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여성암 전문병원에서 유방암 검진을 하는 모습.
“피곤해” 병원 일에만 신경 쓰는 남편, “밥 줘, 밥”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치매 시어머니, “알아서 할게요” 언제나 바쁜 큰딸, “됐어요” 여자친구밖에 모르는 삼수생 아들, “돈 좀 줘” 툭하면 사고 치는 백수 외삼촌. 가족들 누구도 “엄마는 안 죽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이미 자궁암 말기로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다시금 깨닫게 되는 가족애를 그린 영화다. 신파조에 진부한 소재라는 지적에도 관객들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이유는 이것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질병에는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병의 진단과 치료에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성인지의학(Gender Specific Medicine)이 국내에 확산되고 있다. 2005년 ‘한국성인지의학회’가 창립된 데 이어, 2010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이하 이화의료원)에서 국내 최초로 성인지의학협진클리닉을 열어 가슴앓이와 화병, 만성두통, 하복부 불편감 등 여성에게 특히 많이 생기는 질환에 대해 통합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성인지의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서현숙 이화의료원장은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검진율이 매우 낮아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채로 병원을 찾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여성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예방·치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3월 이화의료원이 펴낸 책 ‘여자, 40세부터 건강하게’는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4대 암부터 골반장기 탈출증이나 폐경 치료, 화병 같은 여성들만의 질환, 중년 여성의 다이어트와 섹스에 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여성에게 자주 발생하는 4대 암을 중심으로 ‘엄마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젊은 여성에게 자주 나타나는 갑상선암
남녀는 암 발생률에서부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국립암정보센터가 발표한 10대 암의 조발생률(인구 10만 명당 새로 발생하는 암 환자 수, 2008년 통계)에서 발생률이 높은 순서로 보면 남자는 위·대장·폐·간암이고, 여자는 갑상선·유방·위·대장암이다. 갑상선암의 남녀 비율은 1대 5.7에 달한다. 갑상선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여성의 연령은 45~59세이나 다른 암에 비해 유난히 30세 이전에도 적지 않게 발생해 15~34세까지 발생하는 여성암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가수 엄정화와 탤런트 윤해영이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갑상선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가족력과 관계가 높다는 것. 갑상선암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25%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엄마가 갑상선암이면 딸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갑상선암 초기에는 통증과 같은 증상이 없어서 암인 줄 모르고 지내다가 정기 건강검진이나 다른 수술을 위한 검사 중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조기 치료를 하면 예후도 좋아서 갑상선유두암 1기는 10년 생존율이 98.3%에 이르므로 암이라고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 모습.
자가 진단과 운동 효과로 위험 낮추는 유방암
유방암은 최근 10년간 약 3배가 증가할 만큼 발생률이 높아 예방과 자가 진단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유방암의 원인으로 유전과 여성호르몬, 환경호르몬, 비만, 과거 방사선 노출 정도와 늦은 결혼과 출산, 서구화된 식습관 등이 꼽히고 있다.
진단 시기가 생존율 좌우하는 위암
2009년 배우 장진영이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에는 드라마 ‘다모’에 출연했던 김민경이 불과 29세에 우리 곁을 떠났다. 두 여배우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위암. 평소 ‘위암은 술 많이 마시고 비만한 아저씨들에게나 생기는 것’이라거나 ‘주변에서 위암 수술 받고도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봤다’라고 했던 이들은 젊은 여배우의 죽음이 의아할 수도 있다. 결정적인 사망 이유는 너무 늦은 진단이었다. 위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말기에 발견하면 5% 남짓으로 떨어진다. 위암 초기에는 80%가량이 증상이 없고,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쓰리거나 더부룩한 정도여서 보통 소화불량인 줄 알고 무시하기 쉽다. 특히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단체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부들이 이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위암의 가장 좋은 예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정기검진!
매년 5.3%씩 증가하는 여성의 대장암
최근 탤런트 김자옥이 3년 전 대장암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대장암의 발생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99~2007년 사이 여성의 대장암 발생률은 매년 5.3%씩 증가하고 있고 65세 이상 노령 여성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대장암 환자의 25%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유전적 요인이 있는 경우 좀 더 어린 시기에 암이 발생하고 대장 이외의 장기에도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손쉬운 대장암 예방법은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미국암학회가 권고하는 내용을 보면 지방의 섭취 비율을 30%로 줄이고 섬유질을 30g 이상 먹고 매일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며 칼슘 섭취를 늘리고 음주는 줄이며 비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등이다.
남녀, 같은 병 다른 증상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한국인의 뇌졸중 사망률을 보면 10만 명당 남성은 72.7명, 여성은 81.7명으로 여성에게 훨씬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의 경우 뇌졸중 유형 중 뇌경색보다 뇌출혈(뇌경색보다 치사율이 높음)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졸중 치료도 남녀에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스피린이 여성의 뇌졸중 1차 예방(발병 전 단계)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뇌졸중 주요 위험인자인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을 가진 여성이 저용량 아스피린(하루 100mg)을 복용하면 뇌졸중 발병 위험을 17~24%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남성의 경우 저용량 아스피린이 심장 질환 예방에는 효과가 있으나 뇌졸중은 막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 질환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가운데 암 다음으로 높은 질병인데,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심장 질환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 중 가장 흔한 고혈압의 경우, 중년 여성은 폐경 이후 혈관을 확장시켜주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아 혈압이 상승하는 것이 주 원인이다. 또 같은 협심증이라도 남성들은 전형적인 가슴 통증을 주로 호소하지만, 여성들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차거나 우울해지고 수면 장애를 겪는 등 비특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조기 발견에 어려움을 겪는다.
50대 여성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명치끝에 뭐가 달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명치끝에서 목구멍 쪽으로 불덩어리가 올라와서 참을 수 없이 힘들다고 호소한다. 온갖 검사를 다했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 여성을 괴롭히는 병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화병. 한국 사람들은 ‘울화가 치민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오랫동안 참았던 울화, 분노 등이 쌓여 있다가 나이가 들고 정신적·신체적으로 약해졌을 때 더는 참을 수 없어 폭발하면서 화병이 생긴다. 화병 환자의 90% 이상이 중년 여성인 것도 특징. 과거 남아 선호와 혹독한 시집살이, 육아 및 자녀교육에 대한 과도한 책임,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현실 등이 화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화병을 방치하면 불면증과 고혈압, 중풍, 당뇨병, 비만, 관절염 등 각종 성인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과민성대장염, 만성위염, 위궤양, 두통, 귀 울림 등 신경성 질환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처럼 질병에 따라 남녀 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조기 진단과 치료의 시기를 놓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겪게 될 수 있다. 주부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엄마의 건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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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서·‘여자, 40세부터 건강하게’(P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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