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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보장’ 미끼로 청소년 끌어들이는 마약사범들

정세영 기자

2024. 08. 13

이제 아이들이 등교할 때 “차 조심해”보다는 “마약 조심해”라는 당부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청소년을 타깃으로 날로 교묘해지는 마약 유통 수법과 그 폐해에 대해 알아봤다. 

올 초 방에 쓰러져 있는 중학생 딸 A 양을 데리고 병원에 간 어머니는 담당 의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마약 흡입 도중 일시적 쇼크가 와 쓰려졌다는 것. 경찰 조사에서 A 양은 텔레그램을 통해 가상화폐로 필로폰을 구입했으며 집으로 이를 배달받았다고 털어놨다. A 양은 “처음에는 친구와 함께 호기심에 필로폰을 흡입했는데 어느 순간 중독 증세가 왔다”며 “필로폰을 흡입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고 불안해져서 점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10대 청소년 B 군이 급성 필로폰 중독으로 인한 일시적인 망상으로, 비행 중인 여객기의 비상문을 강제로 열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사건이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B 군은 다른 승객들이 자신을 공격해 그들과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 군 휴대전화에서는 마약 흡입용 도구 사진이 발견됐으며 같은 달 필리핀 세부에서 필로폰을 2차례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결국 B 군은 마약류 관리법과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올해 4월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드라마 ‘약한영웅’ 시즌 2에서는 청소년들이 마약을 별다른 경각심 없이 남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 드라마 소재로 활용될 만큼 이제 청소년 마약 남용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청소년 마약은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2022년 481명으로, 5년 새 4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 증가율이 30%인 점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수준이다. 전체 마약사범 가운데 10대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17년 0.8%, 2018년 1.1%, 2019년 1.5%, 2020년 1.7%, 2021년 2.8%로 꾸준히 늘고 있다. 마약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직업으로 분류하면 학생의 비율이 유흥업·서비스업 종사자를 넘어선다. 마약에 노출된 청소년은 관련 기관에서 공개한 수치보다 훨씬 더 높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암수율 때문.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은 28.57배다. 적발된 마약사범 수에 28.57을 곱한 수치가 실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마약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저렴한 가격을 꼽을 수 있다. 검찰은 필로폰 1회분(0.05g) 가격이 ‘피자 한 판 값’까지 낮아졌다고 분석한다. 또 SNS에 떠도는 마약 거래 방법, 투약 방법 등도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다. 실제 X(옛 트위터)에 접속해 관련 내용을 검색하자 어렵지 않게 아이스, 작대기, 대마, 떨, 케타민 등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로 도배된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봉투에 흰 가루가 담긴 사진 하단에는 거래를 유도하듯 텔레그램 아이디가 노골적으로 적혀 있었다. 텔레그램에서 해당 아이디를 검색하자 구독자 1.4K명(1400명)에 달하는 한 판매자의 페이지가 떴다. 구체적인 약의 사진과 함께 취급하는 마약 종류, 가격, 거래 방법 등이 상세히 공지돼 있었다. 아이스(필로폰)는 0.5g에 35만 원, 브액(합성액상대마) 10ml 80만 원이 적힌 가격표까지 친절히 안내돼 있었다. 이를 보고 개인 채팅을 건 뒤 암호화폐로 값을 치르면 곧 특정 소화전, 에어컨 실외기 등 약속된 스폿에서 일명 ‘던지기’로 배달된 마약을 찾아갈 수 있다.

‘고액 알바’로 무장한 마약 범죄의 덫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마약 유통 및 거래 등의 정보를 얻고 있다.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마약 유통 및 거래 등의 정보를 얻고 있다.

