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김요한의 무대는 럭비 코트가 아닌 태권도장이었다. 국가대표 꿈나무 상비군 감독을 역임한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전국소년체육대회와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올랐지만 뜻밖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좌절의 순간, 연예인이라는 새로운 꿈을 만났고, 2019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에서 1위를 차지하며 엑스원 센터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엑스원 해체 후에는 위아이 멤버로 활동을 이어갔다. ‘학교 2021’을 통해 배우로도 데뷔했지만 준비해오던 작품들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자리를 잃은 기분이었다”라고 고백할 만큼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트라이’ 대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더 욕심이 났다고 한다. 촬영 전 3개월간 럭비 트레이닝을 받으며 몸을 만들었고, 1년 가까이 현장을 함께한 배우들과는 실제 운동부처럼 끈끈한 팀워크를 쌓았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김요한의 얼굴에는 좌절을 딛고 마침내 끝까지 완주한 안도와 성취가 담겨 있었다. ‘트라이’가 그에게 남긴 가장 큰 수확은 성준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다. 김요한은 이제 또 다른 무대인 그룹 위아이의 컴백을 앞두고 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청춘은 앞으로도 경쾌하게 굴러갈 것 같다.
운동선수 출신·부상 절박함… 자신과 너무 닮은 성준
드라마 종영 소감은 어떤가요.연습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1년 가까이 함께한 작품이라 끝나고 나니까 많이 아쉬웠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한 몸처럼 땀 흘리며 열심히 달려와서 더 애틋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장이 정말 좋았거든요. 배우들끼리, 특히 럭비 부원들끼리 사석에서도 많이 만나고, 현장에서도 밥을 같이 안 먹으면 안 될 정도로 친했어요. 극 중 빌런 성종만 교감 역을 맡은 김민상 선배님, 전낙균 감독 역의 이성욱 선배님 등 모두 품성이 좋으시고 재미있는 분들이어서, 이런 시너지가 시청자분들께도 전달된 것 같아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어땠나요.
럭비를 소재로 한 드라마이긴 하지만 단순히 스포츠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성장과 서사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작품이더라고요. 그래서 ‘럭비는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도전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성준이라는 캐릭터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저와 닮은 부분이 많거든요. 마지막에 부상 때문에 시합을 걱정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3학년이 사실상 대학 스카우트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2학년 때 큰 수술을 하는 바람에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성적을 못 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컸거든요. 그래서 성준의 절박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연기할 수 있었어요.
성준과 서우진(박정연)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어요. 두 사람 러브 라인의 포인트는 뭐였나요.
성준과 우진은 어릴 때부터 함께 운동하며 자라온 소꿉친구예요. 서로의 생활 습관까지 다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죠. 또 우진이 당차고 카리스마 강한 ‘테토녀’ 스타일인데, 성준은 거기에 밀리지 않고 계속 들이대는 면이 있어요. 그 시너지에서 오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 스포츠 연기에 유리했을 것 같아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촬영 들어가기 약 3개월 전부터 꾸준히 럭비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생소한 스포츠라 힘들고 어려웠는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자세나 태클 폼 같은 기본 동작들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몸만들기도 큰 과제였어요. 실제 선수들은 타고난 체격에다가 10년 넘는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몸인데, 몇 개월 만에 그 수준을 따라가는 건 역부족이었죠. 그래도 두세 달 동안 식단 조절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면서 몸을 최대한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원래 체중이 71kg 정도였는데, 78kg까지 늘렸다가 카메라 앞에서 너무 부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첫 촬영 들어갈 때 약 73kg 정도로 맞춰서 출발했습니다.


드라마 ‘트라이’에서 만년꼴찌 한양체고 럭비부 주장을 맡아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 김요한.
럭비와 태권도 모두 동료와 함께하는 운동
운동선수 출신이라 몸만들기는 수월했을 것 같은데요.태권도 선수 시절에는 상체 웨이트를 안 했어요. 이번에 몸을 만들면서 상체 웨이트를 해보니 태권도 선수들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수로 활동하는 여동생들에게 웨이트를 꼭 하라고 피트니스 이용권을 끊어줬습니다(웃음).
