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오전 경기 고양시 소재 EBS 이러닝 스튜디오에서 EBS 강의 제작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교육부 제공]
교육부에서 공개한 ‘소위 킬러문항 사례’ 중 일부.
이른바 ‘킬러문항 논란’은 보름 전 시작됐다. 6월 15일 교육부 업무 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한 말이 전해지면서다. 윤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뤄지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능을 150여일 앞두고 난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16일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비문학 국어문제라든지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몰아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밝혔다.
억지로 이유 달기? 모호한 선정 기준 논란
교육부가 발표한 킬러문항은 총 26개 문항(△국어 7개 △수학 9개 △영어 6개 △과학탐구 4개)이다. 공개한 ‘소위 킬러문항 사례’에 따르면 수학 킬러문항의 경우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하다” “고차원적인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실수를 유발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수준 이상으로 심화 학습을 한 경우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어 학생별 유불리가 있다”, 국어와 영어 영역 킬러문항은 “추상적인 개념”이 등장한다거나 “과도한 추론이 요구된다”는 점이 선정 사유가 됐다.문제는 이처럼 근거와 용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6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제시한 근거에 대해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문구에 그쳐 현장 교사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보도자료에 해당 문항을 지적한 언론 보도도 함께 첨부했는데,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언론을 통해 논란이 된 문제를 먼저 특정한 뒤 이유를 찾은 것으로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수준 이상으로 심화학습을 한 학생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어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다”는 교육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가령 2022학년도 수능 수학 29번의 경우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 개념을 활용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킬러문항으로 꼽혔다. 익명을 요청한 수학교육학 분야 연구원은 “대학 수준의 공부가 문제 해결에 있어 필수 사항이 아니며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킬러문항에 선정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런 식으로 이유를 달면 끝이 없다”고 평가했다.
킬러문항 간의 들쑥날쑥한 정답률도 지적된다. EBSi 기준 킬러문항의 정답률은 최소 2.9%(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수학 22번)에서 최대 36.8%(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국어 33번)까지 범위가 넓다. 응시생 1/3 이상이 맞춘 문제 역시 킬러문항에 포함된 셈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공교육 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27일 발표한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 만점자는 1492명으로 지난해 수능 국어 만점자(371명)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과거 EBS 강의에선 “교육과정 기반” “난이도 낮다”
또 시험이 치러질 당시의 EBS 킬러문항 평가는 교육부가 제시한 근거와 사뭇 달랐다. 가령 교육부는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국어 14번을 지적하며 “낯선 현대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다수 사용하여 지문 이해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EBS 해설강의에서는 “수능 특강과 연계된 지문”이라며 “과학과 철학 분야는 어렵게 출제되는 제시문이지만 예년보다 난이도가 낮게 출제 됐다”고 설명했다.같은 시험에서 킬러 문항으로 꼽힌 33번은 조지훈의 시 ‘맹세’와 오규원의 시 ‘봄’에 관한 문제였다. 이 역시 시 ‘맹세’가 수능 특강에 등장한 시였다. EBS 강사는 “만만치 않은 세트”라면서도 “(EBS와 연계된) ‘맹세’를 읽고 이해하는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해당 문항에 대해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EBS 교재를 숙지한 수험생의 경우 비교적 문제 풀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 수능에 비해 난도가 낮다는 분석도 있었다. 2022 수능 수학 영역에서는 29번(미적분) 30번(기하) 문항이 킬러문항으로 꼽혔다. 2022학년도 수능 수학 해설강의에서 강사는 “(이 문제는) 과거 수능 난이도로 따지면 30번이 아니라 21번 수준”이라며 “시간 확보를 한 학생은 맞힐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개 객관식 마지막 문제인 21번 문항보다 주관식 마지막 문제인 30번 문항이 고난도로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는 ”2017, 2018 수능만 하더라도 수능 30번은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며 ”당시엔 30번 문제를 버리는 게 유행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습관처럼 포기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대학 수준의 심화 학습으로 풀 수도 있다”고 설명한 29번 문항에 대해서도 EBS 강사는 “연산량이 많아도 (중등 2학년 교육과정인) 닮음비와 (고등 2학년 교육과정인) 수1 교육과정 내 sin법칙을 이용하면 편하게 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는 사교육 문제를 해소할 대책 중 하나로 EBS를 지목했다. 이 장관은 6월 28일 EBS를 방문해 “괴물 같은 문항을 빼 평가를 정상화하겠다”며 “EBS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본격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격려했다.
“불안감 커진 학생, 사교육 더 찾아”
정부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내놓았지만 킬러 문항 발표 이후 현장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이른바 ‘학군지’에서는 킬러문항 배제 조치 이후 ‘준킬러문항’ 대비반이 만들어지고 입시 설명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대치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수능이 4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서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수험생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전문가에 더 기댈 수밖에 없고 실제로 대치동 학원가에서 관련 문의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킬러 문항 배제로 상위 10~20% 수험생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상위권 수험생이 ‘다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9월 모의평가를 통해 올해 수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교육부는 7월 3일 평가원 2024학년도 수능 출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수능 시행 세부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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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교육부 자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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