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미감을 끌어올리는 공간을 찾아갑니다. 트렌드는 물론 고유성과 정체성을 갖춘 디자인부터 음식, 공간 속 숨은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보고, 듣고, 먹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인생은 일종의 아카이빙이다. 해가 감에 따라 기억과 추억, 살아온 흔적까지 쌓여간다. 존재감 없이 욕실 한편에서 서서히 작아지는 비누는 평범한 일상을 상징하지만, 그 일상의 기억은 소박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관광객과 유명 카페가 즐비한 지하철 안국역 거리를 걷다 보면 무심한 벽돌 벽과 따스한 조명이 스며 나오는 네모반듯한 상점을 마주한다. 다소 북적이는 동네의 분위기 속에서 홀로 여유로움을 풍기며 고귀한 자태로 서 있는 이 건물은 조형적 아름다움과 친환경, 기능성을 모두 갖춘 천연 수제 비누 전문 브랜드 ‘한아조’다.
한아조는 2014년 온라인 판매를 시작으로, 2018년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에 위치한 LCDC 서울에 입점해 첫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다. 당시 사상 최대 주문량으로 승승장구하던 한아조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히 하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갈망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마주한 곳이 한아조 안국점이다.
빨간 벽돌로 외관을 둘러싼 안국점은 한아조의 조한아, 김상만 대표가 계동길을 걷다 우연히 마음을 뺏긴 공간이다. 이곳은 1980년 초부터 약 20년 동안 북촌 토박이인 건물주가 살던 집이자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였다. 그후 2000년대 초 한정식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건물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사람들이 살던 애틋한 공간임을 알아챈 두 대표는 단번에 계약을 체결했고, 공간을 개조해 한아조 안국점을 만들어냈다.
한아조 안국점을 둘러싸고 있는 통창 중앙의 유리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철제, 원목 등에 비치된 다양한 향의 수제 비누가 반겨준다. 곳곳에 들어찬 비누는 마치 새하얀 모래사장에서 주워온 조약돌처럼 부드럽고 온화하다. 제각각 다른 형태를 지닌 비누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컬러 배합과 질감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작업실이다. 성수동에 위치한 한아조 팩토리의 작업 공간 일부를 재현한 곳으로, 인테리어가 아닌 작업자의 행위가 한아조의 주인공이 되도록 구성했다. 김상만 대표는 “한아조 작업자들의 가장 큰 일념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업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비누를 모아 테라조 비누로 제작하거나 퍼그램 프로젝트로 활용한다는 것. 그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들도 소중하게 정성을 다하면 다시 완전함을 갖출 수 있다”며 “한아조는 그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말했다.
두 분이 부부 사이라고요.
조한아 | 원래 사내 커플이었어요. 한아조를 오픈할 무렵 결혼했고 1년이 채 안 돼 아기가 생겼죠. 임신을 하니 혼자 매장을 운영하기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마침 남편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받아들였고요. 팀원들은 저희를 자웅동체라고 해요. 비누 이름을 짓고, 원료를 구하고, 팀원을 뽑는 등 모든 일을 한 몸처럼 해나가거든요. 아마 둘 중에 한 명이 없었다면 한아조는 문을 닫았을 거예요(웃음).
부부가 함께 일하면 다툼도 있을 것 같아요.
김상만 | 한아조에 합류하자 주변에서 “부부가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 어때? 괜찮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부부가 함께 있는 게 이상한 건가? 좋기만 한걸”이라고 대답했죠. 저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에 너무 만족해요. 일과 육아 모두 공동의 책임이니 외롭지 않고, 모든 일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의견 충돌과 다툼도 치열하게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기에 갈등이 생겨도 빠르게 해결해나가는 것 같아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요.
조한아 | 저희는 한아조를 운영해온 약 10년 동안 뚜렷한 업무 분담이 없었어요. 크고 작은 모든 부분을 함께 결정하고 해나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역할을 나눠보려고 해요. 남편이 제작, 생산 파트를 총괄하고 저는 그 외에 디자인과 마케팅, MD, VMD, HR을 도맡아보려고요. 재무는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함께할 계획이에요.
브랜드의 키워드를 ‘비누’로 잡은 이유가 궁금해요.
조한아 | 한아조는 우발적으로 시작한 브랜드예요.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나만을 위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당시 저는 욕실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어요. 조용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나에게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이 시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비누였어요. 비누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왕 만드는 거 모양과 컬러 등 내 취향이 듬뿍 담긴 비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공예 수업을 찾아 비누 제조 방법을 배웠어요.