손에 넣은 약을 SNS 등에 올려 웃돈을 받고 되팔기를 하거나, 마약이라는 자각도 없이 본인이 복용하던 약을 주변 친구들에게 ‘살 빠지는 약(디에타민)’ ‘집중력 높여주는 약(페니드·콘서타 등)’으로 소개하며 권유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액 알바 유혹에 넘어가 유통까지 손을 대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게꾼, 드라퍼라는 명칭의 마약류 유통책으로 전락하는 청소년 범죄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지게꾼은 해외에서 몸이나 옷 속에 마약을 숨겨 한국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 드라퍼는 특정 장소에 숨겨진 마약류를 찾아 지정된 곳에 은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거래는 드라퍼가 정해진 장소에 마약을 가져다 놓으면 판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게꾼, 드라퍼가 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통 보안성이 강하고 대화 내용을 삭제할 수 있는 텔레그램을 통해 접선이 이뤄진다. 전달책을 모집하는 판매상의 계정도 공연히 드러나 있다. 실제 온라인에서 접속해 해당 명칭을 검색하자 ‘드라퍼 구함’이라는 내용의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취재 중 메신저를 통해 만난 17세 이민호(가명) 군은 “알바를 구하던 중 드라퍼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현혹돼 판매상에게 연락했고 “한 달에 최소 1000만 원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야 할 일에 대해 묻자 “마약을 지정된 장소에 툭 던져놓기만 하면 된다”며 “강남, 송파권 위주로 활동하면 하루에 300만 원도 벌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혹시 경찰에게 걸리면 어떡하냐”라는 질문에는 “텔레그램으로 접촉해서 절대 안 잡힌다. 걸리면 변호사 선임 비용을 주겠다”며 설득했다. 민호 군이 관심을 보이자 판매상은 “신분증과 가상화폐로 보증금 300만 원을 요구했고, 보증금에 부담을 느껴 결국 포기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드라퍼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다. 일도 쉽고 돈도 많이 주기 때문”이라며 “보증금만 있었다면 나도 그 일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서 70억 원 상당의 마약을 밀수하다 잡힌 일당 중 10대 청소년이 포함돼 있어 큰 충격을 줬다. 텔레그램으로 총책과 연락을 주고받게 된 청소년은 수고비 100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근절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국가적 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

청소년도 마약을 복용하거나 판매에 개입하면 처벌을 받는다.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형사처벌에서 제외되지만 소년보호재판을 진행해 적절한 처분을 내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 소년원에 장기 송치될 수도 있다. 만 14세 이상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어떤 마약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데, 단순 투약인지 운반이나 매매에 가담했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한편 마약 운반책은 마약류 관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전문가들은 마약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이지만 청소년들에게 훨씬 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뇌 손상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 연구 팀이 대마초, 코카인, 필로폰 등의 약물 투약 경험이 있는 만 12~17세 청소년들과 18~25세 성인들을 모아 연구한 결과 12~17세 집단이 성인 집단에 비해 물질사용장애(SUD) 점수가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마초의 경우 금단증상을 보인 비율이 성인 6.4%, 청소년 11%로 큰 차이를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연구 팀은 “10대들의 뇌가 성인에 비해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에 약물에 의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선제적인 조치다. 약물에 손을 대기 전 학생 스스로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1년 학교보건법 개정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10회에 걸쳐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 오남용 예방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에 약물 중독 내용을 포함시켜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마약류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자 일각에서는 마약 예방 교육 이수제 도입, 중간고사·기말고사·수능 문제로 출제, 마약 관련 기관에서 현장 체험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마약에 노출된 청소년에게는 더욱 민감한 관리가 필요하다. 다시 약에 손을 댈 확률이 무척 높기 때문에 단약을 위한 밀접 교육, 치료, 관리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 때문에 미국 마약단속국(DEA), 스페인 마약특별검찰청 등 해외 사례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중앙정부 산하 마약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의 조기 개입도 시급하다. 아이들에게 ‘검은손’이 뻗치기 전 학교 주변, SNS 등 마약 거래가 이뤄지기 쉬운 환경에 대한 단속과 점검 강화가 절실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마약류의 화학적 합성이 이뤄지고 있으며, 고도로 발달된 유통망과 인터넷망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신종 마약 탐색 플랫폼 개발을 통해 국내 마약류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지방 인력 증원, 재배치, 최신 장비 보강을 통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기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마약’에 대한 이미지 역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마약은 그 해악이나 심각성보다 쾌락, 흥미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길거리, 쇼핑몰 등에서는 ‘마약 베개’ ‘마약 잠옷’ ‘마약 핫도그’ 등 마약을 가볍고 재미있게 소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소함이 알게 모르게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의 경각심이 시급한 상황이다.

#청소년마약 #마약거래 #여성동아

‌사진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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