와 양궁 김우진 선수 등은 금메달을 의뢰하셨어요. 삼성이나 CJ 등 대기업 인사들의 소장품도 주기적으로 작업하고 있고요.
고가의 물건은 더욱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값을 떠나 어떤 물건이건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어요. 면장갑은 필수고, 미끄러지는 소재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작업하죠. 또 깨지기 쉽거나 연약한 것들은 유난히 더 조심하는 편이에요. 억 원대를 호가하는 물건은 상담실 뒤쪽에 있는 금고에 보관하고요.
독특한 물건을 액자화한 작업물도 많은 것 같아요.
전복 껍데기, 황태, 메모지 등 종류 불문 다양해요. 부피가 큰 의자나 선반 같은 경우는 액자에 담기 어려우니 분해해서 도면처럼 보이게 제작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물건도 어떤 이에게는 평생 소장할 만한 귀중품이 되는 거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주 업무예요. 감정 소모도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요. 원래 드라마나 영화에 감정 이입을 잘하고,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에 관심이 많거든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체력이에요. 손님들과 대화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작업도 직접 해야 하거든요. 잠 한숨 못 자고 작업만 하는 날도 있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그래서 올해 목표를 ‘열심히 운동하기’로 세웠는데 아직 한 번도 실행하진 못했네요(웃음).
2~3층은 전시 공간이에요. 주로 어떤 전시가 이뤄지나요.
누군가의 일생을 전시하고 있어요. 돌, 결혼, 환갑, 칠순 등 대표적인 의례뿐만 아니라 반평생 취미로 가진 무엇인가를 전시하죠.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나 생일잔치, 비즈니스를 위한 포럼 장소로도 활용하고요. 모리함이 추구하는 전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기록입니다. 2년 전에 의뢰인의 환갑 전시회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의뢰인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액자, 노래 등으로 표현했죠. 일생을 살면서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을 확장해 시각은 물론 청각, 후각까지 즐기게 해주는 공간으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전시는 대표님 어머님의 장례식이었죠.
맞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슬픔을 잊기 위해 유품을 태우고 정리하기 바빴어요. 시간이 지나니 슬픔이 희미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어느 날 엄마가 자주 했던 머리핀이 보고 싶은 거예요.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좋아했던 옷을 입어보고 싶고요. 사실 한동안 우리 가족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암묵적 금기어였어요. “엄마”라고 입 밖에 내뱉는 순간 눈물부터 났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엄마 이야기를 안 하면 누가 엄마를 기억해주나 싶은 거예요. 죽음은 누구나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동안 너무 슬픔이라는 감정에만 빠져 있었죠. 엄마의 죽음을 좀 더 의미 있게 기록해보고 싶어 고민 끝에 ‘장례식’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후, 방문하신 분들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머님을 직접 봤다는 생각이 왜 들지?” “어머님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요”였어요. 전시된 어머니의 물건과 생전 좋아했던 노래, 음식 등을 보며 마치 어머님을 실제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죠. 전시회를 통해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가장 화제가 된 건 돌잔치 전시회였어요.
한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라는 존재가 필요해요. 그 부모 위에는 조부모가 있고요. 아이를 시작으로 부모, 조부모까지의 역사를 전시하며 응원과 축하를 보내는 것이 주제였어요. 3월에는 고희연 전시가 예정돼 있어요. 주인공은 저희 시아버님이에요. 큰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던 추억과 삶을 기념하고 칠순을 축하하는 의미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요.
일생의 특별한 순간을 하나씩은 해보고 싶어요. 아기 돌, 장례식, 고희연을 했으니 다음에는 결혼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좋을 것 같아요. 직원들과는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전현무 씨의 그림을 모은 ‘무스키아’ 개인전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또 파워 E(외향형)들의 삶을 보여주는 ‘관종력’ 전시회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모리함 #액자 #표구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모리함
지난 5년간 모리함을 운영해온 최나영 대표는 전통 표구 기법을 사사하기 위해, 10년간 오가던 판교 출근길을 인사동으로 틀었다. IT 최강 기업에서 일하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표구사를 전전하며 표구를 배웠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알맞은 속도를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2019년 ‘마음으로 그리는 소중한 기억(me‘mory’)과 이야기들을 담다’라는 의미를 지닌 모리함을 열었다.
물건의 감정과 사연까지 표구한 액자
원래는 카카오에서 ‘선물하기’ 상품기획자로 일했어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야 했죠.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일’이라는 핑계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산 거 같았어요.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치면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후 쉬면서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는데 30년이 지난 진주 목걸이가 눈에 띄더라고요. 엄마의 살결이 닿았던 이 목걸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고, 어떻게든 오래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 방법과 형태를 고민하다 ‘액자’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게 모리함의 시작이었죠.
