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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eoul vs Paris vs New York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푸드 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이미령 로랭 달레 | 사진·홍중식 기자

2013. 03. 18

먹기엔 너무 아까운 파스텔톤 마카롱, 달걀흰자와 설탕으로 만들어 입안에서 그대로 녹아버리는 머랭, 파이를 켜켜이 쌓아 올려 ‘천 겹의 잎사귀’라 불리는 밀푀유. 2008년 서울에서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 ‘기욤’은 정통 프렌치 스타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강남구 청담동에 이어 한남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까지 진출한 ‘기욤’의 대표 기욤 디에프반스를 만났다.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기욤 디에프반스(Guillaume Diepvens·36). 우리 부부가 한국행을 결심한 뒤 서울 가면 꼭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로랭과 뉴욕을 떠나면서 그에게 미리 연락을 해두기로 했다. 한국에 가면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자 이틀 만에 흔쾌히 수락의 회신을 받았다. 이메일 답변은 시원시원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호탕하고 직선적인 성격일 거라 짐작했다.
기욤은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그랑데콜(Grande Ecole)을 나와 프랑스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알스톰사에 들어갔다. 기욤이 공부한 에콜 나시오날 쉬페리외르 다아르 제 메티에르(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ts et Me?tiers)라는 엔지니어 전문학교는 1780년 로슈푸코 리앙쿠르 공작(Duke of Rochefoucauld Liancourt)에 의해 설립된 고급 엔지니어 양성 학교다. 1780년 이후 프랑스 기초산업은 물론 첨단 우주항공산업까지 책임질 8만5천 명의 엔지니어를 배출했다. 이처럼 엔지니어로서 전도유망한 삶을 살던 그가 아무 망설임 없이 사표를 내던지고 서울에 눌러앉았다. 알스톰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그의 첫 번째 직장이었고, 첫 부임지가 서울이었다고 한다. KTX 건설 엔지니어로 한국에 왔다가 6년 동안 일하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서울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며 빵집을 경영하는 남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대기업에서 중간관리자로 10년간 일한 로랭이 만 40세를 코앞에 두고 뉴욕에 가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남다른 인생을 선택한 기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서울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빵 맛
기욤과 약속한 날 보슬보슬 겨울비가 내렸다. 일 년에 1백20일 이상 비가 내려 늘 촉촉이 젖어 있는 회색빛 파리 날씨와 흡사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기욤 베이커리에 도착한 순간 파리에 있는 라뒤레(Ladure?e)가 떠올랐다.
라뒤레는 1862년부터 파리에서 고급 과자와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유서 깊은 카페다. 10여 종 이상의 다양한 마카롱, 초콜릿 등 최고급 페이스트리를 선보이는데 우리가 잘 아는 더블 데커 마카롱(Double Decker macaron)도 라뒤레가 원조다. 기욤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머릿속에 파리의 라뒤레가 떠오른 것은 가게 외관이 은은한 분홍빛으로 꾸며져 있는 데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파리지앵의 아파트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욤의 메인 홀에서 계단 몇 개를 올라 파리 아파트의 살라멍제(salle a? manger: 식당)처럼 꾸며져 있는 아늑한 곳에 들어서니 이탈리아산 고급 마호가니 테이블이 놓여 있고 파리지앵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포스터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난 1월, 4주간에 걸쳐 기욤에서 열린 ‘프랑스 베이커리 클럽’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이 행사는 100% 프랑스 정통 베이커리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기욤과 셰프들이 수강생들에게 프랑스 빵 종류 알아보기, 정통 프랑스 디저트 만들기, 크루아상 샌드위치 만들기, 케이크 데커레이션하기 등을 강의했다.
기욤은 캐주얼한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지만 그에 어울리는 나비 넥타이 덕분에 격식을 갖춘 모습이었다. 마른 체격에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날카로운 눈빛 등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치밀하고 빈틈없는 전형적인 프랑스 엔지니어 모습 그대로였다.
“자, 시작할까요?”
우리 앞에 앉자마자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인터뷰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셋이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하자고 했더니 아주 좋다며 경직된 자세를 풀었다.
“알스톰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갑자기 서울에서 빵집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뭐죠?”
예쁜 하트 모양이 표면을 떠도는 기욤의 카페오레를 한 모금 마시며 내가 먼저 물었다.
“알스톰은 제 첫 직장인데 바로 한국 발령이 났어요. 늘 외국에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서울에 왔지요. 그런데 당시 서울에서 제대로 된 빵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바게트가 너무 먹고 싶었죠. 직접 만들어 한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빵 맛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한국에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프랑스로 돌아가자마자 한 달간 속성으로 제빵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도 좋은 직장에 사표를 내고 서울에 정착할 결심을 한 것은 대단한 용기인데요. 원래 모험을 좋아하나요?”
이번엔 로랭이 물었다. 다니던 직장에 안식년 휴가를 내고 뉴욕으로 요리 공부를 하러 갈 때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하던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1 기욤 청담동 매장에서 판매 중인 대표적인 디저트 메뉴 머랭. 이곳에서는 프랑스식으로 머랭그라고 표기한다. 2 초콜릿 맛과 치즈 맛이 어우러지는 티라미수 케이크. 3 나뭇잎 모양으로 데커레이션한 카페오레.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로 한국 여성 잡지를 위해 인터뷰하는 드문 기회를 한껏 즐긴 기욤(왼쪽). 오른쪽은 로랭, 이미령 부부.





