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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열두 번째 | 우리시대 진정한 영웅

“정년까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휴무일 산책 중 바다에 빠진 3명 목숨 구한 서벧엘 소방사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김형우 기자

2012. 10. 15

8월 중순 부산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절영도를 찾은 한 시민이 물에 빠진 중학생 셋을 구한 것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서벧엘 소방사. 그는 사건 당일 휴무일이었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년까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여기요! 사람 좀 살려주세요! ”
8월 9일 여자 친구와 함께 부산 영도구의 절영해안 부근 갈맷길을 산책하던 서벧엘(27) 씨는 절벽 아래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귀를 세웠다. 곧 여자 친구와 함께 가파른 계단을 뛰어내려 절벽 아래 자갈 해안에 도착했다. 밀려오는 파도는 거칠었다. 다소 낡았지만 ‘수영 금지 구역’ 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아담하고 물이 맑아 놀기 좋아 보이지만 수심이 깊고 바위가 많아서 수영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 경고를 무시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높은 파도에 쓸려간 것이다.
10명쯤 되는 학생들과 건장한 성인 남성들도 바다에 빠진 학생들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서씨는 여자 친구에게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하고 스노클링을 하러 모여든 사람들에게서 튜브와 구명조끼를 빌렸다. 이미 해변에서 약 20m 떨어진 곳까지 밀려난 두 학생을 구하러 물속에 뛰어들었지만 3m 높이 파도가 일어 간신히 5m쯤 가면 다시 3m 정도 해안가로 밀리기를 반복할 만큼 바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서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학생들에게 다가가 튜브를 잡게 한 뒤 해안가로 이끌었다. 두 사람을 구조하느라 그는 지칠 대로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몇 분 뒤, 구조된 두 학생과 일행인 학생 하나가 또 물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더 큰 파도에 휩쓸려 50m까지 밀려나갔다. 그 학생은 깊은 수심과 높은 파도에 조금만 더 떠내려간다면 연안에 떠 있는 큰 선박 아래에 깔릴 수도 있을 만큼 해안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서씨는 그사이 물속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듯했지만 또다시 세 번째 학생을 구하기 위해 튜브를 집어 들었다. 여자 친구는 “정말 또 들어갈 거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 아니면 저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라고 답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구조대가 도착하려면 20분 정도 걸릴 텐데, 그걸 기다리면 물에 빠진 아이가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점점 더 거세지는 파도. 서씨는 이미 두 학생을 구한 터라 체력이 소진됐음에도 혹시라도 이 학생이 목숨을 잃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속으로 다시 뛰어 들었다. 사투 끝에 결국 학생의 손을 끌고 물 밖으로 나온 서씨는 학생의 몸 상태부터 체크했다. 다행히 물을 많이 먹은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학생들에게 다음부터는 이곳에서 수영하지 말라고 타이른 뒤 여자 친구와 함께 현장을 떠났다. 그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곤란해질까봐 자신이 근무하는 소방서에 알리지 않았다.
며칠 뒤 서씨의 이야기가 부산시청과 부산소방본부 홈페이지에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사람에 의해 알려졌다. 물에 빠진 3명의 학생을 구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사하소방서 소속 서벧엘 소방사이고, 그의 선행을 칭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는 포털에 소개됐고, 용감한 행동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한 달 뒤 구조된 학생들이 속한 학교에서 서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의협심 강하던 청년, 소방대원이 되다

“정년까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사건이 발생한 부산 영도구 절영해안. 바다가 맑고 잔잔해 보이지만 바위가 많아 수영 금지 구역이다. 사건 당시에는 이보다 약 1m 높이로 물이 더 차올랐다.



부산 사하소방서 신평119안전센터에서 근무 중인 서벧엘 소방사는 작지만 탄탄한 체격의 소유자. 선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위급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구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소방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화재 진압을 하는 진압대와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대, 그리고 위급한 환자들의 응급처치를 맡는 구급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는 현재 구급대원이다. 예전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우연히 선택한 일이란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복지만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고민을 해왔죠. 그때 우연히 소방공무원 특채 공고를 보게 됐어요. 특수부대 출신들만 지원할 수 있는데 제가 마침 특전사 출신이었거든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사회복지라 생각하고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어요. 학교도 그만두고 지금까지 근무한 지 3년이 채 안 됩니다.”
서씨는 구조대에서 일하다 구급대로 옮겨온 지 몇 달 안 됐는데, 자신이 근무했던 구조대도 바다와 떨어진 곳에 있어 해상에서 구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물론 꾸준히 수상구조 훈련을 받아 왔다고. 시민의 제보로 소방서 내에 이 소식이 알려진 뒤 많은 동료들이 그를 칭찬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며 걱정해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부모는 아들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다음부터는 몸조심 하기를 원했다고.
“‘네 목숨도 소중하다. 그럴 때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충고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왜 무모하게 뛰어들었냐는 거죠. 몇몇 분들은 ‘그래도 사람 구했으니 잘했다’며 격려해주셨고요. 하지만 동료들로부터 이렇게 좋은 일을 했는데 특진도 없느냐는 말을 듣고 보니 제가 그것 때문에 사람을 구한 건 아니지만 많은 소방관들이 목숨을 내놓고 구조 작업을 하는데 진급과 같은 포상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에 한 주는 주간 근무를, 세 주는 격일로 야간 근무를 하는 그는, 심야 응급 구조 출동은 대부분이 주취자들에게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로 인해 혹시라도 진짜 위급한 사람들에게 더 빨리 가지 못할까 걱정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소방관이 된 그의 꿈은 정년까지 일하는 것. 하루라도 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란다. 누군가는 그 꿈이 뭐 그리 이루기 어렵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이처럼 큰 소원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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