태권도와 럭비는 성격이 많이 다른 종목인데, 두 운동을 비교한다면요.
우리 드라마 내레이션에도 나오는데, 럭비는 공을 앞으로 패스할 수 없고 반드시 뒤로만 패스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옆에 항상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팀워크가 없으면 절대 트라이(공격하는 선수가 상대편의 골 라인 안에 공을 찍는 일)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태권도는 흔히 개인 종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누군가는 미트(손가락 부분들이 붙어 있는 장갑)를 잡아줘야 하고, 스파링을 해줘야 하고, 함께 훈련할 사람이 꼭 필요하거든요. 두 종목 모두 동료와 함께해야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공이 길쭉해서 캐치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슬라이딩이 정말 아팠습니다. 잔디에 몸이 계속 쓸리니까 샤워할 때마다 진짜 죽겠더라고요. 그 정도 외에는 딱히 힘든 점은 없었어요. 부상도 있었지만, 럭비 시퀀스를 찍을 때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 모두 부상을 겪으면서도 촬영을 이어나갔습니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학창 시절이 떠오르진 않았나요.
드라마의 배경이 한양체고인데 실제로 저는 서울체고 출신이에요. 촬영은 전북체고에서 했는데 운동부 특유의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너무 익숙해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윤계상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쑥스러워서 조언 같은 건 잘 안 하는 스타일이신데, 현장에서 상대 배우가 잘할 수 있게 끌어주는 분이셨어요. 감정 신에서 타이밍을 딱 캐치해서 “지금 바로 한 번 더 가자”라고 해주실 때는, 옆에서 보는 제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종종 연락하시고, 지금도 자주 뵙는 사이예요. 좋은 선배님이자 든든한 어른이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혹은 살면서 주가람처럼 좋은 어른을 만난 적이 있나요.
저를 지도해주신 모든 감독님이 좋았지만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아버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의 첫 태권도 스승님이셨고, 정신적 지주셨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시합에 빠지지 않고 와주셨어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땐 관중석에서 아버지를 찾았어요. 그러면 힘이 나더라고요.

좌절 극복하고 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
드라마 속 성준처럼 일탈을 해본 적도 있는지요.태권도를 할 땐 58kg급이라 대회 때마다 10kg씩 감량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은 많았죠. 그래도 아버지가 늘 지켜보고 계셨고, 또 선배들이 도망갔다가 결국 잡혀 오는 걸 봐서(웃음) 저는 그냥 끝까지 버텼던 것 같아요. 지나고 나니 다 추억으로 남더라고요.
성준처럼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은 적은 없나요.
태권도로 대학 진학을 했는데, 발목도 좋지 않고 부상을 많이 입다 보니 좀 지쳐 있었어요. 그때 마침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타이밍이 참 기가 막혔던 것 같아요. 사실 아버지는 제가 운동을 계속하길 원하셨는데, 그 시기에는 일본에서 팀을 운영하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놀라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저를 자랑스러워하십니다.
드라마를 보면 운동선수들은 징크스에 민감한데, 선수 시절 특별한 징크스가 있었나요.
어렸을 적에는 경기 때 꼭 곰돌이 팬티를 입고 나갔어요. 신기하게 그걸 안 입으면 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징크스가 심해지니까 어느 순간 어머니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다 버리셨어요(웃음). 그 뒤로는 노란색 속옷을 입고 경기에 나갔던 적도 있고요. 또 손등 보호대를 꼭 챙겼는데, 그걸 일부러 상대 선수보다 늦게 끼는 루틴이 있었어요. 코트 뒤에서 몸 푸는 방식도 항상 똑같았고요. 저만의 작은 의식 같은 게 늘 있었던 것 같아요.
‘트라이’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요.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돼서 기쁘고, 무엇보다 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카메라가 나를 찍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죠. 그 답답함이 반복되면서 좌절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 느낌입니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혹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어요. 눈앞의 일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고, 이걸 못 하면 안 될 것 같았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느꼈던 건,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고, 그때는 이전의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저 자신에게도, 지금 청춘들에게도 “그냥 계속해, 꾸준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요한 #트라이 #위아이 #여성동아
사진제공 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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