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550원 시대가 온다
지난해 10월 지하철 요금에 변동이 생겼다. 일반 성인 기준으로 1250원이던 기본요금이 1400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지하철 요금이 오른 건 8년 만으로, 운송 적자 부담이 쌓여 더 이상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가 따랐다.서울, 경기, 인천은 물론이고 춘천, 천안, 아산, 부산 등 지방 지하철 역시 요금이 올랐다. 그보다 앞선 2월엔 서울 택시 요금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무려 1000원이나 상승했고, 8월엔 서울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요금이 일제히 올랐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지하철·버스·택시 요금을 포함한 운송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1년 전과 비교해 9.1%가 뛰었으며, 이는 16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변화였다.
누군가는 몇백 원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겠지만 매일 버스, 지하철에 의지해 출퇴근하는 이들에겐 적지 않은 변화라 할 수 있다. 편도 1200원, 왕복 2400원의 버스 요금을 내고 출퇴근했던 직장인은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500원으로 오르면서 하루 600원, 일주일(출퇴근 5일)에 3000원, 한 달 1만2000원, 1년 14만4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대중교통 요금이 또 한 번 상향될 조짐을 보인다.
최근 서울시는 빠르면 오는 7월 지하철 요금 150원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코레일, 인천, 경기 등과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 협의해야 하지만 요금 인상을 확실하게 못 박은 만큼 ‘지하철 기본료 1550원 시대’가 곧 올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지하철 요금 150원 인상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는 순차적으로 200원, 100원씩 총 300원 인상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물가상승과 국민 반발을 우려해 작년과 올해 150원씩 올리기를 제안했다. 참고로 서울시는 요금을 300원 인상할 경우 2023〜2025년 3년간 지하철은 3162억 원, 버스는 2481억 원이라는 평균 운송 적자 전망치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오늘도 적자를 싣고 달린다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는 이유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밝힌 누적 적자는 17조6808억 원이다. 2021년 기준 1인 수송 시 시내버스는 658원, 지하철은 755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왜 적자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01 무임승차
말 그대로 요금을 내지 않고 승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교통공사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당기순손실 6420억 원 가운데 무임 손실이 차지한 비율은 49%(3152억 원)나 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카드를 찍지 않고 몰래 탑승하는 얌체족이 그렇게 많은가?’ 싶지만 이 중 84.5%가 ‘노인 무임승차’ 비율이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한 손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만일 정부가 노인들의 무임승차 손실분을 보상해준다면 요금 상승분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가가 결정한 정책 때문에 지자체가 큰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호소는 서울시만 하는 게 아니다. 매년 전국 13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국비로 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임승차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연구원에서 내놓은 ‘2021년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65세에서 70세로 무임승차 연령을 올릴 경우 무임승차로 발생하는 연간 손실액의 25~34%를 보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무임승차를 막거나 기준 연령을 높이기도 어렵다. 노인이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며 얻는 유무형의 가치 또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에서 발간한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연구보고서에는 노인들이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함으로써 의료비 절감, 관광산업 활성화, 극단적 선택 감소,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등의 사회적 이득이 발생했으며,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2020년 기준 3650억 원 규모라고 명시돼 있다.
02 전기요금 인상
지하철 운행에는 상당한 전기가 사용된다. 서울시 전기 사용량 가운데 2.92%가량이 지하철 운영에 들어가는데 전기 요금이 인상되면서 공사의 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교통공사가 한전에 납부한 전기 요금이 2021년 1735억 원이었지만 2022년엔 148억 원이 뛴 1883억 원이었다. 2022년 상반기 한전은 kWh당 요금 단가와 전기 요금에 반영되는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을 올린 바 있다. 이에 대비해 서울교통공사도 고효율 전동차 도입, 냉방기 효율적 운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 절감에 힘을 쏟았으나 전기 요금의 상승세를 따라잡진 못했다. 이와 관련해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전기 요금 인상으로 공사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도 운영기관 전용 요금제 도입이나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울교통공사 수익모델 다각화 필요
무임승차, 전기 요금 인상 외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적자는 발생한다. 일각에서는 높은 인건비를 지적하고 누군가는 시설 정비나 개선 사업에 따른 비용 지출을 거론한다. 다양한 원인 분석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먼저 대중교통 요금 인상만이 능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적자폭을 낮추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것은 맞다. 실제로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요금 인상으로 얻은 수익을 지하철 환경개선 등 시민의 편익으로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노후 전동차를 새 전동차로 교체해 쾌적한 지하철 이용을 도모할 수 있고, CCTV나 안전장치를 늘려 사고 염려 없는 환경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금 인상이 분명 경영에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전문가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한국 공공 교통, 특히 지하철 적자 문제는 수익의 대부분을 이용자들의 운임으로 충당하는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1년 서울교통공사 수입은 1조6802억 원으로 이 중 운수사업 수입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그 외 상가 임대 등 부대사업 수익이 10.6%, 수탁사업 수입 등이 25%가량을 차지한다는 것. 박 연구위원은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이 같은 재정구조에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16년 기준 프랑스 일드프랑스교통조합(STIF)의 재정구조를 언급한 그는 “총 90억 유로의 예산 중 교통부담금이 47%, 승차권 판매 수익이 30.4%, 공공보조금이 19.8%, 광고 수익 및 벌금이 2.8%”라며 “실제 시민이 내는 운임은 전체의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밖에 런던, 뉴욕의 대중교통공사 역시 운임 수익이 전체 수익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며 운임 손실로 인해 적자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임을 강조했다.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고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올해 지하철 요금 인상이 예고된 부산시 역시 고민이 깊은 상황. 부산지하철노조 남원철 수석부위원장은 “요금 인상으로 메울 수 없을 만큼 대중교통 이용률이 턱없이 낮다”며 “요금 인상은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다. 수송분담률을 높일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송분담률을 높이려면 결국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택하는 시민이 늘어나야 한다. 전문가들은 요금 인상과 같은 미봉책을 넘어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및 투자가 이뤄졌을 때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택하는 시민이 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6만5000원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 시내·마을버스, 공공 자전거 따릉이까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나 월 21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지출 금액의 20~53%를 적립해 돌려주는 K-패스의 출현이 고무적이다. 기후동행카드는 1월 23일부터 판매에 들어가고 K-패스는 올해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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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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