액자 제작은 ‘표구 기술’이라는 한국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요.
모리함은 한국의 전통 표구(장황(粧潢) 또는 배첩(褙貼))를 연구하고 제작해요. 서화(글과 그림), 소장품, 추억이 깃든 물건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작업하죠. 한국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아요. 우연히 프랑스 파리의 150년 된 액자 숍에 가서 작품을 보는데, 서울에서는 당연히 한국적인 것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은 다르지만 익숙하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하잖아요. 더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표구 기술 습득을 위한 전문 교육 과정도 있나요.
아니요. 표구 기술은 장기간의 실습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통 장인에게 사사하는 형식으로 전해져요. 저는 좀 더 전통과 정통성에 집중하고 싶어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자격증은 실기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면 딸 수 있어요. 자격증을 소지하면 전통 표구 기술을 이용한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작업에 참여할 수 있죠.
모리함 최나영 대표.
표구는 ‘정성’이에요. 표구라는 과정을 거치면 물건에 깃든 추억과 기억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물건을 어딘가에 툭 올려두는 것과 의미 있는 공간에 정성껏 두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잖아요. 또 표구는 물건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건에 담긴 감정과 사연까지 액자에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액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나요.
먼저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펼쳐놓고 대화를 나눠요. 물건에 담긴 사연과 역사, 걸어둘 공간에 관해 이야기하죠. 물건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공간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나서 물건의 크기나 부피에 맞는 나무틀을 수급하는데, 이 시간에 따라 제작 기간이 달라져요. 나무틀 수급이 어려우면 제작 기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 후 원단 재질, 부자재 고르는 과정을 거쳐 액자가 완성됩니다. 보통 3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가격은 3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예요. 액자의 소재나 디자인에 따라 금액은 유동적으로 변하고요.
모리함은 ‘전통’에 기반한 브랜드예요. 인식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은 따분한 것으로 느끼는 이들이 많죠. 이 같은 인식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숭례문과 흥인지문 주변에 상권이 형성돼 있거나, 경복궁 야간 개장처럼 색다른 방법으로 전통 고궁을 경험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요. 이처럼 전통문화나 전통예술이 현대 생활과 조화를 이루면 전통은 따분한 것이 아닌, 우리 삶에 풍부한 가치와 고유의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인식이 생길 거라 확신합니다. 모리함은 표구 기술과 한지, 모시 같은 전통 재료를 꾸준히 사용하지만, 액자에 담기는 물건은 결코 전통적인 것만이 아니에요. 유행하는 운동화, 의류, 장난감 등 트렌디한 것도 많아요. 전통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트렌디한 물건을 액자화하며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사용하는 재료 역시 시대에 맞게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연예인, 금메달리스트, 대기업 총수가 단골 손님
3년 전까지만 해도 한남동 12평(약 40㎡)짜리 공간에서 혼자 작업했어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주 업무였고, 대화를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죠. 그러다 보니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일해도 작업 속도가 더뎠죠. 소중한 기억을 최대한 빨리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에만 매달렸고, 2년 후에는 팀원도 뽑고 공간도 넓혔습니다.
이 공간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요.
손님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려면 매장 분위기가 안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자리를 물색했고, 이 공간을 보고는 냉큼 계약했습니다. 원래는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특송 서비스업체 자리였대요. 코로나19 여파로 공실이 된 지 오래됐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여기저기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막혀 있던 창을 트니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공간이 됐어요. 또 차를 이용해 액자를 가져가는 분들이 많으니 주차 공간도 확보하고, 모리함에 들어서자마자 의뢰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벽도 만들었습니다. 마치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거든요.
모리함의 콘셉트는 명확하지만 대중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 물건을 콘텐츠화하니까요. 다양한 연령대가 접근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SNS 핫플이 됐어요.
어떻게들 알고 오시는지, 저도 신기해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빈 가게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시간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감이 커지자 마인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끌어오자’라고요. 먼저 문을 활짝 열고 지나가는 분들에게 들어오시라고 말을 건넸어요. 물론 사양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럴 땐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라고 더욱 밝게 인사했어요. 숍으로 들어오는 분들께는 모리함의 콘셉트와 전시된 액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어요. 돌아가실 때는 명함을 드리면서 “주변에 딱 두 분한테만 소문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죠. 당시 운이 좋았던 게, 숍 골목 끝에 제일기획이 있었어요. 제일기획에 다니는 젊은 직원 중 모리함을 다녀가신 분들이 SNS에 업로드해주셨거든요. 그런 식으로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어난 것 같아요.
햇빛이 쏟아지는 자리에 마련한 큰 책상에서 배적과 표구 작업을 하고 있는 최 대표와 직원들.
