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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재개봉 영화의 역주행, 요즘 극장가 웃픈 속사정

조진혁 프리랜서 기자

2025. 02. 27

신작보다 재개봉 영화가 더 강력한 흥행력을 자랑하며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는 요즘 극장가 풍경. 달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낭만 가득한 벨에포크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잇 인 파리’(2012)가 최근 재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낭만 가득한 벨에포크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잇 인 파리’(2012)가 최근 재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익숙한 낭만이 돌아왔다. 2012년 개봉해 파리 붐을 일으켰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2월 12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재개봉하며 국내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극장에서 볼 수 있겠냐며,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영화 팬들의 발길이 바쁘다. 30주년 에디션으로 1월 재개봉한 ‘러브레터’는 지난해 12월 타계한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 추모 물결이 일면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사실 재개봉이 화제가 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가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겪으며 위기에 처했다. 분위기를 반전할 무기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세웠지만, 신작 영화들은 흥행에 실패했다.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들도 과거만큼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관객 감소로 인해 극장들은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팬데믹 당시 신작 영화 배급이 미뤄지면서 극장에서 상영할 콘텐츠가 부족해졌고, 고육지책으로 극장들은 검증된 과거 히트작들을 다시 스크린에 올리는 전략을 시도했다. 이는 극장에서 명작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심리를 정밀하게 공략한 것이었고, 이러한 전략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재개봉 현상이 고착화됐다.

극장가는 팬데믹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에는 못 미친다. 팬데믹 정점이었던 2020년 국내 극장가의 전체 매출은 5103억 원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1조2614억 원에 도달했다. 이 수치는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극장가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5.3% 감소하며 약 699억 원 줄었고, 관객 수는 201만 명이 줄어들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평균과 비교하면 무려 55.7% 감소한 수준이다. 말 그대로 반토막 난 것이다.

100만 관객을 넘긴 작품도 14편에 그치며 신작들의 흥행 부진 역시 두드러졌다. 물론 ‘파묘’와 ‘범죄도시4’ 같은 1000만 관객 영화가 있었고, ‘인사이드 아웃 2’나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같은 작품들이 나름 흥행했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에 한국 대작 영화가 없었고, 겨울 시즌에도 메가 히트작이 부재했다. 이밖에 제작비 상승과 투자 위축 등으로 영화 제작이 어려워지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러한 요인들은 더욱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흥행이 보장된 기획에만 자금이 집중돼 영화의 다양성 부족과 창작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영화 관람료 인상까지 겹쳐 관객들의 극장 방문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 더 스쿨 아이돌 무비’(2015),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2)가 개봉했을 때 상영관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 팬들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극장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콘텐츠가 아니라 확실한 관객이다. 극장은 신작 대신 기존에 팬덤이 형성된 검증된 콘텐츠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노트북

노트북

전략은 성과를 보였다. 2024년 재개봉한 ‘노트북’(2004)은 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남은 인생 10년’(2022)은 처음 개봉 당시 13만 명을 모았으나 재개봉 후 43만 명이 추가로 관람하며 총 56만 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했다. ‘비긴 어게인’(2014) 역시 10년 만에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며 23만 명을 돌파했다.

숨은 보석 발굴 vs 스크린 ‘땜빵’, 극장 운영 방식 변화의 신호탄

극장들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기적인 재개봉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CGV는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 프로젝트를 통해 ‘캐롤’(2015), ‘색, 계’(2007) 등의 명작을 매월 한 편씩 선정해 상영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보석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해 ‘이터널 선샤인’(2004), ‘러브레터’(1999) 등을 재개봉했다. 메가박스도 ‘콜롬비아 100주년 기획전’을 계획해 ‘컨택트’(2016), ‘베이비 드라이버’(2017) 등의 작품을 재개봉하며 흥행 가능성을 높였다.
그렇다면 신작보다 재개봉 영화가 관객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신작의 작품성과 흥행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 영화에 관심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신작의 다양성이 줄어든 것은 물론, OTT의 보편화로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 영화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영화 관람료가 OTT 한 달 이용료보다 비싸기 때문에, 극장에서 관람할 가치가 있는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결국 관객들은 재미와 감동이 보장된 검증된 콘텐츠를 선택하게 된다.

러브레터

러브레터

복고 트렌드와 향수 마케팅도 재개봉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1020 세대가 과거 명작을 새로운 시선으로 감상하는 문화적 흐름이 형성되었고, 유튜브 쇼츠와 인터넷 밈을 통해 다시 주목받은 영화들이 극장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인터넷 반응에 힘입어 원작을 재편집해 상영하는 현상도 생겼다.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은 개봉 당시에는 약 2만8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주목받지 못했지만,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재발굴되며 18년 만에 리마스터링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이 개봉했다. 감독 타셈 싱이 내한해 국내 관객들을 찾기도 했는데, 재개봉된 감독판은 1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기존의 3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재개봉에 맞춰 2월  한국을 찾은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재개봉에 맞춰 2월 한국을 찾은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하지만 재개봉 영화가 침체에 빠진 극장가를 완전히 회생시킬 수는 없다. 그저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작 콘텐츠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대형 배급사의 신작 제작 편수가 크게 감소했다. 지난 설 명절 텐트 폴 영화는 ‘하얼빈’ 한 편뿐이었다. 투자 감소로 중형 영화(제작비 40억~50억 원 규모) 제작이 적어졌고, 새로운 IP(지식재산권) 개발이 줄어들면서 원작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창작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개봉 열풍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극장의 운영 방식이 변화하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과거처럼 신작 중심의 라인업이 아닌, 신작과 재개봉 영화가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것. 극장은 OTT와 차별화된 ‘공간적 경험’을 극대화하고, 관객의 극장 관람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마케팅과 기획을 지속해야 한다. 극장가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이벤트성 상영’ ‘테마별 기획전’ ‘배우 특별전’ 등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더 깊이 알아보고 ‘디깅’하는 기회가 된다.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 요소를 가미한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특수 상영관을 활용한 프리미엄 상영 전략도 강화되고 있다. 아이맥스(IMAX), 4DX, 돌비 애트모스와 같은 고급화된 상영 환경은 OTT가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을 극장 관객들에게 제공하며 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금 재개봉 열풍은 ‘추억팔이’가 아니다. 변화하는 영화 소비 패턴과 극장의 생존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신작 영화의 부진이 계속된다면, 재개봉만으로는 관객을 지속적으로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극장가는 검증된 명작을 재개봉하는 동시에 새로운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극장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한번 본 영화, 다시 본다’는 공식을 넘어 극장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신작과 재개봉 영화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극장의 불을 더욱 밝힐 날이 올 것이다.



#미드나잇인파리 #재개봉영화 #여성동아

‌사진 동아DB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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