한아조의 출발은 원래 서울 약수동의 원룸이라고요.
조한아 | 맞아요. 당시에는 약수동에서 실험 삼아 비누를 만들며 온라인 몰을 중심으로 한아조를 홍보했어요. 마침 한 온라인 몰에서 입점 허가를 해줬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이태원 도깨비시장 한쪽 빈자리를 과감하게 계약했죠. 저희에겐 너무 소중한 공간이었어요. 9.9㎡(3평) 정도로 좁았지만 그곳에서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고 난생처음 팀원도 뽑았으니까요. 그 후 성수동으로 이전해 비누를 제조할 수 있는 한아조 팩토리를 오픈하게 됐죠.
김상만 | 약수동에서 비누를 제조할 때 좌절의 시간도 많이 겪었어요(웃음). 플리 마켓에 참여했는데, 이틀 동안 비누를 1개 팔았거든요. 실망감도 컸지만 오히려 그 경험 덕분에 ‘어떻게 하면 우리 비누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어요.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브랜드 철학을 하나씩 다듬어가며 작은 디테일에도 정성을 쏟기 시작했고요.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에서의 작업은 어땠나요.
조한아 | 당시 아모레퍼시픽에서 저희 비누 2만 개를 주문하며 화제가 됐죠. 외부에서는 작은 브랜드가 엄청난 주문량을 소화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가장 뼈아픈 시간이었어요. 매일 치열하게 일했지만, 우리의 목표와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당시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인터뷰 등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가 비누를 만드는 이유, 한아조가 바라는 미래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몰두했죠.
김상만 |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브랜드 모토인 ‘Pause your life’라는 문장에서 따온 ‘PAUSE’ 단어에서 의미를 하나씩 찾아나갔어요. ‘Peaceful, Artistic, Unique, Sustainable, Ecological-Economics: 평화롭고, 예술적이며, 독창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생태적인 경제구조와 모델을 만드는 것’. 이 메시지를 항상 마음에 담고 한아조를 운영하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이 모든 걸 꾹꾹 눌러 담은 공간이 한아조 안국점이에요.
안국점의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이예요.
김상만 | 1980년대부터 북촌 일대 도로가 확장되며 뒤로 밀린 한옥을 개조해 세웠어요. 건물의 구조나 상태 때문에 공사가 쉽지 않았죠. 하지만 이곳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살리면서 한아조의 색을 더하면 더욱 특별한 공간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20년 동안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집주인분들을 만나 그간 겪은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한 가정의 일생이 깃든 따뜻한 공간을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곳을 선택하게 됐죠.
한아조 안국점은 두 분에게 더욱 남다른 공간이네요.
조한아 | 안국점은 한아조의 근본 철학과 정체성을 담아낸 곳이에요. 손님들이 제품을 만드는 작업자의 손길과 정성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의 일부를 투명하게 공개했죠. 비누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시간과 정성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안국점은 한아조의 시작과 정신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김상만 | 안국점은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눠 한아조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있어요. 호상근 작가의 ‘조각상과 서 있는 카드’ 그림이 걸린 왼쪽 벽면은 아티스트(Artist) 영역이에요. 예술적인 감각을 강조하는 스폿으로 한아조의 비누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한아조의 제품으로 채워진 매장 중앙은 비즈니스(Businessman) 영역으로 고객이 직접 제품을 보고 구매하는 곳이지만, 단순한 판매를 넘어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역할을 해요. 작업복이 담긴 액자를 걸어놓은 오른쪽 벽면과 유리 벽 안쪽은 한아조의 하이라이트인 작업자(Craftsman)의 영역입니다. 손님들이 한아조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비누 제조의 과정 오픈에 대한 작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조한아 |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런 생각이 들 겨를이 없어요. 손을 쓰는 일을 할 때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작업자 대부분은 손님들에게 생소한 비누 제작 과정을 알려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이야기해요. 유리 너머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느끼면 일할 힘이 난다고 하고요.
입구 손잡이와 세면대 등 곳곳에 공예적 미감이 돋보이는 소품도 눈에 띄어요.
조한아 | 뭉툭한 비누의 형상을 닮은 입구 손잡이는 금속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윤정 작가의 작품이에요. 비누 트레이는 유리 공예가 김은주 작가의 손길을 거쳤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매장 바닥이에요. 버려진 대리석을 모아 테라조 비누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완성했죠. 저희가 손으로 비누를 직접 만드는 것처럼 대리석 조각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레벨기로 하나하나 수평을 맞춰 작업했어요. 한아조의 작업자 정신 중 하나인 ‘버리지 않는 것’을 미적 요소로 표현해낸 거죠.
