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소수인종 우대 입학 위헌 결정에 항의 하는 사람들.
“대학은 상당 부분 ‘객관적인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위대함을 만드는 무형의 자질(인종 다양성)’에 의해 정의된다.”(2016년 앤서니 M. 케네디 대법관)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은 모든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2023년 존 로버츠 대법원장)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라 불리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대학입시나 공무원 채용, 정부의 공사 수주 계약 등에서 소수 계층 특히 흑인들에게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는 조치를 말한다. 소수인종에서 시작돼 소수민족, 여성, 장애인들로 확대됐다. 적극적 우대 조치, 긍정적 차별이라고도 한다.
6월 29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백인 및 아시아계 지원자가 차별받았다며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 단체가 두 대학교(노스캐롤라이나대,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3, 6:2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연방대법원은 지원자 개인의 경험이나 성적, 성취가 아닌 인종을 입학 전형에 고려하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1960년대 민권운동의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사라지게 됐다.
대학의 ‘있는 집 자식’ 특혜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작된 이 조치는 1978년 캘리포니아, 2003년 미시간, 2016년 텍사스의 주립대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계속 합헌 판결을 받았지만 올해 들어 기존 판결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 판결을 두고 당장 2가지 법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첫째는 각 주(states)마다 법이 다른 미국에서 과연 연방대법원이 사립대 입학 정책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는가다. 합헌의 경우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해도 된다’의 의미지만, 이번처럼 위헌의 경우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논쟁은 2016년까지 합헌이었던 이 제도가 어떤 사정변경도 없이 왜 7년 만에 갑자기 위헌이 됐을까 하는 문제다. 7년 사이 바뀐 특별한 이벤트라고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 외에 없는 게 사실이다.
대법원이 이처럼 판결하자 사실상 부유한 백인을 뽑는 기여입학제는 놔두고 아시아계와 흑인 등 소수인종 간 싸움을 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없애야 하는 제도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아니라 ’기여입학제(legacy preference 혹은 legacy admission)‘라는 지적이다.
이는 부모 가운데 한 명이 그 대학을 졸업했을 경우 일종의 혜택을 받는 제도로, 하버드·예일· 스탠퍼드 등 입학이 어려운 이른바 명문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조시 W. 부시 대통령이 ’레거시(legacy) 입학‘으로 예일대에 다닌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레거시 입학은 미국 대입 시험인 SAT 성적이 좋지 않아도 가능한, 말 그대로 특혜다. 여담이지만 legacy는 ‘유산’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단어와 입학 정책이 결합하면서 ‘있는 집 자식 특혜’로 전락했다. 단어의 의미가 퇴색돼 씁쓸하다.
당장 지난달 대법원 판단이 나오자 일주일 뒤, 매사추세츠 거주 소수민족 옹호자 3명이 하버드대학교의 레거시 입학에 대해 관계 기관에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하버드대가 매년 수백 명의 백인 학생에게 성취 업적이 아닌, 단지 친척이 누구냐는 이유만으로 입학 과정에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의 이번 소송 과정에서 레거시 입학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2014부터 2019년까지 레거시 지원자의 입학 가능성은 다른 지원자에 비해 거의 6배나 높았고, 레거시 및 기부 관련 지원자는 전체 학생의 최대 15%, 70%가 백인이었다고 한다.
이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닐 고서치 대법관은 하버드대학교가 “운동선수 스카우트 때 부여하는 혜택의 절반만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줬다면 그리고 기부자·동문·교수진 자녀에 대한 우대를 폐지했다면 인종 기반 (입학) 관행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학생들의 인종 구성을 현재와 거의 비슷하게 복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판결 이후 혼란이 예상된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장학금 등 복지제도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8일 외신에 따르면 일부 미국 대학이 인종에 기반한 장학금 지원 운영 전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주리대학교 캠퍼스 4곳은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인종을 감안하는 입학과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위헌 결정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대학 입학 문제에만 적용할 것인지, 다른 전반의 정책에까지 확대 적용할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인종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핵심
6월 2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 위헌 결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명문대에 입학하려는 소수 흑인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유색인종들에게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롤라이나대학교 리처드 아름 교수와 스탠퍼드대 미첼 스티븐스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 대다수는 지원자의 4분의 3 이상을 합격시키는 대학에 재학 중”이라며 “지원자들의 합격률이 25% 미만인 학교(하버드, 버클리, 보스턴 등 명문대)에 다니는 아시아계 학생의 비율은 흑인, 히스패닉, 백인 학생의 3배가 넘는다”고 지적한다.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아주 소수의 아시아계와 흑인들의 희비가 엇갈릴 뿐,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삶에는 별 변화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기고문에서는 “미국 고등교육에서 인종적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은 학생들 대부분이 다니는 일반적인 학교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핵심은 인종보다 소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컨설턴트 리처드 칼렌버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60년 전만 해도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 격차는 빈부격차보다 약 2배 더 컸지만,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급증하면서 소득에 따른 학업성취도 격차는 인종 격차의 2배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기존의 대학 입학 프로그램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대부분 무시해왔다”면서 “하버드에 다니는 흑인 및 히스패닉 학생의 71%가 전체 흑인 및 히스패닉 인구의 사회경제적 순위에서 상위 5분의 1에 속하는 학생(상위 20%)”이라고 지적했다. 인종보다 소득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감안해 공정한 입학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서연고’ 대학에 다니는 학생 중 절반은 부모가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소득층(2021년 기준)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이 9명 중 6명을 차지하면서 미국 사회를 흔드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종교적 이유로 성소수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2022년 6월, 49년 만에 임신중단권 판례 폐기도 있었다.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는 대법원의 공세 속에 화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다. 바이든은 판결 이후 백악관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45년간 미 대법원은 다양한 학생을 형성하는 방법을 결정하고, 모든 미국인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책임을 충족하기 위해 대학의 자유를 인정해왔다”며 “오늘 대법원은 다시 한번 수십 년의 판례와 중대한 진전에 역행했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어떤 정책도 그러하듯 우대 조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부인) 미셸과 나 같은 세대의 학생들은 우리가 소속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며 이번 판결에 반발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전역 연방정부에서 모든 다양성, 평등, 포용 프로그램을 삭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채용과 같은 민감한 부문에까지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퍼머티브액션 #소수인종우대정책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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