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이 같은 옷을 다른 느낌으로 소화해 종종 화제가 될 때가 있다. 대부분 시즌 신상을 협찬받는 경우다. 그런데 가끔 세계 각국의 로열패밀리들이 똑같은 의상을 입고 공식 석상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왕실에는 전담 재단사가 있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전담 재단사였던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은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녀는 왕비를 위해 1년에 300벌의 드레스를 제작했고, 이는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이어졌다.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의 아이콘’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 베르탱도 함께 몰락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도 70년 가까이 의상을 맡은 전담 재단사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그니처 의상인 파스텔 톤 원피스와 코트가 바로 하디 에이미스 경의 손에서 탄생했다.
현대 로열패밀리들은 결혼식, 대관식 등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곤 맞춤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이제 왕실 재단사라는 직책은 사라지고 오트쿠튀르 디자이너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이 드레스와 정장만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캐주얼한 행사나 사적인 공간에서는 청바지에 셔츠, 스니커즈를 매치하기도 하고, 일부 젊은 왕족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의상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기도 한다. 로열패밀리들이 기성 브랜드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종종 겹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왕실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우아하고 클래식하면서도 유행을 놓치지 않는 센스와 왕실의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를 모두 만족시키는 선택지가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영국 사라 퍼거슨 공작 부인과 네덜란드 아밀리아 공주가 똑같은 초록색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됐다. 퍼거슨 부인은 지난 9월 5일 열린 퍼펙트월드 재단의 시상식에서였고, 아밀리아 공주는 9월 17일 열린 네덜란드 의회 개회식에서였다. 영국 기반 브랜드 사피야(Safiyaa)의 이 드레스는 가슴 부분에 컷아웃 디테일이 있는 독특한 디자인과 케이프 스타일의 긴소매가 특징이다. 사피야는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메건 마클 왕자비가 즐겨 입으면서 유럽 왕실 사이에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딥 그린, 퍼플 등 귀족적인 컬러와 케이프 스타일의 우아한 디자인이 트레이드마크다. 퍼거슨 부인은 같은 색 계열의 클러치백과 드롭 이어링으로 심플한 멋을 강조한 반면, 아밀리아 공주는 골드 컬러 클러치백과 주얼리 장식 헤드피스, 스튜어트와이츠먼의 스틸레토 힐 등으로 위엄 있는 룩을 완성했다.
유럽의 로열패밀리라면 옷장에 몇 벌 필수로 갖고 있는 유니폼 같은 의상이 있다. 바로 영국 브랜드 뷸라(Beulah)의 드레스다. 목까지 올라오는 버튼 장식, 캡 소매와 벨트 등 디자인의 모든 요소가 ‘단정’ 그 자체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과 덴마크의 메리 왕비, 노르웨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연한 핑크 컬러의 뷸라 반팔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시간차를 두고 목격됐다. 영국의 베아트리체 공주, 또 다른 영국 왕실의 일원인 소피 윙클먼은 블루와 진한 핑크 컬러의 긴팔 버전을 갖고 있다. 왕실 여성들이 뷸라를 선호하는 데는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디자인 외에도 인도 인신매매 피해자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그들의 자립을 돕는 윤리적 브랜드라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로열패밀리 가운데 스타일 좋기로 유명한 레티시아 스페인 왕비와 메건 마클 영국 왕자비가 동시에 선택한 스커트가 있다. 독일 명품 브랜드 휴고보스의 가죽 소재 펜슬 스커트다. 언뜻 평범한 듯 보이지만 섬세한 테일러링으로 몸의 실루엣이 특히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이 특징. 메건 마클은 2018년 해리 왕자와 결혼하고 처음 소화한 공식 일정에서 와인 컬러의 이 스커트를 입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어 이후 그린 컬러도 추가로 구매했다. 레티시아 왕비는 2019년 한국 방문 당시 와인 컬러 스커트를 입었다. 두 사람의 스커트를 디자인한 주인공은 한국 출신 염미경 디자이너다. 앤클라인, 보성, 경남모직 등 국내 브랜드에서 커리어를 쌓은 염 디자이너는 2000년대 초반 유럽으로 이주해 아크리스, 휴고보스 등에서 활동했다. 레티시아 왕비, 메건 마클 외에도 카시라기 모나코 공주 등도 그의 단골이었다. 염 디자이너는 현재 개인 브랜드 ‘더염(The Yeom)’을 이끌고 있다.
