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에 사는 윤모씨는 평생 교직생활을 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농사일은 서툴렀지만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분에 그럭저럭 할 만했다. 그런데 5년 전부터 무릎이 시큰거리고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했다. 3년 동안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약의 효과는 그때뿐, 하루만 지나면 통증이 재발해 도무지 나을 기미가 없었다.
‘퇴행성’이란 “조직이 어떤 원인으로 기능이 감퇴됐다”는 뜻으로,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 면이 서로 닿지 않게 보호해주는 연골이 마모돼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생기는 질환이다. 연골이 마모되면 마치 윤활유가 떨어진 기계의 금속이 서로 마찰을 일으켜 결국 고장이 나는 것처럼, 뼈도 심한 마찰로 자극을 받아 병이 생긴다.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며 통증이 느껴지고 주기적으로 그 부위가 붓기도 한다. 이런 환자에게 진통소염제를 처방해봤자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효과밖에 없고 위장장애만 추가로 생긴다. 관절 상태는 서서히 악화돼 결국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에 이른다. 윤씨처럼 평소 안 하던 노동을 갑자기 무리하게 하거나 농촌에서 평생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리고 앉아 농사일을 많이 한 노인들은 대부분 무릎, 허리, 손가락에 생긴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고생을 한다.
대명관절염연구소 박민수 원장(수원 유성약국 대표약사·61)도 11년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젊은 시절 유도와 육상으로 단련된 체력에 평소 등산을 즐기며 건강을 자신했지만 어느 날부터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힘겨워졌다. 난간에 의지하지 않으면 계단을 내려오지도 못할 정도였고, 주로 서서 근무해야 하는 약국에서 1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신장이 튼튼해지면 관절도 건강하다
약사로서 관절염 치료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그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박 원장이 선택한 것은 생약(生藥)이었다. 생약이란 식물의 뿌리, 잎, 열매 등 자연물을 그대로 또는 말려서 가루를 내거나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생약을 연구하는 동안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실험 결과 특히 육미환, 칠미환, 팔미환 등이 퇴행성 관절염에 효과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 생약은 신장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근골을 강하게 하며, 습(濕)을 없애주고, 기(氣)와 혈(血)을 보충해준다. 아픈 곳은 관절인데 신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골병 들었다’ ‘뼛골 빠지게 일했다’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퇴행성 관절염을 제대로 이해한 표현이에요. ‘뼛골 빠진다’는 것은 연골이 닳아질 만큼 격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운동을 많이 해서 골수가 말라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연골과 피의 생성을 돕는 골수를 공급하는 곳이 바로 신장이에요. 다시 말해, 신장이 튼튼해지면 골수와 연골의 생성도 활발해져 관절염에 걸리지 않는 것이죠. 관절염을 치료하려면 신장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신장과 관절의 연결고리’를 파악한 뒤 박 원장은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생약 처방을 시작했다. 수년씩 오로지 진통제의 힘으로 버텨왔다는 관절염 환자들에게 생약 처방을 한 결과 대부분 3개월 정도 지나면 효과가 나타나 6개월쯤 복용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호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원장은 또 관절염 환자의 70%가 여성일 만큼 유독 여성이 관절염에 많이 걸리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여성은 월경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만성적인 혈액 부족 상태가 되고 이로 인해 골수가 적어져서 연골 생성이 잘 안 되는 것이 관절염의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허리를 잘 못 펴거나, 걸을 때 무릎과 발목 등이 시큰거리고, 손목이 아파서 행주나 수건을 짜는 것도 힘겨워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으면 결국 관절염이 되고 중년 이후 각종 갱년기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20~30대 관절염 환자가 늘고 있는 이유
흔히 관절염은 연골의 마모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라고 여겼으나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관절염 환자가 늘고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무릎에 이상이 오고, 어깨와 손가락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은 이 부위에 통증을 느낀다. 다만 젊을 때는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해도 어느 정도 쉬면 관절의 기능이 회복되기 때문에 심각하게 관절염을 걱정하지 않는다. 박 원장은 이를 “아직은 피와 골수가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한 부분의 관절을 집중해서 사용하면 결국 연골이 닳아 관절염이 생긴다. 최근에는 운동중독이라 할 만큼 과도한 운동과 레저활동도 관절염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웰빙 하려다 병을 얻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나이 불문하고 발생하는 퇴행성 관절염의 발생 원인을 박 원장은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출산이나 수술 뒤 제대로 몸조리를 하지 못해 피가 부족해서 연골 생성이 잘 안 된 경우. 둘째, ‘피가 마른다’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피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골수가 말라버렸을 때. 셋째, 골병이 들 만큼 과도한 노동과 운동을 해서 연골이 너무 빨리 닳아 없어졌을 때. 넷째, 신장 자체가 노화돼 골수가 충분히 생성되지 않았을 때. 다섯째, 신장 기능의 이상으로 노폐물이 빠지지 않고 습(濕)과 열(熱)이 쌓여 비만이 되고 골수가 생성되지 않았을 때 등이다.
퇴행성 관절염과 사촌지간인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염증이 관절의 윤활 조직에 손상을 입히는 질환이다. 처음에는 관절 부위가 뻣뻣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정도이다가 관절이 벌겋게 붓고 아픈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염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의 원인은 외부에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것이라 하여 서양의학에서도 자가 면역성 질환으로 분류한다. 아직까지 염증을 일으켜 관절을 손상시키는 물질이 몸 안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완치되지 않는 일종의 ‘난치병’이다. 다만 통증을 완화시키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관절이 상하는 것을 늦추거나 중단시키는 약물 치료를 하고 있을 뿐이다. 박 원장은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는 특히 피가 부족하다”며 “심한 스트레스, 출혈, 다이어트, 노동 등으로 인해 오장육부에 열이 생겨 이 열이 관절강 속으로 빠져나갈 때 관절강이 열을 받아 부어오르거나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장을 강화시켜 피가 생성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관절염 환자는 5백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관절염 발병 연령도 20~30대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증상을 완화시킬 뿐,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박민수 원장은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생약 처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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