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의 성장은 버추얼 아이돌 최초, 최고와 연결된다. 공중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 날에도 플레이브는 “우리 같이 역사를 써나가 봅시다”란 소감을 남겼다.
예준, 노아, 밤비, 은호, 하민으로 구성된 플레이브는 MBC 사내 벤처 출신 기업 블래스트가 론칭한 버추얼 아이돌로, 지난해 3월 첫 싱글앨범 ‘기다릴게’로 데뷔했다. 5개월 만인 8월 발매한 미니앨범 1집으로 초동 판매량 20만 장을 넘겼다.
가상 아이돌 하면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아담’이 먼저 떠오르는 ‘K-팝 고인물’로서 플레이브를 지켜보게 된 계기는 지난해 9월 개최된 MBC ‘아이돌 라디오’ 콘서트였다. 최애 그룹 에이티즈가 MC도 보고 출연하기에 더 좋은 좌석을 찾아 손품 팔던 중 플레이브 팬덤 플리들이 남긴 수상한(?) 글들을 발견했다. 플레이브의 첫 오프라인 콘서트에 참석하고자 알아보는 플리들은 “전광판이 잘 보이느냐”고 묻고 있었다. 보통은 무대 앞 구역이 스탠딩인지 의탠딩(의자+스탠딩)인지, 돌출 무대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전광판이 1순위는 아니다. 실제로 이날 무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2층은 거의 플리 단체석이나 다름없었다. 플리들의 열성적인 응원도 놀라웠지만, 진짜 무대에서 춤추는 것 같은 화면 속 플레이브를 보며 기술력에 감탄했다.
“AI 아니에요. 뒤에 사람 있어요”
왼쪽에서부터 하민, 노아, 예준, 밤비, 은호.
플레이브가 이처럼 자연스럽게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이유는 2D 캐릭터 뒤에 실연자가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게임 개발 툴인 ‘언리얼 엔진’과 실시간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해 장치를 부착한 실연자가 움직이는 대로 캐릭터로 변환해 화면에 송출한다. 2002년부터 2021년까지 MBC 영상미술국 VFX팀의 슈퍼바이저로 일했던 이성구 블래스트 대표는 플레이브에 대해 “‘디지털 펭수’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인형 탈을 쓴 사람을 대중이 펭수로 인식하듯, 플레이브도 보이는 모습만 웹툰풍 캐릭터일 뿐 실시간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팬들과 만난다. 현재 영상통화 팬 미팅, 유료 소통 채널 버블, 음악방송 사전녹화 등 다른 아이돌이 하는 활동도 거의 다 소화해내고 있다. 4월에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연다.
특히 연습생 시절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는 라이브 방송은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 일등 공신이다. 버추얼 아이돌 특성상 오프라인 스케줄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음악방송이나 라디오 출연 시 녹화나 이원생방송 형태다. 그러다 보니 초기부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치, 아프리카TV 등 다양한 채널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팬들을 만나왔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로만 일주일에 2회씩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활발한 양방향 소통을 통해 멤버 개개인의 매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 멤버 간의 관계성 등을 내보이며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청하기 시작한 이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또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라이브 방송의 묘미다. 예를 들면 라이브 방송 중 기술적 오류가 생겼을 때 “스트레칭해야겠다” “닥터한테 갔다 온다”고 대처하거나,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는 한국인 모멘트를 보일 때 등 AI가 아닌 데서 오는 친근함이 있다.
플레이브를 계속 보려면 스밍하고 투표하자는 플리
라이브 방송과 각종 커버 영상, 댄스 챌린지 등 부족한 오프라인 활동을 만회하는 온라인 떡밥들.
플레이브가 본업을 훌륭히 해내는 모습은 팬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 이토록 음악을 좋아하는 내 가수의 다음 앨범을 듣기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주자는 것이다. 플리의 화력은 유명하다. 다른 아이돌 팬덤과 달리 K-팝, 2D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웹소설, 버튜버,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이다 보니 아이돌 분야 선배 팬들이 이끄는 대로 A부터 Z까지 배워 스밍하고 투표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팬덤 내에서 우스갯소리로 명령어가 입력되면 그대로 행한다는 ‘플리 AI설’이 나올 정도다. 덕분에 결과도 훌륭하다. 서울가요대상 뉴웨이브 스타상, 한터뮤직어워즈 버추얼 아티스트 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번 미니앨범 2집의 경우 한터차트 집계 기준 초동 판매량 56만9289장을 기록했으며, 일본 오리콘 차트 주간 앨범 랭킹(2월 26일~3월 3일)에서 14위를 달성하며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IT 기업인 블래스트는 K-팝 문법을 배우는 중이다. 데뷔 1주년인 3월 12일에는 앞으로 팬레터를 제외한 선물, 서포트, 도네이션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플레이브가 라이브 방송 중 도네이션을 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유튜버나 스트리머와 달리 아이돌 그룹은 라이브 방송 중 팬들로부터 직접적인 현금 후원을 받지 않기 때문. 이번 결정을 통해 플레이브는 보다 완전한 아이돌에 가까워졌다. 아니, 이미 아이돌인데 더 완벽해져가고 있다는 표현이 좀 더 맞겠다.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멤버들은 눈물을 보였다. 만감이 교차한 버추얼 아이돌의 갑작스러운 눈물, 아이돌들이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하고 흘리는 눈물과 다를 게 있을까.
윤혜진은
아이돌 조상 H.O.T.부터 블락비, 에이티즈까지 청양고추 매운맛에 중독된 K-팝 소나무다. 문화교양종합지와 패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기자를 거치며 덕업일치를 이루고, 지금은 아이와 뮤직비디오 같이 보는 엄마로 레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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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블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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