“저는 늘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NGO 같은 국제 단체에서 일하겠다는 꿈도 있었고요. 대기업 같은 거대한 영리 조직은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고 평생 월급 받으며 회사에 다니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한국으로 발령 나자 흔쾌히 받아들였죠. 실제로 서울에 살아보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정말 좋았어요. 베이커리 사업을 계획하면서 지독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사표를 냈죠.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기욤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해냈다. 이 대목도 로랭과 비슷하다. 마흔 살이 다 돼 뉴욕으로 요리 공부 하러 간다는 아들을 말리던 시부모님이 생각났다.
“연고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서울에서 빵집을 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렵지 않았나요?”
로랭이 재차 묻자 기욤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땠을 것 같으냐”고 되레 물었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로 고민했다”라고 고백한다. 그 말에 내가 로랭의 대머리를 가리키며 “그래도 고민을 덜했나봐요. 로랭처럼 되진 않았잖아요?”라고 하자 두 사람은 박장대소했다.
웃다 보니 경계심이 사라져 우리는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으로서 기욤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때로는 “이건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라며 조심스러워 하기도 했지만,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로 한국 여성 잡지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드문 기회가 즐거웠는지 두 프랑스 남자의 수다가 끝이 없었다.

절차 중시하는 프랑스, 속성으로 일하는 한국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며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욤은 전형적인 프랑스 엔지니어의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그는 대뜸 문화적 차이라고 대답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인들은 융통성을 가지고 빨리 결정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때문에 분명 시간이 절약되는 면이 있지만, 대신 일의 절차와 디테일에 약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문 나는 부분들은 철저히 배제한 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하죠. 일종의 포르말리떼(formalite?: 형식, 절차)를 이용하는 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과정을 문서화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진행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고 소통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요.”
로랭이 “한국 사람들의 ‘괜찮아, 괜찮아’ 철학?”이라며 기욤을 거들더니 슬쩍 나를 쳐다본다. 이 자리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의식한 것이다. 나는 로랭에게 “한국 사람들이 다 나처럼 ‘괜찮아 괜찮아 스타일’은 아니야” 하며 눈을 흘겼다. 우리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기욤은 “그런 방식이 경우에 따라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어 좋기는 한데, 철저하게 분석한 뒤 절차에 따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도 생기죠. 그런 경우 애초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돼요. 프랑스인들은 흔히 독일인들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두르며 프랑스인들이 좀 더 완벽해야 한다고 자책하는데 한국에서 일해보니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정확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제가 엔지니어여서 어쩔 수 없는 카르테시안(Cartesian: 데카르트주의)이기도 하고요.”
이 말에 로랭이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응수했고, 이후로 두 사람은 한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프랑스인들이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까다롭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데카르트의 회의론이 깔려 있다. 수학적 논리에 강한 프랑스인들의 회의적 태도를 정리해보면,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정보를 대하는 과정, 사실들을 더 작은 단위로 세밀하게 분석하는 과정, 간단한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려는 과정, 그로 인해 확장된 문제들을 분석해 완벽한 목록을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 과정에서 의심하고 문제를 과장한다. 데카르트는 그의 책 ‘성찰’(1641)에서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로만 이루어진 믿음 체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믿음의 진실 여부를 의심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신념, 아이디어, 생각, 중요성 자체가 모두 의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감각적 경험’은 잘못됐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심 많은 프랑스인들의 성향이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욤은 한국인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유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아 윗사람이나 보스에게 복종적인 것은 사실이나 프랑스에서처럼 너무 직접적인 명령어를 사용하면 위아래 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국인들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지시를 내릴 때 그런 면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았지요.”
실제로 프랑스에서 데려온 셰프들과 한국인 스태프들 간의 갈등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프랑스 셰프들은 키친에서 ‘군대식 훈련’을 받아 상하 복종 관계가 무섭게 존중되잖아요. 아래 직원들은 셰프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죠. 또 근무 중 잡담이나 불규칙적인 휴식이 용납되지 않고요. 그런데 한국 직원들은 장시간 근무하는 한편 나름대로 모여서 대화를 나누며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일하면서 잡담도 하고, 일이 끝나면 다 같이 회식을 하거나 한잔하러 몰려가고. 그런 면에서 프랑스 셰프들이 적응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한국어를 전혀 못하니 늘 소외를 당하고요.”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고급스러운 파리지앵의 아파트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기욤 매장 내 식당.



