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JYP나 하이브, YG 등 대형 기획사 중에서 최근 유독 SM 소속 가수들의 리메이크 및 샘플링 행보가 두드러진다. 올 1월 5일 라이즈가 발표한 싱글곡 ‘Love 119(러브 원원나인)’은 밴드 이지(izi)가 지난 2005년 KBS 드라마 ‘쾌걸춘향’ OST로 발표한 ‘응급실’을 샘플링한 곡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아픔을 응급 상황에 빗댄 노래다. 뮤직비디오에는 CD플레이어와 줄 이어폰 등 추억 속 소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홍보 프로모션 역시 뮤직비디오 속 미래에서 온 문자메시지와 연결해 과거로 돌아갔다. 별도로 마련된 ‘Mail Box’ 페이지에 접속하면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멤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큰 호응을 얻었다.

리메이크 통해 보유 중인 기존 IP의 수명 연장

과거 H.O.T.와 S.E.S. 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원곡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살린 NCT드림의 ‘캔디
이 같은 주특기를 바탕으로 SM은 유튜브와 함께 2021년부터 ‘리마스터링 프로젝트’를 진행 해오고 있다. K-팝의 역사를 조명하고 음악 업계 성장에 기여하기 위한 기획으로, 레전드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뮤직비디오와 음원을 디지털 플랫폼에 적합한 상태로 업스케일링 및 리마스터링해 ‘SM 스테이션’을 통해 선보인다. 1세대인 H.O.T.와 S.E.S.부터 2세대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에 이어 지난해 데뷔한 5세대 라이즈까지 다양한 IP를 보유한 SM으로서는 리메이크 작업을 통해 기존 IP 수명까지 늘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콘셉트 자체가 메타버스인 에스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리마스터링 프로젝트의 단골손님이다. 이번 ‘시대유감’ 이전에도 선배 그룹 S.E.S.의 ‘Dreams Come True’를 2021년에 선보인 바 있다. ‘Dreams Come True’는 1998년 발매한 S.E.S. 2집 타이틀곡으로, 당시에도 신비로운 요정들의 몽환적인 비주얼과 낯선 인트로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를 SM의 또 다른 요정들이 비슷한 듯 다른 맛으로 요리했다. 이 외에도 리마스터링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에스파는 데뷔 4개월 차 신인일 때, 2000년 발매된 유영진의 ‘Forever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아빠들에게)’를 리메이크해 두 번째 싱글곡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2000년대생 라이즈와 2000년대 곡 ‘응급실’이 만난 이유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
특히 전 국민 노래방 애창곡 ‘응급실’을 택한 점이 탁월했다. SM이 지난해 9월 원곡자 측에 샘플링 허락을 구하러 연락을 취했을 때 이지의 보컬 오진성조차도 ‘SM이 왜 이 노래를 샘플링하지?’ 생각했을 만큼 라이즈와 ‘응급실’은 생소한 조합이다. SM 관계자는 “작곡진이 최초 데모부터 ‘응급실’을 샘플링한 것으로, 곡 작업 단계에서부터 한국에서 오래 사랑받고 있는 노래를 활용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오래’다. ‘응급실’은 발표된 이래 노래방 인기 차트에서 누적 1위를 차지한 곡이다. 저작권(작곡·작사·편곡자의 권리)과 저작인접권(제작자와 실연자의 권리)을 합하면 100억 원이 넘는다.
이 같은 ‘응급실’의 인지도에 라이즈가 추구하는 ‘이모셔널 팝’이 더해져 전혀 다른 ‘응급실’ 2024년 버전이 탄생했다. 이모셔널 팝은 멤버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에 초점을 둔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끝내자고 말을 해버린 거야”라고 익숙한 ‘응급실’ 한 소절이 나온 후 바로 “1 2 Let’s go”라며 라이즈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풍성한 사운드와 “이건 Emergency 1-1-9” 같은 발랄한 가사, 청량한 보이스 등 언뜻 들으면 완전히 다른 노래다. 오진성 역시 “원곡 속 내 목소리가 이별에 아파하고 애절한 느낌이라면 라이즈는 쿨하고 담담하다”며 “사실 ‘응급실’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다. 하지만 이 부분이 들어갔다면 그저 리메이크 버전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곡으로 음원까지 잡은 라이즈는 1월 24일 ‘Love 119’ 일본어 버전 음원과 내용이 추가된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일본 공략에 나섰다. 아직 일본에서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샘플링으로 앰뷸런스급 고속 날개를 단 라이즈에게 남은 숙제는 라이즈만의 성장 서사를 좀 더 ‘많이’ 담은 ‘미니앨범’이다.
윤혜진은
아이돌 조상 H.O.T.부터 블락비, 에이티즈까지 청양고추 매운맛에 중독된 K-팝 소나무다. 문화교양종합지와 패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기자를 거치며 덕업일치를 이루고, 지금은 아이와 뮤직비디오 같이 보는 엄마로 레벨업했다.
#라이즈 #응급실 #Love119 #sm #여성동아
사진 제공 SM엔터테인먼트, 유튜브 뮤직비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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