‘버리지 않는 것’을 작업자의 메인 정신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상만 | 어떤 것이든 물건의 쓸모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또 우리가 만들어내고 구매한 물건들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인이 쓸모를 포기하는 순간 쓰레기가 돼버리니까요. 한아조 역시 이러한 마인드를 바탕으로 작업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비누를 모아서 테라조 비누로 만드는 퍼그램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그런데 테라조 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정형적인 자투리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투리를 모아 새로운 비누를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기로 했죠. 구매하신 분들이 “가성비가 좋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라며 호평하시더라고요. 고객들과 저희 모두를 만족시킨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 관리, 운영 등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김상만 | 한아조가 성장하며 다양한 것을 신경 쓰다 보니 날카로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의견을 전달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죠. 그때 생각해낸 것이 5S Tool이에요. 첫 번째 Tool인 스마트(Smart)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을 의미해요. 두 번째 스터디(Study)는 새로운 인풋을 얻는 것에 꾸준히 몰두하며 디깅(어떤 것에 집중하여 깊게 파고드는 행위)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그다음으로 소울(Soul)과 세인트(Saint)라는 항목이 있어요. 소울은 삶의 목적은 물론 소소한 취향이 서로 잘 맞는 것을 말하죠. 세인트는 이타적인 것, 즉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나도 반드시 어떠한 것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4가지 ‘S’를 얻으면 슈퍼루키(Super Rookie)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마음속에 5S Tool을 새긴 채 매사에 임하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한아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상만 |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거요.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회사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브랜드가 됐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인 제품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에는 ‘저희는 위대한 작업자들입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았어요. 고객들에게 위대한 작업자로서 희소성 있는 제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각오를 전달한 거죠.
한아조 안국점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조한아 | 유럽 여행을 가면 로컬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게들이 있잖아요. 치즈나 오래된 음식들을 파는 곳들이요. 여기 오시는 외국 관광객들이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이런 브랜드가 있구나’ ‘이런 비누를 만들고 있구나’ 하고요. 저희는 비누 등 무언가를 만들 때 물건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시작해요. 우선 세상에 정말 필요한지를 깊이 고민한 뒤 실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소중하게, 정성을 다해 제작하죠. 한아조의 포트폴리오와 같은 안국점을 통해 저희가 추구하는 마인드와 정체성 등을 많은 사람이 탐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아조 #비누 #안국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한아조
![](https://dimg.donga.com/ugc/CDB/WOMAN/Article/67/aa/a6/e7/67aaa6e704f0d273825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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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안국점을 둘러싸고 있는 통창 중앙의 유리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철제, 원목 등에 비치된 다양한 향의 수제 비누가 반겨준다. 곳곳에 들어찬 비누는 마치 새하얀 모래사장에서 주워온 조약돌처럼 부드럽고 온화하다. 제각각 다른 형태를 지닌 비누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컬러 배합과 질감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작업실이다. 성수동에 위치한 한아조 팩토리의 작업 공간 일부를 재현한 곳으로, 인테리어가 아닌 작업자의 행위가 한아조의 주인공이 되도록 구성했다. 김상만 대표는 “한아조 작업자들의 가장 큰 일념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업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비누를 모아 테라조 비누로 제작하거나 퍼그램 프로젝트로 활용한다는 것. 그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들도 소중하게 정성을 다하면 다시 완전함을 갖출 수 있다”며 “한아조는 그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말했다.
![한아조의 조한아, 김상만 대표.](https://dimg.donga.com/ugc/CDB/WOMAN/Article/67/aa/a7/8f/67aaa78f1742d2738250.jpg)
한아조의 조한아, 김상만 대표.
조한아 | 원래 사내 커플이었어요. 한아조를 오픈할 무렵 결혼했고 1년이 채 안 돼 아기가 생겼죠. 임신을 하니 혼자 매장을 운영하기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마침 남편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받아들였고요. 팀원들은 저희를 자웅동체라고 해요. 비누 이름을 짓고, 원료를 구하고, 팀원을 뽑는 등 모든 일을 한 몸처럼 해나가거든요. 아마 둘 중에 한 명이 없었다면 한아조는 문을 닫았을 거예요(웃음).
부부가 함께 일하면 다툼도 있을 것 같아요.
