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호르몬으로 시작해서 호르몬으로 끝나요.” 안철우 교수의 고정 멘트다. 그는 각종 매체를 통해 호르몬 건강이 저속 노화의 핵심임을 강조해왔다.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 건강을 잃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호르몬은 다른 영양소들과 달리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분비하는 물질이다. 총 3000여 종으로 이뤄져 있으며, 수많은 장기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면역력 향상, 만성질환·우울증·치매 예방도 모두 호르몬이 관장한다.
호르몬은 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젊었을 때는 호르몬 분비가 활발하고 제 기능도 잘한다. 20세부터 분비량이 서서히 감소하다 40대가 되면 급격히 하강하며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된다. 나이가 들면서 자주 발생하는 만성피로, 불면증, 체중 증가 등의 단순한 미병(未病)도 알고 보면 노화의 신호인 것이다. 안 교수는 “호르몬의 상태에 따라 젊음과 노화가 결정된다”며 노화를 늦추는 핵심 호르몬 ‘4가지’를 지목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EBS ‘명의’, KBS ‘생로병사의 비밀’, 유튜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호르몬 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15분 호르몬 혁명’을 출간했으며, 2017년 펴낸 책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호르몬이 만든다’는 절판 후 독자들의 요청으로 올해 재출간했다.
“넘쳐도 모자라도 문제”
호르몬이 건강하지 않으면 신체는 어떤 반응을 하나요.피곤함과 무력감을 비롯해 급격한 체중 증가, 잔병치레가 늘게 됩니다. 호르몬은 피부, 몸매 등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관장해요. 기쁨, 슬픔, 행복, 우울, 시기, 환호,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은 호르몬 때문이죠.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입니다. 식욕, 성장, 면역력, 감정 조절 등 인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일은 호르몬을 통해 이뤄져요. 하지만 우리는 호르몬에 무관심합니다. 몸에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관심을 보이죠.
건강한 호르몬의 기준이 있나요.
호르몬은 모자라도 넘쳐도 문제예요.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왜소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넘치면 거인증 혹은 말단비대증(신체 말단의 뼈가 과도하게 증식해 손, 발, 코, 턱, 입술 등이 비대해지는 질환)이 생기는데, 심각하면 심혈관 질환이나 대장암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호르몬은 균형이 중요해요. 호르몬이 불협화음을 내면 신체에 균형이 깨지면서 노화를 일으키거든요. 몸속에는 3000여 가지의 호르몬이 있어요. 서로 상관관계가 높으니 균형감이 잘 맞춰져 있어야 해요.
호르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요.
먼저 자신에게 적합한 적정 수치를 찾아내야 해요. 균형을 깨트리는 호르몬이 무엇인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요즘은 피검사를 통해 호르몬 수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또 당시의 상황, 환경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도 있고요. 따라서 검사보다는 스스로 몸의 상태와 증상 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멜라토닌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수면 관리를 하는 거죠. 대부분의 호르몬은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어요.
약, 주사 등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더 빠르게 개선되지 않나요.
생활 습관의 변화로도 해결이 안 되거나, 호르몬의 균형이 심하게 깨졌다면 약이나 주사 등의 치료로 개입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하지만 호르몬은 스스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어요. 보고, 듣고, 먹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그 분비량이 달라지거든요. 또 호르몬은 온도, 습도, 일조량에 따라 상태가 변하고 수치도 하루 중 몇 번이나 바뀌어요. 이러한 부분을 모두 반영해서 약, 주사의 용량 등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호르몬은 언제부터 관리해야 하나요.
통계적으로 대개 20세부터 호르몬이 조금씩 감소한다고 보고돼 있어요.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려면 청년기부터 호르몬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 저하, 심한 피로감, 잔병치례 등을 자주 겪게 돼요. 이는 대부분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호르몬은 우리 몸이 얼마나 건강하고 젊은지 알려주는 척도예요. 호르몬 관리를 잘하면 노화도 충분히 늦출 수 있습니다.
노화 시계 멈추는 4가지 핵심 호르몬
저속 노화를 위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호르몬이 있다면요.인슐린, 성장호르몬, 멜라토닌, 옥시토신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인슐린은 혈액 속 당 수치 조절을 돕는 역할을 해요. 우리 몸에서 가장 먼저 노화가 일어나는 곳은 혈관이에요. 혈관이 노화하면서 몸이 늙고 병들게 되거든요. 따라서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면 젊고 건강한 혈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각종 질병 예방 및 노화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요.
인슐린 기능은 어떻게 정상화시킬 수 있나요.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열량·고지방 식단과 폭식, 당 지수가 높은 음식 섭취 등 잘못된 식사 습관은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되더라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해요. 또 과체중, 비만을 비롯해 불규칙한 운동 습관은 근육량을 감소시키고요.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 쉬운 몸으로 변하게 됩니다. 인슐린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식이요법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탄수화물 50%, 단백질 30%, 지방 20%의 비율로 구성된 식단을 정량, 골고루,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맵고 짠 음식과 인스턴트식품, 디저트는 삼가고요. 먹는 음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식사 순서만 바꾸는 거꾸로 식사법도 추천해요.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음식을 먹는 거죠. 이는 인슐린 조절과 혈당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인슐린 호르몬에 좋은 식품도 추천 부탁드려요.