최근 방문한,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손님이요. 어머님의 어릴 적 흑백사진부터 아버님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뒤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때 사진들을 시간 순서대로 액자에 담고 싶다고 하셨죠. 손님에게 3주 후 픽업이라고 안내한 뒤 “어머님과 데이트하듯 나오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조금 편찮으셔서 컨디션 괜찮으면 함께 올게요”라고 하셨어요. 픽업 날, 액자를 받으러 의뢰인과 여동생분만 오셨더라고요. 그사이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거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액자를 조금만 더 빨리 제작했으면 어머님도 보셨을 테니까요. 그날 머릿속에는 손님과 액자에 담긴 어머님의 모습으로 가득 찼죠. 지금도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에요. 부디 가족들이 액자를 통해 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모리함에 작업을 의뢰한 유명인도 많다고 들었어요.
이하늬 씨와 홍진경 씨 등은 개인 소장품을,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와 양궁 김우진 선수 등은 금메달을 의뢰하셨어요. 삼성이나 CJ 등 대기업 인사들의 소장품도 주기적으로 작업하고 있고요.
고가의 물건은 더욱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값을 떠나 어떤 물건이건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어요. 면장갑은 필수고, 미끄러지는 소재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작업하죠. 또 깨지기 쉽거나 연약한 것들은 유난히 더 조심하는 편이에요. 억 원대를 호가하는 물건은 상담실 뒤쪽에 있는 금고에 보관하고요.
독특한 물건을 액자화한 작업물도 많은 것 같아요.
전복 껍데기, 황태, 메모지 등 종류 불문 다양해요. 부피가 큰 의자나 선반 같은 경우는 액자에 담기 어려우니 분해해서 도면처럼 보이게 제작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물건도 어떤 이에게는 평생 소장할 만한 귀중품이 되는 거죠.
돌잔치, 환갑, 장례식···일생 의례를 담다
황태, 배냇저고리, 장난감 등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 액자 속에 담겨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요. 원래 드라마나 영화에 감정 이입을 잘하고,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에 관심이 많거든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체력이에요. 손님들과 대화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작업도 직접 해야 하거든요. 잠 한숨 못 자고 작업만 하는 날도 있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그래서 올해 목표를 ‘열심히 운동하기’로 세웠는데 아직 한 번도 실행하진 못했네요(웃음).
2~3층은 전시 공간이에요. 주로 어떤 전시가 이뤄지나요.
누군가의 일생을 전시하고 있어요. 돌, 결혼, 환갑, 칠순 등 대표적인 의례뿐만 아니라 반평생 취미로 가진 무엇인가를 전시하죠.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나 생일잔치, 비즈니스를 위한 포럼 장소로도 활용하고요. 모리함이 추구하는 전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기록입니다. 2년 전에 의뢰인의 환갑 전시회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의뢰인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액자, 노래 등으로 표현했죠. 일생을 살면서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을 확장해 시각은 물론 청각, 후각까지 즐기게 해주는 공간으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리함 2~3층에서 진행한 전시회 ‘장례식’과 ‘돌’.
맞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슬픔을 잊기 위해 유품을 태우고 정리하기 바빴어요. 시간이 지나니 슬픔이 희미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어느 날 엄마가 자주 했던 머리핀이 보고 싶은 거예요.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좋아했던 옷을 입어보고 싶고요. 사실 한동안 우리 가족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암묵적 금기어였어요. “엄마”라고 입 밖에 내뱉는 순간 눈물부터 났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엄마 이야기를 안 하면 누가 엄마를 기억해주나 싶은 거예요. 죽음은 누구나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동안 너무 슬픔이라는 감정에만 빠져 있었죠. 엄마의 죽음을 좀 더 의미 있게 기록해보고 싶어 고민 끝에 ‘장례식’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후, 방문하신 분들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머님을 직접 봤다는 생각이 왜 들지?” “어머님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요”였어요. 전시된 어머니의 물건과 생전 좋아했던 노래, 음식 등을 보며 마치 어머님을 실제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죠. 전시회를 통해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가장 화제가 된 건 돌잔치 전시회였어요.
한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라는 존재가 필요해요. 그 부모 위에는 조부모가 있고요. 아이를 시작으로 부모, 조부모까지의 역사를 전시하며 응원과 축하를 보내는 것이 주제였어요. 3월에는 고희연 전시가 예정돼 있어요. 주인공은 저희 시아버님이에요. 큰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던 추억과 삶을 기념하고 칠순을 축하하는 의미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요.
일생의 특별한 순간을 하나씩은 해보고 싶어요. 아기 돌, 장례식, 고희연을 했으니 다음에는 결혼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좋을 것 같아요. 직원들과는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전현무 씨의 그림을 모은 ‘무스키아’ 개인전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또 파워 E(외향형)들의 삶을 보여주는 ‘관종력’ 전시회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모리함 #액자 #표구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모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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