김상만 | 한아조에 합류하자 주변에서 “부부가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 어때? 괜찮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부부가 함께 있는 게 이상한 건가? 좋기만 한걸”이라고 대답했죠. 저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에 너무 만족해요. 일과 육아 모두 공동의 책임이니 외롭지 않고, 모든 일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의견 충돌과 다툼도 치열하게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기에 갈등이 생겨도 빠르게 해결해나가는 것 같아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요.
조한아 | 저희는 한아조를 운영해온 약 10년 동안 뚜렷한 업무 분담이 없었어요. 크고 작은 모든 부분을 함께 결정하고 해나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역할을 나눠보려고 해요. 남편이 제작, 생산 파트를 총괄하고 저는 그 외에 디자인과 마케팅, MD, VMD, HR을 도맡아보려고요. 재무는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함께할 계획이에요.
브랜드의 키워드를 ‘비누’로 잡은 이유가 궁금해요.
조한아 | 한아조는 우발적으로 시작한 브랜드예요.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나만을 위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당시 저는 욕실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어요. 조용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나에게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이 시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비누였어요. 비누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왕 만드는 거 모양과 컬러 등 내 취향이 듬뿍 담긴 비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공예 수업을 찾아 비누 제조 방법을 배웠어요.
한아조의 출발은 원래 서울 약수동의 원룸이라고요.
조한아 | 맞아요. 당시에는 약수동에서 실험 삼아 비누를 만들며 온라인 몰을 중심으로 한아조를 홍보했어요. 마침 한 온라인 몰에서 입점 허가를 해줬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이태원 도깨비시장 한쪽 빈자리를 과감하게 계약했죠. 저희에겐 너무 소중한 공간이었어요. 9.9㎡(3평) 정도로 좁았지만 그곳에서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고 난생처음 팀원도 뽑았으니까요. 그 후 성수동으로 이전해 비누를 제조할 수 있는 한아조 팩토리를 오픈하게 됐죠.
김상만 | 약수동에서 비누를 제조할 때 좌절의 시간도 많이 겪었어요(웃음). 플리 마켓에 참여했는데, 이틀 동안 비누를 1개 팔았거든요. 실망감도 컸지만 오히려 그 경험 덕분에 ‘어떻게 하면 우리 비누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어요.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브랜드 철학을 하나씩 다듬어가며 작은 디테일에도 정성을 쏟기 시작했고요.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에서의 작업은 어땠나요.
조한아 | 당시 아모레퍼시픽에서 저희 비누 2만 개를 주문하며 화제가 됐죠. 외부에서는 작은 브랜드가 엄청난 주문량을 소화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가장 뼈아픈 시간이었어요. 매일 치열하게 일했지만, 우리의 목표와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당시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인터뷰 등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가 비누를 만드는 이유, 한아조가 바라는 미래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몰두했죠.
김상만 |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브랜드 모토인 ‘Pause your life’라는 문장에서 따온 ‘PAUSE’ 단어에서 의미를 하나씩 찾아나갔어요. ‘Peaceful, Artistic, Unique, Sustainable, Ecological-Economics: 평화롭고, 예술적이며, 독창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생태적인 경제구조와 모델을 만드는 것’. 이 메시지를 항상 마음에 담고 한아조를 운영하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이 모든 걸 꾹꾹 눌러 담은 공간이 한아조 안국점이에요.
한 가정의 흔적이 담긴 애틋한 공간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의 일부를 재현해낸 공간. 손님들이 비누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게 배려했다.](https://dimg.donga.com/ugc/CDB/WOMAN/Article/67/aa/a7/bb/67aaa7bb014ad2738250.jpg)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의 일부를 재현해낸 공간. 손님들이 비누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게 배려했다.
김상만 | 1980년대부터 북촌 일대 도로가 확장되며 뒤로 밀린 한옥을 개조해 세웠어요. 건물의 구조나 상태 때문에 공사가 쉽지 않았죠. 하지만 이곳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살리면서 한아조의 색을 더하면 더욱 특별한 공간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20년 동안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집주인분들을 만나 그간 겪은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한 가정의 일생이 깃든 따뜻한 공간을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곳을 선택하게 됐죠.
한아조 안국점은 두 분에게 더욱 남다른 공간이네요.