고부 사이인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항상 함께 거론되는 스타일 아이콘이다. 다이애나는 기존 영국 왕실의 틀을 깨고 캐주얼하고 페미닌한 스타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냈고, 케이트는 그런 다이애나의 스타일을 종종 자신의 패션에 오마주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이트 도트 무늬 원피스다. 케이트 미들턴은 지난해 성 조지 성당에서 열린 가터 훈장(기사도 훈장) 수여식에서 화이트 바탕에 블랙 도트 무늬가 있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1988년 다이애나가 한 왕실 행사에서 입은 도트 무늬 드레스와 거의 흡사하다. 케이트는 시어머니의 유품인 13캐럿 에메랄드 반지를 착용하고, 앞코에 블랙 포인트가 있는 펌프스까지 동일하게 매치하는 등 다이애나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벨기에의 델핀 공주는 지난 7월 국경일 행사에서 핑크와 레드 컬러 조합의 과감한 팬츠 슈트를 입어 주목받았다. 재킷 앞부분에는 커다란 나비 문양이, 등에는 ‘LOVE’라는 글자가 프린트돼 있었다. 알베르 2세 전 국왕과 오랜 불륜 관계에 있던 시빌 드 셀리 롱샴 남작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델핀 공주는 DNA 검사를 포함한 오랜 소송 끝에 2020년 51세의 나이에 공주 자격을 얻었다. 2021년부터 왕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그녀는 과감하고 눈에 띄는 스타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핑크와 레드 컬러 앙상블은 너무 강렬해 왕실 여성들이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편이지만 202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여기에 도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하던 2020년, 도파민 드레싱(우울함을 달래는 밝은 컬러와 위트 있는 디자인의 패션)의 일환으로 핑크와 레드 조합을 선택했다. 해당 의상을 디자인한 주인공은 왕실의 재단사 하디 에이미스 경이다. 여왕은 평소에는 눈에 띄는 밝은 컬러 의상을 즐겼는데, 이는 군중이 자신을 쉽게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로열패밀리 #왕실패션 #여성동아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청와대
현대 로열패밀리들은 결혼식, 대관식 등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곤 맞춤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이제 왕실 재단사라는 직책은 사라지고 오트쿠튀르 디자이너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이 드레스와 정장만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캐주얼한 행사나 사적인 공간에서는 청바지에 셔츠, 스니커즈를 매치하기도 하고, 일부 젊은 왕족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의상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기도 한다. 로열패밀리들이 기성 브랜드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종종 겹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왕실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우아하고 클래식하면서도 유행을 놓치지 않는 센스와 왕실의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를 모두 만족시키는 선택지가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 사피야
최근 사피야 브랜드의 똑같은 의상을 입은 아밀리아 네덜란드 공주와 영국 사라 퍼거슨 공작부인.
유럽 왕실의 유니폼 뷸라 원피스
뷸라의 원피스를 입은 덴마크의 메리 왕비,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 노르웨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왼쪽부터).
로열패밀리가 사랑한 한국인 디자이너 염미경
한국인 디자이너 염미경 씨가 디자인한 스커트를 입은 영국의 메건 마클 왕자비(왼쪽)와 스페인 레티시아 왕비.
오마주의 정석 보여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시어머니 다이애나의 도트 원피스를 오마주한 케이트 미들턴. 구두와 반지까지 동일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vs 델핀 공주, 과감한 선택의 이유
각각 국민들에게 밝은 기운을 주기 위해,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과감한 의상을 선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벨기에 델핀 공주.
#로열패밀리 #왕실패션 #여성동아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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