채소, 멸치, 정어리, 콩류, 잡곡, 견과류, 해조류를 비롯해 딸기, 사과, 레몬, 토마토와 같은 당 지수가 낮은 과일과 채소요. 또 유제품(저지방 우유와 치즈, 요구르트)도 추천합니다. 인슐린 관리 식단이라고 하면 채식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요. 육식은 무조건 피하는데, 이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단백질은 특히 성장호르몬의 유지와 균형에 필수적입니다. 인슐린 관리 시기가 지나고 성장호르몬을 관리해야 할 때 단백질에 포함된 필수아미노산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필수아미노산은 오직 동물성 단백질에만 포함돼 있어요. 단백질이 몸속에 적당히 공급돼야 성장호르몬의 분비도 정상화됩니다. 과도한 채식보다는 살코기 등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양질의 단백질을 꾸준히 먹는 게 좋아요.
성장호르몬은 성장기에만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부분인데, 의외네요.
성장호르몬은 전 생애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근육량 증가, 단백질 합성, 면역력 증진 등 노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성장호르몬은 평생 분비돼요. 만약 성장호르몬이 결핍되면 활력이 부족해 늘 피곤해 보입니다. 흰머리, 탈모 등의 현상도 나타나죠. 또 성장호르몬은 콜라겐 합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피부 탄력이 떨어져 주름이 많이 생기고요.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노화의 증상과 일치합니다. 실제 동안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호르몬 검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성장호르몬 수치가 잘 유지되고 있는 게 확인돼요.
성장호르몬 주사도 도움이 되나요.
성장호르몬 주사는 성장판이 닫히면 효과가 거의 없어요. 성장호르몬 수치가 심하게 낮은 경우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기도 하지만 그 용량이 굉장히 적습니다. 아이들의 키 성장을 위해 투여하는 용량을 그대로 사용하면 대장암, 혈당 상승 등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거든요. 성장호르몬 주사는 담당의와 충분한 면담을 가진 후 실행해야 해요.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은 저속 노화에 관여하는 호르몬 생성에 큰 도움을 준다.
앞서 언급한 인슐린 관리를 위한 식이요법을 실시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거죠. 적당한 운동은 성장호르몬 분비에 큰 도움이 돼요. 특히 근력 운동을 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됩니다. 근육에 힘을 쓰면 근육 결에 미세한 파열이 생겨요. 이를 근육통이라 부르죠. 파열된 부분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근육의 크기가 커지고 단단해져요. 이때 성장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주의할 점은 무리하게 운동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10분 이상 빠르게 걷기를 시작해 점차 그 시간을 5분씩 늘리는 걸 권합니다. 의자에 앉아 다리 올리기, 앉았다 일어나기, 제자리 팔 벌려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 자전거 타기 등도 큰 도움이 돼요.
핵심 호르몬으로 ‘멜라토닌’을 지목하셨어요.
맞아요. 멜라토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호르몬이에요. 면역력 상승, 질병 예방, 체중 증가 억제 등 다방면에서 신체를 이롭게 하죠. 멜라토닌은 수면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활동량이 줄면서 햇볕을 쬐는 시간이 감소해요. 이렇게 되면 몸에서 필요로 하는 수면의 총량도 줄어들죠. 수면의 양이 감소하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적어지고, 잠을 자더라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니 또 멜라토닌 분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요. 이런 악순환을 통해 몸은 서서히 병들게 돼요.
멜라토닌은 밤이 되면 저절로 분비되지 않나요.
그 반대예요. 멜라토닌이 분비되면 신체는 밤이 왔다는 걸 알게 돼요. 잠이 들면 그때서야 멜라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되죠. 멜라토닌은 우리에게 ‘이제 밤이 됐으니 잠을 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 세대를 막론하고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요. 불면증을 해결하려면 멜라토닌 관리부터 제대로 해야 해요. 일찍 잠들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아침 햇볕을 쬐며 산책하기, 침대에서 핸드폰 보지 않기 등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몇 가지 사항만 잘 지켜나가면 됩니다.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멜라토닌은 물론 성장호르몬도 활성화돼요.
옥시토신 호르몬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릴게요.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사랑, 사회적 유대감, 신뢰, 공감 능력 등과 연관이 있어요. 저속 노화에서 옥시토신이 필수인 이유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춰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옥시토신은 항우울제와 비슷한 기능을 해요. 특히 성관계 후 행복감을 느끼는 데 옥시토신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게 더 잘 나타나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옥시토신의 분비를 높이거든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오히려 옥시토신의 분비를 억제하죠. 옥시토신은 신체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혈압을 낮추고 고통을 감소시키거든요. 이처럼 옥시토신은 노화로 인해 겪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 4가지 호르몬을 한꺼번에 관리할 방법이 있나요.
물론 4가지 호르몬을 모두 동시에 케어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해요. 먼저 자신에게 부족한 호르몬부터 보완한 뒤 다른 호르몬들을 다스리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먼저 인슐린 관리를 추천해요. 식이조절을 통해 신체에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하고 운동하면 그 효과가 더욱 커지거든요.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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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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