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무신사부터 파리 오트쿠튀르까지··· 개성을 입는 재벌 2세들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6. 06. 17

문제는 가격표가 아니라 취향이다. 젠지 특유의 패션관과 소비 철학은 재벌가에서도 예외가 아닐 터.
명품 하우스의 VIP와 캐주얼 브랜드의 무심한 단골이 공존하는 재벌가 2세들의 패션 세계를 모아봤다.

저가의 아이템을 매치해 데일리 룩을 완성한 도날드 트럼프의 아들 배런 트럼프.

저가의 아이템을 매치해 데일리 룩을 완성한 도날드 트럼프의 아들 배런 트럼프.

나이도 성장환경도 비슷하지만 패션 철학만은 전혀 다른 이들의 옷장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취향을 넘어 가치관의 차이를 포착할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자와 시선을 압도하고 싶은 이, 혹은 실용주의자와 미학주의자. 재벌가 젠지들의 뚜렷한 차이를 비교해봤다. 

트렌드보다 철학이 먼저, 실용주의 패셔니스타 

배런 트럼프는 아디다스의 가젤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것으로 알려졌다. 13만9000원.

배런 트럼프는 아디다스의 가젤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것으로 알려졌다. 13만9000원.

패션에 가장 무심한 실용주의자의 대표는 단연 배런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그는 2006년생으로 막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이다. 뉴욕대학교 스턴 비즈니스 스쿨(경영대)에 재학 중인 그의 패션 키워드는 조금 과장되게 말해 ‘유니폼’ 수준이다. 흰색 폴로셔츠에 검은색 바지, 아디다스 가젤 운동화, 그리고 스위스기어 1900 스캔스마트 백팩이 그의 등교 룩이다. 운동화는 100달러(약 14만7000원), 가방은 99달러(약 14만5500원), 놀랍게도 모든 아이템이 100달러 내외다. 그렇다고 그가 패션에 전혀 문외한인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취임식에서 입었던 맞춤 정장 브랜드 ‘피어스 비스포크’의 창립자 네이선 피어스는 “배런은 옷의 소재와 디테일을 직접 선택할 만큼 취향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배런이 실용주의적 패션을 택한 이유로 “어디서든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무난한 스타일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패션에 담아내는 재벌가 자녀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의 딸 피비 게이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2년생인 그는 지난해 “더 적게, 더 현명하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AI 쇼핑 플랫폼 ‘피아(Phia)’를 론칭하면서 벤처업계와 패션계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후 피아를 실행하면 4만 개 이상의 숍을 비교해 최저가를 찾아준다. 더불어 중고 거래 플랫폼을 함께 검색해 더 저렴한 옵션도 알려준다. 중고 옵션을 제안함으로써 친환경적인 소비문화를 촉진한다는 것이 골자다. 

피비 역시 지속가능성을 우선에 둔 미니멀리즘 패션을 고수한다. 중고 거래 플랫폼 ‘더 리얼리얼’에서 찾은 더로우의 마고 백을 들고, 퀸스 같은 저가 브랜드의 20달러(약 2만9400원)짜리 탱크톱을 믹스하기도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큰딸인 이원주 씨도 대표적인 실용주의적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시카고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한때 틱톡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개해 큰 관심을 받았는데, 아이템도 영상만큼이나 화제가 됐다. 챔피언 로고 후드 티셔츠와 친환경 스니커즈 브랜드 베자의 캄포 스니커즈, 스트리트 브랜드 널디의 플리스 재킷을 선택했기 때문. 각각 5만 원대, 8만 원대, 10만 원 초반대 아이템으로 그야말로 ‘가성비’ 착장 그 자체였다. 

내로라하는 재벌가 자녀들이 가성비 아이템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들의 선택을 ‘조용한 부’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로 설명한다. ‘불필요한 질투나 관심을 차단하고 재정적 안전을 확보하며,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겠다’는 마음이 검소한 아이템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심미안을 과시하는, 탐미주의 패셔니스타 

패션을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옷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다.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직업, 경제적 모델이기도 하다. 

DL그룹 4세 이주영이 소장한 미니 샤넬백. 779만 원대.

DL그룹 4세 이주영이 소장한 미니 샤넬백. 779만 원대.

DL그룹 4세 이주영 씨는 2000년생으로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경영·마케팅을 전공했다. 현재 조지타운 로스쿨에 재학 중으로, ‘한국판 블레어 월도프’라고 불릴 만큼 뚜렷한 캐릭터를 뽐내는 패션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그 코리아’ 인턴으로 패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샤넬, 디올뷰티, 보테가베네타 등의 앰배서더로도 활약 중이다. 

하이엔드 패션을 추구하는 이주영의 시그니처는 ‘트위드’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빈티지 샤넬 백에 트위드재킷을 매치하는가 하면, 크롭트 기장의 레몬 컬러 트위드 셋업에 핑크 미니 백을 더해 발랄한 무드를 연출하기도 한다. SNS 최상단에 고정된 피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미스소희의 컬렉션을 입은 사진이다. 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린 미스소희 패션쇼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으로, 명품 하우스의 VIP 행사 초대 1순위인 그에게 패션은 또 하나의 커리어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신세계그룹 4세보다 아이돌 그룹 ‘올데이프로젝트’ 멤버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애니 역시 글로벌 패셔니스타다. 그는 하이패션을 중심으로 하되 힙합과 스트리트 무드를 놓치지 않는 확고한 패션 철학이 돋보인다. 발렌시아가, 릭오웬스, 지방시 등 다크하고 아방가르드한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2024년에 참석한 발렌시아가 F/W 쇼에서는 올 블랙 착장을 선보였고, 2025년 데뷔 시 입은 발렌시아가 미니스커트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 밖에 릭오웬스 플랫폼 부츠, 지방시 샤크락 앵클부츠 같은 볼드하고 개성 있는 아이템을 주로 착용한다.

럭셔리 아이템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스티브 잡스의 딸 이브 잡스, ‘올데이프로젝트’의 애니, UAE 벨하사 그룹의 라시드 벨하사(왼쪽부터).

럭셔리 아이템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스티브 잡스의 딸 이브 잡스, ‘올데이프로젝트’의 애니, UAE 벨하사 그룹의 라시드 벨하사(왼쪽부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딸 이브 잡스는 루이비통 캠페인, 보테가베네타 밀라노 쇼, 멧 갈라 등 럭셔리 패션 신 핵심 현장에 등장하며 본격적인 모델 커리어를 쌓고 있다. 2025년에는 영국 코츠월드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지방시 오트쿠튀르 웨딩드레스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하는데, 이 희소성이 오히려 팬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아랍에미리트에도 눈에 띄는 패셔니스타가 있다. 2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가 벨하사 그룹을 설립한 억만장자 아흐메드 사이프 벨하사의 아들 라시드 벨하사가 그 주인공이다. 2002년생인 라시드는 2015년, 만 13세의 나이로 유튜브 채널 ‘머니킥스(Money Kicks)’를 개설했다. 그는 채널에 500켤레 이상의 스니커즈를 공개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한 마이클 조던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에어 조던’를 비롯해 영화 ‘백 투 더 퓨쳐’에 등장했던 운동화 ‘나이키 맥’ 등 컬렉터들이 열망하는 아이템을 다수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치는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 구독자 380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어 160만 명을 거느린 그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하이프비스트(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다. 현재 본인이 론칭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KA-1’도 운영하고 있다. 

#재벌가패션 #재벌자녀패션 #여성동아

기획 정세영 기자 사진출처 각 브랜드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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