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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두 배 늘어난 ‘한약사 약국’ 둘러싼 논쟁

문영훈 기자

2024. 07. 22

6월 서울 금천구 시흥사거리 일대는 소란스러웠다. 한약사가 연 약국 앞에서 약사 측과 한약사 측의 맞불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약국 측은 시위를 시작한 서울시약사회 측을 업무방해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는 시위가 중단된 상태지만 한약사와 약사 사이의 해묵은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갈등의 시작은 1993년 ‘한약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 10일 서울시약사회는 서울 금천구의 한 약국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해당 약국은 한약사가 개업한 곳으로 일반의약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걸었다. 현재 약국에는 한약사만 근무한다. 서울시약사회 측은 “한약사는 약사가 아닙니다” “한약사는 약사 면허가 없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대한한약사회 측도 “한약사는 합법만 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맞불 시위를 펼쳤다. 약국 측은 서울시약사회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현재 시위는 중단됐지만 한약사가 연 약국에 대한 약사들의 반발은 수차례 벌어졌다. 2023년 12월에는 한약사가 조제 약국을 인수하자 약사와 한약사 간 맞불 시위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 한약사가 오픈한 부산의 한 지하철 역사 내 약국에 대해 인근 약사들이 부산시약사회에 다수의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한약사도 일반의약품 판매 가능

1993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의사와 약사가 대립하고 있다.

1993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의사와 약사가 대립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약사 측과 한약사 측의 갈등은 ‘약사법’ 해석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약사와 한약사의 역할을 규정하는 약사법 제2조 제2항에 따르면 약사는 “한약에 관한 사항 외에 약사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만 보면 약사와 한약사의 역할이 무 자르듯 나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약사법 제20조와 제50조를 합하면 또 다른 의미가 파생된다. 약국을 개설할 수 있는 자는 약사와 한약사(제20조 제1항)이고,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제50조 제4항). 일반의약품에 한하면 한약사와 약사가 같은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일반의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사항대로 복용하면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의약품으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구별된다. 일반의약품은 한약제제와 한약제제가 아닌 것으로 구분하지 않아 한약사가 약국을 열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돼 있는 셈이다.

최근 한약사가 개업한 약국 숫자는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준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은 771곳으로 전체 약국(2만4880곳)의 3% 정도다. 5년 전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301곳)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약국이 9%(1997곳) 늘어난 것에 비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한약을 전문으로 하는 한약국의 숫자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증가세는 뚜렷하다.

약국 개설 권한을 가진 한약학과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입시 컨설팅 시장에서는 약국 개설이 가능한 한약학과를 약학과 대신 추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학년도 경희대 정시모집에서 한약학과는 의예과·치의예과·한의예과·약학과 다음으로 높은 최종 등록자 상위 70% 커트라인을 형성했다.

한약사가 연 약국은 약사를 고용해 전문의약품을 조제하지 않는 경우라면 한약과 일반의약품만 판매할 수 있다. 다수의 약국이 지하철 역사나 휴게소 등 일반의약품 판매량이 많은 곳에 위치한 이유다. 심평원 홈페이지 병원·약국 찾기를 이용해 해당 약국의 한약사와 약사 인력 사항을 체크하거나 약국 내 비치된 국가 면허를 확인할 수 있지만 매번 이를 구분해 일반의약품을 사러 약국을 방문하기는 어렵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 모(30) 씨는 “약사는 한약 외 업무를 담당하고 한약사는 한약에 대해 담당하도록 법에 나와 있는데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을 다루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다른 약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천구 약국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인 서울시약사회 측은 입장문을 통해 “약사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약사 행세를 하려는 한약사의 불법 행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는 약사법 개정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약사계의 이러한 요구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약사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일반의약품 판매에 대해서도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도 서영석 민주당 의원이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 범위 내로 일반의약품 판매를 제한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일반의약품을 한약사에게 구입해도 괜찮을까. 약사 측에선 “6년간 양약을 배우는 약사의 전문성은 한약사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약사계의 주장에 한약학계는 반발한다. 한약학과 교육과정에서도 기본적인 약제학, 약물학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승헌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는 “한약학과 교육과정 로드맵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발표한 ‘한약사 직무분석연구’에도 일반의약품 판매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고, 교육과정에서 약학의 기초가 되는 약물학이나 생리학 수업 역시 이수한다”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발표한 한약사 직무분석연구에도 일반의약품 판매 지도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발표한 한약사 국가 시험 출제 범위에도 약사법,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등 보건·의약 관계 법규나 약물학 총론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일반의약품 중에도 일부 여성 갱년기 치료제, 치질 치료제, 소화제 등 한약에 기원해 만들어진 의약품이 다수다. 한약사 B 씨는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지 못한다는 논리라면 약사들도 한약 성분이 들어간 일반의약품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싸움이 결과적으로는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국은 면허 범위에 따라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현재 일반의약품에 대한 제제 구분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법적 규제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측은 한약제제와 한약제제가 아닌 것으로 일반의약품을 구분해 판매 범위를 명확하게 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이번 금천구 약국 시위 같은 갈등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왜 해석이 불분명한 법이 만들어졌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한약사라는 법적 지위가 생겨난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까지 한약은 한의사와 약사가 모두 조제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이었다. 1993년 한약 취급권을 놓고 한의사와 약사 간 ‘한약분쟁’이 벌어지며 약국과 한의원이 일제히 문을 닫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3년 이내 한의약분업 실시를 조건으로 한약 조제권을 가진 한약사 제도를 만들어 갈등을 봉합했다. 이로 인해 경희대, 원광대, 우석대 등 3개 대학에 한약학과가 만들어지고 2000년부터 국가 시험을 통과한 한약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한의약분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 한의사 역시 한약을 조제·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한의약분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한약사 입장에서도 유통 마진이 적은 일반의약품 대신 한약을 판매하는 편이 훨씬 수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의사와 함께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약 수요가 줄어들자 한약사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된 약국 개설을 생업의 하나로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

한약사들은 수적 우위에 밀리는 한약사들이 한의사와 약사 사이에 끼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사는 7만5461명, 한의사는 2만7488명인 데 비해 한약사는 3010명에 불과하다. 한약사 C 씨는 ”약사들이 대형 제약 회사를 압박해 한약사가 연 약국에 일반의약품을 유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빈번하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약사들이 소수인 한약사들이 마치 불법을 저지르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의약품 판매는 중요한 생계 수단“

한약학계에서는 임상 한약과 일반의약품 판매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4월 한국한약학교육협의회는 한약학과 수업연한 연장을 위해 5년제 추진특위를 설치했다. 홍승헌 교수의 말이다.

“한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한약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4년제가 아닌 5년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약분업이 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한약사들에게 일반의약품 판매는 중요한 직무 영역이자 생계 수단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반복돼온 문제가 최근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 숫자가 늘며 직역 갈등 형태로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현행법상으로는 약사 측에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으니 시위 등을 통해 한약사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을 쓰는 것”이라면서도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라는 점을 고지하게 하는 등 현재 상황에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약사 #약국 #여성동아

‌사진 뉴스1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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