그뒤로 그는 한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 셰프는 고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프랑스 음식 문화를 잘 알고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셰프를 선호하게 됐어요.”
로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보니 베이커리들이 많이 생겼어요. 에릭 케제르(Eric Kayser)나 라뒤레 같은 고급 베이커리도 들어왔죠. 한국인들이 정통 프랑스식 빵과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나 경기는 좋지 않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비즈니스 환경은 어떻다고 보세요?”
기욤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프랑스의 유명 베이커리나 쇼콜라티에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한국에서 프랑스 정통 제과 제빵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제가 처음 기욤을 만들 때만 해도 전통 프랑스식 제과 제빵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알려졌지요. 지금도 기욤의 수제 마카롱이 효자 상품이에요. 한국인도 해외여행과 미식 경험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보고자 하는 욕구가 늘고 있지만 프랑스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 미식, 식도락)가 대중화될 정도는 아니지요.”
기욤은 설명을 계속했다.
“기욤에서도 벨기에 출신의 훌륭한 셰프를 고용해 최고의 프랑스 가스트로노미를 선보였지요.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고급 프랑스 음식이라 해도 너무 생소하면 주문하지 않아요.”

기욤에서 파스타 메뉴를 내놓는 이유
나는 기욤이 실망한 부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맞아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을 외국에 소개할 때 그 음식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마음 놓고 주문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겠죠. 현지인들의 입맛이나 미식 취향을 잘 분석해 그에 걸맞은 음식들을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혹시 기욤에서도 파스타 같은 대중적인 음식을 내놓지 않나요?”
기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프랑스 정통 음식을 내세우지만 메뉴에 파스타 종류를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서양식 음식점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망설였지만 그런 면에서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죠.”
기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파스타가 이탈리아 요리라고 해도 프랑스식으로 조리할 수 있다. 아니, 파스타를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만들어 먹는다고 알려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물어보고 싶은 게 아직 많았지만 로랭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시 후회는 하지 않으세요?”
프랑스 대기업의 매니저로 오래도록 일하며 승진을 거듭하다가 넉넉한 은퇴 연금 받으며 안락하게 사는 삶을 포기한 것이 후회스럽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로랭이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라 기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절대! 저는 한번 결심한 일에 대해선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어차피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요. C’est fait! 그걸로 된 거죠!”
“만일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점을 바꾸고 싶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기욤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한참 턱을 쓰다듬었다.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만일 다시 시작한다면 저는 한국말을 먼저 배우고 사업을 시작할 거예요. 둘째, 제과 제빵 업계에 대해 더 공부한 뒤 이 일에 뛰어들겠어요. 그랬다면 더 잘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로랭과 기욤은 서로 어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느냐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베지테리안이라는 기욤은 부추전, 파전, 호박죽, 수제비, 강정, 순두부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에 비해 로랭은 클래식이다.
“난 불고기, 갈비, 잡채, 비빔밥이 좋은데….”
직접 만난 기욤은 매력적인 프랑스인이었다. 기욤 베이커리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프랑스식 정통 빵과 케이크, 마카롱 등을 선보이기 바란다. 서울에서 파리지앵 베이커리를 경험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펼쳐 들며 축축하게 내려앉은 우수에 찬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꼭 파리에 있는 것 같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기욤 베이커리의 프렌치 스타일 한국 상륙기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다 최근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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