조한아 | 안국점은 한아조의 근본 철학과 정체성을 담아낸 곳이에요. 손님들이 제품을 만드는 작업자의 손길과 정성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의 일부를 투명하게 공개했죠. 비누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시간과 정성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안국점은 한아조의 시작과 정신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김상만 | 안국점은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눠 한아조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있어요. 호상근 작가의 ‘조각상과 서 있는 카드’ 그림이 걸린 왼쪽 벽면은 아티스트(Artist) 영역이에요. 예술적인 감각을 강조하는 스폿으로 한아조의 비누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한아조의 제품으로 채워진 매장 중앙은 비즈니스(Businessman) 영역으로 고객이 직접 제품을 보고 구매하는 곳이지만, 단순한 판매를 넘어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역할을 해요. 작업복이 담긴 액자를 걸어놓은 오른쪽 벽면과 유리 벽 안쪽은 한아조의 하이라이트인 작업자(Craftsman)의 영역입니다. 손님들이 한아조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비누 제조의 과정 오픈에 대한 작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조한아 |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런 생각이 들 겨를이 없어요. 손을 쓰는 일을 할 때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작업자 대부분은 손님들에게 생소한 비누 제작 과정을 알려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이야기해요. 유리 너머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느끼면 일할 힘이 난다고 하고요.
입구 손잡이와 세면대 등 곳곳에 공예적 미감이 돋보이는 소품도 눈에 띄어요.
조한아 | 뭉툭한 비누의 형상을 닮은 입구 손잡이는 금속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윤정 작가의 작품이에요. 비누 트레이는 유리 공예가 김은주 작가의 손길을 거쳤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매장 바닥이에요. 버려진 대리석을 모아 테라조 비누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완성했죠. 저희가 손으로 비누를 직접 만드는 것처럼 대리석 조각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레벨기로 하나하나 수평을 맞춰 작업했어요. 한아조의 작업자 정신 중 하나인 ‘버리지 않는 것’을 미적 요소로 표현해낸 거죠.
‘버리지 않는 것’을 작업자의 메인 정신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상만 | 어떤 것이든 물건의 쓸모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또 우리가 만들어내고 구매한 물건들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인이 쓸모를 포기하는 순간 쓰레기가 돼버리니까요. 한아조 역시 이러한 마인드를 바탕으로 작업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비누를 모아서 테라조 비누로 만드는 퍼그램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그런데 테라조 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정형적인 자투리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투리를 모아 새로운 비누를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기로 했죠. 구매하신 분들이 “가성비가 좋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라며 호평하시더라고요. 고객들과 저희 모두를 만족시킨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손님들이 다양한 비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 한편에 개수대를 마련했다. 비누의 뭉툭한 형상을 닮은 입구 손잡이.
한아조에서는 비누 외에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도 판매한다(왼쪽부터).](https://dimg.donga.com/ugc/CDB/WOMAN/Article/67/aa/a7/d7/67aaa7d70c08d2738250.jpg)
손님들이 다양한 비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 한편에 개수대를 마련했다. 비누의 뭉툭한 형상을 닮은 입구 손잡이. 한아조에서는 비누 외에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도 판매한다(왼쪽부터).
김상만 | 한아조가 성장하며 다양한 것을 신경 쓰다 보니 날카로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의견을 전달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죠. 그때 생각해낸 것이 5S Tool이에요. 첫 번째 Tool인 스마트(Smart)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을 의미해요. 두 번째 스터디(Study)는 새로운 인풋을 얻는 것에 꾸준히 몰두하며 디깅(어떤 것에 집중하여 깊게 파고드는 행위)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그다음으로 소울(Soul)과 세인트(Saint)라는 항목이 있어요. 소울은 삶의 목적은 물론 소소한 취향이 서로 잘 맞는 것을 말하죠. 세인트는 이타적인 것, 즉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나도 반드시 어떠한 것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4가지 ‘S’를 얻으면 슈퍼루키(Super Rookie)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마음속에 5S Tool을 새긴 채 매사에 임하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한아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상만 |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거요.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회사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브랜드가 됐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인 제품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성수동 한아조 팩토리에는 ‘저희는 위대한 작업자들입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았어요. 고객들에게 위대한 작업자로서 희소성 있는 제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각오를 전달한 거죠.
한아조 안국점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조한아 | 유럽 여행을 가면 로컬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게들이 있잖아요. 치즈나 오래된 음식들을 파는 곳들이요. 여기 오시는 외국 관광객들이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이런 브랜드가 있구나’ ‘이런 비누를 만들고 있구나’ 하고요. 저희는 비누 등 무언가를 만들 때 물건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시작해요. 우선 세상에 정말 필요한지를 깊이 고민한 뒤 실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소중하게, 정성을 다해 제작하죠. 한아조의 포트폴리오와 같은 안국점을 통해 저희가 추구하는 마인드와 정체성 등을 많은 사람이 탐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아조 #비누 #안국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한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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